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그림 수집가들 -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니 모으게 되더라
손영옥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보고 즐길 줄 아는 것이 기본이다
간혹 안면 있는 사람들과의 모임자리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얼마나 영화를 보는지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보지는 못한다고 한다. 좋아하면서도 정작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과연 좋아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무엇이든 좋아하면 다양한 형태로 직접 접하면서 누리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그렇지 못하는 스스로를 위안삼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는 영화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삶의 분야에서 마음 쓰며 좋아하는 것을 한 가지라도 두고 복잡하고 심란한 일상의 삶에 위안을 삼아본 사람들은 그 좋아한다는 것을 누리는 진가를 말한다. 무엇이든 머릿속 상상으로만 그치는 것은 위안 보다는 움츠려드는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좋아한다고는 하지만 누리지 못하는 분야로 으뜸인 것이 그림과 음악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직접 참여하기에도 만만찮은 벽이 있고 그만한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가능한 것이기에 더더욱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리라. 음악을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지는 못하지만 듣고 감상하는 것으로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책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에는 그림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직접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도 있지만 그림이 주는 매력에 빠져 좋아하는 그림을 수집하고 지인들과 어울려 감상하기를 좋아한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물론 그 중심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왕에서부터 사대부와 중인에 이르기까지 그림을 대하는 조선시대의 변화하는 모습까지를 담아내고 있다.

제1부 ‘서화 수장에 빠졌던 왕과 왕자들’에는 당시 온갖 문화적 혜택의 최선두에 있었던 성종, 연산군, 정조 등 왕과 그 종친들에게 그림이 가진 남다른 의미를 파헤치고 있다.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그림하나 보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왕들의 모습과 안편대군, 월산대군처럼 권력에서 밀려난 자신의 처지를 어쩔 수 없이 시, 서, 화에 담아 그를 알아주는 벗들과 나누는 삶을 살았던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탐욕과 자족의 기로에 선 양반 컬렉터들’의 제2부에서는 왕과 권력을 나눠가지며 세상을 호령했던 양반가문과 그들의 일상에 그림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 볼 수 있다. 조선 성리학의 영향으로 자족하는 삶에 차와 그림이라는 도구를 적절하게 활용하며 자신들의 지위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지켜나갔던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이러한 모습 속에서 조선의 그림이 발전하게 되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 조선의 그림 수집가들의 백미는 제3부 ‘조선후기를 뒤흔든 중인 컬렉터들’에 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싶다. 조선이 중기를 넘어서며 사회경제적 안정과 시장경제의 발달, 중인 신분들의 사회적 진출 등 사회적 변화가 정착되는 과정에 등장한 신흥부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결코 넘어서지 못했던 신분의 한계를 사대부 양반들의 자족적인 문화생활을 자신들도 향유하며 보란 듯이 위세를 떨치려는 마음과 국외를 넘나들 수 있었던 신분 그리고 마련된 경제적 기반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서화의 감상과 수집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의 화단에 영향을 미치며 상호작용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저자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그림을 올바로 보는 법에 대해서도 잊지 않고 있다. 제4부에서는 바로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 전재되어야 할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양그림과는 달리 제문과 발문이 달린 동양그림들을 감상할 때 그 제발을 빼놓지 않고 봐야 그림의 전체적인 맥락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림 속에 들어있는 다양한 인장 또한 충분한 이야기 거리다. 작가가 누구인지 작품의 진위를 판가름하거나 하는 기능이외에도 그림의 소장자의 변천과정이나 인장 자체로도 예술성을 발견한다고 한다.

이 책은 시간을 거슬러 조선 그림의 창작자와 감상하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 양자를 이어주는 서화수집가에 대해 먼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실의 이야기로 끌어오고 있다. 시원스러운 그림에 상세한 설명까지 있고 더불어 저자의 그림에 대한 따스한 마음이 스며있는 이 책을 접하고 전시회를 찾는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림은 분명 달리 보일 것이다.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알면 진정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진정 보게 되고, 볼 줄 알면 소장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그저 모으는 사람과는 다르다’

정조 때 문장가 유한준이 서화수집광 김광국의 ‘석농화원’의 발문에 쓴 글이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로 한 때 대단한 유행어가 되었던 말이다. 그림이든 다른 무엇이든 그것을 진정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이만큼 바르게 표현한 말이 없을 것이라는 저자의 마음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왕이든 사대부 양반이든 중인 신분이든 그림을 대하는 그들의 동기는 달랐더라도 문화적 소양을 쌓고 누리려는 모습은 부럽기만 하다.

시대를 불문하고 그림은 어쩜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인지 모른다. 그나마 현대사회에 와서 그림을 전시하고 그림과 감상자가 일대일로 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눈으로나마 보는 기회가 늘었다. 저자가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과 어울려 나누는 감상에서 벗어나 개별화된 것은 몹시 애석한 일이다. 전시장 유리 상자에 갇힌 그림들은 여전히 그림 속 떡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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