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의 제국
김민웅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추천 [서평] 김민웅 저 <밀실의 제국 : 제국 수호의 메카니즘>을 읽고 / 2003. 03., 350쪽, 한겨레출판


그동안 김민웅 교수는 '좌파 목회자'이자 '좌파 지식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좌파'라는 단어는 "서양(서구)의 사상을 동양이나 한국사회의 역사, 문화,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직수입하는 '교조주의 또는 사대주의 사조'"라는 편견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두 가지를 종합하면, "저자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내 관심의 정도였다. 최근 1~2년 사이 한국사회 내 진보진영 사이에 횡행하였던 "사실 관계를 따지지 않고  맹목적 반북 이데올로기나 마녀사냥에 동참"한 것과 관계없이...

그런데 올해(2012년) 가을 쯤 그가 '겨레하나'라는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통일운동 단체의 대표직을 수락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자에 대해 내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가 언론에 기고했거나 인터뷰했던 기사를 찾아보았고, 그의 입장이나 논리가 담겨 있을 만한 책을 구해보았다.
이 책은 그런 이유로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시작으로 김 교수의 책을 몇 권 읽을 예정이다.(물론, 박세길 교수처럼 어떤 이론이나 생각을 책으로 발간했어도 시간이 흐르면 스스로 생각이 바뀌거나 전혀 다른 정치사상적 입장으로 변경(절)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이 책이 발간된 때는 2003년 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초창기에 군사, 외교, 남북관계에 대한 정책의 차이로 한-미관계가 악화되고, 부시 정권이 대 이라크 전쟁을 종료한 직후 곧바로 북한을 겨냥하는 상황에서 이 책은 한국인 학자가 쓴,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중요한 비판서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주장의 요지는 여는글의 제목인 "제국의 신민 또는 노예를 거부하며"라 할 수 있다. 책은 크게 두 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읽을 수 있는데,

먼저, 저자는 미국의 군사팽창주의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관철되며, 힘을 갖는지 살펴보고 당시 미국이 보이고 있는 여러 행태를 '전쟁국가의 강화'라고 규정한다. 전쟁은 제국(주의)와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적을 만들어내고 국가 위기를 조장하면서 제국이 성장한다고 보고 있다. 
제1부 '제국의 역습'에서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부시 정권이 밀어붙이는 '대테러 전쟁'의 본질을 분석하여 '전쟁국가'와 '제국주의적 세계화'임을 고발한다. 
제2부 '제국의 밀실'에서는 CIA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 지배층의 정치공작의 역사, '펜타곤 자본주의'의 실상, 전쟁국가에 복무하는 언론의 폐해 등에 다루면서 '위기를 파는 자들'에 대해 분석한다.
제3부 '제국의 대변자들'에서는 제국주의 세계화에 기생하는 미국 내 지식인들의 가면을 벗기고, 서방 언론의 식민주의와 신자유주의 체제를 대변하는 각종 매체와 인물을 다루면서 그럼에도 미국 내부에서 제국주의 체제에 도전하고 비판하는 양심적 지식인들의 활약을 소개한다.

이에 저자는 남한이 주도하여 민족공멸을 막고 한반도 민족화해와 평화정착이라는 대의를 실현시킴으로서 미국이라는 제국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북한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미국과의 대등한 관계설정이 관건이라는 것 등을 말하고 '한반도의 영세 중립화'에 대해 결론짓고 있다.
제4부 '제국의 논리와 본심'에서는 한미 관계라는 '동맹의 허상'을 드러내고,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을 분석하면서 미국의 본심이 '남북간 결속 강화 저지'라는 것을 지적한다. 결국 '한미동맹'이라는 허울 속에 가려진 식민지 체제의 극복이 남한이 가야할 방향임을 천명한다.
제5부 '아메리카 제국이 폭력, 우리의 평화'에서는 북미 제네바 합의를 부시정권과 네오콘이 무시하고 북한에 대한 봉쇄정책으로 북핵 문제와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미국에 대한 '역봉쇄전략'을 구사해야 만이 한반도 평화체제가 가능함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최종 통일방안은 '영세중립화'다.

미국의 각종 정책과 전략을 분석하여 '팍스아메리카나'의 본질을 파헤치고 미국의 전략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미국에 대한 '역봉쇄전략'과 '영세중립화 통일'이라는 결론을 제시하는 저자의 논리는 전체적으로 합리적이라 느껴지고 공감이 된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제시하는 여러 사실 관계와 정보에 대한 근거와 출처가 명시되지 않아 이 책을 토대로 다른 곳에서 사람들과 논의하거나 논리를 제시할 때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 인상 깊은 문장

"실제로 대이라크 정책은 원유 확보라는 숨겨진, 그러나 공공연한 목적을 향한 제국주의적 점령정책이 그 본질이다. 서방 국가들이 미국의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막상 전쟁이 일어나면 침묵하거나 협조하는 이유는 전쟁의 경제적 가치 때문이다."(p.51)

"미국에 대한 패배주의를 극복하라. ... 결국 초강대국 미국의 힘 앞에서 우리 자신의 패배주의적 식민지 근성을 척결하고 자주적 처신을 견고하게 갖추어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평화의 길이다. 우리에게 평화는 반제국주의 운동과 결합하지 않는 한 확보되기 어렵다. ... 우리 민족을 지난 반세기 이상 미국의 식민지적 상황에 처하게 하고 민족 내부의 분단과 적대관계를 심하시켜 온 일체의 종속적 냉전체제를 극복하는 데 역량을 총결집해야 할 것이다."(p.73)

