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길을 묻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내가 만만하거나 편해 보여서 그러는지 아니면 그곳 지리에 유난히 밝을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있는 곳의 사방 십 미터 이내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은 죄다 내게로 몰려들곤 한다. 그리고는 약간의 쭈뼛거림이나 미안한 기색도 없이 다짜고짜 묻곤 하는 것이다. "말씀 좀 물을게요. 여기에 가려면..." 젠장, 나도 초행인 걸 어쩌란 말이냐. 이런 일이 누적될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주먹을 불끈 움켜쥐고는 '그래, 결심했어. 이제부터 까칠해지자.' 다짐하곤 했다.

 

내가 선천적으로 길을 잘 안내해줄 것 같은 특유의 분위기를 갖고 태어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겉보기와는 달리 상당히 꼬장꼬장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까칠하기로 치자면 '오베' 뺨친다고 말할 수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에 나오는 '오베' 말이다. 그는 사실 냉정하다거나 까칠하다기보다는 실없이 웃지 않을 뿐인데 철없는 독자들은 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는 속으로는 한없이 여리고 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헤살헤살 잘 웃거나 사근사근하게 말하지 않을 뿐이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그녀를 보기 전까지 그가 사랑했던 유일한 건 숫자였다. 그에게 유년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라곤 없었다. 그는 따돌림을 당하지도 않았고 따돌리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스포츠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중심에 있었던 적도 없었고 겉돌았던 적도 없었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p.57~p.58)

 

이 책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오베'들을 위한, 세상으로부터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모든 '오베'의 항변이자 그들을 위한 변론인 셈이다. 무뚝뚝하지만 정의감이 넘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오베는 열여섯에 고아가 된다. 아버지의 성격을 그대로 빼다 박은 오베. 그는 아버지가 사고로 죽자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기차 청소부를 하며 근근이 살아간다. 그러나 운명의 여인 소냐를 만나면서부터 그의 삶은 달라진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오베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결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는 춤을 춰본 역사가 없었다." (p.153)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오베의 삶에 어느 날 불행이 찾아온다. 교통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잃고 소냐는 불구의 몸이 된다. ADHD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냐는 셰익스피어를 읽게 하며 하루하루를 헌신하다가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났다. 소냐와 함께 40년 동안 한 집에서 살고, 같은 일과를 보내고,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일했던 오베는 이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녀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게 사람들이 했던 얘기였다. 그녀는 선을 위해 싸웠다. 결코 가져본 적 없는 아이들을 위해 싸웠다. 그리고 오베는 그녀를 위해 싸웠다." (p.280)

 

오베는 자살을 결심하고 이제 막 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이웃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온다. 오베는 자신의 자살을 막은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에게 처음에는 까칠하게 대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다. 그러나 그가 평생 동안 지켜온 원칙과 소신은 마을에 새로 이사온 다른 사람들과 번번이 부딪쳐 말썽을 일으킨다. 그런 그들이 못마땅한 오베는 죽은 아내 생각이 간절해진다. 소냐는 그를 완전히 이해했던 단 한 명의 이웃이자 동지였던 셈이다. 목을 매 자살하려던 그는 방법을 바꿔 차고에서 차의 시동을 켜 놓은 채 배기가스에 의한 질식사를 시도하는가 하면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총기 자살을 결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웃 사람들에 의해 그의 자살은 번번이 실패한다.

 

"그는 정의와, 페어플레이와, 근면한 노동과,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하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였다. 훈장이나 학위나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종류의 남자들은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걸 소냐는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 남자를 꼭 잡았다." (p.206)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p.371)

 

오베는 결국 자신이 의도했던 자살은 실패하지만 마을의 이웃사촌들을 위한 여러 일을 참견하고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 오베가 자살을 결심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주변에서 그를 이해할 만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베와 마을 사람들이 펼치는 시끌벅적한 여러 에피소드는 갈등과 분열을 거쳐 진한 감동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죽음이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죽음에 대해 갖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언제나 자신을 비껴가리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우리를 홀로 남겨놓으리라는 사실이다." (p.436~p.437)

 

첫인상은 무뚝뚝하고 까칠해 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진국인 사람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이웃의 어른들은 모두 그랬던 것 같다. 내 아들, 내 손자가 아닐지라도 누구든 잘못을 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내곤 했다. 그 시절에는 '오베'가 너무나 흔했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더 이상 '오베'는 보이지 않는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백주 대낮에 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어두운 골목길에서 여학생을 희롱하여도 누구 하나 그들을 막지 않는다. '오베'가 사라진 이 시대의 골목골목엔 CCTV만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 존재할 세상의 모든 '오베'를 위하여, 진심으로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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