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Consumer Trend Insights - Ten Keywords regarding What Consumers Want in 2023, the Year of the Rabbit
김난도 외 지음, 윤혜준 옮김, 미셸 램블린 감수 / 미래의창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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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트렌드 코리아가 출간되었다. 벌써 12년째라 하니 가히 국내 서점에서 몇 주간 1위 자리를 내어놓지 않는 내공이 느껴진다.

코리아 트렌드에서 탄생된 신조어나 유행어도 참 많았는데, 트렌드에 무심한 나도 들어봤던 언택트, 가심비, 멀티 페르소나 등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김난도 소비자 트렌드 연구팀은 매번 다음 해를 대표하는 10가지 트렌드 키워드를 발표한다. 2023년은 계묘년 검은 토끼의 해를 맞아 RABBIT JUMP 란 단어로 내년의 트렌드를 말한다.(매번 다음 해의 띠를 빗대어 트렌드를 말하고 있다)



이 책 영문판에서도 서두에 짧게 요약하여 RABBIT JUMP를 소개해 놓았다. 이는 크게 경제, 사람, 기술의 세 축으로 나눈다.



먼저 평균 실종(RABBIT JUMP: Redistribution of the Average), 체리 슈머(RABBIT JUMP: Born Picky, Cherry-sumers), 뉴 디멘드 전략(RABBIT JUMP: Irresistible! The ‘New Demand Strategy')으로 소개되는 경기 불황에 따른 한국 사회와 시장의 변화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체리피커에서 체리 슈머로 변화된 소비자를 보는 관점이다. 보통 혜택만 취하고 구매를 하지 않는 소비 행태를 두고 체리피커라 일컬었지만, 이 책에선 경기 불황 탓에 똘똘하게 따져보고 조금이라도 더 혜택이 있는 쪽으로 구매하는 소비자를 말한다. 이들은 소량 구매(divvying strategy), SNS 등을 통한 공동구매나 반반 전략(half-half strategy), 계약이나 해지에 있어 유연 전략(flexi strategy) 등을 구사하기도 한다. 한층 똑똑해지고, 취향도 고급져지고, 요구도 분명한 반면 통 크게 소비하지 않으려는 현 소비의 행태가 보이지만 이 또한 지금의 MZ 세대가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라 생겨난 전략이라 하니 씁쓸해져 온다. 그렇지만 진화한 다양한 알뜰 소비 전략을 하나하나 배워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 편의점에서 자주 사 오는 반병 분량의 소포장 와인이나 내키지 않은 달은 건너뛰기가 가능한 술담화 등의 주류 구독 서비스도 이 흐름을 담고 있다고 하니 개인적으로도 환영한다. 점점 기업들도 소비자 개개인의 요구를 섬세하게 맞추고 배려하는 것 같다.

그다음 요즘 세대들의 가치관을 반영한 '사람'에 관한 키워드로 오피스 빅뱅(RABBIT JUMP:Arrival of a New Office Culture: ‘Office Big Bang), 인덱스 관계(RABBIT JUMP: Buddies with a Purpose: ‘Index Relationship’), 디깅 모멘텀(RABBIT JUMP: Thorough Enjoyments: ‘Digging Momentum’), 알파 세대(RABBIT JUMP: Jumbly Generation Alpha), 네버랜드 신드롬(RABBIT JUMP: Peter Pan and the Neverland Syndrome)이다.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변하는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유통 및 공간의 트렌드를 설명하는 선제적 대응 기술(RABBIT JUMP: Unveiling Proactive Technology)과 공간력(RABBIT JUMP: Magic of Real Spaces)이다.

여기선 인덱스 관계와 알파 세대(2010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 관심이 많이 갔다. 알파 세대가 우리 아들 또래의 세대라 책의 순서를 무시하고 처음으로 읽었지만, 읽다 보니 나와 무척 동떨어진 게 확인되어 한편으론 불편한 마음도 들었다.

