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 여행을 시작하고서 벌써 9일째를 보냈다. 유럽의 이곳저곳 옮겨다니면서 평소와 다른 경험들이 쌓이고 있음을 매일 느낀다. 날마다 새로운 여정에 따라 새로운 볼거리와 마주침도 좋지만, 아들과 대화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일이 그 무엇보다 좋다. 여행지에 대한 감정도 그렇고, 숙소 근방에 있는 마트를 찾는 것도, 장을 보면서 먹거리를 고르고, 주전부리에 돈 쓰는 등을 같이 하면서 아들이 기대 이상으로 잘 자랐음을 느낀다. 참 기분 좋다.

그동안 무리한 때문인지 몰라도 어제 밤에 아들이 밤새 고열에 시달렸다. 저녁을 먹고는 준비해온 해열제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새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었다. 타올 두 개에 냉수를 적셔서 머리, 가슴, 배, 팔, 다리에 대고는 열을 식혀주었다. 서너 번 반복하고나니 열이 조금 내렸다. 안도감을 잠시나마 느꼈다. 그러나 새벽에 설사를 했고 아침에 배가 많이 아프단다. 감기인 줄 알았건만 배탈이다. 식중독인가보다. 둘이 같이 다니면서 똑같은 음식을 먹었고 서로 먹여주기도 하였는데 나는 멀쩡하고 아들은 아프다니. 이 사실만으로도 내 마음이 무척 아프다. 당장은 뱃속을 비울 수 밖에 없으니 아침을 거르기로 했고, 따뜻한 물을 마시기 위하여 나는 물을 끓였다. 여행 내내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의 무게를 보태서 챙겨왔고 어제까지 혹처럼 여기던 커피포트가 이리도 크게 도움이 될 줄이야. 세상 일이 예측불가다. 그리고 나는 여정을 잠시 멈추기로 했다. 하루나 이틀, 정말 운이 좋으면 반나절 정도이지 않을까. 물론 아들을 간호하는 일이 급선무이지만, 구경 때문에 여행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새삼 깨닫는다.

이정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잠시 멈추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 이정표 앞에서 멈추지 않고 길을 잘못 들어선다면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면 그 길 끝에서 어찌 될 것인가. 이정표 뿐만 아니라 여독을 풀기 위해서 휴식도 필요하다. 낯선 곳으로 여행 중에 충분히 쉬어야 하고 이정표가 필요한 까닭을 역시 깨닫는다.

아들이 어느새 잠들었는지 새근새근 숨소리가 들려온다.베니스의 따스한 햇살이 숙소 방을 가득 채운 오전 한 때를 잊을 수 없으리라. 평온한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금 느낀다. 구경을 하든 휴식을 취하든 다른 어떤 순간도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아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이렇게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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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1-22 2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거서님 아드님과 함께 즐거운 여행 되세요^^:

bookholic 2017-11-23 0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로망을 실천하고 계시네요..^^
저도 언젠가는...
즐거운 여행 되시길...

2017-11-23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또 봄. 2017-11-24 1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건강 조심하시고요,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하세요.

2017-12-04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