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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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알게 된 고귀한 자들은 비참하게 죽는 순간에도 이 세계 전부를 얻은 셈이에요..”

이 작품은 1930년대 초반 북간도의 항일유격근거지(한인 소비에트) 내부에서 있었던 피비린내 나는 사건, 이른바 ‘반민생단 투쟁’에 착안한 소설이다. ‘민생단’은 만주를 침략한 일제가 친일파를 조직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500여 명의 독립투사이자 혁명가가 적이 아니라 동지의 손에 의해 죽어간 사건이라하니 기막힌 사연이 많았을 것이다.

김연수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기까지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6년여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고 독립투사들의 심정에 공감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김연수는 그 사이 작품을 위해 중국과 일본, 연변과 러시아, 미국과 독일을 분주히 오갔다.

“1930년대 조선인으로 중국공산당에 입당해 조선의 독립과 혁명을 위해 먼저 중국혁명을 외쳐야 했던 시작부터 모순을 껴안았던 독립투사들, 국제주의자로서의 이중임무를 띤 채로일제가 아닌 동지의 손에 의해 봄날 꽃잎처럼 죽어간 수천의 젊은 목숨들, 자신이 누구인지는 결국 죽고 나서야 시체로서만 말할 수 있었던 그 기막힌 사연의 인물들을 찾아 작가는
관련자료와 사료들을 뒤적이고 복사하고 칼로 오려 노트에 붙여갔다고 한다. 그러나 이내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때-그곳’이 아닌 ‘현재-이곳’에 앉아 그들의 삶과 내면을 짐작하기란 말 그대로 ‘상상불가’의 영역이었으니. 작가가 내린 결론은 적어도 그들이 죽어간 연변 땅에 가서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소설이었기에 그 갈증과 열망은 더했다.”(출판사 소개글)


<밤은 노래한다>는 죽음 직전의 연인이 써 보낸, 한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버린 한 장의 편지에서 시작된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초, 저마다의 사연과 핏빛 서러움을 간직한 이들이 몰려든 북간도 땅을 배경으로, 박도만, 최도식, 안세훈, 박길룡 등 혁명과 새로운 시대를 꿈꿨던 네 명의 젊은이들과 그들의 친구인 이정희라는 신여성, 그리고 만철(滿鐵)의 조선인 측량기수로 이정희를 사랑했던 주인공 김해연에게 찾아온 잔혹한 운명, 가혹한 세계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인을 꿈꾸었지만 내지인마냥 일본인과 함께 일하고 술을 마시며 그저 운명적인 단 하나의 사랑을 맘에 품었다가 어느 순간, 조국과 이념, 혁명과 죽음에 직면하면서 세계의 복잡한 이면에 눈떠가는 한 남자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손을 저주하며 삶을 저버리고자 했지만 다시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또 한 하나의 순정에 가슴 치는 애틋한 연애기이기도 하다.

“북간도 고난한 삶의 흔적이 몸으로 스며든 사람들의 얼굴이 인화지 위에 검은 꽃처럼 피어나”듯 이번 소설의 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만철(滿鐵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직원으로 대련에서 일하다가 용정으로 파견된 김해연은 측량작업을 하면서 간도임시파견대의 중대장인 나카지마 타츠키 중위와 친해지게 되고, 박길룡(박타이=양도생)의 소개로 이정희를 알게 된 뒤, 그들과 종종 술자리를 가졌다.

독립군이자 혁명조직의 일원이었던 이정희는 이 모임을 통해 토벌대의 정보를 수집하여 조직에 보내다가 발각되자 김해연에게 어서 피하라는 메시지를 내포한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김해연은 일본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으면서 과거 공산주의운동을 하다 전향하여 영사관 경찰보조원으로 있던 최도식을 만나게 된다. 조사를 받고 풀려난 김해연은 대련으로 돌아갔으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대련 봉판정의 아편굴에 빠져들게 되고, 직장에서 쫓겨난 뒤에는 다시 용정으로 돌아와 이정희가 목을 맨 나무에 자신도 목을 매어 자살을 시도한다.


