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바겐, 북한을 보는 새로운 프레임
김광수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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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출판된 건 작년 12월 10일이었고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것은 그 뒤부터 대략 18~19일 뒤였다. 김정일 사망 후 그의 아들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루어졌고 요즘 미국과 북한 핵무기 제거와 에너지, 식량 등에 대해 협상이 한창이다. 한국정부는 예상대로 북미협상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고 남북대화는 올해 안에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김정은 체제가 안정화될지 여부는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점인 것 같고...

그럼에도 남한의 99% 민중들의 입장에서 북한 문제는 간단하거나 편한 문제는 아니다. 당장 올해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라는 정치적 견변기를 거쳐야 하는데 남한 내의 정치,경제,사회적 상황들을 기초로 하여 유권자들이 정치적 선택을 해야하는 와중에 북한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 '천안함 사건'이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음으로써 우권자들이 과거에 비해 좀 더 성숙하고 냉정해진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럼에도 해방 이후 철저하게 남북대결 상황을 정치적으로 악용해온 냉전수구세력들은 여전히 '북한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을 것이 분명함으로 경계한 않을 수 없고 남북관계의 정확한 진단과 올바르고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유권자나 정치인, 지식인들이 스스로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응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바라보면 한반도가 1945년 남북으로 갈라진 것과 1950년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의 남북간 긴장과 대립은 지구촌 세계에서 20세기에 벌어진 특유의 '이념과잉'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남북의 99% 민중들은 지난 66년간 모두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저버린 이념과잉에 희생된 것이나 다름 없다. 북한은 북한대로 이념과잉이 진화되어 1인 독재, 새습독재, 일당독재로 진화하면서 99%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고 남한은 남한대로 냉전수구세력과 1% 개득권 세력에 의해 99% 민중들이 고통받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독일이나 예멘 등 이념과잉을 극복한 국가,민족들과 달리 남북 스스로 이념과잉을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잘못과 책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책임은 정치인들과 가득권자들에게 있는 것은 당연하다.
2012년 전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아직도 이념대립의 현장으로 남아있는 한반도. 그리고 20세기 이념과잉의 대척점에서 시작된 분단은 21세기 들어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체제'의 대척점으로 진화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우려까지 든다.(대부분의 정치가들과 학자들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개념이지만...) 하지만 남북의 기득권 독점자들이 서로의 협력보다 대결을 통한 정치적 욕구를 위해 대립하면서 남한은 미국에 점점 종속되고 북한은 점점 중국에 종속되어 가고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 대표적인 민간 싱크탱크인 [김광수경제연구소]가 펴낸 북한 문제 분석서다. 연구소측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남한에 사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으로는 3대세습, 핵개발 등 도저히 가까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북한 정권이지만, 그에 대한 남한의 대북강경책이 현재의 북한의 대중(對中) 의존도 심화, 남한의 대미 교섭력 약화, 북한 독재체제 강화, 대중 관계 악화 등 해결하기 어려운 더 큰 문제를 야기한 현실에 주목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에 기반한 ‘플리바겐식 접근법’을 통해 남북 모두가 ‘윈-윈’ 할 수 상생의 솔루션을 제안한다. 
 
북한의 정치경제 상황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석하고 천편일률적으로 발표하는 정부나 공공연소의 관련자료나 깊이와 분석력이 턱 없이 모자라는 재벌 편향의 연구소들의 부실한 자료에 비해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자료는 상대적으로 더 객관적일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연구소가 정한 책의 제목은 나로서도 조금 갸우뚱하게 만들기는 했다. '플리바겐(Plea-Bargain, 사전형량조정제도)'은 남북관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플리바겐'은 ‘사전형량조정제도’라 불리는 법정 용어로, 피의자가 혐의를 인정하거나 사건해결에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할 때, 그에 대한 형량을 낮춰주는 제도이다. 미국에서는 웬만한 조직범죄나 마약 관련 사건에 플리바겐 제도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기소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형태의 수사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이 낯선 용어를 이야기하는 것은 차갑게 식은 현재의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실용적, 미래지향적인 대북정책을 펴는 데 ‘플리바겐’이 적절한 시사점을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플리바겐'을 "인질을 숨겨놓은 연쇄 살인범에게 인질을 살리기 위해 형량을 낮추는 협상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보고 이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상황을 남북 대치상황으로 대입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인질'은 남북의 99% 민중(남한경제와 국가안보도 포함해 생각해볼 수 있을 듯..)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비유에 대해 북한측과 남한의 일부 사람들은 불공정하고 부당한 비유라고 반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가 생각할 때, 남북 대결상황에 대해 일방적으로 북한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인 남한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을 설명하는 방법으로 '플리바겐'이 그나마 현실적인 관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연구소측이 정한 이 책의 목차는 연구소가 애기하고자 하는 바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제1부는 '대한민국, 북한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북한문제를 잘못 푸는 과정에서 현 정부가 처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고 제2부는 '북한경제, 시장의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북한 지도부가 화폐개혁 실패 등의 경제적 난관을 헤치기 위해 부분적으로 도입할 수 밖에 없는 '시장경제'와 그로 인해 오히려 취약해지는 경제적 통제력에 대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마지막 제3부는 '북한정치, 경제의 딜레마에 빠지다'로서 경제문제를 해결하지 못함으로써 북한 지도부가 정치적인 장악력을 잃어가는 딜레마를 설명해 주고 있다.

