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콘서트 무죄 - 이정희와 이시우의 국가보안법 대담
최진섭 지음, 이정희.이시우 대담 / 창해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강추!! [서평] 이시우, 이정희 대담, 최진섭 저 < 법정콘서트 무죄 : 이정희와 이시우의 국가보안법 대담 >를 읽고 / 2012. 10., 366쪽, 창해

최근 국정원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과 노동해방실천연대 사건이 법원에서 무죄로 판명되었고, 이석기 의원에 대한 내란예비음모 사건은 국정원에서 검찰로 송치되었다. 공무원 간첩사건은 핵심 증거물을 국정원이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고, 내란예비음모 사건 역시 이렇다 할 핵심 물증이 없이 프락치의 진술에 의존하는 상황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사건 발표 즉시 사실 관계 확인 없이 받아쓰기에 충실한 언론에 의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간첩과 내란용의자로 '각인'되어 앞으로 사회활동과 정치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졌다.

대담자의 한 사람인 이시우 작가 역시 경찰과 검찰, 그리고 기무사에 의해 국가보안법 및 간첩 혐의자로 매도당했던 경우이다. 특히 2007년 발표된 이시우 사진작가 사건은 ‘국가보안법 사건의 백화점격’이라고 알려졌다.
무려 20가지가 넘는 죄목을 가졌는데, 군사상 기밀 및 국가기밀 탐지·수집·누설, 이적 표현물 작성·배포, 조총련 소속 인물과의 회합·통신, 븍한 출판물의 입수·탐독·보관 등이었다. 검찰은 당시 이 작가의 '예술작품'에 10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당시 변호사였던 이정희(2013년 현재 통합진보당 대표)는 예술가로서의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이시우 작가와 의기투합해 법정에서 헌법과 양심에 근거하여 국가보안법의 무모함과 불합리함을 논리적으로 설득했고, 그 결과 2008년 1월 31일 1심 재판부는 28개 공소조항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리고 2011년 10월 13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법조계에서는 국가보안법 사건으로는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기념비적인 무죄판결로 불리운다고 알려져 있다.

이 책은 무죄로 판결난 위 사건에 대해, 이정희와 이시우가 다시 만나 당시의 상황을 회고하는 대담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이시우라는 사진작가를 알았고, 사진작가 또는 예술가 중에서 작품을 창조하는 시간보다 몇 십, 몇 백배의 시간을 들여 구체적인 현장 조사와 이론적인 연구에 매진하는 예술가(사진작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시우 작가는 추상적인 철학이나 개념을 다루는 대신 구체적인 현실을 작품세계로 선택한 예술가였다. 그는 2001년 <자본론>을 주제로 사진작업을 준비하다가 미국에서 발생한 9.11 테러로 인해 한반도 정세를 고민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사진 주제를 미군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9.11 이후 보수화된 미국이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을 몰고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 뒤로 90여 군데가 넘는 전국의 미군기지와 일본과 독일의 미군기지 거의 전부를 찾아다니며, 핵무기를 조사하고 촬영했다.
사진작품을 찍기 위해 미군기지와 유엔사를 연구하면서 이시우 작가는 국내 어느 전문가 못지 않은 '정전협정 그리고 주한미군과 유엔사 전문가'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 검찰은 그이 방대한 연구와 현장답사를 이적표현물, 고무찬양, 군사기밀누설의 각도로 접근했다. 그가 연구한 자료는 모두가 주한미군이나 국방부의 공식 기자회견, 정보공개청구, 국회/중앙도서관, 인터넷, 현장방문을 통해 얼마든지 접근 가능하고 수집 가능한 자료였다.
그런데 국방부와 주한미군은 자신들이 공개한 그리고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자료가 어디까지인지 전혀 알지 못했고, 검찰은 냉전적 사고방식과 국가보안법에 한정된 법률지식으로 이시우 작가를 옥죄려고 한 것이다.

