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브루스 커밍스 지음, 김동노 외 옮김 / 창비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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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 [서평]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저, 한기욱 등 공역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Korea's Place in the Sun>를 읽고 / 2001. 10., 751쪽, 창비

박세길, 조성오, 한홍구, 강준만 등 국내 역사학자들의 한국 근현대사를 읽은 후, 미국인 역사학자로서는 드물게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전공으로 하는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 대학 교수의 현대사 서적을 반갑게 읽는다. 그는 1986년에 첫 발간한 <한국전쟁(Korean War)의 기원>으로 한반도에서도 많이 알려진 편이다.(두 책 모두 '한국(인)'은 'Korea(n)'으로 남북을 아우르는 표현이며, 역자들이 번역상 편의 때문에 한국(인)으로 표기한 것 같다.)
그는 <한국전쟁의 기원>을 발간한 이후,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불행하게 이끈 원인과 남북한의 문화적 역사적 전통이라는 과점에서 연구를 계속하여 1997년 이 책을 다시 발간했다. 한국어판을 위해서 특별히 원고지 150매 정도를 추가했다고 한다.

책의 원제목은 'Korea's Place in the Sun : a modern history'다. 저자는 원 제목이 '해 뜨는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실로 우리의 흥망성쇠와 주기적인 일식을 관장하는 세계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선진산업국들이 끊임없이 경쟁을 벌이는 산업시대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태양게에 한국은 이제 막 합류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제목에서 의미한 바이기도 하다."
커밍스 교수와 <한국현대사> 한국어판이 반가운 이유는 서문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책을 발간하게 된 궁극적인 이유를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 문장으로 말한다. "이 책을 한국인(Korean)의 화해와 통일에 헌정하고 싶다."

몇 마디 문장이 아니라 실제 책을 읽은 후 국내 역사학자들의 역사서와 비교했을 때, 커밍스 교수의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두드러진 차이는 한민족의 5천년 역사 전체에 연속적으로 이어져오는 사상이나 철학, 또는 사회문화적 흐름, 연관성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근대 이전의 한국사에서 '미덕'을 발굴하여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추진 과정에서 공통된 '미덕'을 발견했음을 주장한다. 또한 고려와 조선에서 형성된 파벌주의와 학벌주의가 현대의 남북한, 특히 남한에 뿌리깊게 잔존하는 모습과 고구려와 발해의 중국에 대한 저항이 북한의 자주독립 정신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신라가 외세를 끌여들여 백제와 고구려에 승리한 것이 고려 말기의 원나라에 대한 사대주의와 조선 중기 이후 명나라에 대해, 말기에 청나라에 대해 의존한 모습과 연관성이 있으며 현대에 들어와서도 기득권층이 대부분 친일파로 변졀하였고 미군정이 들어오자 또다시 미국에 굴종하는 모습으로 이저졌다는 역사적 해석이 독특하면서도 시사점이 있다.(학문적 연구로서 타당성 검증과 별개로...)

저자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이 19세기 말부터 싹트고 자라온 내전이자 국제 전쟁이고, 짧게는 1948년 9월 미-소군의 한반도 점령 이후 자주독립과 통일 위한 전쟁이자 길게는 20세기 초에 시작된 제국주의의 침탈에 대한 자주독립 투쟁의 최종전이라는 성격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판단은 결코 바뀐 적이 없다. 무엇보다도 1950년 6월에 전쟁이 시작된 것은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에 대한 내 책의 전체적 강조점은 내전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역사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가 그 복잡한 역사를 알고 있는 한, 수많은 요인으로 빚어지는 전쟁에 대해 어느 한쪽을 비난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p.08)
대부분 학자나 정치가, 언론은 "한국전쟁이 남침이냐, 북침이냐"를 두고 격렬하게 논쟁하지만, 저자는 미국의 남북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처럼 한국 전쟁 역시 "언제, 누가 시작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의 성격이 무엇"이며 어떤 결말을 맺었고 어떤 교훈을 얻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커밍스 교수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증하고자 하는 내용 중 하나로 독자들이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이 바로 위 인용문과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성격이 '내전'이며, 그 내전은 가깝게는 1945년 8~9월 미-소 양 강대국이 한민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임의로 한반도를 군사점령하면서부터 자라났고, 길게는 20세기 초 미국-영국-중국-일본 등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군사적 전리품 나눠먹기식으로 일제가 한반도를 강제합병시키는 것에서부터 자라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 <한국현대사>에서는 현대의 남북한 체제와 문화를 비롯하여 20세기 초중반 한반도를 격동으로 들끓게 한 한민족의 전통과 문화가 어떤 특징과 장단점을 형성하고 있는지 분석하기 위하여 적지 않은 한민족의 사료와 문서들, 즉 고대사와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고려와 조선에 대해 방대하게 연구했다. 서구인으로서 '미덕(美德)'이라는 한자와 '마음(心)'이라는 한글의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그의 열정이 아름다웠다. 실제 그는 그런 노력을 통해 '미덕'과 '마음'이 한국인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거의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현대 남한의 사회체제와 문화는 물론 북한의 사회체제와 문화도 지난 5천년 간 이어져온 한민족의 전통과 뿌리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전통과 뿌리가 있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이루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미국인을 비롯하여 서구 학자들 중에서 커밍스 교수만큼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한 이해와 애정에 기초하여 한국(Korea)을 이해하는 전문가가 적다는 것이 한민족으로서는 불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한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브루스 커밍스 교수에게 열 번이라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커밍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냉전과 전쟁, 분단체제라는 민족사적 불행과 아픔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는 친일파 후예인 수구세력들이 삭제하고 감추어버린 한국 근현대사의 진실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수구세력이나 친일파 후예들이 아닌 모든 한국인들,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과 관계없이, 남북 갈등과 전쟁위기를 극복하고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바라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읽을 것을 권유한다.
우리의 자식들, 후손들에게까지 분단의 아픔과 분단을 악용하여 부당하게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확대하려는 악당들에게 이 사회를 물려줄 수는 없으니...

