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종말
자크 사피르 지음, 유승경 옮김 / 올벼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부제 : 위기의 자본주의와 포스트-신자유주의 경제질서 전망


이 책은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연구자로 일하는 선배에게 선물받은 책(번역자가 그 선배)이다. 공부모임에서 폴 크레이그 로버츠의 <제1세계 중산층의 몰락>을 교재로 세미나하면서 제라르 뒤메닐 공저 <신자유주의의 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 추천받았다.


자크 사피르는 이 책에서, 주류 경제학자들이 글로벌리즘이라는 ‘신경제’를 받들고 있는 동안, 신경제의 동력인 ‘규제철폐’와 ‘역외이전’이 제1세계에는 중산층의 몰락을, 제3세계에는 환경파괴와 빈부격차를 가져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나아가 그는 지금의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고 유럽이 나아가야 할 길은 지금의 실패한 경제학을 버리고 새로운 경제학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길을 제안하고 있다.


“세계화는 결코 행복을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단언하는 사피르는, 오늘날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세계 경제의 신조처럼 자리 잡은 자유무역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며, 오래 전부터 열강은 시장을 열기 위해 항상 무력을 사용했고, 자신에게 유리한 교역조건을 위해 어떤 행동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19세기 후반 한반도의 역사에 기록되어 있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등을 지적한 셈이고,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후, 그렇지 않아도 불평등하게 체결된 한미FTA(자유무역협정)를 다시금 개정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2017년 현재 시점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저자는 2008년 이후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 신흥 경제국의 금융버블, 아시아 국가들의 사회적·환경적 위기 그리고 유럽의 재정위기 등 최근 드러난 일련의 세계적 위기의 뿌리에는 동일한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한다. 바로 불과 25년 전에 나타나서 지구촌의 대부분을 장악해버린 ‘세계화’가 작금의 총체적인 세계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세계화’로 불리는 현상을 ‘자유무역의 확대’와 ‘자본이동 자유화’ 두 갈래의 흐름이 빚어낸 결과라고 규정한다. 특히 세계 경제가 자본 자유화로 인해 크게 변화했는데, 내적으로는 임금 하락과 고용 불안, 사회보장의 후퇴, 환경 파괴와 같은 현상이, 외적으로는 위기에 대한 취약성이 강화되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분석했다. 국가부채와 가계부채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국가들의 경제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결국 세계화는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에서 결코 거스를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이 아니라 그 자체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하나의 위기이며, 이러한 세계화에 대한 물신숭배는 이득을 보는 자들이 만들어낸 헛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특히 “자연자원의 무분별한 개발을 초래하여 15억 명이 넘는 지구촌 사람들이 환경 재난 속에서 나날이 피폐해져 가고 있으며, 사회적 유대마저 파괴되는 나라가 속출하면서 수많은 민중들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현란한 불빛 아래 광적인 개인주의의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선진국으로 하여금 노동비용이 저렴하면서도 최신 기술의 활용이 가능한 개발도상국의 생산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개도국 노동자의 건강 악화, 환경 파괴와 같이 당장 금액으로 추산할 수 없는 보건환경 부문의 역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GDP 수치의 증가와는 반대로 개도국 민중의 삶이 피폐해지고 말았다고 분석한다. 1960~80년대 미국과 일본의 사양산업을 받아들인 한국의 노동자들의 건강이 훼손되고 전국에서 환경파괴가 일어났고 20세기 후반부터 중국에서 비슷한 퇴행이 벌어지는 현상의 공통점은 결국 ‘세계화’인 것이다.

그렇다고 개발도상국의 민중만 고통을 받은 것은 아니었는데, 선진국에서도 자본 이동을 통해 해당 국가 노동자의 임금 하락과 사회보장의 후퇴가 야기되었고, 뉴욕에서 발생한 “월가를 점령하라”와 프랑스 파리 외곽의 실직 청년들의 소요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다수 국민의 삶 또한 피폐해져만 갔다고 지적한다.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대외무역에 의존하는 경제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무한정 수입을 할 수 있는 나라도 없으며, 모든 나라가 무역 흑자를 누릴 수도 없다. 상업 그 자체는 스스로 부를 창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정치경제학의 진실을 저자는 구체적인 통계 수치들과 함께 다시금 상기시킨다. ‘세계화’의 가장 큰 핵심은 ‘무역의 세계화’와 ‘금융의 세계화’다.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가 진행되어 온 각각의 단계에서 폭력과 전쟁의 씨앗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우리는 그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 바로 경제와 사회의 전면적 퇴행이다. 이 퇴행은 부유한 나라들을 먼저 강타했다. 그렇다고 신흥 개발도상국들을 관대하게 다룬 것도 아니다.”(17쪽)


