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우백
찰머스 존슨 지음, 이원태 옮김 / 삼인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던 2008년 미국의 국내외에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2007년 서브 프라임 붕괴로 시작된 금융위기는 2008년 들어 미국 국민들에게 최악의 경제침체를 가져왔고 8년간 계속된 부시 정부의 일방주의와 패권주의는 미국을 이라크/아프카니스탄 내전이라는 '수렁'에 빠트리고 동맹국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 다국적 기업과 월가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는 미국의 빈부격차를 확대시키고 정부의 적자를 눈덩이처럼 불려놓았으며 미국의 산업과 고용 상태를 최악으로 만들었다.
 
2008년 12월 미국의 44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Jr.)는 취임 이후 무엇을 얼마나 이루었을까?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던 '변화와 통합,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유권자들의 희망은 지난 2년 4개월 동안 얼마나 이루어졌는가? 지난 19일 오바마의 '중동정책 연설'이 요약하여 보여주는 것 같다. 19일 오바마가 발표한 중동정책은 과거 민주당 정권이 추진하던 수준에서 그쳤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과 무장, 아랍 민주화 혁명 등의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연설은 이스라엘과 공화당, 팔레스타인과 중동지역 국가, 정부로부터 모두 비난을 들어야 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샤디 하미드 연구원을 말처럼 "모든 사람에게 호소하려다 결국 모든 이들을 실망시켰다." 의료보험 대상자의 확산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중동정책 이외의 금융위기 극복, 경제 활성화, 변화와 통합 등 주요 분야에 대한 오바마의 성적은 변변치 않은 것 같다.
 
상당수 미국 국민들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안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가 왜 이토록 초라한 과정을 보내고 있을까? 이 책은 그 이유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 저자는 21세기에 접어든 이후 미국이 국내외에 처한 상황을 '블로우백 blowback(역풍)'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그 역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미국이 근본적이고 철저하게 변화해야 함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이 과거의 제국들처럼 '무너지지' 않으려면, 안정과 평화 속에 앞으로도 번영을 누리려면 18세기 '건국의 정신'으로 돌아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은 [나눔문화]에서 진행하는 [평화나눔아카데미]의 강연 중 지난 3월 31일 두 번째 강연 주제였던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혁명, 위키리크스’의 강사인 안병진 교수(경희사이버대학교 미국학과)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안병진 교수가 미국 유학시 지도교수가 찰머스 존슨 교수였던 것이다. 이 책은 1999년 처음 출간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미국 내에서는 냉담한 반응 일색이었다고 한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저자가 911 사태를 예견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외적으로 유명해졌다.
 
*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은 누구인가?  -----------------------------------------
미국의 비판적 지성이자 국제 정치학계의 세계적인 석학인 찰머스 존슨은 1931년 피닉스에서 출생하여,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53년 한국전쟁 당시 해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전후 버클리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동시에 취득하였다. 1962년부터 1988년까지 버클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강의하면서, 아시아 문제와 미국의 외교 정책 연구에 전념해,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과 일본의 경제 개혁, 저항 이론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저술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그가 일본 통산성에 주목해 관료제의 자율성과 경제 개발 과정에서의 역할을 설명한 ‘발전 국가 모델’은 기념비적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버클리 중국학연구소 소장, 샌디에이고 대학 교수, 일본정책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그는 한때 CIA의 정보 평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1974년 이래 미국 학술원 회원으로 있다.
이 책 <블로우백>과 <제국의 슬픔>, <네메시스>이라는 3부작을 통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대하여 통렬한 비판을 가하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고 한국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2010년 11월 20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있는 자신의 저택에서 향년 79세로 타계했다. --------------------------
 
