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GPE 총서 2
장석준 지음 / 책세상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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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공부모임 교재였는데 이제야 읽었다. 책을 읽고보니 저자가 소위 진보 진영에서 드물게 알려진 이론가이자 사회학자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외국 사회학,경제학자의 책이나 익히 알려진 장하준,최장집 교수의 저작을 읽을 때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 읽었다.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비판과 실망이 커지고 있고 서구국가에서도 신자유주의를 공격하는 흐름이 많아졌음에도 저자는 왜 책의 제목을 '신자유주의의 탄생'이라 정했을까라는 궁금증도 들었고 국내 진보진영 사회학자는 신자유주의 탄생과 극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최근 캐나다에서 대학생들이 등록금 문제와 대학의 신자유주화에 대한 반발로 수 십만명이 시위를 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작년 여름,가을 세계 금융의 심장인 미국 뉴욕의 월가에서도 “Occupy : 1%의 탐욕, 99%가 막자”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당시 탐욕스러운 금용 자본에 대한 항의로 촉발된 월가의 시위는 한 달 넘게 계속되면서 전 세계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다. 2008년의 금융 위기와 더불어 월가 점령 시위는 지난 30여 년 동안 군림해온 ‘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의 몰락을 상징하는 징후로 보인다. 막강했던 시장 근본주의 교리는 치명적 금이 갔고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의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한 시대가 저무는 지금, 흔들리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질서는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저자의 결론을 먼저 들어보면, 그는 현재 지구 전체에 '구조개혁 좌파'라는 흐름과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나 이들이 전략적인 실패로 신자유주의의 탄생을 막아내지 못했으며, 향후 생활경제 정치를 강화하고 '생산수단의 소유와 경영'이라는 구조개혁의 방향을 고수하면서 대중운동과 지구정치적 질서를 만들어내면 신자유주의도 막아내고 자본주의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가 돌아가는 현실이 세계적으로 적용되고 있으므로 한 나라의 구조개혁이나 경제개혁도 자국 내에서만 해결하기가 이미 어려워진 것이 사실인만큼 정치에 대한 저자의 지구적 관점은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현재 수준을 생각하면 정당, 정치세력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이나 농민, 서민들의 지구적 네트워크가 구성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릴(차이와 이해관계를 극복한다는 전제로도)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저자의 분석과 해법은 지난 번에 읽은 대니 로드릭의 <자본주의 새판짜기>(2011, 21세기북스)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대니 로드릭은 좌파가 아닌 자본주의 주도세력의 하나라는 입장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원칙과 기준을 바르게 우지하지 않고 국민국가의 고유성과 필요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금융중심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빈부격차와 양극화, 자본주의의 약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와 민주주의, 세계화가 충돌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할 때 세계화보다 국민국가와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발전과 평등에 기여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대니 로드릭은 전지구적 정치체제의 성립 가능성을 부정하는 편이고 장석준은 필요하고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것도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좌파정치의 블럭화와 시스템에 방점이 찍혀있기는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신자유주의가 시작된 1970~1980년대 그때, 자본 주도의 지구화 세력이 일방적으로 압승을 거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선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음을 밝히고, 그럼에도 왜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추출함으로써 오늘에 필요한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에 걸쳐 신자유주의가 처음 등장해 전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을 ‘지구정치경제’적 시각에서 탐색한 이 책은 당시 지구 곳곳에서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초기 흐름에 맞서 투쟁했던 흐름을 분석해 '구조개혁 좌파'라는 세력을 규정하고 이들 ‘구조개혁 좌파’의 움직임에 주목한다. 즉 1970년대 칠레,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에서 대의민주주의 형식을 존중하며 자본주의 극복을 고민했던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 노선’의 ‘성공과 패배’의 기록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새롭게 분석한다. 신자유주의와 그 지구화 과정이 단순히 경제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생활 세계 - 국민 국가 - 지구 질서’라는 정치의 세 층위를 가로지르며 전개된 거대한 정치 변동이었음을 밝히려는 것이기도 하다. 1970년대의 신자유주의적 정책 전환 과정을 개별 국가가 아닌 지구 질서의 변동이라는 맥락에서 다루고 있는 이 책에 따르면, 결국 신자유주의 지구화는 피할 수 없었던 필연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에 따라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던 사건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의 핵심 구조인 생산 수단의 소유, 경영 문제에 도전하고 대중 운동을 발전시켜 계급 세력 관계 자체를 바꾸”고자 했던 구조 개혁 좌파의 과제를 계승하되, 국민 국가의 정치에 갇혀 생활 세계의 권력 관계를 제대로 바꾸지 못했던 한계를 뛰어넘어 ‘생활 세계-국민 국가 -지구 질서’를 결합하는 새로운 정치 형태를 만들어낼 것을 제안한다.