김해연은 죽지 않고 살아났으나 그 심리적 후유증으로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는 용정의 한 사진관에서 일하게 되는데 하필 그 사진관 역시 혁명조직과 연결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심부름하던 여옥이라는 아이는 ‘처음으로 자신을 사람으로 대해준’ 야학 선생님을 통해 ‘혁명의 도리’를 깨친 뒤 이슬을 맞으며 조직의 연락원으로 일해온 순수하면서도 열정을 지닌 여자다.
“엉겅퀴나 산국(山菊) 날카로운 이파리들이 종아리에다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적어놓았습지”라고 당당히 말하는 여옥과 김해연은 서로 누구랄 것도 없이 사랑에 빠진다. 김해연은 고등공업학교 시절의 은사인 나카무라 선생의 권유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여옥과 함께 경성으로 떠나기로 한다.

경성행을 얼마 앞둔 어느 날, 김해연과 여옥, 그리고 사진관 식구들은 여옥의 언니 결혼식에 참석하러 유정촌에 가다가 운명처럼 토벌대의 습격을 받는다. 그 일로 여옥은 오른쪽 다리를 잃고, 다른 사람들은 다 죽고, 김해연만 홀로 살아남게 된다. 다리를 잃은 여옥은 혁명조직의 재봉대에서 일하게 되고 김해연 역시 유격근거지에 남아 혁명의 격랑에 휩쓸리게 된다.


중국공산당은 만철 직원 출신인 지식분자 김해연의 입당을 승인하고, 그를 대련으로 다시 보내 사업을 시키려 한다. 대련으로 떠나기 전, 여옥에게 인사를 하려 유격대장 박도만과 함께 약수동으로 향하던 김해연은 중간에 토벌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방향을 바꿔 어랑촌 소비에트에 이 사실을 알리러 갔다가 민생단 혐의자로 체포된다.

만주에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조선의 독립과 혁명을 위해 싸우려면 먼저 중국혁명부터 해야 한다는 현실적 입장의 ‘국제주의자’ 박도만과 동만에서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모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견딜 수 없었던 민족적 성향이 강한 중국공산당 순시원 박길룡(=박타이)은 민생단 문제로 격돌하게 되고, 결국 박길룡이 박도만을 사살하고 만다. 학생 시절부터 얽힌 이들의 관계가 이렇게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비극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살아남은 김해연은 혼미한 정신으로 권총을 품고 ‘잔인한 세계’에 맞서서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세계를 저격”하려고 용정의 총영사관으로 찾아가 최도식을 죽이려 한다. 누구라도 죽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총영사관 앞에서 조직의 일원인 서일남에게 발견된 김해연은 최도식을 죽일 수 없었다. 대신 그는 간도임시파견대의 중대장 나카지마를 찾아가 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눈다.

김해연은 나카지마를 납치하여 어랑촌 근거지에 고립된 주민들을 빠져나가게 하는 것을 나카지마의 석방 조건으로 내건다. 지팡이를 짚은 여옥도, 중국공산당과 결별하여 오직 조선 사람만으로 조선혁명군을 조직하겠다던 박길룡도 이때 포위를 빠져나온다. 그러나 한 발 총성이 울리고, 박길룡은 죽음을 맞는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김해연은 다시 용정으로 가, 총영사관 경찰을 그만두고 만주중앙은행 용정사무처에서 일하고 있는 최도식을 찾아가 그 모든 혼돈의 진원지가 된 정희의 마지막 모습과 정희의 편지가 전해진 사연을 듣는다.


