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의 문화사 -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아리 투루넨.마르쿠스 파르타넨 지음, 이지윤 옮김 / 지식너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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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사를 잘 하는 사람을 보고 매너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사법은 누가 정한 걸까? 여자에게 양보하는 남자가 매너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어렸을 때부터 예절은 어떻게 해서 정해졌는지 알고 싶었다. 예의 바르다고 여겨지는 행동 중에서는 레이디 퍼스트처럼 우호적 성차별에 가까운 것들도 있고, 직관적으로 봤을 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내가 예절이 굳어진 배경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요소들이 예절을 형성하는 데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예의범절과 인사법은 위험 사회에서 폭력성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책이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기사가 여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먼저 지나가게 양보하는 것은 문 안에 암살자가 숨어 있을 경우에 대비해서 암살자를 유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악수의 원래 목적은 서로가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는 내용도 있었다.

 

옛날 유럽 사람들은 예절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가족이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면 무기를 들고 결투하는 일도 많았고, 연회에서 벌어진 무례가 정치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처음에는 왜 이 사람들에게 예절이 이 정도로 중요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서서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기 전인 중세에는 모두가 친구 아니면 적인 사이였기 때문에 행동과 몸짓을 통해 자신이 어느 편에 속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내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복수를 통해 가족의 명예를 지키는 능력을 남성성과 연관시켜서 생각하던 당시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책 제목이 매너의 문화사이다 보니 유럽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다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는 비중이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중세에는 국가권력이 약해서 개인 간의 폭력이 난무했다같이 큰 맥락을 짚어주는 내용이 있어서 대략적인 흐름은 이해할 수 있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포크를 먹으면 지옥에 간다고 생각했다는 것 같은 식생활사에 관련된 내용도 많다. 예의범절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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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 소외된 영혼을 위한 해방의 노래, 라틴아메리카 문학 서가명강 시리즈 7
김현균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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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에는 원래 마야 문명, 잉카 문명 같은 자신들만의 문명이 있었다. 그런데 지형 떄문에 외부 세계와 고립되었던 탓인지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너무 쉽게 정복되고 만다. 특이한 점은 그 이후에 라틴아메리카 원주민 문화가 완전히 스페인 문화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두 문화가 섞여서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민족적인 특성도 변해서 백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들이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되었다(다만 원주민에 대한 편견은 지금도 많이 남아 있어서 메스티소 정체성을 긍정하는 사람이 많을지는 잘 모르겠다).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문화가 혼합된 라틴아메리카 문화는 어떤 감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문화의 감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문학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서울대학교 서어서문학과(=스페인어스페인문학과)의 김현균 교수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라틴아메리카 문학과 시인 4명에 대해 쓴 교양서인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카프카가 우리 곁을 지나간다. 우리는 감격하여 인사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니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서구중심주의가 미친 영향이 보였다. 서양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서구중심주의의 폐해를 직접 느꼈을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는 뿌리 깊은 변방 의식이 20세기까지 남아 있었다고 한다. 생전에는 유명세를 얻지 못하고 외롭게 살았던 카프카조차도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를 잠작할 수 있다. 실제로 한 영국 평론가는 이 책에 소개된 시인 니카노르 파라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예술을 애지중지할 뿐이라서 철학성이 전혀 없다고 평했다고 한다. 물론 근거가 전혀 없는 말이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황태자라고도 불리는 루벤 다리오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템페스트>를 비틀어서 <칼리반의 승리>라는 글을 써 미국의 야만성을 비판한다. <템페스트>는 귀족 프로스페로가 괴물 칼리반을 노예로 삼아 문명을 가르치는 내용이라서 주로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데 쓰였는데, 루벤 다리오는 글을 가르치는 프로스페로에게 욕을 하며 달려든 칼리반이 승리했다고 말해서 그 논리를 뒤집었다. 그런데 이 글이 미국-스페인 전쟁 때 나와서 미국을 비판하고 스페인을 옹호한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식민지배했던 나라를 옹호한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원주민 문화가 완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 문화와 섞여 있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시에 대한 부담감도 덜 수 있었다. 내가 준비하는 AP 영어영문학(AP English Literature and Composition) 시험에서는 40분 안에 시를 분석하는 에세이를 영어로 써내야 한다. 시를 분석하는 과정을 연습하면서 표면적인 의미 뒤에 있는 더 깊은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얻어서 기쁘기도 했지만 점수를 내야 하다 보니 시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책에서 라틴아메리카 시를 읽다 보니 시가 점수를 내려고 분석해야 되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문화를 보여 주는 대상으로 다르게 보였다. 그런데 어떤 시들은 한국어로 옮겨 놓으니까 잘 와닿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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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인자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12가지 충격 실화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 지음, 이지윤 옮김 / 갤리온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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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평소에 뉴스를 많이 보는 편이다. 이슈가 될 만한 일들만 뉴스로 보도되어서 그런지 뉴스에는 범죄, 특히 살인 같은 끔찍한 범죄에 관련된 사건이 많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런 사건 자체에도 분노하지만 범인이 저지른 범죄에 비해 너무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때 더 크게 분노한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주 가벼운 처벌만 받거나 아예 무죄 방면되는 것일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접하면 판사의 사고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거나 범인이 사회적 지위나 재력 등을 이용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재판에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이 범인이라고 확신해도 아닐 수도 있고, 정말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던지 하는 이유로 처벌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에는 드라마 <SKY 캐슬>에서 황우주가 여자친구를 죽였다는 살인 누명을 쓰는 부분을 닮은 에피소드가 있다. 권총에 맞아 죽은 남자의 시신이 공원에서 발견되고, 검사는 남자의 부인이 보험금을 노리고 저지른 살인이라고 확신한다. 여자에게는 알리바이도 없었고 정황 증거는 모두 여자가 범인이라고 암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선변호를 맡은 슐레징거 변호사가 알고 지내던 폭력배 야서가 타살이라면 권총이 발견된 위치에 놓여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고 슐레징거 변호사는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 여자의 무죄를 이끌어낸다. 사실 죽은 남자는 사업 실패로 자살하면서 부인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게 타살로 위장한 것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문학 작품처럼 서술되어 있어서 무거운 내용이지만 한 편의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이 사람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들고 증거도 있다고 해서 확신한 내용이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황우주에게도 에피소드에 나오는 여자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발견된 모든 증거가 황우주를 가리키고 있었기 떄문에 황우주는 확실한 진범으로 몰려서 긴급체포되고 구속 수사까지 받게 된다. 황우주의 변호사는 몇 번이나 진법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드라마 속의 경찰은 말이 안 된다면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논리적인 도구인 오컴의 면도날에 의하면 어떤 일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가장 단순한 설명이 맞는 설명이다. 그런데 에피소드 속의 여자나 황우주 같은 인물들에게 벌어진 일을 보면 오컴의 면도날을 이용해서 도출한 결론이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확실해 보인다고 해서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믿는 것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부분이다. 법조계에서 일하고 있거나 관련 직업에서 일하고 싶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저자의 다른 작품인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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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놀이공원이다 - 두근두근, 다시 인터뷰를 위하여
지승호 지음 / 싱긋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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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이 있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같은 인터뷰집들을 읽으면서 인터뷰집이라는 장르 자체가 좋아졌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인터뷰이들의 겉모습 뒤에 있는 사연과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SNS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인터뷰를 몇 번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뻔한 질문만 하고 끝났던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인터뷰집을 쓰는 저자가 인터뷰를 이끌어가는 태도를 배우고 싶기도 했다.

