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단장 죽이기 2 - 전이하는 메타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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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전제로 이 글을 시작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어린 시절의 결핍이나 상실감을 기준으로 삼아 사랑하는 대상을 고르고 그 대상에게 자신의 결핍을 꾸준히 요구하게 된다는 전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최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이 전제를 바탕으로 자신의 소설을 완성했다. 예컨대 부모의 적극적인 보살핌을 받지 못한 사람은 성장하여 어른이 된 후에도 자신을 헌신적으로 보살펴주는 사람을 배우자로 선택할 뿐만 아니라 결혼 후에도 그와 같은 요구가 꾸준히 이어진다는 식이다. 그런 전제가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고 할지라도 작가의 믿음은 비교적 확고한 듯 보였다.

 

"참고로,네가 여자에게 일관되게 요구하는 그게 뭔데?"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어. 내가 인생의 도중에 어쩌다 잃어버렸고, 그뒤로 오랫동안 계속 찾아온 무언가겠지. 사람은 누구나 그런 식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거 아닐까?" (2권 p.197~p.198)

 

소설의 주인공인 '나'에게는 열세 살의 어린 나이에 죽은 여동생 '고미'가 있다. 선천적으로 심장에 문제가 있었던 '고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나'에게 충격적인 일이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나'는 '고미'의 흔적을 찾아 헤맨다. 대학을 졸업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리던 '나'는 한 여자를 사귀게 되고 그 여자의 친구였던 '유즈'를 만나게 된다.'유즈'의 얼굴에서 '나'는 '고미'의 옛모습을 본다. '나'와 '유즈'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건축설계사무소에 다니는 '유즈'와 초상화가인 '나'는 처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다. 그렇게 6년을 살았다. 그리고 '유즈'는 갑작스럽게 결별을 통보한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순수 생계 목적이었던 초상화 그리기도 그만둔 '나'는 빨간색 고물 푸조를 타고 여행을 시작한다.

 

3월에 시작된 여행은 5월까지 이어진다. 타고다녔던 빨간색 푸조 205 해치백은 여행 도중에 수명을 다했고, '나'는 중고 코롤라 왜건을 구입한다. 도중에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한 여자를 만나 하룻밤의 정사를 나누기도 하고, '하얀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가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나'가 대학동기이자 화백 아마다 도모히코의 아들인 아마다 마사히코의 권유로 산속 집에 정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 집은 아마다 도모히코의 작업실이자 거처였다. 치매를 앓고 있는 도모히코는 요양원에 입원중이다.

 

마사히코는 '나'에게 일주일에 두 번 오다와라 역 근처의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일을 주선해주었고, 상업적인 초상화가 아닌 '나'의 그림을 그리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나'는 집을 떠나기 전에 거래를 했던 한 에이전트로부터 거절할 수 없는 금액의 초상화 의뢰를 받게 된다. 초상화를 의뢰한 사람은 멘시키 와타루이며 그의 집은 '나'가 정착한 도모히코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산꼭대기의 대저택이었다. 은색 재규어를 타고다니는 그는 부유한 독신남으로 지극히 현실적이며 냉철한 인간이다. '나'와는 대척점에 있는 듯한 멘시키이지만 '나'는 그에게서 동류의식을 느낀다.

 

"-우리는 어찌 보면 닮은 꼴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손에 쥐고 있는 것, 혹은 장차 손에 넣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잃어버린 것, 지금은 손에 없는 것을 동력 삼아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행위를 납득할 수 있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명백히 이해력의 범위를 넘어선 일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 동기를 이해할 수는 있었다." (1권 p.484)

 

멘시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나'는 몇몇 기이한 사건을 경험하게 된다. 침실 천장에서 발견한 아마다 도모히코의 그림 <기사단장 죽이기>를 필두로 한밤중에 희미하게 들리는 방울 소리, 그 방울 소리의 발원지를 찾는 과정에서 발견한 숲 속의 기묘한 지하 석실, 그리고 도모히코의 그림에 있는 기사단장을 닮은 이데아의 현현(顯現).

 

"내가 생각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구덩이 또한 사고는며 살아 움직이고 있다. 호흡을 하고 신축伸縮도 한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리고 내 사고와 구덩이의 사고가 그 어둠 속에서 뿌리를 얽고 수액을 주고받는 것 같았다. 녹아든 물감처럼 자아와 타자가 혼탁해지며 경계선이 점점 불명확해졌다." (2권 p.75)

 

멘시키는 완성된 자신의 초상화를 기쁘게 받는다. 그리고 '나'에게 또 하나의 부탁을 한다.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것. 새벽마다 들리는 방울 소리의 출처를 알기 위해서 멘시키에게 도움을 청했던 '나'는 그로부터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아마다 도모히코의 유학 생활과 가족 내력을 듣게 된다. 그 정보를 통하여 '나'는 도모히코가 '기사단장 죽이기'를 그리게 된 경위와 그림의 존재를 꽁꽁 감추어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멘시키는 숲 속의 구덩이를 발견하는 과정에서의 제비용을 부담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멘시키는 자신의 비밀 한두 가지를 털어놓기도 했는데, 과거에 사귀었던 여자가 아키가와 마리에의 엄마이며 생물학적으로 자신이 마리에의 아빠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문화센터 그림교실의 학생이기도 한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멘시키의 부탁을 '나'는 결국 수락하고 만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세상에서 뭔가를 달성한다 한들, 아무리 사업에 성공하고 자산을 일군다 한들, 저는 결국 한 세트의 유전자를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아 그것을 다음 누군가에게 전달하기 위한 편의적이고 과도기적인 존재에 불과하다고. 그런 실용적 기능을 제외하고 남는 것은 그저 흙덩어리 같은 것뿐이라고 말이죠." (2권 p.144)

