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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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사랑하는 소설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그 이유가 다양하지만 독자에게 외면을 받는 소설은 그 이유가 단순하고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한 모양새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의 이유가 다르다."고 썼던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을 거꾸로 뒤집은 듯한 느낌이 살짝 들지만 말이다. 최근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담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에서 나는 독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까닭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의식의 세계엔 관심이 없다는 하루키는 의식의 세계에서 자신에게 떠오른 문장을 지하 2층의 무의식의 세계에 담갔다 꺼낸다고 했다. 원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한번 무의식층에 내려갔다 올라온 재료는 전과는 다른 것이 됩니다. 담갔다 건지지 않고 처음 상태 그대로 문장을 만들면 울림이 얕아요. 그러니 제가 이야기, 이야기, 하는 건 요컨대 재료를 담갔다가 건지는 작업입니다. 깊이 담글수록 나중에 밖으로 나오는 것이 달라지죠."

 

나는 소설을 즐겨 읽는 일개 독자일 뿐 직접 소설을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소설가로서 하루키가 말하려 했던 바를 조금쯤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를테면 소설가는 자신이 쓰는 소설에서 작위적인 느낌을 없애기 위해서는 하루키처럼 무의식의 세계에 담갔다 꺼내는 것과 같은 방식의 필터링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설에서 작위적인 요소를 걸러내는 필터링 과정일 수도 있고 소설의 깊이를 더하는 숙성의 과정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과정이 필수적인 까닭은 독자는 다양한 반면 소설은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 쓰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작가라 할지라도 매의 눈으로 살피는 그 수많은 독자의 눈으로부터 소설에 언뜻언뜻 묻어나는 작위적인 느낌을 의식적인 글쓰기만으로는 완전히 걸러낼 수 없다는 얘기다. 반면에 이런 숙성의 과정을 거친 소설은 장르와는 무관하게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는 것이다.

 

데라치 하루나의 소설 <같이 걸어도 나 혼자> 역시 비슷한 이유로 사랑을 받는 소설이 아닐까 싶다. 생면부지였던 중년의 두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홀로 서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린 이 소설은 비행기에서 우연히 옆좌석에 앉게 된 중년 여성으로부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나도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내 삶은 분명 아름답지 않다. 수도 없이 틀리고 남에게 수도 없이 상처를 주고, 과거에 저지른 죄와 부정을 불에 태워 용서를 받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옳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게 산다는 사실을 아는 나는 적어도 다른 사람이 진심으로 원하는 대상을 가치 없다고 비웃거나 부정하지는 않겠다." (p.254)

 

소설 속 주인공 유미코는 서른아홉 살이다. 폭력적인 홀어머니 밑에서 불우하게 성장한 유미코는 수예 교실의 선생님 아들 히로키와 결혼한다. 결혼식도 없이 함께 살게 된 남편 히로키에게 중학생이 된 딸과 전처가 있다는 사실을 결혼한 후에야 알았다. 전처와 살고 있는 딸은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히로키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한다. 그때마다 히로키는 만사를 제쳐두고 뛰쳐나간다. 임신이 되지 않던 유미코가 어렵게 아이를 가졌으나 유산하고 유산한 날 밤에도 히로키는 딸의 전화를 받고 나간다. 더 이상은 힘들겠다고 판단한 유미코는 짐을 싸서 나온다. 그렇게 이사한 곳이 메종 드 리버 맨션. 이름만 예쁜 낡은 목조주택이었다.

 

"어려서부터 운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도, 유산 사실을 알았을 때도, 새까만 피를 봤을 때도, 언제나, 히로키 앞에서도 나 혼자 있을 때도 늘 그랬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울지 않아야 강한 것이라고 믿었다. 감정을 무턱대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어른의 도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의 이런 오기는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 나 자신조차도." (p.193)

 

유미코의 옆집에는 마흔 살의 독신 여성 카에데가 산다. 요리도 잘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천생 여자인 유미코와는 달리 자유분방한 성격의 카에데의 집에는 많은 남자들이 드나든다. 그러나 지난주에 직장을 잃은 유미코와 내일이면 실업자가 되는 카에데. 두 사람은 실업 기념(?) 파티를 연다. 그리고 유미코와 별거 중에 있는 남편 히로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최근에 그가 태어나고 자란 섬에 모습을 나타냈다는 소식을 시어머니인 미츠에로부터 듣게 된다.

 

"아니다, 그러는 대신에 카에데 씨를 데리러 가서 여행을 가자고 말하자. 이렇게 됐으니 '히로키를 혼쭐 내러 가는 여행(가제)'이든 뭐든 좋다. 벌써 인생의 절반을 살아왔고, 돈도 얼마 없는 우리. 그래도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휴식과 기분 전환이다." (p.84)

 

두 사람은 히로키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신칸센을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배를 타야 하는 힘든 여행이었다. 자신에게는 나쁜 남자와 선한 남자를 알려주는 보이지 않는 안테나가 있다고 자신하는 카에데는 섬에서 만난 남자와도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지만, 같이 갔던 그 남자에 의해 갖고 있던 현금을 모두 털리고 만다. 돈이 없어 호텔을 나올 수도 없었던 카에데는 유미코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고, 한밤중에 자신을 데리러 와준 유미코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안테나가 고장 났다며 좌절한다. 두 사람이 섬에서 머무는 곳은 히로키의 먼 친척인 시즈 씨의 집이다. 그녀는 어린 아들 샤토와 함께 섬에서 산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히로키를 좋아했던 시즈는 유미코를 질투하며 미워한다. 그리고 히로키의 소식을 철저히 함구한다.

 

"인간의 생각은 단순히 정리되는 것이 아니니 오히려 엉망진창이 기본 설정인지도 모른다고 냉정하게 생각했다. 엉망진창인 시즈 씨도 그럭저럭 섬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어 사는 모양이니 딱히 문제 될 것도 없지 않을까. 그런 일을 당했으면서도 나는 시즈 씨를 미워할 수 없었다. 절대 친해지지는 못할 상대지만." (p.218)

 

처한 환경은 비슷하지만 성격은 극과 극인 두 사람은 섬에서 보내는 며칠 동안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몰랐던 내면의 정체성을 차츰 깨닫게 된다. 아버지도 없이 불행하게 자랐던 시즈 역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만 받으며 외롭게 자랐다는 것을 알고 난 후 유미코는 시즈를 이해하게 된다.

 

"꽃이나 색채가 화려한 동물을 봤을 때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감탄한 적은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꽃도 별도 유한하고, 지금 그것들을 보고 있는 내 목숨 역시 유한하다는 진리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깨달은 후부터 아름다운 것을 보면 자연스레 눈물이 고였다. 지금처럼." (p.113)

 

그렇게 섬을 떠나는 카에데와 유미코. 가진 것도 없고, 변변한 직장도 없지만 그들 앞에 펼쳐지는 미래가 전보다는 조금 더 단단해질 거라고 믿게 되는 까닭은 나의 단순한 바람 때문은 아닐 터였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억지로 등 떠밀려 사는 삶과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며 사는 삶은 모든 면에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아마도 작위적인 부분을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기 때문일 터, 작가는 자신의 소설을 아주 오래도록 고르고 매만졌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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