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레지스탕스 - 저항하는 인간, 법체계를 전복하다 레지스탕스 총서 1
박경신 외 지음 / 해피스토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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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특히 서구인들이 보기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아직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상태라고 느낀다고들 말한다. 특히 '천부적 인권'이나 '만민평등', '주권재민'이라는 의식이 사회 전체에 뿌리내려져 있는 그들의 시각에서는 아이들과 여성, 노인, 장애인, 실업자나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호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왜 시민들이 가만히 있느야?"라도 도리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질문한다고... 시내 곳곳에 경찰병력이 상주하고 집회나 시위 현장을 전경차로 '벽'을 둘러쳐서 가로막고 있는 모습과 현 정부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사태 등은 정부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공권력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단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저항은 무력하가 짝이 없고...


아마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은 서구에 비해 민주주의의 역사가 대단히 짧고 제반 민주주의 제도가 '피땀흘려 얻은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구의 민주주의 역사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 300~400백 년을 넘지만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는 일제 해방 이후 약 65년에 불과하다. 그러한 민주주의 제도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헌법은 시민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쟁취한 것' 아니라 미군정에 의해 아주 짧은 기간에 반강제로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그 헌법 역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독재자들에 의해 여러 차례 '사적 이익'을 위해 폭력적으로 훼손되는 쓰라린 역사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과거를 돌아보면 가장 가까운 체제로써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라는 '왕조식 봉건제도'가 약 1천년과 일본 제국주의에 주권을 강탈당한 35년은 우리 민족과 민중들에게 '강력한 중앙권력'과 '무력한 민중'이라는 의식이 문화적 유전자로 뿌리깊게 자리잡았을 것이다. 해방 이후 짧은 민주주의 역사 만으로 천년이 넘는 '권력문화'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일제시대 초기에 동학농민전쟁이나 반일 해방투쟁, 419 혁명과 518 민중항쟁(그리고 보니까 오늘이 518 광주민중항쟁 32주년이다.), 610 민주항쟁과 2008 촛불시위 등을 통해 적지 않은 이들이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경험했다는 것이 현재 수준의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힘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이러첨 '거대한' 모습을 띈 것만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부족하나마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헌법과 여러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하게 시도되었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들, 부정한 제도와 시스템, 부당한 권력을 깨는 과정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이다. 이처럼 법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직도 낯설고 멀기만 하다. 많은 사람들이 '법아 일반시민이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강자를 보호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가게 점원이 생계를 위해 7천원을 훔치면 구속되고 정치인, 기업인, 판검사들이 수 억, 수 십억원을 훔쳐도 '옷을 벗으면 그만'인 사회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부당함을 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어 생업을 팽개치고 시청, 광화문 앞에서 피켓을 들어야 하지만 권력자들은 아무런 노력 없이 신문지상에 약자들에 대한 '언어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법 현실' 속에서도 그 법의 장점을 이용하여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고 작지만 소중한 성공을 거두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은 비정규직, 도시빈민, 농민, 여성, 미성년 학생 등 사회적 소수이자 약자인 사람들이 저항을 통해 현실을 개혁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그들이 개혁한 현실은 구체적이고도 제도적이다. 그들은 부당한 현사실적 상황과 그 상황을 제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법, 양자 모두에 저항하고 마침내 법을 창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발전과 역사의 진보를 추동했다. 그들의 분투는 결과적으로 정의가 들어설 수 있는, 상식적이고 체계적인 정의의 토대, 즉 대강의 정의(rough justice)를 만들어 낸 것과 다름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래된 것이 아니다. 2010년이란 아주 가까운 시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 가까운 역사를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법조인 7명이 이야기한다. 경제, 사회, 환경, 역사, 문화, 종교라는 인간의 삶 전반을 아우르는 줄기를 통해 대한민국의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자리했던 사건들을 정리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대의 요구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용기있는 행위가 법체계의 긍정적인 변화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부당한 현실에 저항이라는 행위로 맞서지 않는 인간은 사회적인 무생물과 다름없다는 사실과 함께...