부모인 내가 모르는, 아니 알아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 세대의 마인드란...

이 책에선 이들의 롤 모델은 수많은 팔로워를 가진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라고 한다. 그리고 누구나 모두 다 셀럽이라고도 한다. 각자의 특출할 만한 강점 하나씩만 있다면. 그게 원어민 급의 영어일 수도 있고, 댄스일 수도 있다. 모든 것에서 완벽했던 과거의 '엄친아'도 이젠 매력이 없단다. 되려 한 가지 분야에서 특출난 실력을 보이면 누구나 '셀럽'이 되는 것이다. 각자의 개성과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이 탑재된 세대인지 아니면 주목받아야 하는 '나' 아니면 관심 없는 유아독존 세대인지 시간이 흐르면 알겠지만, 아직까지 덜 자란 알파 세대들의 미래에 대해 희망과 걱정을 함께 품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유행할 것만 같은 키워드 '인덱스 관계'!

어쩜 이다지도 요즘의 인간관계를 잘 표현했을까 싶다.

쉽게 떼고 붙일 수 있는 인덱스 탭처럼 필요에 의해 모이고 관계를 맺었다가 필요가 없게 되면 과감히 정리하는 관계.

한 사람이 관리할 수 있는 관계의 최적의 인원은 150명이라는 '던바의 수'가 무색하리만치 지금은 수많은 네트워킹으로 필요에 따라 관계 맺기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취업과 같이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경우가 끈끈한 유대감이 있는 사이가 아닌 '느슨한' 사이에서 더 많이 발견된다고도 했다. 오히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다 알 테니 새로울 게 없긴 하겠다. 여기선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의 인덱스 관계 예를 들었지만 그렇다고 사람 간의 정이 어찌 쉽게 맺어지고 정리될까 싶은 대목이었다.



<Z세대들의 친밀도를 표현한 표>


하지만 3년간의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예전에는 당연시 여기던 직장이나 친구들과의 모임, 친목 행사, 명절 모임, 심지어 집안 행사 참여 등이 이제는 걸러지는 걸 보면서 이외로 쉽게 정리되는 게 인간관계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허술하다면 허술했던 나의 주변이 정리되면서 근본적인 관계 맺기의 목적을 돌이켜 보기도 했다. 인위적인 만남보다 자연스레 연결된 만남들이었기에 끊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과연 나는 어떤 목적과 어떤 의도로 이들과 관계를 맺어온 걸까?

그리고 그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어떤 인간관계를 원하는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가장 행복한가? 등등 책을 덮으면서 고민이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2023 CONSUMER TREND INSIGHTS>는 주변에서 있어 왔고, 보아 왔고, 변화해 왔지만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현상을 그럴듯한 키워드로 싹 정리하여 내밀어 준다. 그에 더해 영문판으로 접하니 최신 트렌드를 고급 단어들과 함께 익히고, 좀 더 새겨서 보게 되어 개인적으로 이점도 많았다. 어떤 부분은 한글보다 더 쉽게 표현되어 이해를 돕기도 했다. 여기서 소개된 키워드는 2023년을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방향을 알려주고 변화를 이해하는 데에 소중한 나침반이 되어줄 거 같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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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만나자
신소윤.유홍준.황주리 지음 / 덕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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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하면, 장소로 식당이나 특정 장소명을 이야기하곤 하지, 대놓고 동네명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 00동에서 볼까?' 하듯 그 동네의 이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곳은 혜화동이나 인사동 외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멋지고 특이한 공간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넘쳐나는 시기에 거리 전체가 몇 십 년 동안 거론되는 건 그만큼 내공이 쌓인 그곳만의 역사와 문화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리고 이 모든 건 결국 그 거리를 찾고, 지키고, 사랑하는 이들에 의해 가능해진 거 아닐까?