“정희가 내게 보낸 처음이자 마지막 서신. 그 한 장의 편지로 인해서 그때까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움직이던 내 삶은 큰 소리를 내면서 부서졌다. 그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고,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세계가 그처럼 간단하게 무너져 내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건 이 세계가 낮과 밤, 빛과 어둠, 진실과 거짓, 고귀함과 하찮음 등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 나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부끄러워서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출판사는 김연수 작가가 일찍부터 타인의 배제, 확고부동한 이분법의 세계―조국, 민족, 이념보다는 ‘인간의 조건’에 매료되었다고 평가한다. 일제 강점기하, 중국과 일본, 조선의 점이지대(漸移地帶)였던 북간도의 지리적, 역사적 배경과 조차지 ‘영국더기’를 둘러싸고 전해지는 가슴 저릿한 사연들은 소설가로서 저버릴 수 없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더구나 엄혹한 세계에서 조선의 해방과 사회적 평등이라는 고상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혁명에 투신했던 동지들이 서로를 일제의 간첩으로 몰아 마치 마녀사냥을 하듯 무차별 처형을 감행하고 급기야 3,4년 만에 완전히 자취를 감춰버린 기막힌 ‘민생단 사건’의 사연은 더 말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민생단 사건’과 만주의 항일독립운동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 한 몸 바친 독립투사이자 혁명가들이었지만, 한국사회에서 ‘민생단 사건’에 대해 언급하거나 연구하는 것은 금지된 것처럼 보인다. 진보적인 지식인이나 학자 중에서 극히 일부만 그 사건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민생단 사건’을 비롯한 만주에서의 항일무장독립투쟁의 주축이 민족주의 세력(좌파와 우파를 포함하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방 이후 한반도 남단을 장악하고 지배한 것은 반일 독립투사나 항일운동가들이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제에 빌붙어 일신의 안녕과 부귀를 추구한 친일파와 민족부역자들, 그리고 기회주의자들이 해방과 동시에 또다시 미군정에 빌붙어 ‘반공’과 ‘친미’를 외치며 한국사회의 기득권과 권력을 장악했다. 그들은 지배했던 한국사회의 70년 현대사에서 만주에서의 민족주의와 좌파 성향의 독립운동, 무장투쟁에 대한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눈과 입을 틀어막았던 것이다.

만주항일무장투쟁과 ‘민생단 사건’이 기피되었던 또 다른 이유로는 북한과의 ‘대결의식’ 또는 남한 지배계층의 ‘정당성 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북한에서는 만주항일무장투쟁이 조선노동당과 국가의 형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상적, 문화적 뿌리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지도부 또는 지배계층 스스로도 그런 부분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현대사에서 정당성이 턱없이 부족한(없는) 남한의 지배계층 입장에서는 항일무장투쟁과 ‘민생단 사건’이 남한사회에 알려지는 것이 죽도록 싫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싶었던 이유는, 이 작품이 만주의 항일무장투쟁과 ‘민생단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한민족의 근현대사가 궁금한 부분도 있었지만, 북한에서 정치와 사상적인 측면에서 지주로 삼는 ‘주체’와 ‘자주’라는 개념의 출발이 바로 ‘민생단 사건’을 겪은 북한 지도부의 1세대에서 비롯되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알고 싶다면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간절히 소망하고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는지 알게 되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는 점에서, 1927년 낡은 세계를 부숴버리겠다며 밤마다 영국더기 동산교회에 모여 열에 들뜬 목소리로 혁명을 떠들어대던 네 명의 중학생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뒤질세라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서둘러 선언했지만, 그들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건 당신도, 나도,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마찬가지다.”(247쪽)

인터넷과 세계화로 인해 지구촌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21세기에도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연결된 만큼 사람 사이는 멀어지고 개인들은 더 고립되고 외로워지는 것 같다. 혼란과 갈등의 수준 역시 인터넷 이전 시대에 못지 않다. 각 개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밤은 노래한다>의 시대적 배경은 인터넷도 없고, 대중매체도 변변치 않았던 1930년대다. 더군다나 동아시아뿐 아니라 지구촌 전체가 격변기였다. 조선반도는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짓밟히고 더렵혀졌다. 일제와 그 주구들의 날선 감시와 곳곳에서 도사리는 총구를 피해다니기도 벅찼다. 조선인 모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을 수 없다. 그런 시대적, 지리적 상황에서 패기와 열정만 있었던 20대의 조선 청년이 만주 벌판을 뛰어다니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민생단 사건’으로 숨져간 수많은 조선 청년들과 항일독립투사들의 명복을 빈다.

