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머물렀던 화양계곡의 어느 농가에서 바라본 풍경은 평화로웠다. 사는 게 다 고만고만하지 않느냐는 주인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세월 따라 익숙해진 체념이 덕지덕지 붙었고,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보는 이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비탈길을 300미터쯤 걸어 올라가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외딴집. 한 달마다 찾아오는 전기 검침원이 걱정되어 겨울에는 검침원이 오지 못하게 할 요량으로 계량기 읽는 방법도 익히셨다는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씨가 내 앞에 놓인 진한 생강차만큼이나 웅숭깊었다.

 

 

어제는 대입 수능시험이 있었고, 그래서인지 수험생도 아닌 나는 왠지 모를 나른함에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환상처럼 가벼웠던 계절이 낙엽이 지는 가을의 끝자락에 무거워지는 건 신비로운 일이다. 잔망스럽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무거워지고, 세상이 온통 무지개처럼 빛나던 풍경도 무채색의 무거움으로 변한다. 세상의 무거움을 온통 겨울의 침묵이 감싸는 시간. 이제 2019년의 달력은 겨우 한 장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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