솔직히 이 책에서 거론되는 인사동의 명인들은 잘 몰랐다. 천상병 시인이야 워낙 유명한 시인이니 차치하더라도 서른다섯의 저자들의 추억에 오르내리는 인사동의 여러 작가나 예술인들은 익숙지 않다.


읽으면서 저자들과 공감할 수 있는 인사동의 추억은 고백하자면 몇몇 식당 외엔 접점이 없어 머쓱했지만, 뭐 어떤가. 한국인이라면, 아니 좀 더 좁혀 서울에 살고 있거나 살았었다면, '인사동'이라는 동네에 대한 추억은 저마다 각양각색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사람들 중에서 특히나 지금의 고미술과 현대미술이 어우러지고 다양한 문화와 예술의 집합지가 되도록 인사동의 분위기를 갖추게 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읽다 보면 여러 갤러리와 찻집, 술집, 식당, 거리에서 마주쳤던 이들의 추억을 재미나게 들려줘 그곳을 거닐어보고 싶게 한다.

이런 기대와 호기심을 읽었는지 장소와 거리 이미지를 담은 느낌 있는 사진과 상세한 지도와 상호명도 나와있어 인사동 여행안내 책자로써도 유용하다. 


인사동 구석구석 명소를 업종별로 색깔을 달리하여 표시해놓아 한눈에 보기 쉽게 하였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장소는 총 80곳이라 하니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며 책에 소개된 곳에 들러보는 것도 재미나겠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갓 지은 냄비 밥을 맛보러 부산식당과 우리나라의 차에 반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안선재 씨가 자주 방문한 전통찻집 지대방에 들러보고 싶다.


책에서 소개하는 인사동에는 이색 장소들도 많지만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온 백년가게들도 많아 눈길을 끈다. 1902년 대한제국 시절 개업한 이문설농탕, 1913년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필방인 구하산방, 1919년 시작한 낙원떡집 역시 100년이 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인사동을 오가다 승동교회는 자주 봤던 거 같은데 그곳이 서울시 유형문화재이며 조선시대 교회 건물로 3.1독립 운동의 현장이었다는 걸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특히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소환되는 천상병 시인에 대해선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의 아픈 상처처럼 남아있어 귀촌이라는 찻집에도 시간을 내어 가보고 싶다.

이번 겨울 한파가 좀 덜 해지면, 주말 오후에 아이의 손을 잡고 인사동 골목골목을 어슬렁어슬렁 거닐러 가고 싶다. 물론 이 책 <인사동에서 만나자>를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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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리도 잘 쓸 수 있습니다 - 카피라이터가 알려주는 글에 마음을 담는 18가지 방법 better me 1
박솔미 지음 / 언더라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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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몇몇 있다.

조용히 야무졌던 박 아무개, 이 사람은 어떤 상황이든 목소리는 직접 안 내지만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렸던 사람이다.

모두가 이쪽을 바라볼 때 저쪽을 한 번씩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김 아무개. 이 사람은 지금도 한 번씩 신선한 리프레시를 받고자 할 때 의견을 구한다.

사석의 짧은 대화에서도 쓸모없는 말은 해본 적 없어, 모두의 시선의 그의 입으로 향하게 했던 고 아무개. 상사가 개인 면담을 요청하며 자문을 구할 정도로 혜안이 넘쳤던 사람. 결국 동화 작가가 되겠다고 직장을 그만두었지. 이들 세 명의 공통점은 정말 글을 깔끔 지게 잘 썼던 사람들이다. 맡은 업무 상 동료들의 글을 보게 될 일이 많았는데, 이 세 사람의 글은 카피하여 다음에 적절하게 적용해야지 할 정도의 표현들이 흘러넘쳤다. 비록 문장의 수준이 화려하고 내용이 많더라도 쉽게 정리되지 않고, 그래서 내용이 뭐였지? 기억도 안 나는 보고서는 참 많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중언부언하는 평소 말하는 모습도 글에서 겹쳐 보여, 그들의 지성을 조금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저 세 사람의 글을 읽으면 내 머리도 정리되면서, 같은 걸 보고도 이렇게 표현하거나 바라보면 되는구나 하고 배우기도 했다. 이들의 글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남들은 12문장으로도 다 담을 수 없던 게 3~4문장으로 간결하지만 다 담겨 있었다. 오히려 글을 읽고, 그들이 내민 힌트나 아이디어를 발판 삼아 더 뻗어가게 하는 자양분이 되어, 힘을 주는 글이라 여겼다.


