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
김용진 지음 / 개마고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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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서평]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 위키리크스가 발가벗긴 ‘대한민국의 알몸’> 김용진 저, 2012. 01., 400쪽, 개마고원


작년(2016년) 10월 경 페이스북 친구를 통해, 위키리크스가 2010년 가을 폭로한 미국 국무부의 기밀 문서 중 한국과 관련 내용을 파헤친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된 이상 읽어야 했다.

위키리크스가 미 국무부의 기밀문서 25만 건을 <가디언>, <뉴욕타임즈>, <슈피겔>를 통해 폭로했음을 알게되었을 때, 필자는 당연히 대한민국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한국 및 한반도와 관련하여 미 국무부와 주한미대사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국내 주요 정치권이나 언론, 학계 어느 곳에서도 미 국무부 기밀문서와 관련하여 기본적인 정보만 기사로 내보낼 뿐, 한국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관심도 적었고, 언론으로서 자세한 내용을 파헤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몇 년 뒤 김용진 기자에 의해 기밀 문서 중 한국 관련 내용이 책으로 출판되었지만, 도서 정보를 자주 접하는 필자도 알지 못했다. 다행하게도 페이스북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이것 또한 SNS의 힘이면 힘이라고 할 것이다.)


‘KOREA’란 단어가 들어간 미 국무부 비밀전문이 1만4,165건이고, 주한 미국 대사관이 작성한 것만도 1,980건에 이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주한 미 대사관 작성 비밀 외교전문을 통해 권력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한 비밀들, 미국은 알지만 정작 우리는 모르는 ‘대한민국의 실체’에 대해 심층분석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아프간 파병, UAE 원전 수주, 독도 문제, 론스타, 한미 FTA 등 한국 사회를 격동시킨 사건들의 뒤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밀담과 비밀협상들이 그 대상이다. 비밀문서에 기록된 충격적인 내용들은 ‘공식적인 발표’ 뒤에서 굴러가는 ‘진실’을 보여준다.


미국은 이명박이 서울시장이었던 시절부터 그를 유력 대통령 후보로 보고 주시하고 있었다. 대선 과정에서도 다른 후보들보다 이명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는데, 미 대사관이 작성해 보고 가운데 정동영 관련 문건이 9건인데 반해 이명박 관련 문건은 26건이나 된다.

이명박은 미국 입장에서매우 유용한 존재이기도 했다. 미 대사관은 MB를 “매우 친미적인 스탠스”를 보이는 유일한 후보로 평가하고 그에게 호의를 보였다. 그리고 미국은 이명박의 당선을 매우 반기며, 자신들의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2008년 2월 21일 전문, 366쪽)


하지만 미국은 MB를 좋게만 바라본 것이 아니다. MB의 모든 측면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미 대사관은 이명박 대통령을 “포퓰리스트”라며, “휴고 차베스의 보수파 버전”으로 간주했다.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747 공약은 ‘포퓰리즘의 산물’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MB가 복지에 대한 요구를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한 것과 대조적인 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질과 배경을 “국법을 느슨하게 해석하는 삶을 살았다”며 냉철히 적시하면서 그의 당선은 “어떤 특별한 정치 기술이나 정책 비전보다 일차적으로는 좋은 운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렇게 몇 년간 정보를 모은 ‘MB 사용설명서’를 가지고 MB정부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한국 내 친미 사대주의 성향의 인사들은 미국의 개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 미국의 편에 서서 적극 협력했다. 대통령부터 관료들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부끄러운 친미 사대주의 행동을 일삼았다. 2007년 대선이한창일 때 이명박캠프의 유종하 선거대책위원장이 버시바우 대사를 찾아가 BBK 스캔들의 핵심인 김경준의 한국 송환을 연기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이명박 후보가 미국의 요구에 철저하게 따를 것임을 약속했다.(2007년 10월 31일 전문, 255쪽)

이명박 진영의 불법부정 행위는 대선 운동 기간 중에 미국에까지 마수를 뻗치면서 스스로 미국의 먹잇감, 놀잇감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명박정권의 주요인사들도 강한 친미 성향을 내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미국 대사관의 오랜 정보원”이라고 불릴 정도다. 그는 1997년 대선 때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미 대사관에 조사 결과를 알려주기도 하고, 2007년에는 MB의 최측근으로서 선거 동향을 알려주고 차기 정부의 인선 정보를 미리 흘리기도 했다. 또한 그 밖의 여러 정보원들이 고위관리의 인사나 주요 정책들을 미국에 줄줄 흘리고 미국 입장에서 조언해준다. 예컨대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론스타에 대한 금융위 결정사항을 미리 미국 대사에게 알려주고 대응 방법을 조언해주기까지 했다.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와 정부 각부처의 인사들만이 친미 사대주의자이고 미국의 간첩과 정보원은 아니었다. 한국의 주요 권력층 주변과 정계, 정부관료들부터 NGO나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의 간첩이었고 정보원이었다.

