뉴스에 나오는 현장의 사고 소식이 유난스럽도록 자주 나온다. 사고의 고통은 사고가 크든 작든 다 아픔이다. 들려오는 사고 소식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는 관계 속에서 부대껴야 할지, 다치거나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직접적인 안타까움은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도 벅차다. 그러나 사고의 일상조차도 흔한 사고일 뿐이라는 인식으로 매몰되어 간다. 일상으로 사고의 인식이 매몰되어 갈 때마다 사람들은 점점 무기력화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사고의 대표적인 업종인 건설과 조선업인데 제조업에 비해 턱없이 사고율이 높다. 다른 업종도 비슷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두 개의 업종 특성이 소위 말하는 인건비 따먹기의 저임금이고, 인건비는 경비의 일종이니 무조건 줄이려 든다. 물론 일의 특성상 작업 환경이 제조업처럼 일괄적이고 고정적이지 못하고 작업 환경의 유동성이 많다 보니 안전시설 또한 그때 그때 달라질 것이고 보면 더욱 철저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끝날 기미가 없어 보인다.

 

모 대기업 회사에서 발주받은 선박에 대해 안전 감리를 해외 업체에게 맽겼는데 연간 동원 인원이 6,000명이었는데 불구하고 인력 관리가 얼마나 철저하던지 사고 한 건이 없었다고 한다. 배를 싸게 건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를 만드는데 사람이 다치거나 죽지 않아야 하는 외국의 발주 선주사의 마인드는 새삼스럽게 놀랍다. 문제는 이 놀라움이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도 우리는 그저 입을 크게 벌리고 놀라는 것이란 점이다. 정말 부럽고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할까. 무엇이 문제인가.

 

심지어 안전감시단에서 안전 점검사항을 지적하면 무시하거나 잔소리로 듣는 작업자의 마인드와, 회사의 마인드와 같은 거라면 사고가 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아무리 작업 전 중 후에 확인한다 해도 놓치는 부분이 늘어갈수록 사고의 압력은 켜져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무시하고 귀찮아한다. 그래. 귀찮음이다. 사람의 목숨에 걸린 일들이 일상이 되다 보면 귀찮음이 될 때가 바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와 결합한다. 하나 죽어도 눈도 끔쩍하지 않는 세상에서야 얼마나 피동적인 것인가 말이다. 사람 목숨 따위 자본 앞에서는 얼마나 하잘것없는 가치의 똥값만도 못한 것인가? 현실은 똥값만도 못한 슬픈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솔직히 말하자. 사람 목숨이 돈보다 가치가 싸다. 사람값이 싸구려다. 누구 하나 죽는다 해도 죽는 놈만 병신 되지 보상금이나 합의금은 네가 죽고 나서이니 네 돈은 아니지 않는가? 남은 가족들에게 돌아갈 뿐. 그런데 왜 자신의 목숨을 가치 없이 버리려 하는가 말이다. 안전은 귀찮음을 이기는 극기와 인내로 이루어진다는 사실. 우린 늘 잊고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신호를 무시할 때 약속은 의미가 없고 이 의미 없음이 바로 사고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횡단보도를 돌아가야 하는 귀찮음. 바로 건너면 빠를 텐데라는 조급증들. 모른 것이 빨리빨리라는 조숙증에 걸린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마음만 급할 따름이 아닌가? 이런 불감증은 어디 횡단보도뿐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한 사회. 그러니 더 슬플 수밖에 없다. 게다가 자본은 늘 시간을 다툰다. 빨리빨리 해내야 만이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급조의 생각은 생명이라는 가치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고 약탈한다.

