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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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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맞벌이를 시작한 엄마를 대신해서 끼니를 챙겨야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은 오른쪽 무릎의 흉터로 남아 있다. 나보다 세 살이 어린 동생에게 처음으로 끓여주었던 라면을 먹이기 위해 허겁지겁 나가다가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넘어져 생긴 상처는 20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있다. 그 상처 때문에 짧은 스커트를 입지 않게 되었고 지금도 맨다리를 보이지 않는 차림을 하게 되었다. 라면은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지만 긴 바지를 입으면 나는 그날의 상처를 잊고 맛있는 한 끼의 식사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 주변엔 라면을 먹지 않는 사람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직장 상사 딱 한명 뿐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늦은 시간 퇴근을 하거나 간식으로 동료들과 함께 먹는 라면의 향기는 얼마나 유혹적인가. 그런 유혹을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 그 상사뿐이라는 것에 감사 할 때도 있다. 나의 일상 속에 그녀는 끼워 놓지 않아도 되는 것이 즐겁기도 하다. 이처럼 나에게 라면이라는 것은 때로는 유년 기억속의 상흔으로 남거나 고단함을 함께 하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시간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라면을 끓이며]를 읽으면서 김훈 작가에 대해 생각을 또 한 번 하게 되었다. 고작 가스 불에 오른 냄비에 팔팔 끓는 물에 넣은 천원이 넘지 않는 라면을 하나 끓이면서도 이렇게 깊은 생각을 가진 작가가 얼마나 있을까. 그의 이 철학적인 라면 이야기가 어찌 그냥 산문으로 그칠 수 있을까.

 

 

 

“라면을 끓을 때, 나는 미군에게 얻어먹던 내 유년의 레이션 맛과 초콜릿의 맛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일 때 나는 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양계장의 닭들과 사지를 결박당한 과수원의 포도나무 사과나무 배나무 들과 양식장에서 들끓는 물고기들을 생각한다. 라면을 끓을 때 나는 사람들의 목구멍을 찌르며 넘어가는 36억 개 라면의 그 분말수프의 맛을 생각한다. 파와 계란의 힘으로, 조금은 순해진 내 라면 국물의 맛을 36억 개의 라면에게 전하고 싶다. ” P31

 

 

 

그에게 라면을 끓인다는 행위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저 배가 고파서 먹는 라면은 아닐 것 같은 그의 행위는 중요한 의식을 치를 사람과도 비슷해 보인다. 가장 비싸고 아름다운 그릇에 담아 먹는 다는 이 라면은 그의 하루의 성찰에서 오는 하루의 쓸쓸한 맛일까.

 

 

 

‘밥벌이의 지겨움’과 ‘바다의 기별’을 통해 읽었던 그의 글들은 새로운 이름으로 한권의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의 이런 글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반갑고 소중하다. 총 5부로 나눠져 있는 이글을 챕터는 사실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냥 그의 흐름대로 읽으면서 잊고 있는 사소함 것의 소중함을 찾아내면 그만인 것이다.

 

 

 

때로는 평발임에도 현역으로 입대를 하게 된 아들에게, 가슴 확대 수술을 하려는 여자들에게, 첫 월급을 타와 자신에게 핸드폰과 용돈 15만원을 준 딸에게도 그는 라면과 같은 인생철학을 들려준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이런 그의 철학과 가르침이 싫지 않다는 것이다. 꼰대 같지 않은 그의 말에 그저 숙연하게, 당신의 말을 따르고 싶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을 뿐이다. 첫 월급을 타온 딸을 보며 앞으로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해 펼쳐질 날들에 쓸쓸함을 담아 적었을 것 같은 아버지의 위로가 한참동안 쓸쓸하게 다가온다.

 

 

 

“ 그 아이는 나처럼 힘들게, 오직 노동의 대가로서만 밥을 먹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P139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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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0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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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5 2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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