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와 마르타의 특별한 식탁
베른트 슈뢰더 지음, 박규호 옮김 / 제이앤북(JNBOOK) / 2004년 10월
평점 :
품절


도중에 몇 번이고 멈추어 섰다.
끝까지 읽어낼 자신이 없었다.  포켓북 형식의 아담한 책이 그렇게 커보일 수 없었다.
어느 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라는 것처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한 놀람으로, 나를 꼭 빼다 박은 주인공의 일상에 속이 불편하다. 

이 소설은 한편의 연극과도 같다.
물론 이 책을 원작으로한 연극이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가을에 상연되었었다.  어머니 마르타 역에 연극인 이주실이 열연을 해 호평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각색한 것이었지만 원작의 주제는 선명히 살아 있었다.  
소설은 아들 요하네스와 어머니 마르타의 상황과 대사를 간결한 문체로, 마치 시나리오의 씬 넘버에 따른 장면 전환처럼 배열하고 있다.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많은 라디오 방송극과 TV 방송극을 썼고,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방송상인 아돌프 그리메상(1986)과 독일 영화제 각본상(1992)을 수상하기도 했던 작가의 이력이 빛을 발한다.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버림받고 직장에서도 쫓겨난 아들은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가정도 직장도 모두 잃은 실패한 인생이다.  여러 여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아들은 마지막 여인 리사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자 설상가상으로 회사로부터 브라질로의 전출을 통보받는다.
어려서부터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의 아들은 재능있고 전도 유망한 누나의 빛에 가려 어머니의 사랑에서 소외된 채 자랐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운명의 아들은 여러 여인들과 행복한 가정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급기야 회사로부터 전출 통보를 받았을 때 외아들인 그는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는 20년이 넘게 혼자 살아왔지만 이제는 너무 늙어서 더 이상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는 독선적이고 오만한 늙은이다.  남편과 사별한 뒤 새롭게 찾아온 자유를 만끽하며 제2의 청춘을 구가했지만 시간의 위력 앞에 마침내 꺾이고 말았다.  아버지의 성격을 꼭 닮은 아들을 보면서 어머니는 밖으로만 떠돌던 남편의 모습을 떠올린다.  자신이 그토록 애정을 쏟았던 전도유망한 딸이 가수 데뷔와 함께 자살을 하자 그녀의 기억은 그 순간에서 멈춘다.   자신의 집안 곳곳에 딸의 사진을 걸어 두고 쓸쓸한 노년을 견딘다.
 
 두 사람 모두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들에게는 서로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이제껏 단 한번도 자신의 속내를 들어내지 않았던 두 사람에게는 마냥  피하고만 싶은 현실이자, 달아날 수 없는 현실이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돌봐달라고 요구할 수 없음을 안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늘 싸움으로 끝나는 모자간의 대화.  그들의 간극은 넓어 보였다.아들은 어머니 곁을 떠나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의무감에서 해방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을 안다.  자신에게 이제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서는 밀고 당기는 싸움이 벌어진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답게 갖은 속임수의 수작이 다 동원된다.

나는 이 소설을 유쾌한 희극의 한 장면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십수 년째 병원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와 홀로 늙어가시는 어머니.  그리고 부양의 의무로부터 늘 가벼워지고 싶은 우리 형제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누나들과의 내재된 갈등.
소설 속의 아들 요하네스는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마음은 있으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살뜰히 건네본 적이 없는 나는 깊은 자책과 함께 이 글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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