저자가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 미 대사관의 외교전문 전체를 대상으로 미국의 정보원들을 검색한 결과, ‘청와대 정보원’이 가장 많았다. 이외에 국회, 외교통상부, 통일부, 국방부 순이다. 국정원이나 기무사쪽은 CIA나 국방정보부쪽의 정보원이 다수일 것이다.

예를 들어, 2007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이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제15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해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회담할 당시, 회담 사흘전 청와대 경제담당 비서관은 미 대사관 참사관을 만나 노무현 대통령이 회담에 응하는 대책을 미리 알려주었다. 청와대의 통일안보전략 비서관은 2007년 남북회담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제공하였다. 외교통상부 북미1과장은 대통령 신년연설 내용도 사전에 미 대사관에 제공하였다. 또한 2007년 대선 당시 청와대는 정동영 후보를 지원하지 않았고 ‘이명박이 당선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손을 놓았다.(그랬던 사람들이 국민들을 속이고 지금도 야당에서, 정부조직에서, 연구소와 언론에서 비열하게 애국자인 것처럼, 진보적인 것처럼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 정보원들은 노무현 정부가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는 데 별다른 열의가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대신 노무현 지지자들은 무소속 문국현 후보를 위해 일하고 있거나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시민의 2012년 대선 캠페인을 이미 시작했다고 한다. 노사모 남동지부 수장이자 현재 청와대 행정관인 김태환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모두 각자의 길로 갔다’며 ‘아무도 자발적으로 정동영의 캠프에 합류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승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애석해 하며 인정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artid=201109201734421&mode=view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A&nNewsNumb=201111100009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이렇게 미국에 ‘알아서 기었으니’ 미국이 한국에서 원하는 목적을 얻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이런 사실이 드러난 이상 한국의 바깥에서 한국 정부를 ‘꼭두각시’라고 조롱해도 대꾸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자신들이 관철시킬 목표를 설정하고, 치밀하고 철저한 정보 수집과 관리를 바탕으로 개입 작업에 나섰다. 주한 미 대사관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을 때부터 ‘한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개입하는 위한 게임플랜 Game Plan for Engaging the ROK President’(50쪽)를 수립하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 대사관이 선거가 끝난 직후 본국에 발송한 전문은, 이명박정권의 출범을 맞아 쇠고기 시장 개방과 이라크 파병 연장, 한미 FTA 비준을 한국 정부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몇 년 뒤 상황은 미국의 목표가 거의 대부분 달성되었음을 알려준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8년 4월 시장이 개방됐다. 이라크 자이툰 부대의 파병도 무리없이 연장됐다. 한미FTA는 미국에 더 유리해진 재협상을 거쳐 날치기 통과됐다.


미국의 계획대로 진행된 것은 이것들만이 아니다. 미국은 2008년 3월에 “훈련 및 장비 지원을 위한 한국군의 아프간 파병”을 한국 관련 우선순위 목록에 올려놓고, 9월에 5억 달러를 지원해줄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했다. 또한 2009년 4월에는 각 동맹국가에 아프간 지원금을 할당했는데 한국에는 5억 달러가 배정됐다. 일본에 이어 가장 많은 액수였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2011년 4월에 아프간에 5억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위키리크스 공개 문서에는 미국의 끈질긴 지원 압박과 그에 굴복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미국이 2008년 2월 설정한 목표 중 하나인 5년 동안 지속되는 방위비분담협정(그전까지는 2년 정도 기한이었음)도 2008년 말 호놀룰루에서 미국의 뜻대로 타결됐다.