-인상 깊은 문장


“먼저 사랑이 오고, 행복이 오고, 질투심과 분노가 오고, 그리고 뒤늦게 부끄러움은 찾아온다. 나카지마와 정희를 향해 까닭 모를 분노를 느꼈던 그때의 일이, 편지를 펼쳐 그 안에 씌어진 글을 읽고 나서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크게 놀라지도 않았던 일이 지금은 너무나 부끄럽다.”(48쪽)


“1933년 여름, 유격구에 있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누구인가? 하지만 이 물음의 정답은 없다. 그들은 조선혁명을 이루기 위해 중국혁명에 나선 이중 임무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중국 구국군이 일본군에 패퇴한 뒤에도 끝까지 투쟁한 가장 견결하고 용맹스런 공산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였던 동시에, 한편으로 일단 민생단으로 몰리게 되면 제아무리 고문해도 절대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던 일제의 앞잡이들이었다. 누구도, 심지어는 그들 자신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그날, 박도만이 유격구에서 빠져나갈 작정이었다고 해도, 혹은 유격구를 생명으로 보위할 마음이었다고 해도, 나는 그 두 가지 모두를, 혹은 그 어느 쪽도 믿거나 믿지 않을 도리밖에 없었다. 1933년 간도의 유격구에서 죽어간 조선인 공산주의자들, 그리고 간도의 조선인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객관주의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주관으로 결정되는 가혹한 세계뿐이었다.”(213쪽)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체만이 자신이 누군지 소리 내 떠들 권리를 지녔다. 시체가 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최종적으로 납득했으니. 유격구에서 나는 수많은 시체를 봤다. 그 시체들은 저마다 이렇게 떠들었다. 나는 민생단으로서 동지들의 골수를 적에게 팔아먹었다. 나는 혁명을 보위하기 위해 내 살과 피를 팔아먹었다. 그 아우성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은 죽지 않는 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경계에 서 있었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민생단도 되고 혁명가도 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항상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므로, 시시때때로 운명이 바뀐다는 뜻이므로.”(248쪽)


“그거 알아사 씁네. 내사 동무한테 애당초 맘도 없었는데 이 손일랑 그만 정이 붙어버렸소. 동무 처음 왔을 때, 송 영감이 희대의 영웅이 나왔다며 떠들었습지. 마작하다가, 혁명하다가, 특무질하다가 목 매달리는 사내는 많아도 여자 때문에 자기 목을 매는 사내가 간도 땅에 흔치는 않습지. 그런데 용정 나가는 길에 마바리에서 손 아프다고 우는 걸 옆에서 보니 그 맘은 또 얼마나 아프겠는가 그런 생각이 듭데. 마음이야 어디 붙었는지 내사 모릅지. 하지만 손이야 눈에 보이니 만져주고 싶었습지. 그러다 그만 정 깊이 들어버렸소.”(273쪽)


“나는 광주 코뮌에 참가했던 조선인 공산주의자요. 내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잊어버린 적은 있어도 내 조국을 잊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소. 지금까지 나는 수많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이 계급과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소. 국민당 특무들에게, 일본 제국주의 군대들에게, 헌병들에게, 지주들의 사병들에게 그들은 처참하게 죽어갔소. 하지만 단 한 번도 그들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소. 고문당할 때 비명을 지르는 사람조차 본 일이 없었소. 하지만 여기 동만에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면서 죽어가고 있소. 이런 게 진정한 공산주의의 길이라면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오. 나는 동무와 계급이 먼저냐, 민족이 먼저냐를 따질 마음이 없소. 우리에게는 필요한 건 오직 우리만의 나라, 우리만의 국가일 뿐이오. 그게 바로 모든 조선인의 꿈일 뿐이오.”(278쪽)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이젠 그걸 알겠어요. 이미 너무 늦었지만. 그러기에 말했잖아요. 지금까지 내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금까지. 그러니까 당신과 그렇게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때, 이 세상은 막 태어났고,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평안 속으로 나는 막 들어가고 있다고. 사랑이라는 게 우리가 함께 봄의 언덕에 나란히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죽음이라는 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런 뜻일 뿐이겠네요.”(324-325쪽)

[2017년 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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