이 책 <글, 우리도 잘 쓸 수 있습니다>는 시인도 소설가도 아니지만 매일 글을 쓰고 있는 '우리들'을 돕기 위해 나왔다. 작가는 실제 카피라이터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한 18가지의 방법을 알려준다.


저자의 소개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직장 멘토가 내 보고서를 읽고, 깨알 같지만 꼭 필요한 첨삭을 해주는 기분이 든다. 오랫동안 전수된 씨간장 같은 알짜 정보가 있어 글을 쓰는 이들이라면 책상에 두고 수시로 읽으면 좋을 거 같아 추천한다.

그렇다고 글쓰기 노하우만 담은 게 아니다. 오히려 글에 담아야 할 핵심은 '진정한 마음'이라는 걸 서두와 책의 말미에 다시 한번 강조한다.

글의 표현을 빌자면, '잘 다듬어진 속마음, 그게 바로 좋은 글'이라고 전한다.

작가는 글을 쓰려 했던 '첫 마음'이 잘 전달되도록 돕기 위해 애쓴다.

다듬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여기서는 18가지로 소개한다.


글쓰기 방법 <18가지의 방법들>


여러 방법 중 배워야 할 게 보여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있어 빌리티의 함정', '말꼬리라는 재주', ' 없이도 쓸 수 있다'가 실제 글을 쓸 때 팁을 주었고, 의식하지 않으면 자주 쓰게 되는 비문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했다.

무엇보다 70~75쪽의 '글의 진짜 이유 찾기'는 글을 쓰는 방향성에 대해 한 번 더 짚어줘서 고마웠다.

'이 글로 내가 뭘 하려는 거지?', '이 글의 진짜 주인공은 누구지?', '이 글을 보고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지?' 이 핵심 질문을 기억한다면 글은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힐 것 같다.


글에서 왠지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 들 때. 자꾸 첨언하는 지루한 문장을 발견할 때. 간결하지만 세련되게 내 생각을 전하고 싶을 때. 글을 어디서부터 손봐야 할지 모를 때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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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현실과 환상이 만나고 다투다가 하나 되는 무대 클래식 아고라 2
일연 지음, 서철원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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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출판사에서 CA(클래식 아고라, Classic Agora) 시리즈를 내고 있다.

출판사는 지루하기만 한 고전보다 흥미진진한 몰입감을 선사하는 새로운 품격의 고전, 중역과 낡은 번역으로 점철된 고전이 아니라 젊은 학자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고전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시리즈의 시작은 임진왜란에 관한 뼈아픈 반성의 기록인 유성룡의 <징비록>이었고, 두 번째 편은 바로 일연의 <삼국유사>이다.


고전을 읽어야 함은 누구나 많이 들어 그에 대한 부담감은 항상 있어 왔다. 하지만 고전에 대한 접근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난해하거나 처음 접하는 고언어와 지루함이다.

이를 반영하여 젊은 감각의 학자들의 시각으로 요즘 시대의 감각에 맞춰 번역 및 해설을 함께 수록하여 난해한 고전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고전 시리즈가 나왔다 하여, 용감하게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삼국유사 읽기에 도전했다.