마지막으로 커밍스 교수의 한국현대사 연구에서 아쉬운 점은  미국인으로서 학자적 입장에서 한반도에서 진행된 사건과 상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관련 자료도 한반도와 한민족에 관한 것들을 중심으로 수집하여 연구한 결과인 셈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입장 또는 미국의 국제관계사라는 관점에서 연구하지 않은 한계는 존재한다. 그것이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나 한홍구의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등 국내 역사학자들의 현대사 저술과 다른 부분이다. 일종의 당파성이나 주체적인 관점이 없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커밍스 교수와 이미 작고한 존슨 교수가 함께 한국현대사를 집필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같은 미국인 학자로서 찰머스 존슨 교수는 19세기 이후 미국의 군사외교적 정치경제적 역사를 다룬 <블로우 백>과 <제국의 슬픔>을 21세기 상반기에 출간했다. 그 책 안에는 제국주의 및 군국주의로서 미국이라는 국가 또는 지배집단이 19세기 이후 자국 내에서 어떻게 작동되어 왔으며, 한반도를 비롯한 제3세계를 상대로 어떤 전략과 행동을 취했는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각 장의 내용 소개와 평가는 아래와 같다.

제1장 '미덕'에서 저자는 근대 한국의 배경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으로 서기 1년부터 1860년대까지를 망라한다. 그는 이 장에서 한국의 과거 중 동시대적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를 건져내려고 한다. 그는 조선을 봉건국가가 아니라 '농업관료제' 사회라 새롭게 규정한다. 타당한 분석이라 공감이 된다.
이 장은 미국인들, 미국 정치가들이나 행정가, 언론인, 학자, 일반인들에 이르기까지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한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언어, 장단점, 특징과 고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알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영어권 독자들이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포함시킨 단락이다.

제2장 '이익'은 1860년에서 1904년까지를 다루는 근대사의 첫 장으로, 이 시기의 한국은 열강의 출현에 의해 근대의 인장이 찍힌다.
왕조와 사대부들의 기득권 정치와 도탄에 빠진 민중들의 삶. 사회 전분야에서 변화의 흐름이 일어나지만 이를 제도적 문화적 행정적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지배계층. 살기 위해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 항쟁을 일으키거나 만주로 중국으로 탈출하는 민중들. 제국주의 열강들의 제3세계 침탈과정에서 한반도에 들어닥치는 군사력과 한반도 내 전체 민족과 민중의 삶과 국가를 보호하지 못한 채 좌충추돌하는 지배계층. 민중들의 최대 저항인 갑오농민전쟁과 외세를 등에 엎고 지키지도 못할 기득권을 지키려는 특권층들. 가슴 아픈 역사적 사실이다.
그동안 국내 제도교육 과정의 국사 시간에 수능과 시험만을 위한 역사교육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커밍스 교수가 인용하거나 분석하는 내용 중에 처음 보는 정보나 처음 접하는 설명구가 많아 유익한 장이다.

