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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 빈민가 아이들에게 미래를 약속한 베네수엘라 음악 혁명
체피 보르사치니 지음, 김희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만약 내가 가족 중 한 사람이 음악인인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엘 시스테마는 내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다. 엘 시스테마는 모든 사람을 끌어안는다. 그리고 아브레우 박사는 이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다. 나는 진심으로 말할 수 있다. 아버지란 당신을 낳은 사람이 아니라 당신을 키운 사람이라고." - 27p
어릴 때 '천사들의 합창'과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서 묘한 환상에 젖어들곤 했었다. 음악에 대한 동경을 하면서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것. 음악은 내게 그런 것이었다. 내가 살던 곳은 다중주택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큰 대문에 각자의 집의 현관문이 달려 있었다. 그래서 옆집은 현관문 하나만 열려 있으면 같은 공간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옆집에는 나른한 오후가 되면 매일같이 피아노를 치는 여인이 있었다.
나는 몰래 그 여인의 뒷모습을 본채 피아노소리를 들으며 오후 나절을 보내곤 했다. 지금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이 과거에 일어났던 그 일보다 좀더 판타지스러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여인은 아줌마였을수도 있고 피아노소리는 그리 훌륭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내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그곳뿐이었기 때문에 나는 처음 그곳에서 겪었던 경험과 느낌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어렴풋이 음악의 힘을 느꼈던 것 같다. 음악에 다가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안되어 다가갈수는 없었다. 대신 나는 그저 내 마음대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특별한 누군가만이 손댈 수 있는 것. 그것이 음악이었다.
아브레우 박사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한국은 원래 감정이 충만하고 작은 나라라 더 똘똘 뭉친 음악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베네수엘라가 부럽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누군가 이끌어주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다. 되물림되는 가난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스스로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그 아이들을 모두 빛의 세상으로 이끄는 일을 상상해낼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다. 아브레우 박사가 바로 그 기적의 가능성을 믿은 사람이다. 그는 거리의 아이들의 손에 악기를 쥐어주었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던 슬픔과 충동을 음악에 분출시키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이 더 감성을 틀어짜는 것같이 들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엘 시스테마 덕분에, 음악 덕분에 나는 완성된 인간이 되었습니다." - 44p 베이스를 연주했던 리차드 블랑코 우리베의 말
음악을 통해 아이들은 행복해졌고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게 되었다.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경험은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 44p
엘 시스테마에 들어온 소년 혹은 소녀는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소중한 가치와 관계를 얻게 된다. 아이들은 여기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고 음악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예술적 표현은 아이가 자기만의 독특한 감수성과 내면의 확신을 키울 수 있도록 돕는다. - 129p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이며 인정받고 있다고 느끼며, 끊임없는 자기 확신이 그들을 목표에 다가가게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들은 오케스트라에 가족같은 소속감을 느끼며 더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자신의 미래를 구체적으로 설계해간다.
아브레우 박사가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지금은 이렇게 큰 열매를 맺고 있지만 처음에만 해도 무모한 도전이라 일컫어지며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에 대해 별 기대가 없었다는 것은 그에게는 지금의 결과가 더 큰 놀라움과 성취성, 만족스러움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내린 판단을 뒤엎고 기회를 꼭 붙들고 성공적으로 이어가는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에 예술적, 문화적 혜택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헌을 했다. 이 혁명적인 프로그램은 아브레우 박사가 처음부터 분명히 했던 인간적, 교육적 본질 덕분에 한 나라를 내부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모델, 음악을 변화의 기본 도구로 삼는 사회적 모델을 만들어냈다. - 128p
한장한장 넘기며 만나게 되는 엘 시스테마에 속해 있는 음악가들의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고, 기회를 잡은 이가 그 속에서 의미를 찾기만 한다면 불우한 자신의 환경을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록 그것이 엘 시스테마에 속한 감동적인 이야기일지라도 이 글을 읽는 사람 모두는 자신의 인생에 빗대어 보며 감동을 받게 될 것이다.
"가난과 관련하여 가장 참담하고 비극적인 일은 일용할 양식이나 거처할 공간이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 아무것도 안 될 거라는 느낌, 존재감의 부재, 공적인 존중의 부재야말로 가장 비참한 일입니다." - 268p 테레사 수녀
뉴욕의 교도소에 8년째 복역 중인 여죄수에게 "사람들이 왜 가난한 것 같나요?"라고 질문했을 때 이런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 문제는 아이들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을 가르쳐야 해요.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해요. 아이들을 연극이나 박물관, 음악회, 강연회 등에 데리고 다녀주세요.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더는 가난하지 않게 된다니까요. 길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도덕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 여죄수가 말한 '시내 중심가 사람들의 정신적 삶'이 뜻하는 것은 성찰적 사고 능력이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을 결정하는 성찰적 사고 능력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 269p
희망을 가져보기도 전에 꺼지는 씨앗들이 얼마나 많은지 한시간만 세상을 둘러보아도 얼마든지 알 수 있다. 풍족한 물질적 삶속에서 평생 부족함을 모르던 사람은 비록 모든 걸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경험과 그 경험으로 인한 감동을 느낄 수는 없다. 힘들고 실패적인 경험들은 뼈저린 깨달음과 지혜를 가져다준다. 음악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시키는 일이다. 그러기에 그들의 녹녹하고 진실된 마음이 녹아있는 음악은 사람들에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울림을 전해준다.
엘 시스테마. 그들이 전해주는 음악선물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며 희망의 씨앗이 번지고 있다고 들었다. 언젠가는 그 씨앗이 한국에도 상륙되기를 기다려본다. 또, 그것을 위해 개인 각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본다. 음악만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아브레우 박사가 했던 시도를 해본다면 이것이 바로 미래 발전의 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 기억에 남는 문구 (많은 글귀가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엘 시스테마의 매니저에게 '엘 시스테마'가 이룬 가장 큰 성취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에,
"아브레우 박사는 베네수엘라의 모든 어린이에게 오케스트라에 속할 권리, 문화를 즐기고 인생과 직업에서 다른 가능성을 가질 권리, 음악의 빛과 지혜 속에서 세계를 다른 시각으로 볼 기회를 선물했어요." -108p
"지칠수록 몸을 더 혹사시켜야 해. 그래야 피로를 뛰어넘어 계속할 힘을 얻을 수 있어." - 41p 아브레우 박사의 말 중
(검색해보니, 영화도 있더군요. 조만간에 꼭 보고 말꺼예요 ^ㅗ^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