'역풍(Blowback)'이란 단어는 미국 CIA 관료가 내부 용어로 처음 고안한 말이다. CIA가 수행한 작전이 당초 의도와 달리 자국이나 CIA 자체에게 피해를 가져다 주는 현상을 '역풍'이라 규정했다. 다시 말하면 미국 국민에게는 비밀로 부쳐졌던 정책이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따른 '역풍'을 말하는 것일까? 1990년대 초 소련연방의 해체를 시작으로 50여년간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던 냉전은 종식되었다. 냉전 종식 후 지구상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남은 미국은 냉전을 이유로 진행되었던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정책을 포기하거나 변화시키지 않은 채, 냉전 체제에 뿌리를 둔 외교 정책을 고수하거나 오히려 강화하면서 미 제국의 공고화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상당부분 자국민도 모르는 채 진행되는, 바로 이와 같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은 이제 범세계적인 저항과 도전, 즉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물론, '역풍'의 원인은 냉전 이전에도 뿌리 깊게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약자의 전략'이라는 '비대칭적 위협'과 같이 정보 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아무리 소규모 집단이라 할지라도 미국에 충분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사실(911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임), 미국 이외의 국가들의 성장과 결속, 세계 시민의 자각 등을 포함하는 역풍의 국제적인 조건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표적인 '역풍'으로 지적되고 있는 911 사태의 원인으로 911 사태가 발생하기 11년 전인 1990년 9월 미 의회 연설에서 행한 부시 대통령의 걸프전쟁 선포, 그로부터 12년 전인 1978년 9월 중동 지역 팔레스타인인들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제약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의 체결, 1990년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학살과 팔레스타인 지도자 암살 등 이스라엘이 미 공군 기지를 이용하여 점령지에서 행한 야만적 행위들과 이에 대한 미국의 지지와 지원, 클린턴 대통령의 수단 폭격, 그리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 침공 등을 꼽고 있다. 19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발생한 팬암 103호기 폭발로 인해 259명의 탑승객과 11명의 지상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도 중요한 '역풍'의 사례인데, 저자는 이 사건이 1986년 레이건 행정부의 리비아 공습 때 가다피 대통령의 양녀가 사망한 데 따른 보복이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역풍'은 군사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역풍'은 국제 경제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체감되고 있다는 것이다. 냉전 이후 미국의 군사적 지배욕망은 이제 '세계화'라는 미명하에 경제적 지배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역풍'은 '시장 근본주의적 지구화' 혹은 '세계화'가 초래한 부작용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난다. 그는 1997~1998년 한국 등의 동아시아의 경제위기가 동아시아 위성 국가들의 경제를 개방하고 자신의 종속 경제체제로 만들고자 하는 미국의 세계화 프로젝트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미국의 세계화 전략의 목적은 세계 유일의 패권국으로서 미국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자신의 경쟁국들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전략은 동아시아 위성국가들의 경제적 독자성과 능력이 크게 훼손됨으로써 외견상으로 성공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러한 외견상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세계화 전략은 심각한 '역풍'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 경제위기로 인해 동아시아 국가의 수많은 민중이 경제적 고통에 시달린 것도 경제적 '역풍'의 결과이지만, 그러한 역풍은 미국인에게도 불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지난 50여 동안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이 냉전적 군사 동맹에 기초하여 미국 시장에 대한 특혜적인 수출에 상당한 정도로 의존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군사적 지지의 대가로 이들 동아시아 위성 국가들은 미국과 비교적 유리한 무역협정을 확보할 수 있었는데, 이에 따라 미국 또한 동아시아의 수출 지향적 경제에 따른 공급 과잉과 수요 약화로 인해 지속적인 경제 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낡은 냉전적 구조를 개혁하기 보다는 '시장 개방'과 '탈규제'라는 화려한 수사학으로 이들 나라에게 세계화를 강제함으로써, 이들의 신뢰를 스스로 배반하고 결국 냉전적 동맹 체제하의 지지자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저자는 제2장에서 제8장까지 냉전 체제에서 시작하여 20세기 말까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미국의 제국주의적 동아시아 정책과 그에 따른 역풍 및 역풍의 징후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저자는 1953년부터 2년간 미 해군으로 일본에서 복무하였고 1955년부터 대학원에서 중국에 대해 연구했다. 1972년 일본을 다시 방문했고 그 이후 일본의 경제 성장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하여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저자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정책과정과 그 여파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자세하게 다룰 수 있었다.
 