2008년 2월 대통령 취임 후 '비핵·개방·3000’으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전형적인 적대정책으로써 지난 정권 시기 어렵게 만들어온 남북관계를 몇 걸음 뒤로 후퇴시켰다.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은 대부분 중단되었고, 금강산 관광 사업도 멈추었으며, 대북지원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와 적대적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북한 정권과의 협력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북한 정권은 인민들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음에도 핵개발을 계속하고 있으며, 김정일 부자를 중심으로 한 독재체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또한 금강산에서는 남한의 관광객에게 총격을 가했고, 연평도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포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공식적 사과를 요구한 채, 남북 협력과 대북 지원을 대부분 중단시키고,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고립시키려고 했던 이명박 정부의 시도는 남한에게도 커다란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김정일 체제는 결국 김정은에게 권력을 세습하였으며,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은 여전히 통제되지 않고 있다. 우리 최대의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북한의 중국 의존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그리고 FTA 추가협상에서 보듯, 대미협상력도 급격이 약화되었다. 만에 하나, 현재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의도한 대로 김정일-김정은 정권이 무너진다고 해도, 쏟아지는 난민과 엄청난 통일비용으로 남북한 모두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것이 연구소와 대부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딜레마의 빠진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 속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점진적인 남북 협력의 확대와 북한의 개혁/개방, 그리고 남북 격차 해소와 남북통일로 이르는 경로이다. 이를 위해 세계정세 속에서 북한 정권의 지속 가능성, 북한 지하자원 개발, 대중 의존도 심화, 북한 내부의 변화 압력, 통일비용의 실체 등 다양한 북한 관련 현안들을 연구하여 그 근거들을 제시하는 한편, 북한 경제의 흐름과 메커니즘, 북한 주민들의 경제생활과 2000년 이후 북한의 경제정책 분석을 통해 북한의 시장경제 도입 가능성을 엿본다.
이와 같이,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플리바겐'식 접근법은 남북 모두 ‘윈-윈’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동시에, 여-야, 진보-보수가 대북정책을 두고 벌이는 지루한 대립을 끝내고 발전적 내일을 그릴 수 있는 확실한 대안임을 강조한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남북통일에 대해 찬반의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5천년의 동질성을 간직한 같은 민족이기에, 외세에 의해 분단되었기 때문에, 미래에 후손들이 더 안정적이고 자립적인 경제와 문화를 이룩하기 위해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과 더불어, 통일이 지상목적이 됨으로써 과정에 무심해지는 불안정한 인간으로서의 본성에 대한 우려, 통일방안이나 방식에 대한 논란과 이해관계로 인해 그 속에 담겨있는 정작 제일 중요한 인간과 평화가 무시되는 것 때문에, 통일이라는 형식 보다 평화와 화해, 협력, 안정, 상호존중, 자립 등의 내용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애 앞으로 적어도 100년 정도는 평화체제 속에서 독자적인 국가체제를 유지하기를 바란다.
통일을 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권은 서너 세대 이후의 후손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면 한다. 현재의 구성원들은 남북분단과 남북대립의 당사자이자 희생자들이고 통일에 대한 결정에 따른 장단점은 고스란히 후손들이 감당할 몫이기 때문에...
 
[ 2012년 3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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