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책임 - 한홍구 역사논설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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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 <역사와 책임>

한홍구 교수 저 <역사와 책임>을 읽고/  2015. 4., 271쪽, 한겨레출판


지진이나 기상이변과 같은 천재지변(天災地變)은 어떤 대비책을 세우더라도 인간의 힘으로는 아직 속수무책이다. 미리 예측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자연은 인간의 예측을 쉽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재(人災)는 다르다. 인재는 인간의 오만과 무책임과 탐욕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개인이 아닌 사회 전체의 시스템과 구조나 문화, 정치와 제도가 왜곡되어 있으면 인재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된다. 2014년 세월호 참사도 인재에 해당한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세월호 참사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발생했고, 참사 이후의 과정 역시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해경과 해양수산부의 무능함과 무책임은 ‘해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청와대와 행정부 그리고 여당은 대형 참사에 대응할 능력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과오와 치부를 감추는 데 급급했다. 언론과 방송은 정부와 공안기관이 불러주는 데로 받아쓰면서 진실을 은폐하고 오히려 정부와 함께 피해자와 선의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진실을 규명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겁박한다. 야당은 쓸모가 없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하면서 300명 넘는 승객들에게 버려두고 속옷 바람으로 도망가는 선장(이준석)과 선원들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결사항전”이라며 라디오에 녹음기를 틀어놓은 후 한강다리를 끊고 먼저 도망친 이승만과 국방장관, 관료, 정치인을 떠올리게 한다. 이승만이 다시 환생한 것처럼, 대통령 박근혜는 국내에서 대형 정치사회적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늘 해외로 줄행랑을 친다. 귀국하면 늘 “가만히 있으라” “색출, 엄단”이라며 국민들을 협박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전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행정부와 정치권과 언론의 모습에서 한국현대사의 숱한 기억들을 떠올린다고 한다. 저자 한홍구 역시 마찬가지다.

이 책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세월호 참사’와 똑같은 장면을, 아니 21세기에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현대사를 돌아보았다.


저자는 현재 집권세력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태도를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과 집권세력의 모습에서 찾기 시작한다. 당시 이승만과 집권세력은 ‘북진통일’이라는 호언장담만 일삼다가 정작 전쟁이 발생하자 서울시민을 버리고 야반도주했다. 그리고 미군을 따라 서울에 돌아온 후, 그들은 ‘부역’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을 사수하고 지킨 서울시민 수백 만명을 재판도 없이 즉석에서 학살하고 고문하고 감옥에 가두고 연좌제로 묶어버렸다. 당시 ‘처리’된 부역자는 약 56만 명이었다.

또한 이승만과 국방장관의 지시를 받아 한강다리를 폭파한 일선 장교와 육군참모총장은 폭파의 책임을 뒤집어 씌고 처형되고 살해되었고..


1960년 4월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마산상고 김주열 고등학생의 죽음은 이승만과 집권세력의 실탄 발사를 통한 강경진압 때문이었다. 당시 김주열 등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직발사하도록 지시하고 그 시신을 바다에 유기한 자는 마산경찰서 경비주임 경위 박종표였다. 

박종표라는 자는 1949년 4월에 반민특위에서 ‘아라이 겐기치’라는 이름으로 일제의 악질 헌병 보조원으로 활동했던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러나 이승만의 지시를 받은 친일 경찰들의 습격으로 무력화된 반민특위는 그해 8월 박종표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박종표는 4월 혁명 후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받고 감옥에 갇혔으나 일본군 장교 출신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5.16 쿠테타 이후인 1968년 그를 풀어주었다.)

반민특위 해체 이후 일제의 악질 고등경찰 노덕술이 헌병으로 업종을 바꿔 서울시민을 부역자로 몰아 학살했고, 박종표는 반민특위 이후 헌병보조원에서 경찰로 업종을 바꿔 이승만의 충견이 되어 김주열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했던 것이다.


해방 후 분단과 전쟁을 거쳐 악질 친일파들이 독립세력과 양심세력을 대거 학살하면서 대한민국의 권력을 거머쥔 것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을 지배해온 공안 권력의 비밀인 셈이다. 그 후예들이 지금껏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다. 공안권력은 대한민국 수구세력의 중추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수많은 마피아 집단들은 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해피아’뿐 아니라 재정경제부 출신의 ‘모피아’, 국토건설부 출신의 ‘건피아’, 교육부 출신의 ‘교피아’ 등등 정부 부처 개수만큼이나 많은 관료 출신 마피아를 하나하나 따질 수 없어 ‘관피아’라 부른다.

