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 (100쇄 기념 특별판 리커버)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신이어도 좋고, 조물주여도 좋은 어떤 것이 이를테면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눈앞에 짜잔 하고 나타나서는 더없이 다정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관계가 이만큼 실제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똑같지 않더라도 훨씬 더 실제적일 수 있어요.' 하고 속삭인다고 상상해보자. 얼마 후 현실에서 그 실체가 완전히 사라진 후에도 우리는 이따금 그 순간을 떠올리며 보이지 않는 그(또는 어떤 것)가 당신의 곁에서 늘 함께하고 있다고 믿게 되지 않을까.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은 바로 그 지점을 포착하고 있다.

 

작가의 여섯 자녀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쓰기 시작하여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 책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읽었거나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이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었던 2009년에 책을 구매하여 읽었던 기억이 있다. 양장본의 그 책은 지금 사서 단 한 번의 손길이 닿았던 그 상태 그대로 책꽂이 한켠에 얌전히 꽂혀 있다. 말하자면 그 책은 재독, 삼독을 원할 만큼 가치 있는 책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가 입을 다물고 바닥에 앉자, 오두막의 공허함이 그의 영혼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가 던진 대답 없는 질문과 비난들이 마룻바닥에 가라앉았다가 황폐한 나락 속으로 천천히 빠져들어 갔다. '거대한 슬픔'이 그의 목을 조여오자 그는 오히려 그 고통이 반가웠다. 잘 알고 있는 고통, 친구처럼 다정한 고통이었다."    (p.125)

 

사람의 일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100쇄 특별판으로 나온 이 책을 우연히 다시 읽게 될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저 무덤덤했다. 흥미나 감동도 딱히 기억나는 게 없었다. 이 책이 출간되었던 당시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것도 단지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우리나라 개신교 신자들의 믿음이란 게 전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광적이지 않던가 말이다. 800만 명 내외의 개신교 신자들이 4명 중 한 명꼴로 책을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20만 권이 팔릴 테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는 건 결국 시간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때만 하더라도 나는 이 책이 전적으로 종교서에 가깝다는 주관적인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매켄지, 당신은 진정한 사랑의 방법을 현명하게 잘 알고 있군요. 사랑이 성장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지만 아는 것이야말로 성장하는 것이고, 사랑은 그것을 포함하기 위해 확장할 따름이죠. 사랑은 단지 안다는 것의 거죽일 뿐이죠. 매켄지, 당신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놀랍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p.260)

 

책의 내용은 사실 특별할 게 없다. 가족 캠핑 도중 맥의 막내 딸 미시가 유괴된다. 경찰이 내린 결론은 그 나이 또래의 어린 여자 아이들만 노려 유괴하는 연쇄 유괴범들의 짓이라는 것이었지만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미시의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범행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차량 인근의 버려진 오두막에서 미시가 입었던 옷이 피가 묻은 채 발견되었고, 그런 정황으로 보아 미시가 연쇄 살인범들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될 뿐이었다. 맥은 자신이 미시를 돌보지 못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자책과 함께 '거대한 슬픔'에 사로잡힌다. 그로부터 4년 뒤 맥은 오두막으로 찾아오라는 내용의 쪽지를 받게 되는데 발신인은 놀랍게도 하느님(책에서는 '파파', 맥의 아내 낸은 하느님을 늘 파파로 불렀다.)이었다.

 

누가 장난으로 보낸 쪽지였겠거니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거대한 슬픔'이 시작되었던 그곳을 한번쯤 확인해보고 싶었던 맥은 친구로부터 차와 권총을 빌려 오두막으로 향한다. 황량하기만 했던 그곳은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른 봄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날씨마저 따뜻했고, 맥은 그곳에서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을 서로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하느님(파파)은 덩치가 큰 흑인 여성으로, 예수는 중동에서 온 노동자, 아시아 여성의 성령이 그들이다.맥은 또한 지혜의 여인 소피아를 만나기도 한다. 자신의 종교나 신앙에 대해 큰 믿음이 없었던 맥은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금씩 변해간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남자들을 통해 욕구를 충족하고, 안전을 제공받고, 정체성을 보호받아왔던 것을 그만두고 나에게 돌아오기가 힘들거예요. 또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안정과 의미를 추구하던 것에서 전환해서 나에게 돌아오기가 힘들겠죠."    (p.244~p.245)

 

어른이나 종교인들을 위한 한 편의 동화처럼 읽히는 이 책은 맥과 다른 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신은 무엇이며, 종교는 또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우리가 늘 마음에 품고 있던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있는 듯하다.

 

"당신이 용서할 때마다 이 지구는 변해요. 당신이 팔을 뻗어서 누군가의 마음이나 삶을 어루만질 때마다 이 세계는 변해요. 눈에 드러나건 아니건 모든 친절과 봉사를 통해 내 목적은 이루어지고 어느 것도 예전 같지 않게 되죠."    (p.405)

 

인간의 최대 약점이자 장점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신이나 회의가 아닐까 싶다. 현실에서 직접 벌어진 일들도 자신이 보거나 겪지 않았으면 반신반의 믿지를 못하는 마당에 누구도 보지 못했던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오두막>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의 삶 전반에 대한 질문, 이를테면 세상의 부조리와 신의 역할, 삶의 자세 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잊혀졌던 그 질문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답을 찾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질문들을 잊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오탈자) 그는 식탁에 앉아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고 -->그는 식탁에 앉아 습관적으로 기도를 하려고(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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