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 50대라는 게 이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동시에 꼰대스러운 짓의 대표주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네 칭찬할 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386세대로 20대 초반, 민주화에 마지막 세대. 그러나, 지금은 나이 들어가는 탓, 또는 핑계로 좀 비겁하기도 하고, 용기도 사라지고, 민주화의 정의를 얻고자 항거하던 깡다구가 어디에 갔다 버렸는지 술 먹고 오줌 갈기며 츠자들에게 껄떡대는, 그야말로 교양 1도 없는 개저씨가 된 건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신념이나 가치관이 오로지 자본의 최고로 치부하고 허겁지겁 성깔만 더럽습니다. 아래 세대의 공감도 전혀 안되고 윗세대에 치여 허덕거리며 이제 엄마 아부지 하나하나 세상 하직하는, 그래서 결혼식보다 장례식장을 더 뻔질나게 드나들어야 할 세대가 된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들고 있는데 고작 카톡질, 폰으로 단순 퍼즐 게임, 그리고 문자와 통화가 전부인 줄로만 아는, 조금 더 배웠다 싶으면 인스타그램, 페북과 트위터입니다만, 이것도 다 모르긴 매한가지, 물론 트위치도 모를 것이고, 유튜브 계정에 동영상 한 번 올려 본 적도 없는 세대가 50대의 상징입니다. 영상과 이미지의 시대에 문맹스러움은 이내 책과 멀어졌거든요.


제가 이래 봐도 이 지역의 50대에서 독서률 상위 0.1%입니다. 이게 결코 자랑이 아니라, 오히려 제가 이 정도로 0.1%라서 너무 민망하다고나 할까요. 전체적으로 진짜 보잘 것 없다는 것의 반증이거든요. 적어도 한 10%대는 되어야 그나마 좀 봐줄 만한데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대부분인 부모들이라서 그런지 제일 공부 많이 하라고 윽박형 부탁형 읍소형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공부 1도 안 합니다. 이유야 뭐 뻔하잖아요. 먹고살기 바쁘니즘. 바빠서 여전히 변화도 시도할 수 없는, 그래서 변화를 시도조차 해보려 하지 않는 바쁘니즘의 늪에 허우적대면서 그러니 자신의 공부는 1도 못하는, 엄두도 못 내지만 술은 제일 잘 마셔요. 50대의 성인병이 아마 제일 많을 것입니다. 통계 안봐도 비디오입니다. 만날 후배들에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몰라서 묻는 놈들이 바로 50대들이거든요. 복부에 지방은 가장 많이 쌓였죠. ( 씨바, 공부 좀 혀. 아, 진짜 너무 몰상식하고 무식하고 ....)


그래서요. 자기 세대는 자기가 깔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세대에 대한 비판이 되어야 성찰이 되고 앞으로의 삶에 뭐라도 보이는 것이니까요. 지난날의 과오에 대해 반성과 통절한 후회가 뒤따라야 합니다. 지금 40대, 50대가 제일 반성해야 할 것이 후배 세대 그러니까 지금 20대 30대 세대들에게 절망을 안겨 준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가지는데 자신들은 반에 반도 노력하지 않았는데 후배 세대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것들을 요구하는 것들입니다. 지금 스펙 쌓기는 무슨 결과입니까. 저 때만 해도 공무원은 하려 들지 않았거든요. 기업은 대학 졸업장을 요구해도 공무원은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학 도서관 가보시면 십중팔구는 공무원이나 공사 취업 공부입니다. 대학이 무슨 공무원 취업 시장통입니까. 아니잖아요. 그런데 20대 젊은 세대가 도저히 공무원 밖에 길이 보이지 않게 만든 게 누굽니까.  50대, 40대들이 그렇게 만든 거예요. 윗세대들의 불합리는 극복하지 못하고 순응해서 체제를 그대로 자신들의 성벽으로 높이 만들어 공고화시켜 버린 탓입니다. 자본에 저항할 줄 모르고 오로지 윗세대들에게 물려받은 걸 지키려고 하니 당연히 아래 후배 세대들에게 돌아갈 것이 없습니다. 후배들이야 죽든 말든 내 알바는 아니라는 것이 제일 큰 문제거든요. 고위직 공무원이 아닌 담에야 동사무소나 구청 같은 일선 자치단체의 공무원들이 대학 공부가 사실 의미없거든요. 업무의 매뉴얼이 그리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시키는 대로 업무 교육받은 대로, 혹은 선배에게 배운 대로 하면 되는 답습의 일들이 대부분입니다만, 창의성을 발휘해야 할 직종은 아니란 겁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창의성을 짓밟는 사회적 구성을 만드는데 협력하고 일조한 것인 바로 50대들이거든요.


