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몸을 길러 살찐 자가 있고, 입을 길러 살찐 자가 있으며, 눈을 길러 살찐 자가 있고, 귀를 길러 살찐 자가 있습니다. 
지붕이 높이 솟고 거처가 훌륭하며 화려한 큰 집에서 쉬고 아름답게 수놓은 방안에서 즐기면서도 그 모습이 비쩍 마른 사람을 그대는 본 적이 있는지요?
일천 개의 술잔과 일백 개의 솥을 벌여 놓고 생선을 굽고 고기를 삶아 육지와 바다에서 나는 산해진미를 다 가져와 즐기는데도 그 모습이 야윈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남위와 서시 같은 미인이 한 일백여 명쯤 주옥을 두르고 한 집에 살면서 살짝 눈웃음을 지으면서 그윽한 눈길로 마음을 허락한다고 할 때 이러고도 그 모습이 파리한 사람이 있던가요?
오나라와 월나라의 노랫가락에 백아의 거문고와 영윤의 피리 소리가 성대하게 어우러져 무리 지어 늘어섰는데도 그 낯빛에 고달픈 기색이 있는 자가 있습디까?

이 네 가지는 사람을 살찌우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는 집이 화려하면 편안해서 살이 찌고, 음식이 사치스러우면 맛이 있어서 살이 찌고, 용모가 아름답고 보니 기뻐서 살이 찌고, 소리의 가락이 어여뿐지라 즐거워서 살이 찌지요. 이 네 가지를 몸에 지니면 살 찌기를 애써 구하지 않더라도 살찌는 것이 당연합니다.

*김석주(1634~1684)의 '의훈醫訓'이라는 글의 일부다. 몇 달 동안 병을 앓고 난 이가 바짝 마른 자신을 본 주변 사람들의 염려하는 말을 하자 의원을 찾아가 해법을 묻는 이에게 의원이 들려준 이야기 형식의 글이다. 몸을 고치려 갔다가 마음을 고치게 된 내력을 담았다.

위 네 가지 살찌는 이유 중 한가지도 해당하지 않은데 가을이라고 여기저기서 살찐다는 소리가 들린다. 우스개 소리로 들리기도 하지만 웃을 수만도 없는 이야기라 행간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길게 인용한다. 

거친 바람결이 옷깃을 파고든다. 한기를 느끼는 몸이 자꾸만 볕을 찾아가자고 조른다. 파아란 하늘빛에 볕까지 좋으니 저절로 마음에 살이 오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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