신자유주의가 역사적 전환기에 선 지금, 이 책은 우리 시대의 문제를 분석 전망하는 데 필요한 지구정치경제적 시각과 함께 위기의 시대를 돌파할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전망을 여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지구 곳곳에서는 자본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흐름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이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이 과정은 전후 질서 붕괴 이후의 새로운 질서 수립을 놓고 구조 개혁 좌파와 신자유주의 우파가 벌인 대전투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1970∼1973년의 칠레 인민연합 정부의 분투, 1970년대 영국 노동당의 모색과 논쟁, 1981∼1983년의 프랑스 좌파연합정부의 시도와 스웨덴 등지의 흐름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 지구화가 이러한 역사의 다른 가능성들을 제압하고 세력을 확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신자유주의 태동기의 윤곽을 제시한다.

2008년의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 지구 질서가 완전히 붕괴한 것은 아니지만 그 전성기가 이미 끝났음을 공표했다.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세계사의 또 다른 전환기를 마주한 지금, 우리 시대의 정치 운동은 어떤 전망을 마련해야 할까? 이 책은 전후 사회민주주의의 복원 대신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의 비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새로운 지구 질서를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복지 국가를 복원·확대하거나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신자유주의 지구 질서를 철저히 해체해야만 새로운 질서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해체 작업은 기존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구조 개혁이다.
구조 개혁 좌파는 신자유주의의 전 지구적 시장 위계 체계에 가장 능동적으로 맞서 현상 유지가 아니라 현상 타파를 주창함으로써 좌파 정치의 구조적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이들은 국민 국가의 정치에 권력 거점들을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 정책 수단들을 창출하려 했다. 공공 부문을 확대하고 경제 계획을 발전시키려 했으며,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노동조합 운동의 역량을 성장시키려 했다. 이렇게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 했으며, 새로운 질서의 출발점은 곧 계급 세력 관계의 역전이었다.
물론 앞에서 보았듯이, 1970~1980년대에 구조 개혁 좌파는 자신들이 만든 기회를 성공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길을 내주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반복이 아니라 과거의 오류를 직시하고 당시에 보여주었던 가능성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 좌파 정치의 역사가 놓쳤던 정치의 또 다른 층위들을 환기해야 하는데, 저자에 따르면 이는 곧 “국민 국가의 정치를 생활 세계의 정치 및 지구 질서의 정치와 (재)접속하는” 것이다.

좌파 정치 운동은 생활 세계의 정치에서 출발하지만, 국민 국가의 정치에 본격 참여하면 생활 세계의 실천은 부차적인 것이 되고 만다. 2차 세계대전 후의 국민-대중 경제에서 거대 노동조합들이 등장해 제도화된 단체 교섭에 참여한 후 노동자들의 관심이 임금 교섭에 집중되면서, 과거의 노동 계급 공동체들은 사라지고 ‘미국식’ 대중 사회가 들어섰다. 영국 노동조합 운동이 AES 좌파와 연대해 산업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데 게을렀던 것도, 국유화 이후 칠레의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인민연합 정부와 대립한 것도 생활 세계 속의 권력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던 구조 개혁 좌파의 한계를 보여준다. 대중 운동을 개혁하고 활성화하는 일부터 했어야 했다는 당시의 한계는 곧 오늘의 과제이다. 지금 노동 대중의 생활 세계는 더 파편화되고 대중 운동은 침체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급진적 구조개혁론자들이 이야기하듯, 탈자본주의 구조 개혁의 궁극 목표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민중 ‘자치’를 실현하는 데 있으며, 생활 세계 수준에서 이러한 능력들이 성숙해야만 국민 국가 수준에서 더 확대된 민중 자치를 실현할 수 있다. 저자는 대중 운동의 재구성이 필요하며, 그 방향은 노동조합, 협동조합, 문화 서클 등이 서로 결합된 노동 계급 공동체들의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시장’과 ‘국가’보다 우위에 서는 ‘사회’를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오늘날 이 ‘사회’는 자본-임노동 관계나 국가 관료 기구의 거대 체계로부터 자율성부터 되찾아야 한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자체를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한다.”

