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작가는 10월 말, 영국의 어느 흐린 일요일... 쏟아지는 빗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부두에 선 채, 항구로 들어오는 거대한 화물선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다섯 남자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일'에 대한 에세이를 쓰기로 결심했다. "현대 일터의 지성과 특수성, 아름아움과 두려움을 노래해보고 싶었다"고...
 
'일'이라는 광대한 주제를 위해 저자는 창고(물류시설)와 초고층 빌딩, 비스킷 공장과 취업 박람회장 등으로 부지런히 발을 옮기고 일상의 고된 노동이라는 거울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소외감과 행복에 대해 고민하는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우리는 왜 일을 하는가?", "무엇이 일을 이토록 즐겁게, 혹은 즐겁지 않게 하는가?", "우리 삶에서 일을 떼어내면 어떤 모습이 남을까?"... 이 질문들은 '일'이 곧 한 사람의 인격이 되고, 한 인격의 정체성이 되는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일상적인 생각이나 상황에 대해 저자가 문명과 사회에 관해 깊고 은근한 통찰에 이르는 것은 저자의 타고난 강점인 것 같다. 하지만,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하여 '일'이 가져다줄 수 있는 다양한 감정과 관점을 제공할 뿐, 저자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저자가 전문적인 철학자나 인문학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인류가 자급자족하던 시대에도 '일' 또는 '노동'은 존재했다. 단어상으로 '일'은 직업이라는 느낌을 주고 '노동'은 '노동자'라는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인간에 의한 의간의 지배, 인간에 의한 착취, 잉여 생산물이 없던 시대에는 남녀노소 누구나 '일'을 했고 그 결과물을 취했을 것이다. 소규모 가족단위나 집단에서 '일'은 남자는 사냥, 여자는 가사와 농사로 분화되기는 했지만, 그 집단에서는 스스로 먹고 입고 자고 놀기위한 모든 것을 '일'을 통해 생산했다. 21세기인 지금도 아프리카와 아마존 밀림 등에서는 여전히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에게는 노동으로 인한 '소외감'도, '행복에 대한 고민'도 없을까?
 
더불어 인간의 자연을 이겨내고 다른 동물들을 이겨내기 위해 점점 대규모 집단을 이루며 살게된다. 그렇지만, 인간이 대군락을 이루거나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고 통치하면서부터, 잉여 생산물이 가능해지면서부터 '일'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노예'로 다루고 자신의 '일'을 대신하도록 강제하면서 '의식주'에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부류가 나타났고 수 천년, 수 만년 동안 이어져 왔다. 영웅담과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는 아프리카 부족장과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영화 '300'의 주인공), 알렉산더 대왕과 네로 황제, 찰스 2세와 진시왕, 엘리자베스왕과 광개토대왕 등도 '일'과 '노동'의 관점에서 보면 '지배자'이자 '착취자'에 불과할 수 있다.
 
'일'에 대한 인류의 정신세계는 어떠했을까?
지배자들은 '일'에서 벗어나 정신적인 유희를 개발하기 시작한다. 기원전 4세기 경, 아리스토텔레스는 만족과 보수를 받는 자리는 구조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했으며, 이런 '일'에 대한 태도는 그 후 2,000년 동안 계속되었다. 기독교가 서구를 장악한 이후, 종교인들은 '일의 괴로움'이 아담과 이브의 죄를 씻는 데 어울리는 확고한 수단이라는 교리를 세웠다. 르네상스 이후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노동'의 고귀함을 찬양하는 철학이 대두된다.
 
20세기 들어서면부터 대량생산과 (국제)무역이 증가했고 이제 '일'하는 사람마저 자신이 '일'했던 결과물을 소유하지 못하고 '화폐'를 '일'의 대가를 받은 후,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화폐'와 바꾸게 된다. 이제 '일'에 대한 정의는 대폭 넓어져 무언가 물리적인 것을 만들어 내는 것도, 물리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말하고 행위하는 것도 '일'에 포함된다.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이 없는, 모든 것들이 융합되는 21세기...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물질적인 풍요'인가...
 
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을 구해본다...
Q. 나는 왜 일을 하는가? -> A. "일 = 삶"이기 때문에... 그 '일'이 노가다든, 책상물림이든, 기계조작이든, 조직활동이든...
Q. 일은 즐거운가? -> A. 때론 즐겁고 때론 괴롭고 때론 아프고 때론 힘들다...
Q. 삶에서 일을 떼어내면 어떤 모습이 남을까? -> A. 다른 일을 찾아야지... 죽지 않는 이상...
 
그나마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성공'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위로가 된다.
"현실적으로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의 정점에 오를 가능성은 400년 전에 프랑스에서 귀족이 될 가능성보다 아주 약간 더 클 뿐이다. 오히려 귀족시대에는 그 가능성에 관해 솔직했고, 그런 면에서 더 친절했다. 옛날 사회는 작은 기회를 가지고 미래를 한 번 걸어보라는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무작정 강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평범한 삶은 실패한 삶과 똑같다는 식의 잔인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를 위로하고 만다. 어떻게 해야 '일'과 '행복'이 함께할 수 있는지 말하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답기 위해서 21세기 자본주의는 변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전제가 잘못되었다.
사람은 '경쟁'에서가 아니라 '협력' 속에서 사람다워질 수 있고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2010년 5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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