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 반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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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나는 450여 쪽에 이르는 긴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물론 내가 읽었던 책을 이곳에 아주 세세히 옮겨놓겠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말이다. 다만 나는 자식을 잃은 한 어머니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 많은 지면으로도 다 말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던, 그렇지만 그 많은 지면에도 불구하고 어떤 독자라도 지루함에 몸을 뒤틀거나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그런 책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그 책을 읽었던 나의 소회를 천천히 써보려 하는 것이다.

 

저자인 수 클리볼드에 대해 먼저 말하는 게 순서일 듯싶다. 그녀의 아들은 1999년 4월 콜럼바인고등학교에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의 주모자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아들 딜런 클리볼드와 그의 친구 에릭은 고등학교 졸업반이었고, 프롬(고교 졸업과 성년이 되는 것을 축하하는 파티)이 있은 지 며칠 후 별 다른 이유도 없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살해하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힌 후 자살했다.

 

"딜런의 우울과 자살 충동을 알고 받아들이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나는 딜런의 폭력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었다. 지하실 테이프에서 분노를 터뜨리던 사람은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 아들 몸 안에 낯선 사람이 깃든 것 같았다. 내 집에서 기르고, 내가 내 가치관을 심어주었다고 생각한 아이, '부탁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라고 가르치고 손을 꼭 쥐며 악수하라고 가르친 아이가 다른 사람들을 죽였고, 그 이상의 파괴를 계획했다니." (p.406)

 

이 책을 읽게 되는 많은 사람들은 어쩌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에 자신의 생각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서 깜짝 놀라게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러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 자신의 몸과 피를 나누어준 사람, 어쩌면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는 제 자식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우매하고 오만했던가, 하는 반성이 저절로 들었다. 그들에 대해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자만, 우리 아이만큼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착각은 세상의 모든 부모에게 해당하는 말이라는 걸 고해성사를 하듯 철저히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키운 아이를 믿었고, 무슨 일이 있다면 언제라도 엄마한테 말할 수 있을 가라 확신했고, 때가 되면 스스로 입을 열 거라고 자신했다." (p.363)

 

사건이 터지고 모든 것이 바뀐 그 순간부터 저자의 고백은 간증처럼 이어진다. 1부. '상상도 하지 못한 일', 2부. '이해를 향해'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저자는 사건이 터졌던 1999년의 상상도 할 수 없는 충격과, 비탄과, 벗어날 수 없는 공포와 치욕 속에서 보냈던 그해의 실상을 자세히 기록하였고, 2부에서 저자는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자신의 아들로서 바라본 딜런의 모습을 그녀가 쓴 일기와 함께 기록하고 있다. 세상의 비난과 법정다툼 그리고 충격으로 인한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발작 및 시시각각 느꼈던 자살충동을 이겨내고 마침내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그녀의 수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 책을 써서 세상의 비난과 독설을 다시 마주하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이 부모들을 생각한다. 딜런이야 우등생도 운동부 스타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딜런이 살다 보면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역경들을 무리 없이 헤쳐나가리라고 확신했다. 자신 있는 얼굴로 세상을 대하면서도 수면 아래에서는 고통스러워했던 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내가 알았다면, 나도 딜런을 다르게 키웠을까?" (p.123~p.124)

 

지난해 있었던 '강남역 살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조현병 환자에 의해 저질러진 그 끔찍한 사건은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에게 정신건강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시켰다. 저자도 이 점을 강조한다. 뇌건강의 이상은 특정한 사람, 나나 내 가족의 일원이 아닌 다른 사람에 한정된 질병이 아니다. 뇌건강의 이상으로 딜런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그래서도 안 되고 말이다. 1월 12일 있었던 '강남역 살인 사건'의 범인에 대한 항소심에서도 그는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사회적 격리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것은 범죄의 예방 차원에서 선제적 대응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생 동안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할지도 모르는 뇌건강의 이상을 제때에 치료하고 폭력성이 발현되기 전에 미리 발견하여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게 이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길일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도 그와 같다.

 

"하지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는 막상 만나면 불쾌할 때가 많다. 공격적이고 호전적이고 무례하고 화를 잘 내고 적대적이고 게으르고 짜증을 내고 솔직하지 않고 위생 상태도 썩 좋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까다롭고 다른 사람을 밀어내려고 하는 아이들이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성향이 도와달라는 신호일 수도 있다." (p.311)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그 끔찍했던 사건의 범인인 딜런이 저자의 아들이 아닌 것으로 될 수는 없다. 저자는 숱한 역경을 겪으며 부정하고 싶은 그 사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랑했던 자신의 아이가 '어떻게' 그런 끔찍한 일을 벌였는지에 대해 파고들었다. 아이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이 책은 단순히 사실관계의 규명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를 비롯한 뇌건강의 전문가와 여러 전문 서적을 참고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매 쪽마다 각주를 달아 세세한 설명을 하는가 하면 참고서적의 목록을 부록에 첨부하였다. 우리의 아이라고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누구나 '나는 아이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구나'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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