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그 두께와 표지의 단조로움에 약간 실망했다. ㅠㅠ

역시 고전은 표지와 두께부터 부담을 주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번역과 해설을 한 서철원씨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 삼국유사의 제목과 그 뜻을 소개하면서 부담 가질 필요 없다고 단단히 일러둔다. 삼국유사는 말 그대로 유사’, <삼국사기>를 쓰면서 빠뜨린 일, 남겨진 일, 버려진 일이기에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읽을 필요 없이, 아무 곳이나 펼쳐 읽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그런대로 다른 곳을 읽더라도 무방하다고 말한다.



목적 없는 자유로운 읽기야말로 빠뜨린, 남겨둔, 버려진 일을 부담 없이 대할 수 있는 자세일 것이다. -12

삼국유사를 정식(?)으로 처음 접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위안이 된다.

 

원래 삼국유사의 체제는 왕력편, 기이편, 그 밖의 것들을 모은 나머지 이렇게 셋으로 나누지만, 이 책은 크게 기이편()()편과 불교적인 내용인 흥법편, 탑상편, 의해편, 신주편, 감통편, 피은편, 효선편 등 전체 아홉 편으로 구성하였다.

<목차>


기이편은 임금과 관련된 이야기인 와 비현실적 존재를 다룬 가 붙어 현실과 환상의 존재가 모두 나온다.

읽다 보면, 우리가 익히 들어왔던 건국 신화나 옛날이야기의 모티브를 많이 찾을 수 있어 제일 재미있었던 부분이다. 기이편은 시대별, 국가별, 임금별로 꾸며져 있어 쭉 읽다 보면, 부담 없이 책장이 넘어간다.

고조선 단군왕검의 곰과 호랑이 신화나 알에서 나온 삼국의 왕의 신화 등이 나온다.

여기서는 성씨나 호칭의 유래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신라 시조 박혁거세 왕의 신화에서 박 모양의 알에서 태어나 성을 이라 하였고, 석탈해의 씨는 오래전(’) 탈해가 호공이라는 사람의 집을 꾀를 내어 빼앗아 씨 성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한국인의 많은 성씨 씨 또한 황금 상자에서 사내아이 알지가 났는데, 여기서 금을 뜻하는 이 붙여져 (경주) 김씨 성의 시조 김알지로 불린다. 또한 신라의 왕을 지칭하는 용어 중 이사금이라는 칭호도 있는데, 이는 이빨 자국(잇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진한의 여섯 촌에서 촌장들이 모여 왕을 뽑을 때 떡을 씹어 이빨 자국을 세었다고 하여 여기에서 잇금(이사금)이 유래하여 지금의 임금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리고 수많은 임금의 사후 모습도 소개된다. 고조선의 시조인 단군왕검은 1,908세에 산신령이 되었고, 신라의 시조 혁거세 왕은 승천한 후 7일 뒤 몸이 나뉘어 땅에 떨어졌는데, 이때 머리와 사지를 각각 다섯 릉으로 만들어서 오릉이라 한다. 탈해왕은 토함산의 산신령이 되었고, 문무왕은 동해의 용이 되었다.

 

읽다 보면 꿈, 괴이한 귀신과 동물, 신통한 저 세상 물건과 신묘한 일, 점괘 등이 나온다.

그중 선덕여왕의 3가지 예언, 만파식적, 처용 이야기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다. 처용의 아내는 전염병 귀신도 사랑할 정도의 미모를 지녔다. 전염병의 신은 사람으로 둔갑해 밤에 처용의 집에 가 그 아내와 동침한다. 귀가하던 처용은 그 광경을 보더니, 노래하고 춤추며 물러난다. 그 유명한 처용가가 소개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원조 격인 경문왕 이야기도 재미있다. 그리고 거북이 등에 새겨진 백제의 멸망을 예언한 글귀도 나오는데, 이는 백제는 보름달, 신라는 초승달이라는 예언이다. 가득 차 곧 기울어지는 백제의 운명을 예언한다.

