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킹 플라이트 - 전쟁고아에서 스타발레리나로 날아오르다!
미켈라 드프린스.일레인 드프린스 지음, 장미란 옮김 / 김영사on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불행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곳으로 무참히 끌고 갈 때가 있다. 나는 그런 일들이 생각날 때마다 그게 아무리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의 일이었다고 할지라도 한번쯤은 '가기 싫어!', 버팅겨 볼 수는 없었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혹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번쯤 같이 울어줄 사람 한 명쯤 곁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랬더라면 내 불행의 속도는 일 킬로미터쯤 더 느려지지 않았으려나. 그것이 비록 앵도라진 운명에 하릴없이 돌팔매질을 하는 것일지언정 마음 속 응어리가 영영 풀리지 않는 그런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네 인생은 의외로 긴 것이어서 그런 시기는 누구에게나 온다.

 

길고 긴 불행의 터널을 벗어나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꿈을 마침내 이룬 사람들을 종종 보거나 듣게 된다. 마치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그들의 이야기는 뭇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짜릿한 감동을 전해주기도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이야기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의 용기를 한껏 북돋운다는 데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무언의 격려가 되기도 하고, 까마득히 높은 곳에 위치하여 불가능하게만 보였던 꿈의 높이를 10미터쯤 낮추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가능성은 그들이 사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미켈라 드프린스의 인생 역정을 담은 <테이킹 플라이트> 또한 그런 책이다.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시에라리온 출신의 그녀가 사랑하는 부모를 잃고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되어 자신의 꿈을 이루기까지의 전 과정을 담은 이 책은 생각만으로도 가슴 한켠이 아려오는 책이다.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을 안고 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마는 시에라리온의 내전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의 체험담에는 뭔가 특별한 아픔이 있다. 이스마엘 베아가 쓴 <집으로 가는 길>도 그랬다. 그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이스마엘 베아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요즈음 나는 세 개의 세계에서 산다. 나의 꿈, 새로운 삶과 경험, 그리고 그 삶이 과거로부터 불러오는 기억들."

 

"시에라리온을 탈출하면서 수백 구의 시체를 보았다. 데빌들은 날이 넓적하고 긴 칼 마체테를 휘두르고 다녔지만 정작 죽은 이들을 보면 심지어 어린아이들조차 머리에 총을 맞은 상태였다. 시신들은 공포에 질려 눈과 입을 벌린 채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썩은 내가 나는 정도와 시체 위를 기어다니는 벌레들을 보면, 죽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p.74)

 

반군들에게 부모를 잃고 큰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고아원에 보내진 흑인 소녀는 어느 잡지책에 실린 발레리나의 사진에 홀딱 반하여 언젠가 자신도 토슈즈를 신고 무대 위를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그러나 백반증으로 온 몸이 얼룩덜룩한 흑인 소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고아를 입양하고 싶어 했던 미국의 양부모들조차도. 고아원 식구들과 함께 시에라리온을 간신히 탈출하여 기니에서 다시 가나로 간다. 가나에는 미국의 양부모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나에서 그녀는 고아원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미아와 함께 같은 집으로 입양된다.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양부모와 함께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의 그 기나긴 여정은 아이들에게는 고되고 힘들었다. 그러나 그 고된 여정이 미아와 미켈라를 친자매로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다.

 

내전으로 고아가 된 마빈틴 방구라(지금은 미켈라 드프린스)의 삶이 미국에서 무사히 뿌리를 내림으로써 모든 게 술술 풀려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양부모의 아들이었던 테디 오빠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그로 인한 깊은 슬픔, 그 슬픔을 잊기 위한 이사, 발레의 세계에 존재하는 뿌리 깊은 인종 차별 등 그녀가 헤쳐나가야 할 고난은 많았었다. 네살배기 전쟁 고아가 미국이라는 낯선 나라에 정착하여 그 모든 역경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발레리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가족의 사랑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했다.

 

"필라델피아에 가까워질 무렵 나는 발레리나가 되기 위해 내가 어떤 희생을 감내하는지 생각했다. 어린아이였을 때는 발레가 너무 좋아서 발레수업에 빠지지 않으려고 생일파티 초대도 거절했다. 수영도 포기하고 공립학교도 포기했다. 그리고 지금은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포기하고 있었다." (p.228)

 

그녀를 주인공으로 삼아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퍼스트 포지션>이 2011년에 개봉된 후 그녀는 이제 유명인이 되었다고 했다. 방송 출연과 인터뷰 요청, 표지모델 섭외 등 유명세를 치르는 동안 그녀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탈출했던 아프리카를 두려움 속에 다시 방문한다. 비록 그녀의 모국이 아닌 남아공이었고, 초청 발레리나의 자격이었지만 말이다.

 

"삶은 발레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잊지 말라는 뜻인지 두 가지 아주 특별한 초청이 들어왔다. 전쟁의 고통을 겪은 어린이들을 위한 대변인으로서 유엔 자원봉사자로 초청 받았고, 운 좋게도 링컨센터 코흐 극장에서 열리는 2013년 세계 여성회의에 초대받았다. 한 인터뷰를 촬영했는데, 거기서 전쟁 때문에 고통받은 어린이로서의 경험담을 이야기했다." (p.268)

 

그녀의 양부모님은 그녀와 자매들을 왜 입양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축복을 받았고, 축복과 함께 책임이 온 것뿐'이라고. 맞는 말이다. 우리네 인생에는 언제나 축복이 오면 책임도 함께 따르는 법이다. 간혹 그 책임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지만 당당하게 책임을 떠안는 사람도 우리 주변에는 많다. 이 책 <테이킹 플라이트>도 그렇게 나온 책이다. 고통과 위험 속에서 희망 하나로 살았던 자신의 경험을 이제는 그들에게 전해줄 때가 된 것이다. 그 희망으로 다른 누군가가 역경을 극복하고 그 경험은 다시 살아 있는 희망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끊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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