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재회한 친구와의 악수. 그 악수의 감촉이 즐거움인지 괴로움인지 미처 파악할 틈이 없다. 장님이 지팡이 끝으로 사물들을 직접 느끼듯, 나는 친구가 있음을 직접 느낀다. 살면서 겪게 되는 어떤 상황이든 마찬가지다. 신에 대해서도 그렇다.

거기에 담긴 의미는 바로 고통을 달래줄 위안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참된 행복은 위안이나 고통의 영역을 넘어선다. 지팡이나 다른 연장의 끝으로 대상을 지각하는 것이 원래의 촉각과 다르듯이, 참된 행복은 다른 감각으로 감지된다.

그 다른 감각을 지니려면 몸과 영혼을 다한 훈련을 통해 주의력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서 성서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이제 분명히 말하거니와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 보상은 필요 없다. 우리의 감각 능력 안의 빈자리가 우리를 그 감각 능력 너머로 데려가준다. -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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