사피르가 제시하는 현재의 세계경제 위기의 이유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무역의 세계화와 금융의 세계화)와 달러본위제도, 유로존 체제의 내적 결함이 맞물린 결과이다. 신자유주의 경제논리 아래 추진된 자본 자유화는 총이윤 중에서 금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으며, 이와 함께 경제의 부채의존도를 급격히 상승시키고, 제조업이 감소하는 탈산업화를 진행시키면서 고용의 불안정, 소득불균형, 사회복지의 후퇴라는 오늘날의 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의 세계화가 초래한 위기는 무역의 세계화에 의해 야기된 위기를 가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오늘날의 세계금융의 위기의 모태로 국제통화체제를 지목한다. 1970년대 브레턴우즈 체제가 해체되면서 국제통화질서는 혼란을 거듭하게 되었고, 이런 가운데 시작된 금융의 세계화는 통제할 수 없는 금융체제와 맞물려 실물 경제의 블랙홀이 되고 말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현재를 ‘세계화라 불리는 세계경제의 통합 물결이 역류하는 시점’이라고 보았다. 전능하다고 여겨져 왔던 시장이 후퇴하고, 무능하다고 질타 받아 온 국가가 다시금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래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는 세계금융위기는 물론이고, 한국과 말레이시아 등이 겪어야 했던 1997년의 금융위기 또한 미국과 IMF가 만든 통화의 무질서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는 저자는 건전성 규제는 전혀 해법이 되지 못하며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책을 찾아야만 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유로 단일통화의 한계에 직면한 유로존 금융체제 위기가 다시금 미국 금융시스템과 세계경제 전반에 걸친 위협의 증폭 요인으로 다시금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결국 달러 헤게모니는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며, 해결책은 현재의 IMF·WTO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금융통화시스템(지역통화체제와 공동통화제도)의 출현으로만 가능할 것이라는 것이 사피르의 전망이다.


“탈세계화를 질서정연하게 추진하기 위 해서는 분명히 관련 국가들이 협력기구를 만들어 공동으로 행동해야 한다. 하지만 탈세계화가 반드시 질서 정연한 방식을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는 다른 나라들이 무기력에 빠져 있거나 나쁜 의도를 가지고 있을 때, 자국의 상황을 먼저 고려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어떤 나라가 일련의 주도권을 쥐고 상대국을 궁지로 몰아 애초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거나 복종을 요구할 수도 있다. 국제적 차원의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매우 상투적이고 아주 맥빠진 주장을 핑계로 내세우며, 자국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금융의 세계화와 관련해서는 이 책의 1부에서 다뤘던 '무역의 세계화’ 경우보다는 한 국가가 주도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한 국가가 주도권을 쥐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190쪽)


그리고 전세계적인 국가부채와 가계부채에 대한 사피르의 해결책은 고성장이다.

“고성장을 회복하는 것만이 대량실업을 해결할 수 있다. 고성장을 이루려면 공정한 무역을 위한 보호주의적 수단과 통화의 자주권이 필요하다. 통화의 자주권은 자본 이동을 엄격히 통제할 때만 가능하다. 글로벌 자본 이동 중 해외직접투자(FDI)는 5%도 되지 않는다. 이 정도 자본을 유치하려 자본시장을 완전히 열 필요는 없다.”(198쪽)


오늘날 세계 경제는 근래에 경험하지 못한 크나큰 위기에 직면한 가운데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라져버렸다. 지금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금융과 무역의 탈세계화를 위한 실천’이라고 분석하는 저자는 지금의 세계화를 이끌어 오며 간신히 수면 위에 떠 있는 난파선의 선원들에게 의존하지 말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한 용기와 상상력, 나아가 격렬한 투쟁까지도 발휘할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하고 있다.


사피르는 한국도 외환통제체제 도입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본다. 한국 정치권은 요즘 외환거래세인 토빈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피르의 말대로 환율과 자본 이동에 대한 통제체제를 확립하는 것은 미국과 직접 부딪칠 것이다.

결국 한국 정부와 정치권은 주한미군의 보호 아래에 안주하여 미국식 경제시스템에 편입한 채 뻔히 예상되는 길고 고통스러운 퇴행으로 걸어갈 것인지, 아니면 독일이나 중국처럼 중장기 전략을 수립하여 자립적이고 경쟁력 있는 경제체제를 추진하면서 세계경제의 주요 거점들과 공정한 교류에 나설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다행히 한국에게는 미국식 세계경제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북한이라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지 않아도 남북 각 정부는 긴장을 완화하고 동북아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눈 앞에 두고 있는 바,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남북의 경제협력을 통해 해외시장과 거래하되 크게 휘둘리지 않는 경제시스템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6월 18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