 

중간중간 다양한 고대의 노래도 요즘 언어로 바꾸어 소개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워 신들에게 잡혀간 수로부인을 내놓으라는 노래 <해가>, 소 치던 노인이 수로 부인에게 철쭉꽃을 꺾어 바치며 불렀던 <헌화가>를 요즘의 말로 쉽게 번역해 다시 들려준다.

비단을 짜 가사를 무늬로 새겨 당나라의 임금을 기쁘게 한 진덕여왕의 <태평가>를 읽어보면, ‘그 당시 칭송은 이렇게 하였구나하고 가사를 눈여겨 여러 번 보게 된다.

 

<태평가>

당나라가 세워지니

황제의 뜻 높고 높아

전쟁이 그치고 평화가 열려

문치를 닦아 옛 임금 이으사

하늘과 통하니 자연도 잘 따르며

만물을 다스려 깊은 덕 품으리니

깊이 어진 마음 해와 달을 짝하고

편안한 운수 요순시절보다 더하리라.

깃발은 어찌 그리 빛나게 펄럭이며

징이며 북은 또 어찌 굉장하던지!

말 안 듣는 변두리 오랑캐들쯤은

엎어지고 천벌 받으리라.

중화의 풍속 온 누리에 퍼져

밀거나 가깝거나 앞다투어 받아들이고

황제의 총명이 1년 내내 어우러져

해와 달과 다섯 별도 만방을 다 비추리.

산신령님께서 보필할 재상을 태어나게 하고

황제께서 그런 충신을 잘 임명하사

53황 이래로 한결같은 덕 이루어져

우리 당나라 황실을 밝히시리라. 88-89

 

3편 흥법, 불교의 전래부터 9편 효선, 효와 선행의 실천까지는 주로 삼국 시대 불교의 전래와 사찰과 탑의 유래, 승려의 일화와 가르침을 담았다. 그 유명한 이차돈의 순교와 그의 머리가 날아가 떨어진 곳에 지어진 백률사, 우리나라의 최초 다문화 가족인 금관가야 시조 수로왕의 부인이 인도에서부터 싣고 온 호계사의 파사석탑도 소개한다.

 

그리고 승려의 일화에서는 후대 많은 이들의 문학적, 예술적 영감을 준 조신의 꿈이야기도 나온다. 신라의 승려 조신이 짝사랑한 여인과 꿈에서 혼인하여 일생을 함께 보내다 굶주림과 병마에 못 이겨 헤어지는 장면에서 내뱉는 여인의 말과 이에 크게 기뻐하는 조신의 모습이 매우 현실적이라 씁쓸하기도 하다.

“... 집집마다 구걸하기 산더미처럼 부끄럽고, 춥고 배고프다는 아이들도 보살피지 못하네요. 그러니 부부의 정이 있을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청춘의 얼굴은 풀섶에 이슬처럼 허무하고, 부부로 살잔 약속도 바람 앞에 버들처럼 연약하군요. 당신은 제 탓에 되는 일이 없고, 저는 당신 탓에 걱정만 늡니다. 생각해 보면 옛날 기뻤던 일들이 재앙의 시작이었어요. 당신과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다 모여 굶주리며 살기보다는, 차라리 짝을 읽고 그리워하는 게 낫겠지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게 인정에는 못 할 일이지요. 그러나 가고 멈추는 게 사람 마음대로 안 되고, 만남과 이별도 팔자대로니까요. 이제 헤어집시다. 275-277

비록 꿈이지만 인간사의 욕망과 번거로움, 고뇌가 잘 녹여져 있다.