이시우 작가는 검거 직후부터 묵비권 및 진술거부권의 행사, 48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 국가보안법 명상을 위한 3보 1배 및 걷기, 슬라이드 재판, 피고의 법정 미학강의 등 숱한 일화를 남겼다. 그 과정을 통해 국가보안법 재판의 신기원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국가보안법,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하게 되었다.
또한 국가보안법 극복을 위한 예술의 한 방법으로, 주체사상전을 비롯한 ‘국가보안법 약 올리기 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이정희 대표는 이시우 작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시우 작가를 처음 만난 그해에 저는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지뢰피해자 문제, 미군기지 문제, 금지된 열화우라늄탄을 비롯한 무기와 핵잠수함 정박 문제, 한미연합사 문제 등 수많은 한미관계의 쟁점들과 미세한 법적 논점에 대해 어떤 정치학자도 밝혀내지 못한 문제를 파헤치고, 어떤 법률가도 하지 못한 분석을 해내고 있는 예술가를 보며, 법률가로서 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책임을 느꼈습니다. 이시우 작가의 변호인이 되고서야, 저는 정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극을 받았습니다."(p.23)

나는 이 책에서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의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문정현 신부와 한상렬 목사가 국가보안법이 폐지될 때까지 수염을 기르겠다고 결심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이 책에서 변호사로서, 정치인으로서 이정희의 진정성과 세계관을 알 수 있었다.
이석태 변호사를 멘토로 삼고 있다는 이정희 변호사는 이시우 작가를 만나 함께 재판을 치르면서 정치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시우 작가는 이정희 대표에게는 "변호사를 하면서 만난 의로인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을 딱 한 명 꼽으라고 할 때" 해당하는 의뢰인이었다.

그녀는 "피고인만큼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법률적 쟁점뿐 아니라 정전협정과 한미연합사, 한미관계, DMZ, 지뢰, 핵무기, 유엔사 등 관련한 공부를 많이 했다. 사진작가가 피고인이기 때문에 작품을 통해 변호하겠다는 생각으로 법정에서 진행한 '슬라이드 재판'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녀의 말을 통해 처음 러시아 말기 사실주의 작가 레핀의 작품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1884년)는 작품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이정희 대표가 2012년 5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논란이 발생했을 때, 편안한 선택을 포기하고 마녀사냥을 당할 각오를 하면서 당원들과 부정혐의자를 방어했던 이유, 2012년 12월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서 보였던 모습, 그리고 2013년 9월 이석기 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을 앞장 서서 막아내는 자세와 결기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가보안법.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화통일'을 지향하지만, 국가보안법은 근본적으로 북한을 평화통일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규정한다. 유엔에 가입되어 있고 상당수의 국가와 외교관계를 체결한 그 적은 국가보안법 상 '국가'도 아니고 '반국가단체'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부는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에서부터 시작하여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6.15선언과 2007년 10.4선언을 통해 명백히 북한을 통일의 파트너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 내 모든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자기검열하도록, 서로 의심하도록, 서로 고발하도록, 서로 왕따시키도록, 서로 손가락질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전근대적인 마녀사냥을 통해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라는 그림을 현실화시켜버린다.

만일 우리가 평화와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통일을 지향한다면 아니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국가보안법을 반드시 폐지시켜야 한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평화통일의 염원은 요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국정원 등 극우보수세력이 저지른 불법 대선개입과 정치공작, '종북공세'와 'NLL 대화록' 사기 그리고 2013년 이석기 의원 내란예비음모 사건 조작을 통한 전국적인 '종북 마녀사냥'을 위한 치졸한 정치 공세와 불법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은 '사람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는 것 같다. 이시우 작가가 말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포장한 무관심'이라는 표현이 인상에 깊게 남는다. 나 역시 어떤 관성과 두려움에 빠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작가로서 예술혼을 작품에 불어넣기 위해 학자보다 더 공부하고 운동가보다 더 평화운동을 실천하고 철학자보다 더 철학적인 예술가와 그 예술가를 완벽하게 호흡한 변호사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 인상 깊은 문장 :

- "피고인의 생각과 마음을 통역해주는 것이 변호사의 역할인 거죠."(p.73)

- "검사는 피고인의 진술 거부와 단식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진술 거부는 피고인에게 헌법상 보장된 권리를 행사한 것이고, 단식은 양심의 결정에 따른 행동일 뿐입니다. 이것이 이 사건에서 피고인에게 불리한 요소로 고려될 수 없고, 검사는 이에 대해 논평할 권한이 없습니다."(p.90)

