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술래 - 과자장수가 골목에서 만난 바삭 와삭 와락 왈칵하는 이야기
박명균 지음 / 헤르츠나인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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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추천[서평]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 <나는 언제나 술래>

박명균 저, 2016. 05., 367쪽, 헤르츠나인


 

“우리는 그저 놀면 되는 나이였다. 놀아도 되는 나이였다. 이곳은 묘지 위에 세워진 우리의 새고향이었다. 맹이의 고향이었다.”

“이제 동생도 마흔이 넘었다. 그 일 뒤로도 난 내가 바쁘고, 어려워서 동생에게 해준 게 없다. 부모님께도 잘한 게 없다. 여동생에게 30년 전에 미안하다고 말한 게 전부다. 예쁘다고 아니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그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500권의 책을 읽었다. 노가다를 하면서 또 500권을 읽었ㄷ가.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1000권의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누가다 아저씨들은 모두 이 힘든 노동에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수시로 한계를 만난다. 마음이 막힐 때가 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운다. 마음이 포기하는 지점에서 담배를 문다. 이렇게 번 돈으로 집에 가서 싸운다. 이걸로 어떻게 애들 공부시키느냐고.”

“내가 괜찮아도 아무거나 할 수가 없다. 나 혼자면 괜찮았던 일이 누구 남편으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아내를 통해서 사회적인 체면과 나를 다시 만난다. 나 자신을 위해서 뭔가 해야 되는데 지금까지 나는 뭘 한 걸까? 열심히 산다고 살았느데, 이게 뭘까? 왜 이렇게 꼼짝할 수가 없을까? 왜 이렇게 숨을 쉴 수가 없을까?”

“아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굶지는 않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제일 견디기 힘든 건, 날 사랑하는 사람한테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너무 없어서 견딜 수가 없다. 이렇게 초라한 놈을 신랑이라고 격려하고 위해주는 사람에게 입 맞추고 따뜻하게 안아줄 자신이 없어진다. 그런 나를 다시금 위로하는 아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차마 도망치고 싶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내 편이 되어준다는 것이 사람한테, 나한테 이렇게까지 중요한 문제인지 몰랐다. 굳어 있던 입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많이도 필요 없다. 딱 한 사람이라도 내 속을 알아주면 된다. 내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절대적인 무언가다.”

“밤에 일이 끝나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집에서는 들어오라고 성화다. 이제 막 태어난 아들 보느라 아내가 힘들어서 일찍 들어오라는데 절대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들어갈 수가 없다. 아들이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다.”

“운이 좋아서 아들의 폭행사건을 무마되었다. 그날부터였다. 아들의 도끼눈이 풀린 것이. 그리고 받아들였다. 영어를, 수학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인생과 무엇보다 자신을 받아들였다. 괜찮은 애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한 문장, 한 문장… 자신이 직접 겪고 느끼고 아파던 삶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고등학생운동은 아주 짧게 반짝였고 금방 사라졌다. 1980년대 민주화의 열기 속에서 뜨겁게 진행되었고, 90년대 중후반까지 지속되었다. 1991년 당시 민주주의를 외치며 스스로 목숨을 던진 6명의 학생 가운데, 3명이 고등학생운동 출신이고, 1명은 고등학생이었다.

또한 80년대 말 전교조 창립, 대규모 해직 과정에는 고등학생운동도 있었다. 학생들은 교육의 또 하나의 주체로 등장했고, 고등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전교조에 대한 전면적 지지투쟁을 벌였으며, 그로 인해 구속과 퇴학처분을 겪기도했다. 고등학생운동은 학교안과 밖에서, 공개 단체에서 비공개 단체에서 매일매일 조직하고 투쟁했다.

당시 고등학생운동을 했던 당시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특히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또는 못한 이들은?


 

당시 고등학생운동 활동가들이 후배들과 학습용으로 많이 읽었던 책 중에 <친구야 세상이 희망차 보인다>(1990, 동녘), <불량제품이 부르는 희망노래>(1989, 동녘)가 있었다. 비민주적인 사회와 교육 현실을 담고 있는 책이다. 둘 다 <나는 언제나 술래>의 저자 박명균이 10대 였던 고등학교 시절 단독저자, 공동저자로 펴낸 책이다.

90년대 중후반 고등학생 운동의 쇠퇴와 함께 그의 조직도 해산했고, 그는 생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뜨거웠던 그 시절,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던 10대 박명균은 이제 50대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제 쫓겨나고 내몰리는 ‘헬(hell) 조선’에서 힘겹게 하루하루를 사는 영세자영업자가 되었다. 말이 자영업자이지 앵벌이 노동자와 다름 아니다. 그전에 그는 주로 ‘노가다’를 뛰었다. 그가 겪은 지난 30년의 삶도 ‘헬 조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박명균이 27년 만에 <나는 언제나 술래>를 세상에 내놓았다. 컴맹이라는 그가 독수리타법으로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출간했다. ‘글을 쓰지않고, 과자를 파는 자신이 서운했던’ 그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하명희 작가 덕분이라고 한다. 더 정확히는 하명희의 소설 <나무에게서 온 편지>(2014, 사회평론) 때문이라고한다.

이 소설은 당시 고등학생운동을 면밀히 묘사한 소설로 <22회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 했다. 하명희 작가는 수상소감에서 “당시 해직되었던 전교조 선생님들도 복권이 되었는데, 그때 학교에서 쫓겨났던 아이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 왜 아무도 그들의 삶을 물어주지 않는지 묻고 싶었다”고 했다.


 

박명균은 사회의 밑바닥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가난하고 힘없는 목소리를 들려준다.