 

아키가와 마리에의 초상화를 맡게 되면서부터 마리에와 그녀의 고모 아키가와 쇼코가 일주일에 한 번 '나'의 집을 방문한다. 마리에는 모델을 서기위해서, 쇼코는 자신의 파란색 도요타 프리우스로 마리에를 태워 오고 태워 가기 위해서. 벌 알레르기가 있었던 마리에의 엄마는 마리에가 어렸을 때 벌에 쏘여 죽었다. 마리에가 방문하는 일요일 오전의 시간에 맞춰 멘시키가 방문한다. 그와 아키가와 쇼코는 급속히 가까워진다. '나'는 마리에의 초상화를 그리며 숲속의 지하 석실과 여행 중에 만났던 '스바루 포레스터의 남자'를 그려보기도 한다.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이따금 나타나던 이데아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지하 석실에서 발견한 방울과 함께.

 

"우리 인생에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많고, 또 설명해서는 안 되는 일도 많습니다. 특히 설명함으로써 그 안의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경우에는요." (p.450)

 

그리고 '나'는 작업실 스툴에 앉아 자신이 그렸던 <기사단장 죽이기>를 뚫어지게 보고 있는 도모히코의 생령을 목격하게 된다. 육체도 정신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아마다 도모히코가 자신이 살던 집을 직접 찾아왔을 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나'는 아마다 마사히코가 그의 아버지를 방문하러 갈 때 같이 가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비밀을 제멋대로 꺼내놓은 듯한 죄책감을 도모히코가 죽기 전에 솔직하게 말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사히코와 요양원에 함께 가기로 약속하고 며칠 후 마리에가 실종된다. 문화센터의 그림교실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걱정이 된 멘시키는 '나'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기사단장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데아에게 마리에의 행방을 물었지만 그는 대답 대신 힌트 하나만 던져준다.

 

"그래도 나는 멘시키처럼 되지 않는다. 그는 아키가와 마리에가 자기 아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의 밸런스 위에 자신의 인생을 구축하고 있다. 두 가지 가능성을 저울에 달고, 끝나지 않는 미묘한 진동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귀찮은(적어도 자연스럽다고는 하기 힘든) 작업에 도전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믿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좁고 어두운 장소에 갇힌다 해도, 황량한 황야에 버려진다 해도, 어딘가에 나를 이끌어줄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순순히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오다와라 근교의 산머리 집에 살면서 몇 가지 예사롭지 않은 체험을 통해 배운 점이었다." (2권 p.597)

 

도모히코의 병문안을 갔을 때 회사일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마사히코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기사단장의 모습을 한 이데아가 나타난다. 그리고 자신이 차고 있던 칼을 빼들어 '나'에게 건네주며 자신을 찌르라고 말한다. 도모히코가 그렸던 그림 속의 장면을 그대로 연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닥에서 고개를 내밀고 결투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의문의 남자가 나왔던 통로를 통하여 메타포의 세계로 내려가라는 주문도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만 그림을 그려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그림에 나타내는 것. 남들에게는 보이지않게, 나 자신의 비밀신호를 그 안쪽에 은밀히 그려넣는 것." (2권 p.220)

 

소설은 그런 식으로 끝을 향해 나아간다.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에서 그동안 하루키가 썼던 많은 작품들이 오버랩될지도 모르겠다. 일종의 기시감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그러나 확실하게 달라진 점도 눈에 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추구하는 하루키 문학의 특성상 과거에는 그 무게중심이 비현실의 세계로 살짝 기운 듯한 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5대 5, 또는 현실 쪽으로 조금 더 옮겨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소설에서 '나'와 멘시키는 과거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나'는 죽은 여동생에 대한 기억을, 멘시키는 헤어진 과거의 연인을. 멘시키가 사랑했던 여인은 이미 죽고 없지만 그녀의 딸을 통하여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어쩌면 멘시키는 누군가로부터의 신뢰를 받지 못하면서 성장하여 진실에 대한 강한 결핍을 형성하였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 동생을 잃음으로써 가족 간의 사랑마저 상실했던 '나'와 마찬가지로. 그러나 멘시키가 돈과 진실에 집착했던 반면 '나'는 동생에 대한 그리움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나'는 동생 '고미'를닮은 '유즈'를 아내로 선택했고, 열세 살의 '마리에'와 잘 통한다.

 

과거는 나의 바람과 욕망이 더해진 일종의 판타지이다.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현실의 삶에 방해를 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 소설 속의 '나'가 반복되는 판타지를 경험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나'는 메타포의 세계를 혹독하게 체험함으로써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반면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별로 없는 마사히코는 지극히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마리에 또한 다르지 않다. 그녀는 나이도 어리지만 일찍 엄마를 잃었고, 아버지는 얼굴도 보기 힘들다.

 

짧게 리뷰를 쓴다는 게 그만 주저리주저리 길어지고 말았다.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다른 분석을 더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인물 위주로 살펴보려 햇던 까닭에 이쯤에서 그만두어야겠다. 과거에 경험했던 결핍이나 상실에 의해 사랑이 결정된다는 하루키의 믿음을 곰곰 되새기면서. 타인의 사랑이 궁금해지면 우리는 가끔 물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사랑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혹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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