 

이렇게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이어가는 삼국유사의 이야기는 옛날 할머니 무릎을 베고 전해 듣던 옛이야기들이 떠올라 따뜻한 고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순서를 크게 따지지 않고, 옛날 고시대의 사람들과 성현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 읽다 보면 어느새 두꺼운 책도 뚝딱 그 끝을 드러낸다. 번거로운 고언어의 해석으로 그 재미에 빠져들기 어려웠던 기존의 삼국유사에서 벗어나 쉽게 읽히도록 재탄생시킨 아르떼의 클래식 아고라 시리즈의 <삼국유사>를 읽고 나니 고전의 새 시대를 열겠다는 출판사의 포부가 허튼소리가 아님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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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면서 익히는 클래식 명곡 - 음악평론가 최은규가 고른 불멸의 클래식 명곡들
최은규 지음 / 메이트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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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QR코드는 학생들이 보는 문제지는 물론이고, 일반 서적에도 골고루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QR코드가 매우 필요 적절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이보다 더 있을까 싶은 책이 나왔다.

책을 보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들으면서 익히는 클래식 명곡>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에서는 만날 외국인의 명료한 발음이나 강의, 관련 동영상을 보여주는 등 부차적인 데 사용하던 QR코드가 클래식 명곡과 연주 클립을 담아 매우 필요 적절하게 책의 주인공 역할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내 눈과 귀는 매우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며 지루할 틈이 없던 거 같다.

이 책의 저자 최은규 씨는 바이올리니스트, 음악 칼럼니스트, 책도 쓰고 강의도 하는 등 여러모로 클래식을 알리는 데 힘쓰는데, 무엇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KBS 클래식 FM의 <FM 실황음악>의 진행을 맡고 있다.

지은이의 말을 읽어보면, 이 책을 쓰기까지의 저자의 고민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클래식을 좋아하고는 싶지만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클래식 초보자를 주요 독자로 삼은 거 같다. 음악회에 가서 곡목 해설 원고를 읽다가 어려워서 그냥 덮은 기억이 있다면, 도대체 이 음악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표현되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런데 설명과 함께 그 부분만 속히 음악과 함께 감상하고자 한다면 바로 이 책을 읽으면 된다.

이 책에서는 어떤 곡의 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주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어떤 악기로 연주하는지 들을 수 있도록 악곡의 주요 부분을 편집한 음원을 일부 넣어 음악 작품을 해설한다.-지은이의 말 중에서. 7쪽

예를 들면 악기의 여왕, 바이올린 편에선 바이올린의 서정미와 화려함을 모두 담은 곡, 사라사테 <치고이너바이젠>의 제목 옆의 QR코드를 연결하면 Sara 장의 곡 연주 동영상이 뜬다. 전문가인 저자가 권해주는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자들이 연주한 음원을 주로 골랐다고 하니 듣는 귀의 수준이 훌쩍 오르는 것 같다.


소제목 옆의 큐알코드는 전곡을 들을 수 있는 큐알코드가 있다.

바이올린 편에서는 사라 장의 연주 동영상을 연결한다.


전곡을 감상하면서 책을 읽어 나가면, 책의 중간중간에 이 곡의 부분적인 음원 클립을 따로 편집한 음원 QR코드들이 나온다. 이는 왜 이 악기와 이런 진행으로 흘러가는지 클래식의 부분 부분을 감상할 수 있어 클래식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글을 읽으면서 부분적으로 편집한 음원을 들을 수 있도록 큐알코드로 연결하였다.


우리 집의 초등 2학년 아들과 함께 이 책을 보면서 전곡을 듣기도 했지만 이렇게 부분적으로 소개된 음원 클립을 들으면서 연상되는 장면 말하기나 연상되는 동물 말하기, 악기 유추하기 등등 재미난 활동도 해보았다. 아들은 46~ 48쪽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동물들마다의 특성이 담긴 음원 클립들과 리코더와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4번의 음원 클립(99쪽)을 무척 흥미롭게 들었다. 초등학교에서 형님들이 흔하게 들고 다니는 플라스틱 작은 악기 리코더가 새삼 이렇게 멋진 악기인가 아이와 나도 함께 놀라며 감상했다. 물론 악기의 이름을 유추해 보는 등 놀면서 시작했지만 어느덧 아이와 함께 여러 번 음원들을 감상하며 저자가 짚어주는 포인트를 다시 한번 느껴보기도 하고, 아이에게 설명하면서 함께 클래식을 즐겨보는 귀중한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 책은 크게 5부로 나눠 클래식의 입문을 돕는다.

