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 (양장)
히로나카 헤이스케 지음, 방승양 옮김 / 김영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아이를 키우면서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문제는 공부다.  부모는 이미 정규 교육과정을 마친 사람들이니 쉬울 법도 한데 유독 아이의 공부에 있어서는 자신의 경험이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까닭에 대해 얼핏 드는 생각은 자식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부모의 포용력을 억제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과, 자신의 아이가 경쟁에서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아이로 하여금 공부에서 점점 멀어지게 하는 듯하다.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둔 아이의 부모는 마치 출산이 임박한 젊은 산모의 표정과 흡사하다. 

 

주말부부로 가족과 떨어져 살고 있는 나는 아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  아들의 교육과 양육은 고스란히 아내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나는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들과 잠자기 전에 잠깐씩 전화 통화를 할 뿐이다.  그럼에도 큰 문제없이 이만큼 키운 것은 순전히 아내의 공이다.  아내와 내가 아들의 학습이나 공부에 있어 일치하는 점은 본인이 하기 싫다는 것은 강제로 시키지 않는다는 확고한 생각인데 그 덕분인지 아들은 책읽기와 레고를 즐기고, 남들은 강제적으로 시켜도 되지 않는다는 영어 공부를 뜯어 말려야 할 정도로 좋아한다.

 

매일 하는 아들과의 통화에서 내가 빼놓지 않고 하는 질문은 '재미있었니?'이다.

내 어릴 적 생각을 떠올려 볼 때 공부든, 운동이든 재미가 없으면 꾸준히 할 수도, 열의를 갖고 집중하기도 어렵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질문일텐데 아들은 언제나 재밌다고 답한다.  나도 그랬었다.  오죽하면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맘껏 읽을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해서 이담에 크면 서점의 주인이 되어 평생 책만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까.  그러나 나는 그렇게 바라던 서점 주인과는 거리가 먼 직업에 종사하고 있고, 그런 꿈을 꾸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이 책의 저자인 히로나카 교수는 1970년 '특이점 해소 정리의 증명'으로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Fields Award)'을 수상했다.  야마구치 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일본을 대표하는 수학자가 된 그는 대학 입시 일주일 전까지 밭에서 거름통을 들었고 대학 3학년이 돼서야 수학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결코 천재가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 “솔직히 나 자신이 볼 때 내가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노력하는 데 있어서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끝까지 해내는 끈기에 있어서는 결코 남에게 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창조하는 인생이야말로 최고의 인생이다."  그러면 창조란 무엇인가?  창조에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창조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창조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의 기쁨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만큼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나는 창조의 기쁨 중의 하나는 자기 속에 잠자고 있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재능이나 자질을 찾아내는 기쁨, 즉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더 나아가서는 나 자신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배운다'는 것에 대해 언급해 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천재가 아닌 나 같은 보통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해 내기까지는 그 이전에 '배운다'는 단게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창조하려면 먼저 배워야 한다.  이것은 비단 학문의 세계에만 한정된 말은 아닐 것이다.  (P.22 ~ 23)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저자의 자서전적 에세이인 이 책은 안철수 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일독을 권하고 있다.  우리의 선조 중에도 다산 정약용이나 홍길동전을 쓴 허균 등 많은 분들이 학문의 즐거움을 말했었지만, 진심으로 깨닫고 정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히로나카 교수는 유희로서의 공부에서 멈추지 않고 지혜를 위한 공부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배우고 익힌 것은 잊어버릴지도 모르나 우리 삶에 있어 긴요한 지혜가 학문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히로나카 교수가 들려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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