 

중년의 사내가 눈물을 훔친다. 1톤 탑차 트럭 운전석에 앉은 그는 문방구, 슈퍼, 골목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곤 자꾸 울어 버린다. 하루 12시간 동안 30여개의 가게를 돌며과자를 팔아야 한다.

한 가게에서 물건을 내리고, 흥정을 하고, 상품을 진열하고, 수금을 하기까지 쓸 수 있는 시간은 7,8분이다. 빨리 다음 가게까지 운전해서 이동해야하는데, 그 짧은 순간 누군가의 ‘마음 지문’을 만나 버렸다.

그 느낌을 글로 옮기고 싶다. 초조한 마음으로 운전석에 앉아 몇 줄, 아니 몇 개의 단어라도 수첩에 옮겨 놓는다. 다시 트럭을움직여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메모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트럭을 출발 시킨 날은 밤늦게 집에 돌아와 다시 수첩을 펼친다. 하지만 감정은 이미 날아가고 단어들만 헛헛하게 굴러다니는 걸 발견한다. 그런날은 그 단어들과 함께 잠자리에 눕는다.

점심은 늘 김밥 한 줄이니, 집에 돌아와 먹는 저녁은 늘 수북하다. 숟가락 놓기가 무섭게 피로와 식곤증이 범벅이 되어 밀려오고, 내일12시간 쉼 없이 일하려면 빨리 잠들어야 한다.

그런데 제대로 글을 쓰지 못한 날은 쉬이 잠들지 못하고 단어들과 함께 눕는다. 그렇게 몸으로 써 내려간 63개의 이야기가 <나는 언제나 술래>에 담겨있다.


 

‘대기업에 잠식당하는 골목 상권’이라는 짧은 말에 다 담기지 못하는 구체적 울분과 땀내 가득한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더 이상 바닥으로 내려갈 곳 없는 이들이 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견디거나 견디지 못하는지, ‘그런 서로’를 어떻게 알아보고 침묵으로 위로 할 수 있는지 말해준다.

먹고 먹히는 현실에서 먹히는 쪽이 되지 않기 위해 ‘악마’가 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 죽을 때 까지 숨기고 싶었던 부끄러운 자신을 고백한다. 상대적 빈곤이 아니라 절대적 빈곤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삶에서 가난은 ‘손발이 묶인 나를 쥐새끼가 물어뜯는 고통’이라고 말한다.


 

저자 박명균의 글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자주 울컥하게 만든다.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의 삶은 이론서적이나 소설처럼 마냥 아름답지만도 않고 긍정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며, 선과 악이 감정과 이성이 희망과 좌절이 분노와 체념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나는 언제나 술래>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된다.

고작 남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의 치열한 삶만큼 나의 삶이 치열하지 못할 뿐이라고 반성하게 된다.

이 책은 글쓰는 후배에게 선물받은 것이다.


 

“노가다는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바닥을 밟고 있어서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바닥에 뭐가 있든 우리는 그 바닥을 밟아야, 그 바닥을 밟고 걸어야 하루일당을 번다. 우리가 넘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한다.”(124쪽)


 

“대한민국에서 노조 일을 하자면 매일 술을 먹어야 하고, 언제 해고될지 몰라서 마음이 조마조마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냥 공적인 업무를 보는 건데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상식으로 안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돌봐야 하고, 내가 힘들더라도 내색하지 않으면서 지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누군가의 마음을 끊임없이 일으켜 세워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들을 다 안아주고 혼자 남아서 멍하게 힘들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장례식장에서 나한테 웃으면서 투정부린 건데, 그런 친구에게 내 탓이 아니라고 발뺌을 해버렸다”(209쪽)


 

“사람은 얼마든지 사악해질 수 있다. 얼마든지 비굴해질 수도 있다. 삶에 각인된 고통 속에서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 사람의 가슴에 강제로 자기 마음을 꺼내는 고통을 감수하는 시기가 있다. 아버지가 되면서, 자식이 커가면서 서서히 마음을 꺼낸다. 그게 사람으로 고통인 줄도 모르고 자식이 웃으면 웃게 되고, 자식이 울면 울게 되면서 자신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아무리 험한 일이라도 저 아이를 지켜줄 수 있다면 받아들이겠다고, 감수하겠다고,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한다.”(213쪽)


 

“부도라는 것이 현찰이 모자라서 한순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 처음에 너무 가볍게 오기 때문에 손해로 막아내고, 두 번째는 빌리고, 세 번째는 회사를 걸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을 걸게 되기 때문에 중간에 물러나 지지 않는다. 살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큰 덫에 걸린다. 무능해서, 무책임해서 처음부터 무너지면 되는데 10년 넘게 애쓰면서 살아온 사람에게 포기라는 건 어렵다. 가족을 위해 살았지만 그 가족이 자기를 떠나도록 못나게 구는 게 부도다.”(281쪽)


 

“장사꾼들이 그 (뭉칫)돈을 세어보고 또 세어보는 그 이유를 안다. 경제용어로는 손익분기점을 따진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살아도 되는지, 죽어야 하는지 세어보고 있는 거다.”(295쪽)


 

“욕하고 싶은 순간을 쓴다. 절대 욕은 하지 않는다. 욕을 참고 그 상황이 만들어진 사회적인 배경을 쓰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사회가 때리는 대로 얻어맞는 사람의 상처를 쓴다. 욕을 하는 순간 글이 사라진다. 욕이 나오는 순간에도 삶의 의미를 찾는 게 내 글의 목적이다.”(352쪽)


[2017년 3월 20일]

우습게 들리겠지만 누가다 아저씨들은 모두 이 힘든 노동에 두려움이 있다. 그리고 수시로 한계를 만난다. 마음이 막힐 때가 있다. 그래서 담배를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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