1부는 처음에 어떤 악기 소리에 이끌려 클래식 음악에 갖게 된 이들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며 저자는 써 내려갔다. 사실 1부가 제일 끌리긴 했다. 나 역시 좋아하는 악기인 첼로와 피아노 부분부터 읽어 나갔다. 읽다가 귀에 익숙한 팝송 '미드나이트 블루'에 차용된 곡이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 2악장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연결 짓기도 했다. ^^;;

조성진의 녹턴을 전곡으로 감상하며 내성적이었던 쇼팽의 성향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책에는 곡의 설명과 작곡가의 생애, 악기의 역사 등 다양한 정보를 쉽게 잘 풀어놓았다.


2부에서는 협주곡에 대한 글이다. 2부에서는 특정 악기 소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특히 저자가 풀어놓은 바이올린 협주곡인 비발디 <사계>는 2부의 묘미다.

비발디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시작하여, 비발디가 적어놓은 곡의 해설과 더불어 저자가 해석해 주는 곡의 설명을 읽다 보면 음악과 함께 그 계절의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올라 이런 저자의 해설 솜씨에 감탄할 따름이다. 비발디의 <사계>가 이제야 내게 비로소 '꽃'이 되는 경험이었다.


3부는 짧은 관현악곡으로 오케스트라와 친숙해지도록 구성하였다. 특정 악기 소리에 귀를 연 뒤 여러 악기들이 함께하는 관현악곡을 들으며, 어디선가 많이 듣던 친숙한 곡을 많이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4부에서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교향곡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비록 곡의 길이는 길어졌지만 그간 독주곡과 협주곡으로 연 귀로 여러 악기가 만들어내는 그 어울림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악기의 조화로운 연주에 집중하다 보니 이전엔 들을 수 없던, 이해할 수 없던 교향곡의 매력을 조금을 알 수 있었다. 이는 곡을 들으며 저자의 세심한 곡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가능한 거 같다. 제일 관심이 갔던 곳은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인 <교향곡 제41번 주피터>였다. '주피터'라는 부제가 붙은 이유도 신들의 왕으로 통하는 주피터라는 이름에 걸맞게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라고 하니 꼭 감상해 보길 바란다.



마지막 5부에서는 클래식 감상의 종착지라 불리는 실내악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수의 음악가들이 어우러져 연주하는 실내악에 대해 정확히 구분할 줄 몰랐었는데, 다큐멘터리나 귀족의 저택을 배경으로 한 영화 등에서 많이 보던 궁전에 마련된 홀에서 연주하던 음악을 그렇게 칭한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저자가 설명해 주고, 친절하게 링크로 연결해 주는 실내악곡을 들으니 왠지 더 끌리고, 귀에 잘 들리는 듯하다.

책을 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는 저자의 말은 책을 읽는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수준의 연주를 엄선해서 찾아내고, 설명에 어우러지게 곡의 부분부분을 음원 클립으로 편집하며, 어떻게 하면 더욱 쉽고 친숙하게 클래식을 설명할지 고민한 저자의 세심한 노력이 정말 잘 드러나는 책이다. 중간중간 나올 수밖에 없는 음악 전문 용어도 각 장 사이사이에 팁 박스로 넣어주는 저자의 센스와 독자에 대한 배려, 클래식에 대한 애정이 전해졌다.

이 책을 빨리 알게 돼서 참 고맙다. 이 책으로 클래식에 입문하게 되어 고맙고, 좋은 안내자를 알게 되어 인생에 있어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아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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