[ 동아시아에서의 역풍과 역풍의 징후 ]
1. 미군 범죄 등에 대한 오키나와 주민의 반발로 촉발된 오키나와 미군 기지 철폐 운동은 동아시아 지역이 가장 대표적인 역풍으로 본다.
2.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필리핀의 마르코스, 한국의 이승만과 박정희와 전두환 등 아시아의 독재정권에 대한 정치군사적 지원으로 야기된 해당 국민들의 살해와 탄압, 그리고 그에 따른 반미주의의 확산도 이 지역의 중요한 역풍 사례로 지적한다. 특히 저자는 1980년 한국에서의 광주 학살과 이에 대한 미국의 개입 사실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무지를 개탄한다.
3. 핵, 미사일 문제를 둘러싸고 북한을 노골적으로 압박하고 위협하기 위해 고안한 미국의 이른바 '불량국가론'이 실제로는 제국주의적 강박 관념과 이윤 논리가 결합된 'NMD'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억지 논리인 동시에 궁극적으로 미국의 핵 확산 금지 정책이 모순적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핵, 미사일 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의 압박에 대한 북한의 반발과 저항은 어쩌면 불가피하며 이해할 만한 것이라고 본다.
4. 중국의 엄청난 잠재력은 미국의 보수 세력으로 하여금 봉쇄 정책을 선호하도록 자극하지만, 중국은 여전히 가난하며 세계 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많은 장애가 존재한다. 저자에 의하면 남중국해의 영유권 분쟁이 미,중간의 위협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중국의 영토정책이 과거으 제국주의에 지배당했던 역사적 경험 때문에 민족주의에 의존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영토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지나친 내정 간섭과 견제는 사실상 중국의 역사와 정책에 대한 무지와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자만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5. 냉전 체제하에서 일본의 경제적 성공은 미국식 자본주의를 추종한 결과로 간주되었지만, 실상은 미국의 냉전 전략에 따른 특혜적 지원에 의해 이루어진 것에 불과하며, 미국이 일본에 그런 경제적 특혜를 베푼 결과, 오히려 미 국민의 고통과 미국 제조업의 공동화에 따른 미국 경제의 약화라는 역풍을 맞았다고 주장한다.
6. 미국의 제국적 과잉 팽창이 미국 산업의 위축뿐 아니라 군국주의의 성장과 핵 확산을 초래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위협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에 의존하기보다는 '외교력과 솔선수범'으로 세계를 이끄는 리더쉽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결론은, 전 세계적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역풍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미국이 스스로 탈피하지 못한 냉전 구조를 개혁하고 제국적 과잉 팽창 정책을 포기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오키나와와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 북한에 대한 외교적 포용 정책,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조정, 여타 지역에 대한 군사 개입 자제, 군사력보다 '외교력과 솔선수범'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리더쉽의 발휘 등이다.
 

내가 미국의 정치외교나 행정부를 속속들이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언론을 통해 간간히 들어온 바로는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후 2년 넘게 추진해 온 정책은 저자의 전략과 대책에서 많이 벗어났다. 그렇다면 오바마 집권 기간 동안 미국의 정책이 근본적인 측면에서 변화되지 않을 것이고 미 제국에 대한 세계적인 '역풍'은 계속된다고 할 수 있다. 미국민은 당분간 안정과 평화, 경제와 복지를 되찾을 수 없을 것 같다.
 
저자의 동아시아 각국에 대한 사회, 역사, 문화에 대한 풍부한 정보와 지식은 탄복할 만 하다. 특히 자신이 전공했던 중국과 일본에 대한 식견은 한국 내 전문가들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내 자국의 웬만한 학자들이 따라오기 쉽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보인다. 미국인 학자로서 미국 행정부의 자료를 쉽게 열람하고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기는 하겠지만, 군국주의 팽창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는 한국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 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미국이 지난 50~60년간 한국과 북한에 대해 취한 정책을 저자의 정보와 사례에 기초하여 분석하면 저자의 주장에 십분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군국주의적 팽창 정책'에 대한 저자의 통찰은 동아시아 국가들 뿐 아니라 중국이나 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어느 나라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무척 큰 것 같다. 언론에 나오는 단편적인 정보들, 정치인들이나 정부 관료들이 내뱉는 말들, 부실한 전문가들의 평론이 아니라 정확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펼치는 주장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만이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과 사건에 대해 통찰력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으며, 향후 어떻게 전략을 세우고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행가능하고 성과적인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의 문장 :
- 소련은 세 가지 이유, 즉 국내 경제적 모순, 제국의 과잉 확대, 개혁 능력의 결핍 때문에 붕괴했다.(p.19)
- 혁명의 만행이 1976년 마오쩌둥의 죽음으로 끝나기 전까지 이른바 문화 혁명은 1930년대 후반 구 소련에서 자행되었던 스탈린의 숙청과 닮아갔고, 공산주의를 약속했던 중국 이상주의의 마지막 한 조각마저 파괴하고 말았다.(p.28)
- 1996년에서 1997년 사이 극소수의 페루 혁명가들이 페루 주재 전 외교관을 인질로 삼아 벌인 리마의 일본 대사관 인질 사건도 사실상 페루 대통령 알레르토 후지모리의 반게릴라 정책과 일본 다국적 기업의 페루 영업을 일본 정부가 지원한 결과로 빚어진 역풍이었다.(p.45)
- 1955년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미국 기업들에 위협적인 토지 개혁을 단행한 과테말라 대통령을 전복시키기 위해 쿠테타를 계획했고, CIA는 그것을 조직하고 자금을 지원했다. 이에 대한 역풍은 1980년대 마르크시스트 게릴라의 반란과 CIA 및 국방성 지원 하의 마야 농민에 대한 대학살로 이어졌다.(p.48)
 
