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공감필법 공부의 시대
유시민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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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하면 할수록,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오히려 공허한 마음만 드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머리에 든 게 많은 사람이나 든 게 없는 사람이나 죽고 나면 별 차이도 없는데, 하는 생각이 이따금 들면서 괜스레 우울해지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저는 이허치허의 마음으로 독서를 하는 셈이지요.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그만큼의 무의미를 더하는 격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허무를 통한 허무의 극복이라고는 하지만, 잠시 잠깐 책 속으로 시선을 돌림으로써 취기처럼 솟아나는 허무의 느낌을 무작정 유예하고만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렇게 책을 읽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책을 읽어갈 것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습관처럼, 또는 지난 허무를 또 다른 허무로 덮으려는 심산으로.

 

유시민의 <공감필법>을 읽은 후 들었던 생각입니다. '창작과비평(창비)'이 50주년 특별기획으로 '공부의 시대'라는 강연을 개설하고, 강연자로 나섰던 다섯 명의 지식인(강만길, 김영란, 유시민, 정혜신, 진중권)의 강의록을 보완하여 책으로 낸 것들 중 하나인 이 책은 정치인에서 작가로 회귀한 작가 유시민의 생각을 조금쯤 엿볼 수 있게 합니다. 더불어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독자의 견해를 묻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지요.

 

"우리가 탐하고 갈망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도 객관적으로 의미있는 건 아닙니다. 돈, 지식, 권력, 명예, 다른 모든 것들도 내가 의미를 부여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의미있는 삶의 방법을 찾아간다는 것을 빼면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종과 다를 게 없어요. 저는 그렇게 믿으면서 오늘 하루의 삶에서 사피엔스의 일원인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을 챙겨보고 또다른 내일을 설계합니다. 우리가 서로 티격태격 싸우거나 죽일 듯 미워하는 이유가 대부분 지극히 사소한 문제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이렇게 세상과 사람과 인생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조금 또는 크게 달라지는 순간을 체험할 때, 저는 공부가 참 좋다는 걸 실감합니다. 공부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없었을 테니까요." (p.30)

 

공부에 대한 생각이 저와는 크게 다르군요. 물론 대형서점에 가면 자신이 아는 지식이 참으로 보잘것없는 까닭에 '겸손하게 처신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제 생각과 비슷하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책에서 자신의 독서 경험과 글쓰기 경험을 말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쎄이건이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별에 관한 책을 읽은 후 느꼈던 감정을 저자 또한 짜릿한 느낌으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는 대목이나 굴원의 '어부사'를 읽으며 세상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대목 등 독서가 우리에게 주는 효용이야 누구나 다 아는 것이겠습니다만 작가가 책에서 강조하는 바는 '감동', '감정이입', '감정' 등의 단어였습니다.

 

"먼저, 공부가 뭘까요? '인간과 사회와 생명과 우주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입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공부의 개념이에요." (p.17)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아내와 저 그리고 하나뿐인 아들놈도 모두 책을 좋아합니다. 성격은 서로 판이하게 다르지만 책을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딱히 해야 할 일이 없는 여유시간에 뭘 할까?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지요. 우리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가벼운 마음으로 가까운 대형서점을 찾곤 합니다. 그곳에서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꺼내 읽다가 속이 출출해질 때쯤이면 근처의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귀가를 합니다. 가성비 또한 만점입니다. 누구 한 사람 불만이 없지요. 우리 셋 중 책을 가장 좋아하는 아들놈이 밥을 먹으로 가자고 했을 때 보던 책을 마저 읽고 싶어 이따금 심통을 부리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논하고자 했던 몇 가지 테마, 이를테면 정체성, 감정, 공감, 태도, 격려, 어휘 등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읽어었던 책 중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칼 쎄이건의 <코스모스>, 신영복의 <담론>, 굴원의 <어부사>, <맹자>, 소스타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등을 들고 있습니다. 물론 저자는 강연의 뒤에 있었던 질의 응답 시간에 더 많은 책을 말하고 있습니다만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테마에서는 대략 그런 책들이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책은 그렇다쳐도 저자가 말하는 글쓰기 원칙은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첫째, 많은 독자가 관심을 가진 주제를 선택한다. 둘째, 전문지식이 없는 독자가 다른 정보를 찾지 않고도 텍스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쓴다. 셋째,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정서적 공감을 일으키는 데 초점을 둔다. 넷째, 문장을 되도록 쉽고 간결하게 쓴다." (p.139)

 

개천절 연휴가 이어지는 이번 주말엔 비가 예보되었더군요. 딱히 할 일일 없으면 또 대형서점의 한 귀퉁이에 앉아 책을 읽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척이나 따분한 듯하지요? 생각해보니 저도 블로그에 글이랍시고 끄적거리기 시작한 지 꽤나 오래된 듯합니다. '도대체 뭘 하려고 이 짓을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 때도 많지만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런 회의감과, 쉼없이 떠오르는 허무의 느낌과 그 모든 감정을 이겨내기 위한 도구로서의 기능 때문에 글을 쓰지 않나 싶습니다. 말하자면 글쓰기는 제 자신을 갈고 닦는 수행의 한 방법인 셈이지요. 연휴를 앞둔 금요일 저녁에 읽기에는 조금 따분한 책이었는지도 모르겠군요. 연휴 잘 보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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