제3장 '망국'은 1905년에서 1945년을 다루는 데, 일본의 한국합병, 즉 한국보다 더 빨리 산업시대에 적응한 일본이 한동안 이웃나라를 올라탈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설명이다.
일제 식민지 강점 기간 동안 한국인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처절하게 저항하는 한국인과 일제에 머리 숙이고 기득권을 나누어 가지려는 친일파 매국노들, 그리고 이도저도 나서지 못하고 하루하루 생존을 영위해가며 버티는 민중들이다. 저자는 국내 언론이나 역사책에 누락되어 있는 친일파 매국노와 항일무장투쟁 등 민족지사들을 이름과 사실 행적과 활동에 대해 상당한 정보와 자료를 근거로 설명하고 있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 이후 해방때까지 일제의 필요에 의해 친일파 매국노 한국인들이 대거 식민지 관료체계에 편입되어 5~8년 동안 집중적으로 동족을 착취, 수탈, 탄압,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제4장 '열정'은 1945년에서 1948년까지, 제5장 '충돌'은 1948년에서 1953년까지를 다루는데, 일본 패배의 잿더미에서 시작해 하나의 반도 내에 자리잡은 두 개의 완전한 분단국으로 끝이 난 한국의 결정적인 위기를 탐사한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동일한 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미-소 양대 강국이, 특히 미국이 애초에 한반도를 군사점령하지 않았다면 한국인들이 스스로 친일파 매국노를 처단하고 자주독립국가를 세웠을 것이며 한국이 미래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 평가한다. 비록 그 과정에서 일부 친일파들이 처단되었다 하더라도 1945년~1953년에 이르는 수백 만명의 인명피해는 없었을 것이고 내전과 분단도 없었을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해방 후 북한사회이 전개과정을 복기하면서 한반도 전체가 사회주의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비록 한반도가 일시적으로 사회주의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민족이 판단하여 선택할 문제이고, 마찬가지로 내전을 통해 수백 만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설사 사회주의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몇십 년 후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결국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되돌아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점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이 장들에서 그는 미국의 잘못된 정책과 판단, 군사적 강제점령과 친일파 매국노에게 남한의 권력을 안겨주고 남한을 군사경제적으로 종속시킨 것 등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비판을 가한다.

제6장 '한국의 일출(1953~1997)'과 제7장 미덕 II (1960~현재의 민주주의 운동)'은 끊임없이 쑤셔대는 독재적이고 간섭주의적인 남한 정부 아래에서 산업적 힘으로의 도약과, 상대적으로 산업화되고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국가를 궁극적으로 창출해낸 힘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바라본다.
6장과 7장은 남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관련된 장이다. 커밍스 교수는 남한의 경제적 성장과 민주주의 정착이 일부 지배계층의 능력이 아니라 남한 민중들의 피와 땀이 서려 일구어진 성과물임을 강조한다.
남한 지배계층의 외세의존적 태도와 군사경제적으로 미국 등 서구에 종속되어 있는 문제와 관련하여 그는 신라의 지배계층이 당나라를 끌여들여 삼국을 통일한 선례와 그 이후 지속된 외세의존적, 사대주의적 경향과 문화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제8장 '태양왕의 나라, 북한(1953~현재)은 김일성의 북한을 탐구한다.
커밍스 교수는 북한의 정치외교 체제나 문화가 한편으로는 고구려에서 시작된 북방민족의 자주적 독립적 성향과 문화에서 비롯된 측면과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 말기에 나타난 척사파의 노선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또한 북한이 주체사상과 정치체제 및 문화가 고려 및 조선의 사상문화 중 일부를 승계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저자는 정보와 자료 상의 한계로 북한을 제대로 파악하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을 솔직하게 전제한다.)

제9장 '미국의 한일들'은 처음 미국 영토에 도착한 조선인들을 시작으로 그 이후 미국 내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 미국인이자 한국인으로, 중간자로 자리잡은 재미교포 이야기를 다룬다.

제10장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는 김정일의 권력에의 접근에서 시작해, 1990년 한미 관계의 위기, 한국의 통일전망 등으로 이어진다.
마지막 장에서 커밍스 교수는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체제가 막을 내린 직후인 1990년대를 전후하여 남과 북의 정치외교군사적 변화를 분석하고 특히 냉전체제 해체에 상응하는 북한의 변화와 이에 맞서 한반도에서 냉전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 지배집단의 갈등을 살펴본다.
그는 북한이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탄 개발이 사회주의 진영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북한의 자위이자 자구책임을 보여주고, 미국이 냉전체제 해체에 맞게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평화적인 환경으로 변화시켜야 함에도 미국의 내부적인 사정과 목적으로 북한을 계속 군사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 위협하여 결국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개발을 강제한 책임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 제가 개인 블로그에 이 책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소감을 밝혀놓은 게 있습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사 연구에서 인상 깊은 대목"이라는 제목으로... 64회로 나누어 정리하였으니 궁금하신 분은 링크(http://blog.daum.net/hy2oxy/8691691)를 클릭하시기 바랍니다..^^

 

[ 2014년 3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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