-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독재 정권을 세운 첫 번째 국가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주로 과거 친일파였던 인물들로 구성되었다. 한국 민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북한 점령을 의식한 나머지 견고한 반공 체제가 필요하다는 미국의 요구가 우선되었던 것이다.
- 1960년 민주주의에 대한 한국민의 열망이 이승만 정권을 전복시킨 후, 미국 정부는 1961년에서 1963년까지 한국을 통치한 세 명의 육군 장성 중 선두 주자였던 박정희에게 지지를 보냈다. 또 미국은 1979년 전두환 장군의 구테타를 용인하고, 1980년 수천 명의 한국 시민을 살해한 그의 명령을 은밀히 지지하기도 했다.(p.62)
 
- 약 2만 개에서 3만 개의 M14 대인 지뢰가 아직도 한국 최남단의 부산항 인근 영도 충리산에 매설되어 있다. 1956년 미군은 그곳에 기지를 둔 미사일 부대를 보호하기 위해 지뢰를 매설했는데, 그것들은 미사일 기지가 옮겨졌을 때도 결코 제거되지 않았으며, 1960년대 이후 많은 민간인의 부상과 사망을 초래했다고 비판받아 왔다.(p.116)
- 1993년에서 1997년까지 세계 5대 주요 무기 구매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대만, 터키, 이집트, 한국이다.(p.138)
 
- 위성국을 수립하고 유지하는 정치,군사적 중요성에 관한 한, 소련과 미국은 비슷한 이유로 비슷한 정책을 추구했다. 그들은 진정한 민주 정권을 수립하려는 어떠한 대중적 노력도 거부하면서 소련군과 미군이 수립하고 냉전 내내 지원했던 일당 독재 체제(일본은 자민당, 한국은 자유당-공화당)를 통해 종속국을 통제했다.(p.148)
- 과거와 달리, 1987~1989년 미국은 한국 군부가 무력을 사용하도록 촉구하지 않았다. 한 가지 이유는, 미국 관리들이 여전히 이란 혁명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한국전쟁에 대한 견해가 어떻든 전쟁 당시부터 현재까지 남한은 미국의 종송국이라는 지위에 있었다.(p.154)
- 우리가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북한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오만하고 구제 불능한 국가, 즉 미국보다 덜 불량국가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코너에 몰리면서도 자신의 약한 입지를 잘 활용, 강한 근육질을 갖고 있지만 머리에 든 지식은 형편없는 경쟁자, 즉 미국에게 상당한 외교적, 경제적 승리를 거둘 수 있는 교과서적 방법의 유용한 사례를 전 세계에 제공했기 대문이다.(p.175)  

- 1997년 7월 타이에서 시작된 세계 경제 위기는 두 가지 원인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첫째는 동아시아에서의 미국 위성 국가 체제에 이미 구축되어 있던 모순들이 더욱 강화됨에 따라 그 체제 자체가 갑자기 균열하기 시작하고 또 와해가 우려되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냉전 시기엔 미국의 어떠한 실수도 소련 탓으로 돌렸지만 이 냉전 시기가 주던 부담감에서 벗어난 미국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미국식 자본주의르 채택하라고 강요하는 캠페인에 착수했다는 점이다.(p.263)
 
[ 2011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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