"그런 점에서 향후 한국 정치개혁의 본질적 요체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에 놓인 식민지 정치를 청산하고, 이에 기초한 일체의 지역분열주의 내지 지역패권주의를 격파하며, 미국의 패권전략에 민족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사대주의적 냉전 특권세력을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는 가운데 새로운 민족공동체의 자주적, 민주적, 평화적 토대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내부에 알게 모르게 장치된 미국의 지배질서를 하나하나 해체하는 작업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중차대한 일차적 과제다. 그러써 지난 100년간 우리를 옭아맨 제국주의 굴레에서 벗어나 민족해방을 완결짓기 위한 결의에 찬 행보를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p.74)

"이들 CPD(Commottee on the Present Danger 현존하는 위험에 대한 대응위원회) 세력의 압력 아래 카터 정권은 임기 말년에 강경한 군사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이른바 혁명 예방적 조치로 한국의 1979년 말과 1980년 5월 정세에 개입하지만, 레이건에 패배함으로써 CPD 재등장의 길을 열게 된다."(p.114)

"1942년 6월 루스벨트가 설치한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 비밀공작국)는 한국 현대사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그중 특기할 만한 것이 이승만의 정치적 부상과 OSS와의 관계다. ... OSS에서 도노번의 작전부 참모로 있던 프레스턴 굿펠로우 중령은 이승만을 환대했고, 이승만은 그의 소개로 전쟁성으로부터 조선인 출신 OSS 요원 충원작업의 권한을 얻어 워싱턴 내 정치적 입지가 급상승하게 된다. 해방공간에 귀국하여 추구하게 될 친미 정치노선을 다지는 계기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p.122)

"1980년 전두환 체제가 등장하자 레이건은 즉각 F-16 전투기 36대를 한국에 판매했으며, 100만 달러에 달하는 최루 가스와 경찰용 소총 판매를 허가했다. 이 기간 중에 발생한 노스럽 사의 로비 자금 추문은 바로 군부의 무기구입 증가와 깊은 관계가 있으며, 미국에 의한 한국의 무장국가 체계 강화과정의 산물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미 군수산업의 최대 시장의 하나가 되고 있으며, 엄청난 민족자원을 비생산적으로 탕진하고 있다."(p.149)

"<AP통신>이 타전한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군이 저지른 양민학살과 최근 또다시 <AP통신>이 전세계에 타전한 한국전쟁 과정에서 미 공군이 저지른 민간인 폭격도 모두 이러한 각도에서 볼 때 중대한 전쟁범죄 행위이므로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분명한 논란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미국이 유고를 공습한 더 본질적인 이유가 발칸반도 지역에서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기를 든 신유고 정부에 대한 통제와 이 지역의 군사적 장악에 있었다는 측면에 주목하면, 미국과 나토가 최우선 보호대상인 민간인들의 생명을 경우에 따라 희생시킨 것은 미국의 정책논리상 모순이 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한국전 때도 2차대전 이후 동아시아 지역에서 새롭게 확보한 자신의 식민지체제 방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따라서 민간인들의 생명은 일차적인 배려대상이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이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약소국들의 현지에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p.185)

"<뉴욕타임즈>의 기사에서 새롭게 조명된 부분은 한국에서 자본시장 자유화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대목이다. 미국이 김영삼 정권하의 한국정부에서 자본시장의 자유화를 수용할 경우 서방 선진국 클럽인 OECD에 가입하도록 해주겠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당시 한국정부는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절차를 밟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한국 내 금융시장이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도 않은 채 단기성 자본의 이동을 허용함으로써 일거에 자본이 대규모로 투입되었다가 한꺼번에 빠져나갈 경우 외환위기가 일어날 수 있는 구조적 토대를 만든 것이라고 하겠다. 갑자기 급증한 단자회사들이 이러한 자본시장의 자유화 정책을 타고 생겨난 투기자본의 공급처가 된 셈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난 시절 겪은 외환위기에는 정책 선택상의 문제와 함께 세계 금융시장 자체의 문제도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p.194)

"미국이 패권정책은 언제나 대상 국가 내부에서 적극적인 동조자를 물색하고 그를 권력의 정점에 세우기 위한 정치공작에 몰두한다. 이것은 2차대전 이후 지난 반세기의 미국 대외정책사가 고스란히 입증하고 있다. 부시 정권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그러한 각도에서 제국의 대본영과 식민지체제의 하부구조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한마디로 한나라당과 그 지지세력의 집권이 우리 민족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지 일깨우고 있다."(p.228)

"우리의 현대사적 진실은 해방의 진정한 성과물을 몰수당한 채 미국의 식민지 체제로 출발했다는 점이다. 이것을 명확히 인식하고 극복의 단서를 포착하지 않는 한, 우리의 미래는 제국주의 패권체제의 질곡에 계속 시달릴 수밖에 없다."(p.256)

"결론적으로,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이며 우리는 이 제국주의 지배 아래 놓인 식민지라는 사실, 이러한 식민지적 주종관계를 청산하기 전까지는 우리 민족의 장래는 언제나 제국의 신민 또는 노예의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제국의 지배 아래 있는 민족의 제1차적 과제는 따라서 민족의 자존을 회복하고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민족해방투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결코 이미 낡아버린 구호가 아니다. 엄연하고 절박한 현실인 것이다."(p.270)

[ 2012년 12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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