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마태우스 > 의사 얘기: 인기과의 명암

 

 

 

 

 

* 별로 재미는 없고 길기만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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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론

내 동기들이 졸업을 하던 91년, 조그맣게 화제가 되었던 일이 있다. 그해 졸업한 학생들 중 1, 2, 3등이 모두 안과를 지원했던 것.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4등을 했던 친구도 원래 안과를 하려고 했는데 성적에서 밀려 포기를 했다는 말도 들렸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2년, 모 신문에는 서울의대 졸업생 중 1, 2, 4등으로 졸업한 학생이 안과를 지원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지난 10년간 안과는 인기과의 최정상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 안과 외에도 피부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등도 인기가 높아, 웬만큼 성적이 좋지 못하면 지원하지 못한다.


이들 과가 늘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공부를 좀 잘한다 싶으면 누구나 내과를 꿈꿨고, 내과의사야말로 진정한 의사라고 인식되기도 했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내과에 지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과의 위상은 화려했던 과거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 흉부외과 역시 마찬가지다. 심장 수술이라는 지극히 위험한 수술을 담당해 자부심이 높았던 옛날과 달리, 이제 지원자가 없어 할당된 숫자를 채우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계 내의 인기판도는 왜 이렇게 달라지는 것일까?


2. 인기판도를 결정하는 요인

1) 돈

인기판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돈이다. 어떤 사람들은 의사들에게 쉬바이쩌 같은 봉사심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의사 역시 남들과 똑같이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에 불과하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식당을 열고 싶은 것처럼, 의사들이 돈을 쫓아 움직이는 것은 비난받을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일부 의사들은 어려운 관문을 뚫고 의사가 된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돈에 더 집착하는 행태를 보이는데, 이런 사람은 어느 직업군에나 있고, 의사라고 해서 특별히 심한 건 아니다.


종합병원에서 월급을 받는 봉직의에 비해 개업의는 훨씬 돈을 잘 벌 수 있는데, 안과, 피부과, 성형외과가 인기가 있다면 그건 쉽게 개업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개업을 해도 어지간해서는 망하지 않는다. 눈은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는 민감한 장기인데다 한사람당 두 개씩 있고, 2년 전처럼 아폴로 눈병이 돌기라도 한다면 일년치 수입을 한달만에 올릴 수도 있다. 뒤의 두 과는 미용산업이 날로 팽창함에 따라 인기를 얻고 있으며, 보험 처리가 안되는 게 많아 떼돈을 벌기에 적합하다.


반면 내과는 개업이 그다지 쉽지 않다. 옛날과 달리 요즘의 내과는 호흡기내과, 순환기내과, 신장내과같이 세분화가 되어 버렸는데, 종합병원에 취직을 한 경우라면 모를까 개업을 하게되면 자신의 전문성을 별로 살리기가 힘들다. ‘신장내과’로 개업을 한다고 치자. 신장 쪽 환자 말고는 가기가 꺼려지지 않겠는가. 신장 환자가 그다지 많지 않고, 그나마 다 종합병원에 가버리니 굶어죽기 십상이다. 그냥 ‘내과’로 개업을 한 뒤 감기 환자를 비롯해서 모든 환자를 다 보는 이유는 거기에 있지만, 이 경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2) 취직

이런 농담이 있었다. ‘내과의사는 아는 건 많은데 해주는 건 없다. 외과의사는 아는 건 없는데 해주는 건 많다. 정신과는 아는 것도 없고 해주는 것도 없다’

그렇게 해주는 게 많았던, 그래서 내과와 더불어 최고 인기과였던 외과의 몰락은 80년대에 찾아왔다. 오죽했으면 외과의사들이 모여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된 이유는 취직 자리가 보장되지 못해서였다.


다들 알다시피 외과는 수술을 한다. 수술을 하려면 인력이 제법 필요하다. 숙련된 간호사가 있어야 하고, 보조를 할 의사도 필요하다. 레지던트가 교수 수술에 들어가는 건 배우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수술 내내 간을 당기고 있거나 전기로 지져 작은 출혈을 막는 식으로 수술을 돕고자 함이다. 간단한 수술과는 달리, 큰 수술은 절대로 혼자 할 수 없다. 그래서 외과는 개업을 하기 힘든 과다. 위암 수술만 배운 사람이 개업을 해서 도대체 뭘 하겠는가? 개업을 한 내과의사처럼 감기 환자를 진료하면서 생계를 이을 수밖에. 정체성에 대한 회의는 훨씬 더 크기 마련이다.


해결책은 취직을 하는 것. 자신이 교수로부터 배웠던 것처럼, 종합병원에서 부하들을 가르쳐가며 수술을 하는 게 외과의사들의 공통된 목표다. 하지만 종합병원의 숫자는 제한되어 있고, 먼저 있던 교수가 그만두지 않는 한 일자리는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외과의 속성상 레지던트 숫자가 많은 편이라, 서울대만 해도 일반외과 레지던트의 숫자는 한 년차에 열명이 넘을 정도다. 그러니 전국에서 쏟아져 나오는 외과 전문의들이 무슨 수로 다 취직을 하겠는가. 앞날에 대한 불안, 그게 외과 지원을 망설이게 만드는 이유다. 그 결과 90년대 초반, 서울대병원 외과에는 지원자 수가 8명에 불과, 미달 사태를 빚기도 했다.


