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사 검색하다 마릴린 맨슨의 민낯이 검색어 상단을 차지 하기에 클릭해 들어가 그의 민낯보니 생각보다 수수하게 생겼다. 너무나 평범해서 길거리에서 마릴린 맨슨을 만나더라도 그가 마릴린 맨슨일 거라곤 생각지 못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릴린 맨슨의 기이한 무대 매너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를 혐오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쑈는 쑈일뿐 상업적인 무대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선 기존의 사회적 틀도 과감히 깨야하기 때문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0203/pimg_760031175967010.jpg)
오히려 나는 맨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게 호감을 느낀 첫번째 계기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 나온 마릴린 맨슨의 인터뷰였다(참고로 그의 인터뷰를 실은 블로그를 찾아보니 http://trycom.tistory.com/2297 ). 사실 그가 가수로써의 무대행동이 파괴적이고 혐오스러울 뿐이지 그가 정상적인 사고를, 아니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도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두번째 계기는 언젠가 그가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가 혐오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종교를 이용해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고 부터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삶의 경험치라고 해야하나. 더 이상 신의 존재 여부에 관심이 없다. 종교를 믿고 안 믿고는 개인적인 신념의 문제이다. 그 신념이 자신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준다면 신의 존재 여부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종교의 뿌리가 괜히 기복신앙이겠는가. 종교는 아주 개인적인 지극인 개인적 행복의 기원에서 시작되었고 여전히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아주 지극히 사소한 개인적인 종교라는 범주에 타인이 관여할 수도 관여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타인이 종교 문제에 관여하거나 전도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종교는 권력화가 되고,그 권력뒤에는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 덩어리는 정치적, 사회적, 교육의 왜곡을 낳는다. 유럽의 중세 암흑 시대를, 조선 시대의 유교 문화의 몇몇 예만 들어도 우리는 소수가 어떻게 배우지 못한 다수를 지배했는가를 역사의 그늘을 통해 알고 있다. 세대를 거듭된 종교의 세뇌는 무섭다.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미신의 형태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입자물리학자인 폴 디랙은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의 의지라든가, 죄와 회개, 그리고 내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행동을 해야한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모두 거칠고 냉철한 현실을 은폐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높은 사람의 세력에 굴복하고 복종하는 것이 것이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 된다는 생각에 매우 유리한 뒷받침이 되었다라고 말이다.
폴 디랙의 말처럼 사실 종교는 신의 의지함으로써 삶의 힘겨움, 아픔이나 고통을 치유받으려는 목적성이 강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교단에 지배당할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종교의 기원도 사실 지배를 더 강화하려는 목적이었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환상(illusion, 예로 천국같은)을 만들어 줌으로써 사람들의 사후세계까지도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한 예로, 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도, 대선때마다 영향력 있는 목사가 나와 신도들에게 누구를 찍어야한다고 발언등 정치적 편향성에 반대한다. 이러한 구도만큼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권력이 복종에의 강요가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와 평등과 열린 세상을 지향했더라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불행과 비운의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을 부정하고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서, 모든 것으로부터 삶이 자유롭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이 벌을 줄 것이라는 두려움도 없으며 천국이 나를 기다릴 것이란 희망도 없으므로, 나는 자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