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닿지 않는 그늘에는 조금의 온기도 나눠주지 않는, 마냥 편파적인 겨울 햇살이 약간은 야속하게 여겨지는 쌀쌀한 하루였다. 어찌 생각하면 이제야 겨울다운 날씨가 찾아온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바람이 없는 늦은 오후에 짐 근처의 작은 공원에 나가 두어 바퀴 천천히 걸었다. 사람이 없는 텅빈 공원에는 투명한 햇살만 넘실대고 이름 모르는 새들의 맑고 청량한 울음 소리가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햇살이 건네주는 가벼운 온기마저 고맙고 감사했던 시간. 이런저런 생각에 등허리로 전해지는 싸늘한 한기마저 잊었었다.

 

엊그제였던가. 우리나라의 외교부 장관이 국회에서 한 발언은 자못 충격적이었고, 국민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었다. 일본 공관 앞 소녀상 설치에 대해 그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영사 공관 앞에 시설물 또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 국제관계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입장입니다."라고 말했었다.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을 위해 점령지의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았던 일본의 만행을 생각할 때 소녀상 설치는 얼마나 미약한 항거인가. 없었던 사실을 일부러 만들어 낸 것도 아닌데 외교부 장관이라는 작자가 자국민의 생각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진 발언을 하는 건 도대체 어떤 의도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전쟁범죄에 대한 국제적인 처벌은 단호하고 집요하게 이루어져 왔다. 그럼에도 유독 일본의 전쟁범죄에만 관대한 이유는 무엇인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피해 당사국인 우리나라는 달라야 하지 않을까? 지나간 역사이니까 덮고 가자는 발상은 한 사람의 생명을 눈곱만치도 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현 정부의 국정운영 방침에 여실히 드러난 바 있지만 이건 해도 너무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일본 공관 앞에서 위협을 느낄 정도로 연일 시위를 벌였던 것도 아니고, 그저 역사적 사실을 적시한 소녀상을 세웠을 뿐인데 말이다.

 

새해가 되면서 조기대선을 염두에 둔 대선주자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그들 중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뿐만 아니라 온 국민이 반대하였던 2015년 12월 28일의 한·일간 위안부 합의에 대하여 "역사가 박근혜 대통령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며 칭송하였던 인물도 있다. 게다가 그는 새마을 운동 전도사를 자처하며 독재자 박정희의 망령을 지우는 데 앞장섰었다. 생때같은 아이들이 물 속에 잠들었던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침묵하던 그였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인물이 다시 또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된다는 건 악몽이다. 절대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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