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추천[서평] 대학은 기업화된 ‘괴물’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김민섭) 저, 20153 10., 은행나무


2009년 현재 전국 405개 고등교육기관 가운데 4년제 대학 157곳, 전문대학 129곳, 대학원대학 18곳 등 305곳에서 강의하고 있는 시간강사는 총 84,797명으로 조사됐다.(405개 전체로 환산하면 약 11만명) 이중 국·공립대가 14,290명, 사립대가 70,507명이다. 석사학위가 44,188명이고 박사학위 소지자는 30,966명이며, 그중 전업강사가 35,477명이라 한다. 하지만 전업강사 중 법정 수업시간 수인 주당 9시간 이상을 강의하는 실제 시간강사는 16,536명에 불과하다.([교수신문] 시간강사, 6시간 미만 강의가 50% 넘어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9012)


인용처인 [교수신문]에 따르면 전국 대학교수는 2013년 현재 73,400명이라 하니 한국의 대학은 교수보다 시간강사가 더 많은 셈이다. 교수보다 시간강사에게 지불하는 임금과 복지비는 비교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수와 시간강사의 실제 수업시간 등 내용은 다르겠지만, 대학의 핵심 역할(서비스)가 강의이므로 강의에 대해 시간 당 책정하는 비용이 다르다.

즉 대학, 학교법인들은 1990년대 중반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학생들에게 그것도 매년 등록금을 올려받았지만, 대학운영비의 절감을 목적으로 교수의 정원을 늘리지 않고 시간강사만 땜빵시키면서 ‘학위 장사’를 한 것이다.


그렇게 대학으로부터 착취당한 시간강사, 그중에서 가장 처우가 열악한 지방대학교 시간강사가 직접 시간강사들의 애환을 이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에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필자는, 대학이 시간강사의 노동과 열정을 착취하여 시간강사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대학교육을 망가뜨리며 대학을 기업화시킨다는 일반적인 내용을 이미 몇 년 전에 김동춘의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1999)>와 이정규의 <한국사회의 학력,학벌주의(2003)> 등 몇 개의 책을 통해 알았다. 하지만 시간강사들의 구체적인 삶과 애환을 느낄 수는 없었다.

드디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통해 뒤늦게 그들의 고통과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너무 늦게 책을 통해 체험한 ‘애환’은 막막하고 쓰릴 뿐이다. ‘지방시(지방대학교시간강사)’라는 단어도 이 책을 읽고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는 중고등학교 때부터 소설 쓰는 것을 좋아했고 지도교수가 말한 학문의 즐거움이 궁금해 연구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그는 “대학이란 지성진리학문의 총체라고 생각했고, 강의실과 연구실은 내게 가장 가치있는 공간이었다. 대학의 합리성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괴물로서 대학의 맨얼굴을 보게 된 계기는 “본업인 연구와 강의로는 도저히 생계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부터”였다. “연구를 한다는 것은 논문을 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 글을 어딘가에 투고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학회 가입비와 연회비, 그리고 심사에 대해 고맙다는 의미의 심사비 등 도리어 20만원 가까이를 학회에 내야 해요. 최근에는 6-8학점을 강의했는데, 그러면 1년에 1000만원 내외를 버는 수준이에요. 그리고 건강보험 등 4대보험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결혼을 했고 아들이 태어났다. 기쁜 일인데도 막막한 마음이 앞섰다. 아들과 아내를 산후조리원에 두고 정처 없이 거리를 걷다가, 문득 맥도날드 앞에 붙은 구인공고를 봤다. 새벽에 나가 몸을 써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한달에 60시간 이상 일하면 직장가입자로서 4대보험을 보장해준다는 말을 듣고, 덜 컥 일을 시작했다. 고된 일이었지만 최저시급 5580원은 생계에 쏠쏠한 도움이 됐고, 직장 가입자로 건강보험에 가입해 부모님까지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었다.


“대학과 맥도날드를 비교해봤어요. 맥도날드는 신자유주의의 표상이지만, 그곳에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제도나 매뉴얼이 꼼꼼하게 갖춰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합리성의 표상이라는 대학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어요. 시간강사부터 조교, 학부 아르바이트생까지 ‘학문의 길은 원래 그런 것'이라며 가혹한 착취를 하고 있는 '괴물'로 서 대학의 맨얼굴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나 사회인'이 아닌, 대학을 배회하는 유령으로서 스스로의 존재를 새롭게 깨닫게 됐죠.”


이렇듯 저자는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치고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동안 ‘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겪은 실제 이야기들을 담담하게 펼쳐내고 있다. 제도권의 삶이 비루하다고 불평하지도, “내가 이렇게 힘드니 좀 봐달라”고 징징대지도, “이러한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저 한 청년이 이렇게 꿋꿋이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고 있다고 보여줄 뿐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젊을 땐 좀 아파도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불평만 한다”는 식의 기성세대의 일갈에 대한 답으로서, 꿈을 가진 한 청년이 얼마나 ‘노오력’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 꿈 때문에 현재를 얼마나 처절히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지 잘 말해준다.

대학 진학률이 70%를 넘는 이때에 제도권에서 살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가 되고, 그래서 8090세대 청년들에 대한 세대성의 가슴 서늘한 기록이 된다. 그 세대들이 기성세대와 현 정치권, 기득권에 대해 불신을 갖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인 셈이다.


저자는 대학이라는, 제도권이라는 ‘괴물’(요즘 회자되는 ‘헬조선’의 대학)에서 혼자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꿈을 찾아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처럼 ‘괴물’에서 벗어나는 시간강사는 전체 11만 명 중 얼마나 될까. 저자 혼자서, 저자처럼 깨닫고 용기를 내어 벗어나는 강사들이 얼마나 될까. 즉 저자의 용기와 탈출은 개인적인 결단일 것이다.

저자와 조금 다른 이유로, 조금 다른 처지로 인해 아직도 대학이라는 ‘괴물’ ‘헬조선’에 갇힌 사람들은 못나서, ‘노오력’이 부족한 것일까. ‘글쓰기’가 전공이 아닌 강사들은 어떻게 ‘괴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필자는 저자가 비슷한 처지의 강사들과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머리와 어깨를 맞대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헬조선’에서는 ‘지방시’ 시간강사들이 혼자만의 노력과 용기로 탈출하여 안착할 만한 곳이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지성, 진리, 학문’을 대학이 만들어내지 못할 때, 비슷한 처지의 강사들(노동자들)이 대학으로부터 착취당하는 대학 내 노동자, 학생, 교직원 그리고 해고위협에 시달리는 교수들과 어깨 걸고 나서지 않는 한, 정부나 정치권이 결코 바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017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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