저자는 구조 개혁 좌파가 일국 차원을 넘어서는 지구 질서 차원의 정치를 실현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브레턴우즈 체제의 붕괴가 혼돈의 출발점이며 초국적 자본과 대결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국민 국가 내부의 변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구 질서의 변화를 주창할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진보적 사회 변화를 추진하는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자본 진영의 전 지구적 정치만이 작동했다. 유럽 좌파 정부들은 신자유주의 지구 질서에 누가 더 잘 적응하는지 경쟁할 뿐이었다.
저자는 국민 국가의 틀을 넘어선 좌파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것은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정치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부와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 정부는 2000년대 라틴 아메리카의 ‘좌파 붐’, 즉 우루과이·볼리비아·에콰도르·파라과이·엘살바도르 등에서 좌파 정권이 등장하는 유례없는 상황을 맞아 공동 이니셔티브로 지역(대륙) 차원의 좌파 정치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고, 라틴 아메리카 각국의 경제 사회 통합에 박차를 가해 2008년 남아메리카 국가연합(UNASUR)을 창설했다.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들은 현실 정치로 구현된 국제 연대를 갖추었으며, 이러한 좌파 주도의 지역 연합은 지구 질서 수준에서 북반구-남반구의 세력 관계를 바꿀 진지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라틴 아메리카 좌파 정부들의 노력은 아직 현재 진행형의 실험 단계일 뿐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국민 국가의 정치를 폐기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국민 국가의 정치와 지구 질서의 정치는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 지구 질서 수준의 새로운 정치 무대를 구축하는 것은 오직 국민 국가들의 공동 이니셔티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역으로 좌파들이 이 새로운 초국적 무대에 진지들을 구축하게 되면 이것은 국민 국가 내의 세력 관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즉, 전 지구적인 구조 개혁이 시작되었는지 여부가 국민 국가 내에서의 구조 개혁의 승리를 상당 부분 결정할 것이다. 국민 국가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도 다시 한번 ‘지구 질서의 정치’가 실체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과 기득권 세력이 세계적인 정치체제와 경제운용 체제를 장악하여 자신들의 이윤창출에 이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 대항세력이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네트워크와 정치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여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치가 무엇이냐의 관점에 따라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가 사회구조 내에서 파생하는 이익집단간의 갈등을 수렴하여 조정하고 해결하는 구조라면 세계정치체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자본가들과 기득권 세력들은 이미 전세계적인 네트워크와 새스템을 구축한 만큼 이와 갈등관계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노동자, 농민, 시민사회단체, 빈민과 서민, 각종 이해집단들 역시 세계적인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이를 위한 일국 내지 세계적인 차원의 정치적인 노력과 제도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 수준으로 보면 이 과정이 오랜 노력과 시간이 투여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의 분석과 대안에 대해서 비판적인 부분은 두 세가지다. 하나는 저자가 자본주의 구조개혁의 전략으로 제시하는 '생산수단의 소유와 경영'의 개혁이 의미하는 바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지난 1970~80년대 유럽을 돌아보면 영국은 그렇다 하더라도 프랑스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생산수단의 사회화가 어느정도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 문제나 정부부채, 실업과 양극화 문제가 다시 불거졌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들이 국유화나 사회화를 늘린다고 해결될 수 있을까? 두번째는 생활경제 정치를 통한 대중운동 활성화에 대한 저자의 관점에 대한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다분히 대중운동이나 민중자치를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경제규모의 규모나 사회의 복잡성, 대량생산과 무역체제, 다양한 이익간의 갈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민중자치의 객관적인 조건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문제도 있다. 민중자치만을 생각하면 구모를 줄이고 정치경제을 분산시키는 것이 최적의 방법이 아닐까? 마지막은 신자유주의를 둘러싼 국민국가 내의 갈등을 너무 '진영 논리'로 쉽게 가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정치의 박해(?)를 받아 사라질 수도 있고 박해를 극복하고 다른 방식으로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의 특성상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다른 가면을 쓰고 반드시 부활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는 일국 내에서든 지구적 차원이든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에서부터 화폐경제나 통화체제, 공정거래와 무역체제, 제3세계의 양극화 문제, 기술관료의 문제, 일국 내 민주주의의 문제 등이 함께 검토되고 대안이 마련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2012년 3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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