공안 권력의 형님, 아우, 삼촌, 조카, 언니, 오빠, 누나, 동생들이 각계각층의 마피아가 되어 빨대 하나씩 꽂고 설계 변경하고 노후수명 연장하고 규제 완화하고 서로 전관예유 전통 물려주고 밀어주고 당겨주며 오순도순 사이좋게 대한민국을 운영해왔다. 다 밟아버린 줄 알았던 빨갱이들이 되살아나기 전까지.”(40쪽)


이 책의 2~3부에서는 친일파와 그 후예들이 공안권력을 이용해 양심적인 인사들과 애꿎은 시민들을 간첩으로 조작한 사례와 진정한 ‘국기문란 반역자’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통합진보당, 그리고 애국민주인사들을 간첩으로, 내란으로 조작하여 학살하고 탄압한 사례를 보여준다.

4부에서는 ‘한국 사법 엘리트가 살아가는 법’을 김기춘 전 법무부장관,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보여준다.

5부에서는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이 ‘영구적으로’ 미군에게 넘겨준 대한민국의 군사작전권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 그리고 ‘전통야당’과 ‘정권교체’를 부르짖는 현재의 야당들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보여준다. 현재의 보수 야당이 왜 근본적인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최악의 현대사를 보내온 대한민국이 그나마 어느 정도의 공동체와 양심과 자유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우리에게 희망이나 가능성이 있는가. 저자의 대답은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해방 후의 역사만 보더라도 세월호보다 더 끔찍하고 광범위한 참사를 당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대통령이라는 자가 한강다리 끊고 도망가고 선장이라는 자가 혼자서 속옷 바람으로 도망쳐도, 기관장, 항해사, 갑판장 등속이 다 무책임하게 도망쳐도 대한민국호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시민 대중들이 간직한 복원력 때문이다. 믿을 것은 우리 자신밖에, 우리 자신들이 만들어온 역사밖에 없다. 호흡을 길게 가져야 한다. 

세월호 사건 이후 아마 백 번도 훨씬 넘게 강연을 다니면서 세월호 사건의 역사적 뿌리에 대해, 세월호 사건을 통해 본 한국 현대사에 대해 목이 터져라 외치고 다녔던 말로 머리말을 마치고자 한다.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이 복원력밖에 없다. 더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11쪽)


"바로 잡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인상 깊은 문장-


“한국 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밴 플리트(James Award Van Fleet) 장군의 스물여섯 살 새신랑이었던 아들은 아버지의 예순 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얼마 후 북한 지역으로 출격하였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미군 장성의 아들 중에 아버지와 함께 한국 전쟁에 참전한 사람이 145명이고, 이 중 35명이나 전사하였다고 앞에 인용한 페런바흐는 쓰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장관이나 국회의원, 고위 장성의 아들 중에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희생된 경우가 있는가? 과문이지만 들어본 적이 없다.”(43쪽)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며 전화를 끊은 사무장 양대홍은 부인의 애타는 전화에는 응답하지 않고 끝내 퇴선 지시를 내리지 않은 무전기를 꼭 쥔 채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구명조끼 가모자라자 "내 거 입어” 하고 선뜻 벗어준 학생, 그와중에 아기부터 탈출시키던 아이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끼고 살아가기에 너무나 아이들 곁에서 선생 노릇 하고 싶어 했던 교감 선생님, 아이들과 함께 가라앉은 선생님들, 그리고 겨우 매점에서 물건 파는 어린 알바생이면서 "선원은 맨 마지막에 나가는 거야. 너희들 다 구하고 나갈 거야"라며 세월호의 악마들, 대한민국호의 악마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어마어마한 책임 감을 보인 박지영....... 


이들이야말로 구조변경에 노후수명 연장에 과적에 규제 완화에 온갖 비리와 뇌물로 이리 기울고 저리 기우는 대한민국호가 여태껏 가라앉지 않고 항해할 수 있는 숨은 복원력이었다. 우리가 믿을 것은 우리 자신에 내재한 이 복원력밖에 없다. 

더 이상 대한민국호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 위기의 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자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간직한 이들이 움직여야 한다. 역사는 책임지는 사람들의 것이다."(51쪽)


[ 2016년 8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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