<타인은 놀이공원이다>는 저자가 지금은 휴간 상태인 <인물과 사상>에 연재한 인터뷰 중 일부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강용주, 강원국, 김규리, 김승섭, 목수정, 서지현, 이은의, 주성하, 이렇게 8명의 인터뷰가 나온다. 과학자 인터뷰를 시도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인터뷰들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섭외했는지 놀랍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서문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책 제목에 나와 있듯이 저자는 '타인은 놀이공원'이라고 말한다. 인터뷰이를 섭외할 때는 놀이공원에 가서 놀고 올 날을 기대하는 것 같고, 인터뷰를 할 때는 놀이공원에서 노는 것 같고, 인터뷰를 마치고 내용을 정리할 때는 놀이공원에서 쌓은 추억을 정리할 때처럼 행복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언니들이 있다>를 쓴 김지은 기자는 인터뷰하는 과정을 사랑에 비유했다. 두 사람 모두 인터뷰하는 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좋아한다는 느낌이 든다. 블로그 기자단 활동을 할 때는 내가 만든 콘텐츠를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인터뷰를 곁들이려고 했다(인터뷰집을 여러 권 읽어보고 나니 이때의 내 태도 때문에 이불킥이 나온다). 그게 아니라 인터뷰 자체를 좋아하고 사랑해야 좋은 인터뷰이를 섭외하고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다시 인터뷰를 할 일이 생긴다면 지금까지 읽어본 인터뷰집을 꼭 참고해서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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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진작 배울걸 그랬네 - 경제학적 통찰의 힘을 길러주는 초단기 일주일 경제학 여행
장위치엔 지음, 정우석 옮김 / 베이직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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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PPE(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라는 학과에 관심이 많다. 철학은 어릴 때 부터 관심이 많았고 정치는 뉴스나 학교 수업 등을 통해서 접할 수 있어서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하지만, 경제학은 배경 지식이 거의 없다. 아는 거라고는 경제학이 사람의 의사결정에 대해 연구한다는 것 정도다. 그런데 의사결정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철학, 정치학과의 접점도 많아 보여서 경제학을 더 잘 알았으면 사회를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책의 제목처럼 '경제학 진작 배울 걸 그랬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니다가 실제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역시 내가 경제학 지식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페이지가 쉽게 넘어가지는 않았다. 2부 '기원과 발전'에서 로잔학파, 오스트리아학파, 케임브리지학파 같이 처음 들어보는 경제학 학파 이름들이 쏟아져 나오자 어느 순간부터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 식으로 책을 읽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철학 공부를 시작할 때 <소피의 세계>를 처음 읽다가 철학자 이름과 사상이 엄청나게 많이 나와서 소화하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경제학 진작 배울 걸 그랬네>를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이 다시 들었다. 철학 공부를 조금 더 한 이후에 작심하고 <소피의 세계>를 다시 꼼꼼하게 읽어 보니까 그제서야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른 경로로 경제학 지식을 쌓아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본다면 책 내용을 통해 지식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이 막막한 느낌만 안겨준 것은 아니다.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면 새로운 관점으로 주변 현상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책은 그 기대를 조금이나마 실현시켜 주었다. 사람들에게 코카콜라와 펩시콜라를 가지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본 결과 펩시콜라가 더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판매량은 코카콜라가 압도적으로 많다. 나로서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 책은 이 현상을 코카콜라가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서 '독점적 경쟁'을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코카콜라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이 있어도, 심지어 대체 상품이 더 싸더라도 사람들이 여전히 코카콜라를 사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논리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벌어질 떄 경제학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해석하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훨씬 빠르게 이해할 수 있겠다.

경제학을 조금 공부하고 나서 지식을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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