-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법적으로 북한의 노동당 당원 그리고 북한 주민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사실 자체 때문에 모두 처벌받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의 누구도 그걸 상정하지 않는다. 북한 주민 전체를 중대 범죄인으로 만드는 건 어불성설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법으로서 유지되어야 할 기본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 법은 오로지 적과 대치한 우리 편 진영을 지키기 위한 처단 도구에 불과하다. 이게 적나라한 국가보안법의 기능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보안법 자체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p.110)

- "오늘날 포유류가 거대한 몸집을 갖게 된 것은 공기 중의 산소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먹이가 많아진 것이 아니라 공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질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유의 공기가 우리를 거대하게 할 것이다."

- "무관심이란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마음의 위장된 표현입니다. 연이어 터지는 국가보안법 사건들에 무심한 사이 얼마 지나지 않아 뜻밖에도 그 다음 순서는 저였습니다."(p.266)

- "국가보안법을 코웃음치며 아직도 그런 법이 남아 있었는가 하고 화답하던 이들에게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공포였습니다. 출소 후 재판을 위해 증인과 증거자료를 부탁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가 무관심이 아니라 사실은 두려움임을 알았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부탁한 것조차 부담스러워 할 때 저는 더 이상 부탁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증거 자료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 "표현의 자유에 앞서 선행하는 것이 소통의 자유입니다. 개인은 소외와 고립을 넘어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서 자신을 재구성해나가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소통과 소통을 위한 표현은 개인을 긍정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전제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소통의 주관적 의지만으로 성사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건 과정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시장이란 엄혹한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권력이 이 과정에 개입하면 겉보기엔 통제가 이루어질 수 있으나 사상과 표현은 지하로 숨어 들고 시장 외적 질서에 의해 주도됩니다. 사상은 상품보다 훨씬 비제도적이기에 지하화하는 것도 훨씬 쉽습니다. 인위적 조정인 폭력과 제도로 소통과 표현이 통제될 수 있을가요? 국가를 독점한 권력이 사상의 시장에 개입한 것이 바로 국가보안법입니다."(p.275)


[ 자유와 관성, 그리고 고통 : 이시우 1심 최후 진술문 중에서... ]

"중생이라도 오늘 깨달았다면 그는 부처요, 부처라도 오늘 닫혀 있다면 그는 중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소통을 포기한 상태가 관성입니다. 구속이나 통제가 아니라 소통이 필요 없다고 합리화하고 스스로 최면을 건 상태가 관성입니다. 그리하여 '자유의 반대는 구속이 아니라 관성'이란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이 이전처럼 수많은 사람들을 잡아들일 수 있는 법은 이미 아닙니다. 저처럼 한 번씩 잡아들입니다. 이것은 어떤 효과를 발생시킬까요?

독일은 70년대 기차표 개찰구를 없앴습니다. 그러나 불시에 검표원이 표검사를 해서 표가 없으면 몇배의 돈을 몰립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불시검열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표를 사서 승차합니다. 조삼모사입니다.
정부로서는 인력을 줄이고도 질서와 통제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지만 복지가 향상된 것은 아닙니다. 타율 대신 자기검열이란 형식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국가보안법도 이젠 막무가내로 사람을 잡아들이진 않지만 불시검열처럼 한둘을 잡아들임으로서 사람들을 자기검열하게 하고 효과적으로 국가보안법의 통제를 유지합니다. 사람들은 무서워서가 아니라 귀찮아서라고 합리화해둡니다. 국가보안법은 건재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애써 모른체 하고 살고 있습니다. 조삼모사 정책을 받아들임으로써 자기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모릅니다.
국가보안법은 자기기만을 초래합니다. 국가보안법이 무서워서 피한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피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 역시 피해자입니다. 그들은 구속된 자보다 더 큰 통제 하에 순응하고 있으며 아픔이 있는데도 아픔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도 관성의 체계는 남아 테러방지법 같은, 이름을 달리한 국가보안법의 출현을 허용할지도 모릅니다. 관성에 대한 자각과 소통이 절실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관성은 숨어 있으며 드러나지 않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드러난 고통뿐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고통까지 성찰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p.277)

[ 2013년 9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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