이런 50대가 앞으로 70대가 되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당장에 20대 30대 젊은 친구들이 아이를 낳지 안(아니 못 낳습니다.)습니다. 자신의 대를 끊으려 하는 자멸적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50대가 줘야 하는데 70대가 되면 과연 나아질 것인지 과연 모를 일입니다. 사실 70대라 해서 전쟁을 겪어 보지는 않았으나(계산해보면 아실 겁니다.) 전쟁의 후유증을 격하게 겪은 세대입니다. 고생이야 진탕했죠. 네 고생했는데 이 고생을 알아 달라고, 억울하다고 하는 보상심리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헌신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대가를 받아 내려하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고 버럭질하거든요. 그러나 고생하라고 후세대들이 억지로 강요한 적은 없습니다. 다 자신들 먹고 살기니즘에 빠졌던 것일 뿐이거든요. 이만큼 살게 해줬으니 보따리 내놔라 한다고 내줄 보따리가 어디 있습니까. 그저 자신들이 열심히 산 것일 따름입니다. 자기를 위해 열심히 산 것을 마치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산걸로 둔갑시켰을 때 오는 보상심리가 있거든요. 열심히 제 나름대로 산 결과가 꼬장 부릴 만큼 보상심리를 부려야 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 열심인지 따져 본적이 있었느냐는 겁니다. 군대 있을 때 내무반에 선임들의 부류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자신들이 후임 때 겪은 피해를 지금의 후임에게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불합리한 것들 조차도 모두 그대로 요구를 하는 것과, 둘째는 이런 불합리를 극복하고 되물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70대가 딱 전자의 경우입니다. 네 억울하죠. 인생이 어디 억울하지 않는 게 있습니까. 제일 억울한 게 시간의 억울함 아닙니까. 나는 조빠지게 고생했는데 왜 니들은 편하게 보이냐. 똑같이 조빠져야 할 거 아니냐라는 심리. 그래서 억울한 겁니다. 억울해서 삐둘어져 버린 신념이 공고화되고 억지를 부립니다. 세상이 바뀌는데, 아니 그것도 급격히 변화하는 와중에 변모에 따라갈 재간이 없거든요. 먹고살기 바쁘다고 변화에 둔감하고 바뀜에 의식없고 인식하지 못했으니 이젠 새로운 인식을 저항하려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늙어갈수록 더 억울한데 보상은 박하니 버럭질은 늘어납니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에게 노인네라고 외면받고 아예 이젠 상종 거부 대상이 되어 버렸거든요. 인생에 꽃은 다 필 수 있으나 꽃이라고 다 아름다울리가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은 그저 고생만 진탕했으니 보상의 꽃은 아닐 것입니다. 기품있게 늙어가는 것. 인격이 나이와 함께 비례로 무르익어가는 꼿꼿한 선비 같은 노인네는 왜 없을까요? 평생 살아온 삶이 머슴이니 늙은 머슴의 꼰대는 뭐겠습니까.


늙어가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입을 닫으라는 말은, 곧 많이 들으라는 의미일 것이고 듣는 만큼 지갑을 열고 베풀라는 뜻입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오듯이 배포와 뽀대는 지갑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정작 늙은 세대는 자신의 노후조차 건사하지 못했습니다. 자식에게 빌붙어야 하는 신세는 처량하고 초라하고 외롭고 쓸쓸합니다. 미쳐 자신의 늙어감에 대해 일말의 고민이라도 해봤을까요. 시간의 흐름은 단순히 지나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세상의 변함과 자신의 노쇠된 변함을 순간순간 자의적인 인식이라야 가능합니다. 세상이 변했는데 내가 변하지 않으리란 착각의 자신감은 대체 무엇으로 인한 것일까요. 늙음은 그저 단순히 늙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온몸이 그야말로 고장투성이로 삐거덕거리고 지난날의 고착된 관념은 고정 관념이 되어 변화의 젊은 세대와 단절되어 버립니다. 소외는 소통 부재에서 시작되고 소통 부재는 공감의 결여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말은 많아지고 옹색하니 지갑은 닫기 바쁘게 됩니다. 완연한 익음보다 설익어 버린 채로 발효가 아니라 부패된 듯이 늙은이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 아닐까요. 냄새라도 꾸리하면 차라리 싸구려라 할지라도 프레시한 향기가 차라리 나은 건지도 모릅니다. 요즘 "젊은 것들은 못 쓴다"는 말, 이거 자체가 꼰대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요즘 젊은 것들에서 풍기는 관념은 자신에게 비할 바 되지 못한다는 것이겠지만 어느 시대이든 객관적인 비교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시대는 그 시대에 짊어져야 할 십자가는 다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세대가 더 힘들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그 시대가 힘든 만큼 우리 시대도 버거웠음을 서로가 인정할 노력이 뒤따를 때에만 소통이 가능하고 소통을 통해서 공감으로 연대할 수 있습니다. 세대와 세대가 싸움해봤자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것이고 이 갈등에서 판판이 깨지는 것은 결국 늙은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러니 말이 통하지 않음은 소통 부재가 되어 소외를 낳습니다. 아무리 늙어가더라도 요즘 뜨는 BTS 노래  한 곡 정도는 알고 지낸다면 소통은 열릴 수 있겠지만 여전히 철지난 노래의 뽕짝 스타일로 변하려 들지 않는데 어떻게 젊은 사람들에게 섭섭하다 해본들 들어줄 젊은이는 적습니다. 나이 든 어른이 먼저 솔선하는 지침이 있어야 합니다. 말로서가 아니라 꼰대의 행동을 버리고 하다못해 흰 머리카락도 노랗게 염색이라도 하는 파격에 가까운 이미지의 변신도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찢어진 청바지가 아무리 꼴 뵈기 싫어도 그 싫어하는 것은 내가 먼저 한번 직접 실천해본다면 과연 젊은 친구들의 인식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한복 도포자락에 찌든 담배 냄새나 풍기면 슬슬 피하기 십상일 텐데 말입니다.