 

어느 사고이든 간에 단순하지 않다. 작은 사고라 할지라도 원인은 상당히 복합적이고도 얽혀있다. 제도적 문제점, 현장 상황의 인식, 관련 비용의 지출, 사업주 및 노동자들의 인식 등등 모든 것이 맞물려 있으니 어느 개개인이라 한들 한 둘로는 사고 예방이 어림도 없다. 누구 하나 아무리 주장을 해도 누가 들어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고 그 누구 하나는 점점 제풀에 지쳐버리고 만다. 이것이 개개인의 조직 내에서의 무력감으로 나타난다. 결국은 사고에 대해 안전을 포기당한다. 어떻게 해도 안된다는 절망감.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무기력한 상황에 빠진다. 이는 안전을 관리하고 조절하고 제어하는 관리자도 같은 상황에 빠진다. 우선 당장 취직이 급해서 자격증으로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입사를 해도 막상 닥친 일들은 안전에 사명감도 없다. 안전은 이기는 공격적인 싸움이 아니라 늘상 불안전의 공격으로부터 수비를 해야 하는 입장이다. 따기보다는 지키는 업역이니 수비에는 공격보다 더 많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으니 허물어지기 일쑤이다. 그러니 작은 현장 서너 군데를 떠돌아 아니면 이런 무기력에 서서히 안전기술자들이 무너지거나 타성으로 상황에 맞춰가게 된다. 아니면 종사하던 업종을 떠나든가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공부하기 전에는 심각하게 생각을 못했던 부분들이 알아갈수록 구조적 심리적 부조리에 대해 역시 마찬가지로 무기력에 치를 떨 지경이다. 불안한 오늘은 반드시 불안한 내일을 잉태한다. 오늘이 불안한 사회. 당장에 안전하지 못해 언제 나가떨어질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상시 안고 있어야 하는 삶은 과연 어떤 살아감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사람의 특성중 하나를 꼽으라면, 어떤 일이든 하던걸 생략할 때 잘 먹히는 반면에 하지 않았던 일을 하라 하면 먹히지 않고 저항하는 경우이다. 안전도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게 될 때 발생하는 저항이 만만하지 않는다. 전에는 대충 넘어갈 일도 이제는 법으로써 제도로써 하게 될 때 사람은 정말 바뀌기 어렵다. 이제는 두렵다. 사고라는 것이 흡사 가슴에 시한폭탄 하나 들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작동시킨다. 앞으로 얼마간 여기에서 있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이 불안한 환경을 벗어나야 하는 시간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 이때까지 소규모 업종의 건설업에서 종사하다가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는 것. 내년부터는 원청이든 하청이든 사망자가 나오기만 해도 사업자의 책임은 어떻게 감당할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지금 그 대비를 해야 할 텐데 오늘이 늘 어제와 같은 마인드는 내일도 변할 길이 없다. 점점 압박이 심해지고 강도는 강해질 것이 뻔하다. 그런데 여전히 요지부동일 때,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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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8-21 22: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전 대책을 강구하지 않아 생기는 사고가 발생한다면, 사전 점검에 드는 비용과 시간이 귀찮다던가 아깝지 않을텐데요... 그런 일이 우리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안전 불감증의 또다른 요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yureka01 2017-08-21 23:51   좋아요 2 | URL
대부분 사고가 만약이라는 가능성을 무시해버리죠..괜찮을 거란 근거없는 자신감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건지 참 이해가 안되죠..불안전의 상태를 인지와 행동부재로 나타나더군요..

그런데 사고나서 사람 죽고 나면 그제서야 호들갑이 왠말인지요..

나와같다면 2017-08-21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놈의 하청의 재 하청 ㅠㅠ
이 죄를 다 어찌하려고..
세상에 큰 목숨. 작은 목숨이 어디 있다고..

yureka01 2017-08-21 23:52   좋아요 2 | URL
계속 저가 저가..절감 절감이 하청에 하청을 부르죠..
그래야 누군가는 그 차액을 쉽게 먹을 것이고...

여전히 일부에선 노력없는 부가 횡행하는 이유가
서로 타산이 맞아서 겠지요..

2017-08-24 1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24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雨香 2017-08-29 08: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구조적 심리적 부조리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yureka01 2017-08-29 09:01   좋아요 2 | URL
그럼요..단순하지 않죠....결과는 늘 복합적이더군요..
날만한 사고에 나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너무 어처구니 없는 사고는 황당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