MB정부가 미국에 끌려 다닌 것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는 쇠고기 시장 개방 문제다. 2008년 4월 이명박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시장 개방을 결정하자 한국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에 대한 선물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그런데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문서들은 정말로 그런 ‘빅딜’이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MB의 측근인 현인택 전 통일부장관은 1월 18일에 버시바우 대사와 만나 한미 정상회담 장소로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라고 말했으며, 버시바우 대사는 다음날인 1월 19일에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 위원장 등과 만나 “이 대통령의 성공적인 방미 등을 보장받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 도착할 때에 맞춰서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시장 개방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고 못을 박으며 쇠고기 시장을 개방할 것을 종용했다. 그리고 MB측은 정말로 국민들의 눈을 피하면서 쇠고기 시장 개방을 약속한다.(2008년 2월 21일 전문, 124~125쪽)


미국의 요구에 따라 쇠고기 시장 개방을 약속했으면서도, 총선 전 여론을 의식하여 공식적인 사인은 하지 않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둔 뒤 곧바로 쇠고기 시장 개방에 나섰고, 이명박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돼 부시 대통령과 미국산 스테이크 만찬을 즐겼다.

한미 재협상 문제에서도 미국에 굴복하며 국민들을 속이기는 마찬가지였다. 2009년까지만 해도 이명박정부는 FTA 재협상은 절대 없다며 확언했고, 2009년 11월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내 얼굴을 걸고서라도 재협상은 없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미국측에 재협상 의사를 내보이고 있었다.(2009년 2월 21일 전문, 267쪽)


그리고 결국 한국 정부는 미국과 재협상에 들어가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줬다. 한미를 빨리 비준하기 위해 미국에 양보를 거듭한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 미국 역시 한국과의 체결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는 미국 비밀전문 기록이 있다.

“한미 FTA는 다음 세대에도 한국을 미국에 묶어둘 핵심 요소이며, 또한 미국이 동북아시아에 정착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 가운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상호 간의 본질적인 교역 이익에 더해서 동북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헌신과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에 한국을 더욱 미국에 묶어놓는다는 측면에서 한미 FTA의 상징적 효과는 막대한 것이다.”(2009년 11월 5일 전문, 272~273쪽)


미국은 한미 FTA가 자신들에게 막대한 실질적, 상징적 이득을 준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재협상을 통해 더 많은 이득을 얻었다. 반면 한국측은 미국이 FTA를 원하고 있는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하지 못하고, 조속한 비준에만 매달려 일방적으로 끌려 다닌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런 무대 뒤에서의 밀약이 여론에 공개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특히 미국의 압력에 굴복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각종 포장을 했다. 한국 외교부 관계자는 그런 ‘포장술’ 내지 언론 회피 꼼수를 미국측에 설명하기까지 한다.(2008년 12월 18일 전문, 108~109쪽)


미국의 요구에 따라 아프간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그렇게 여론에 비춰지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공식적으로는 미국 정부의 요구를 모른 척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프간 지원이 워싱턴의 정치적 압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아프간의 상황과 아프간 국민들을 염려하기 때문에 나왔다고 보이게” 해야 한다고 포장 기법을 조언해주기까지 했다. 이 전문을 보고받고 미 국무부는 한국 정부가 언론을 상대하는 방식에 대해 통찰력을 얻었다며 극찬했다.

정부는 이렇게 있었던 논의를 없던 것처럼 숨기는 것 말고도, 원전 수주나 자원외교 성과를 마구 부풀리면서 다른 식으로 국민들을 속이기도 했다. 원래부터 한국이 수주하기로 돼 있던 UAE 원전을 치적으로 치장했으며 별다른 실익도 없는 볼리비아 리튬 개발과 쿠르드 유전 개발 사업을 몇 억 달러짜리 자원외교 성과라며 포장해왔다. 하고도 안 한 척, 안 하고도 한 척, 끊임없이 국민을 기만해왔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기밀문서를 통해 본 한국 정부와 대통령의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비굴하고, 부끄러우며, 한심하다. 미국의 요구와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굴복하고서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갖은 꼼수를 쓴다. 정권의 부끄러운 치부는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고, 있지도 않은 성과를 치적이라며 크게 부풀린다.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보다, 정권의 체면과 자신의 보신을 우선시하는 모습은 분노를 일으킨다. 한국인들이 5년여 동안 익히 짐작하고 있던 것들을 이 책은 확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증언으로 확인해준다.

하지만 이것을 단지 대통령 한 명, 한 정권의 문제로만 축소시켜서도 안 될 것이다. 미국 영향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들 모르게 중대한 결정을 해온 것은 어느 정권, 어느 권력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권력은 기본적으로 기만·위선·은폐의 습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대중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파적 시각을 떠나서 권력이 감추려 하는 진실들을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알리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번에 공개된 위키리크스 문서와 그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의 발간은 정보의 민주화에서 큰 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으로 인해 그동안 ‘자신들만 알고 우리는 모르게’ 한국 사회를 움직여왔던 권력자들은 그 부끄러운 알몸을 까발리게 됐다.


[2017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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