완벽할 수는 없어도 늙어감에 따라 노련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늙어간다는 것은 익어간다는 의미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설익지 않고 제대로 익어야 익숙해진 것들을 이성과 지성으로 앞 세대의 등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요. 꼬장 부리기, 꼰대스럽기는 나이들수록 피해야 할 첫 번째 덕목이 아닐까요. 고정관념이 아니라 유연한 사유가 그래서 반드시 따라야 노련할 수 있기 때문이거든요. 늙을수록 삶의 부채는 늘어가죠. 시간의 무게는 삶의 채무와 함께 합니다. 늙을수록 삶의 집착과 번뇌를 내려놔야 할 자기 면역력이 그래서 늙을수록 필요로 합니다. 마냥 서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의 늙음이 크지만 이 늙음이 아름다우려면 새로운 것들에 저항하는 보수가 아니라 받아들이며 능동화시키는 진보라야 하거든요. 그래서 시간은 늘 변하는 진보적인데 사람의 나이는 늙지 않으려 보수화되기 십상이거든요. 시간의 변화에 늙음이 내 인식과 발을 맞춰야 조화롭거든요. 엇박자의 소외는 그래서 더 억울합니다. 부단한 변화에 능동형은 그래서 늙어서도 항상 젊게 죽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더군요.


PS : 뭐 오늘도 동네 체육센터 운동장에 올라 가면서 옹벽 담벼락에 아저씨 안 놈이 쒸 싸더군요. 하여간 나이들어가니 부끄러움을 몰라서요. 아무대나 까고 ....참 지랄 맛게 늙어가나 봐요. 그러고서 살아온 인생이 억울하다해도 누가 봐줄 거 같지가 않아서 말이죠.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호랑이 2018-06-10 07: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시대는 급변하는데, 기성 세대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문제를 바라보니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그렇지 않았다는 선입견을 가지기보다, 지금의 문제를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이 더 필요해지는 요즘이라 여겨지네요... 분명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만, 꾸준히 우리 모두 노력해야겠습니다.

yureka01 2018-06-10 21:00   좋아요 3 | URL
세상에 고정적인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변화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지 않는 감수성..수용성이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죠..
노인들이 외로움을 특히 많이 타는 이유가 바로 그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오늘의 바람이 어제의 바람이 아니듯..오늘의 구름이 어제의 구름은 아닐 텐데 말이죠..
삶의 메너리즘은 시간을 따분하게 만들죠,..

2018-06-10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0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0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0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0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0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06-10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공감합니다. 저도 이 기사 읽었는데 왜 기사 끝부분에 무슨 교수 나와서 그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던데
극우에 대해서 왜 일반인이 이해를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 교수의 말 대로라면 우리는 나치 전범들도 이해해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하여튼, 전문가라는 탈을 쓴 좆문가들은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yureka01 2018-06-10 21:04   좋아요 0 | URL
많이 살아 보고 경험 많은 사람이 더 이해해야지..왜 아래 사람들이 이해를 해야하는지 저도 이해가 안됩니다.
헛살아서 살아온 경험이 헛되는 걸 증명하는 셈이라서요..
나이들수록 이해력은 넓어지는 게 이치인데 말이죠...

강옥 2018-06-10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꼰대 되기 싫은데 꼰대로 분류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러나 나름 현실 인식은 제대로 갖고 삽니다.
적어도 태극기는 아니니까요 ㅎㅎ

요즘 노인 범죄도 나날이 지능화되고 있대요. 젊은 사람들 뒤통수 칩니다.
교묘하고 영악하고 사악하기까지.

yureka01 2018-06-10 21:04   좋아요 1 | URL
부단히 꼰대스럽지 않도록..
개저씨가 안되도록 살펴야죠..
사진 찍으려다보니..살피는게 버릇이 되었어요..ㅎㅎㅎㅎ

2018-06-10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0 2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징가 2018-06-17 1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님같이 깨어있는 지성을 가진 기성세대들이 우리사회에 많이 있어야 하는데.. 님 말씀처럼 그렇지 못한것이 현실이네요. 저도 제자신을 성찰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사실 님이 그동안 쓰신 글 읽으면서 30대 인줄 알았습니다. 그만큼 진보적인 분 입니다..

yureka01 2018-06-18 00:08   좋아요 0 | URL
아 ..부끄럽죠..쓸데없이 나이만 먹어가는가 싶어서요....
그래서 오늘도 책을 읽고 인터넷에 글과 사진으로 자주 성찰하고자 시도하도 하는 것이니까요..
하늘의 명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하늘의 명은 커녕 하늘에 부는 바람의 말조차
못듣고 사니 말이죠..ㅎㅎㅎ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