제1부 '빵을 위한 투쟁기'는 경제의 영역에서 다루어 질 수 있는 이야기다. 시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없는 도시빈민들의 고단함이 짙게 묻은 장이다. [판자촌에 쏘아올린 작은 공]은 거주이전의 자유와 전입신고라는 행정제도가 극빈층을 사회적 유령으로 만들고 있음을 고발한다. [1,300일의 해고]는 정리해고라는 일방적인 사용자의 횡포를 ‘콜트악기 정리해고에 관한 판결’을 통해 정치하게 기술하고 있다. [배부른 자여, 비정규직에게 날개를!]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해고한 현대자동차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다. 헐벗은 사람들이 거대한 권력 앞에 기죽지 않고 짱돌을 들었을 때, 짱돌은 결코 그들의 발등을 찍지 않음을 보여준다. 

제2부 '사회 속에서 행진하라'는 사회적 영역의 이야기이다. [떡값검사를 떡값검사라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삼성 비자금과 연루된 떡값검사를 공개한 노회찬 의원의 명예훼손죄를 다룬다. [집회하러 상경하는 농민을 저지한 경찰은 유죄? 무죄?]는 한미 FTA 반대집회를 위해 입성한 농민들을 폭동을 일으킬 ‘예정된’ 주체라 가정하고 그들에게 공권력을 행사한 경찰의 섣부른 진압, 그 경솔함을 고발하고 있다. [대강의 정의가 상식이 되는 나라, 좋지 아니한가?]는 망원동 수재사건과 김포공항 소음소송을 통해 단수가 아닌 복수로 움직이는 시민의 힘이 얼마나 큰지 살피고 있다. [아름다운 밤이에요!]에서는 촛불시위가 범국민적 항의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진 이후 야간집회를 법적으로 금지한 사정이 기록되어 있다.

제3부 '환경, 진짜 눈물의 공포'는 환경의 영역인데, 새만금 사업의 해악성을 알린 꾸준한 움직임이 거의 완공된 공사조차 잠시나마 중단시킬 수 있었음을 [90% 진행된 공사도 중단시킬 수 있다]를 통해 그리고 있다. 

제4부 '틀어진 역사 바로잡기'는 역사의 영역이다. 관습적으로 유지되어온 기조가 명문화되었을 때 인간을 기본권을 얼마나 침해할 수 있는지 [출가한 딸은 제사를 지내면 안되나?], [종잇조각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없다]를 통해 비판하고 있다. 전자는 전통적인 남녀차별의 풍습 때문에 토대집단인 ‘가족’으로부터 소외당한 여성의 권리를 다루고 있다. 후자는 일제강점기의 권력의 편의를 위해 사용된 조서제도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법적 싸움에서 얼마나 배반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 풍부한 실증을 통해 검증하고 있다. 

제5부 '미디어 민주주의'ㅌ는 문화의 영역이다. 유명가수의 노래와 춤을 따라한 어린 딸의 동영상을 올린 것이 저작권 침해 판정을 받아 지리한 싸움을 해야 했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저작권, 어린 딸의 재롱잔치를 위법으로 만들다]에 담겨 있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표현의 문제를 다룬 [보호할 가치가 없는 표현은 없다]에서 한때 경제대통령이라 회자되며 전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미네르바 사건의 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6부 '종교, 진리, 그리고 인권'은 종교적 영역의 이야기를 다룬다. [학내 종교의 자유, 그 까칠함의 벽을 넘다]에서는 대광고등학교 재학 중 강제적인 종교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목숨 걸고 항거한 강의석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국가 권력만이 권력은 아니다. 언론도 권력이고 학벌도 권력이고 판검사도 권력이고 '돈'도 권력이다. 많은 것을 가진 자, 높은 지위에 있는 자, 권한이 많은 자, 학식이 많은 자는 언제나 '권력자'이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부모라는 지위, 교사라는 지위, 선배라는 지위 역시 일종의 '사회적 권력'이고 상대방에 대한 각종 폭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사회적 다수'도 일종의 '권력'이고 소수자에 대한 '폭력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모두가 단지 상대방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력, 모든 권력에 대해 저항하고 견제할 수 있을 때 사회적 약자도 동등한 세상에 살 수 있고 우리 모두가 '좀 더 나은 사회'에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은 '엘리트 권력'이라 할 수 있는 변호사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싸우고 노력하기에 대한민국은 그나마 살만한 나라인 것 같다. 이 서평을 빌어 창립 이래 지금까지 음으로 양으로 좀 더 나은 우리 사회를 위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노력한 많은 양심적 변호사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 2012년 5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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