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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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만약 우리나라 작가에 의해 씌어졌더라면 특정 종교단체에 의한 고발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구속이나 적어도 벌금형을 면키 어려웠을 테고 말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비상식적인 집착이 강하다고 보아야 한다.  어떤 상식의 틀에서 서로의 주장을 논하는 것이 아닌, 나(또는 내가 속한 조직) 아니면 적으로 간주되는 이런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인(특히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호전적이기도 한)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내가 보는 견지에서는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영국인으로 태어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한때 주일 아침 미사가 끝난 어느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고, 그것이 곧 영성체를 할 때 신부님으로부터 건네받는 밀떡과 포도주를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신분증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와 같은 커다란(?) 의미를 담은 행사는 이미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그 장면은 과거의 어느 한때(자신이 세례를 받았던)를 떠올리게 하겠지만 이제 막 교리 교육을 받기 시작한 예비신자에게는 부러움과 선망의 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어물쩡 다수의 편(전 세계 인구 71억 3천만 명 중 23억 5천사백만 명)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예비신자 과정을 철저히 받지 못한 탓인지 신의 존재를 확실히 믿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더불어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나의 처지에 있어서는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의 말을 인용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신을 믿지 않았을 때, 당신이 틀리다면 영원한 천벌을 받을 것이고 옳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죽어서 신 앞에 섰을 때 신이 왜 자신을 믿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버트런드 러셀의 답변 또한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신이여, 증거가 불충분했습니다.  증거가요."  하느님은 과연 믿는 척하는 파스칼과 적어도 자신에게는 솔직했던 러셀 중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초자연적 지성으로서의 신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우주를 창조했다는 신 가설에 대하여 역사적 사례와 과학적 논증을 통하여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사실이지 나는 이 책의 처음 몇 장을 넘겨 보았을 때 이 책이 어떻게 출간될 수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로 인한 폐해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신권정치화 된 초강대국 미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또는 전 세계 자본을 좌지우지하는 유대자본의 위력을 생각할 때 감히 이 양대 권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지닌 학자가 나타나리라고는 믿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과학에 의해 밝혀질 먼 훗날의 이야기이거나 공상 과학소설에서만 등장할 이야기쯤으로 생각했었다.

 

종교란 필연적으로 세속적 이해관계와 결부될 수밖에 없고 산업자본주의 체제에서 종교는 더더구나 세속화 될 수밖에 없음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자본이 없는 종교는 한낱 미신에 불과할 뿐이고 언젠가는 소리도 없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비근한 예로 우리나라 수도 서울의 시장을 지냈던 한 정치인은 서울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하지 않았던가.  그 발언을 한 정치인의 믿음과는 별개로 종교란 본디 세력을 넓힌다는 측면에서 다분히 정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권력화 된 종교는 브레이크가 없는 기관차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인간의 나약함을 강조하고, 인간성을 불신하고, 죽음에 대해 과도한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종교는 끝없이 성장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메카니즘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편에 서서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결코 종교를 배신할 수 없다.  그것이 집단적 광기의 일종이라고 판명된다 할지라도.

 

"분명히 예외가 있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는 종교가 주는 위로 때문이 아니라 교육에 따른 무의식적인 수용, 그리고 대안(믿지 않음)에 대한 인식 부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스로를 창조론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틀림없이 그렇다.  그들은 그저 다윈의 놀라운 대안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아마 인간이 종교를 '필요로 한다'는 같잖은 신화에도 같은 말이 적용될 것이다."    (p.588 '문고판 서문'중에서)

 

동물행동학뿐만 아니라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 등 과학 전분야를 두루 섭렵한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교의 석좌교수를 지냈다고 한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추앙받고 있는 저자의 명성에 걸맞게 이 책은 다분히 도발적이면서도 인류가 형성한 광대한 지식의 총체를 담고 있는 듯하다.  나는 비록 이 책을 모두 읽었고, 많은 부분에서 동감하고 있지만 내 지식이 저자의 수준에서 한참 떨어지기 때문에 반대도, 찬성도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제대로 된 비판은 정보나 지식의 비대칭성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곰곰이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은 지능이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종교적이거나 어떤 '신앙'을 지닐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이다.

 

자연현상의 하나인 '죽음'에 공포의 그림자를 덧씌움으로써 종교의 세력을 확장하려는 교묘한 술수나, 증명할 수도 없는 어떤 심판론으로 무신론자를 겁박하는 행위는 종교인의 시각에서도 불편하다.  나는 정말 신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것이 곧 믿는 척했던 나의 신앙이 올바른 선택을 통한 진정한 신앙인이 되는 출발점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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