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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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에는 '왜 행운은 나만 피해 다니는 것일까? 왜 나는 항상 패자가 되는 것일까? 라는 자책에 시달리는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바람이 실려 있다. 괜히 짠해지는 대목이다. 그 말인 즉, 저자 역시 삶에서 행운이 따르지 않았고 이제껏 항상 패자로 살았다는 뜻일 터, 이 책을 읽는 다른 사람이라도 부디 행운을 거머쥐었으면 하고 바란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마저도 헛된 바람으로 들리는 건 왜일까?

 

"나로 말하자면 책과 정신적 사랑을 나누는 사람에 속한다. 헌책에 적힌 전 주인의 메모를 그리도 귀하게 여기고 재미나게 읽는 편이지만 정작 나는 책에 메모하지 않는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나는 온건한 정신적 사랑파에 속한다. 띠지를 소중히 여기지는 않아서 새책을 받으면 띠지는 휴지통에 직행시킨다. 또 책갈피를 사용하지도 않고 볼펜을 끼워두거나 그것마저도 귀찮으면 그냥 읽던 쪽을 접는다." (p.63)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책벌레이자 책 수집가인 저자 박균호는 그의 책 <독서만담>에서 책과 함께 살아온 자신의 지난 삶을 아주 재미있게 기록하고 있다. '츄리닝, 난닝구, 삼선 쓰레빠'로 무장하고 하릴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아재 패션'만큼이나 그의 수다는 구수하고 넉살이 좋다. 물불 가리지 않고 희귀본을 손에 넣고자 했던 일화나 시골 학교의 기숙사에서 학생들과 함께 거주하던 시절의 이야기, 12년간 어머니의 병간호를 맡았던 이야기, 늦게 배운 담배와 흡연에 얽힌 이야기 등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저자의 맛깔스러운 입담으로 재탄생된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자신이 읽었던 책이 등장한다. 책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강조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도저히 미워할 수도 없고 오히려 마음이 짠해지는 패배자들의 삶은 날조된 이미지나 탐욕으로 점철된 승리자의 삶보다 더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 더구나 몇 사람을 제외하고 우리는 모두 패배자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생활은 패배와 실패의 연속이다. 나는 아내와의 싸움에서 늘 패배하며, 아내는 아내대로 매주 로또 당첨 번호를 비껴간다." (p.171)

 

저자는 김훈의 소설 <화장>과 파드마삼바바의 <티벳 사자의 서>, 시니의 <죽음에 관하여>를 통해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배우고, 이윤기의 소설 <하늘의 문>을 통해 가정의 평화를 지키는 열쇠를 발견하기도 한다. 또한 결혼 전 필독서로 <최성애 박사의 행복수업>, <셀프 & 커플 5분 마사지>,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권하기도 한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쓴 사노 요코의 <자식이 뭐라고>, 최민준의 <아들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은 엄마들에게>를 통해 아이들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고도 말한다.

 

저자의 이야기에 한참 빠져들다 보면 인생에 있어 책만큼 소중한 게 없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가 풀어놓는 어떤 에피소드에도 책이 빠지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치 책이라는 삶의 안내서도 없이 인생을 마구잡이로 살고 잇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했다. 삶이 암담해지는 어느 순간에, 갈피를 잡지 못해 허둥대는 어떤 때에도 그 상황에 맞는 책 한두 권쯤 떠올리지 못한다면 나의 삶은 그저 '무대뽀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일종의 취미 생활에 가깝다고 말해왔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꼭 내가 글쓰기를 즐기는 것 같지는 않다. 글쓰기가 나의 취미 생활이라면 휴대전화 카메라로 셀카를 찍듯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주 써야 한다. 실상 글을 쓰는 장소는 여름에는 에어컨이 가동되고 겨울에는 온풍기가 작동되는 도서관이어야 하고, 시간을 따지자면 주말이나 하루 종일 다른 스케줄이 없는 날이어야 한다. 더불어 노트북과 인터넷을 사용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름의 감옥을 구축해야만 글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p.258)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박균호의 <독서만담>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책과 한 발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물론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는 책의 제목을 모두 구매 목록에 넣다 보면 지름신이 강림한 어느 날 저녁 나도 모르게 대량 구매의 버튼을 누를 수도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황홀한 글감옥>을 썼던 조정래 작가처럼 오늘은 하루쯤 글감옥이 아닌 독서 감옥에 갇히는 것도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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