3) 3D

옛날만 해도 신경외과는 공부를 잘해야 할 수 있는 과였다. 아직도 밝혀야 할 게 너무도 많은 사람의 뇌, 그 뇌를 만진다는 건 얼마나 머리 아픈 일인가. 보람이 있는만큼 신경외과 일은 고되기 그지없다. 오죽하면 신경외과 레지던트들은 엘리베이터를 못타게 한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격무에 시달리다보니 엘리베이터만 타면 잠이 들어, 엘리베이터와 더불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런 말이 있다. 신경외과 의사들은 결혼을 두 번 한다고. 레지던트 시절에는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다보니 병동 간호사와 대충(?) 하고, 나중에 좀 여유가 생기면 또다시 결혼을 한다는 뜻이다.


3D 업종이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는 건 시대적 대세, 이토록 힘든 신경외과가 인기가 떨어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 때만 해도 신경외과를 하겠다는 친구에게는 “안됐다”는 위로의 말이 쏟아졌으니, 지금 신경외과에 남는 사람들은 아마도 의학에 대한 숭고한 정신을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흉부외과의 인기 하락도 그게 3D에 속해있는 탓이다. 심장을 멈춰놓고 심장수술을 하는 건 보람도 있고 드라마틱한 일이지만, 문제는 너무 힘들다는 것. 간이야 조금 찢어먹어도 별 지장이 없지만, 심장 수술은 조금만 실수해도 환자의 생명이 왔다갔다 한다. 때에 따라서는 열시간이 넘는 수술을 하기도 하는 흉부외과, 그 긴 시간 동안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요즘같이 편한 것을 추구하는 시대에 그렇게 인생을 살고픈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힘들기로 친다면 해부병리도 만만치 않다. 병리과의 임무는 편안히 앉아서 슬라이드를 보는 거라고 알고 있지만, 수술을 받은 환자의 표본을 다 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며, 해야 할 일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다. 수술장에서 지키고 섰다가 떼어낸 조직이 양성인지 악성인지를 즉석에서 판명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악성인 경우 그 주위 장기까지 다 떼어내야 하므로, 환자의 향후 삶이 병리의사의 판독에 의해 결정되는 거다. 환자가 죽기라도 하면 부검을 하는 것도 역시 병리의사의 몫이다. 기생충을 의심한 환자가 있어 병리과 의사인 친구가 부검하는 걸 가서 본 적이 있는데, 평소 연약하던 그 친구가 그때처럼 안쓰러운 적이 없었다. 그러니 병리를 하겠다는 사람이 거의 없는거다.


4) 방사선과의 부침

십여년 전만 해도 방사선과는 지원과였다. 하겠다고 손만 들면 레지던트를 시켜 줬으니까. 왜 인기가 없었을까? 개업을 못해서다. X-레이는 환자 진단에 필수적인 것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개업을 하겠는가? 그러던 방사선과가 갑자기 뜨기 시작한다. 의학에 있어서 혁명적인 기계 CT와 MRI가 등장했기 때문. 해부해서 보는 것처럼 환자의 단면을 낱낱이 보여주는 이 기계들은 곧 웬만한 규모를 갖춘 모든 병원에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그 기계를 사려면 해당 병원에 전문의 자격을 가진 방사선과 의사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방사선과의 인기는 급격히 올라갔고, 방사선과 의사를 서로 데려가려고 싸우는 광경도 벌어졌다. 90년 서울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선배가 방사선과를 선택한 건 그 상징적인 예였다.


그러다보니 방사선과로 개업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서울대병원의 CT와 MRI가 밀려드는 환자들을 다 소화해 내지 못하던 시절, 그 옆에 최신 장비로 무장한 방사선과가 문을 열었다. 이름하여 <혜화진단방사선과의원>. 그 병원은 이내 급히 사진을 찍어야 하는 환자들로 미어 터졌다. 보조 의사를 둘, 셋씩 둘 정도로 성황을 이루던 그 병원은 새로 병원장이 된 모 선생님의 정책-밤을 새워서라도 우리 병원서 찍어라!- 때문에 타격을 입긴 했지만, 머리를 잘 쓴 성공적인 병원으로 기억되고 있다.


뜨는 게 빨랐던만큼 몰락도 순식간에 찾아왔다. 인기에 편승해 레지던트 숫자를 정신없이 늘리다보니, 십년도 되기 전에 방사선과의 인기는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병원에 CT와 MRI가 들어오고 나자 더 이상 신규 수요가 필요없었던 것. 방사선과에 지원하는 숫자는 금방 줄어들었다. 대부분 병원의 방사선과가 레지던트 정원을 채우지 못했고, 숫자가 적다보니 남은 사람의 업무량도 늘어나는 등 힘든 시절이 몇 년간 계속되었다. 하지만 배출되는 의사가 적다보니 수요가 다시 늘어났고,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호시절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줄을 잘서야 한다’는 말은 의료계에서도 진리다.


5) 마취과 의사는 어떻게 사나?

수술 중 마취를 담당하는 마취과 의사는 당연히 종합병원에 취직해야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랬다. 방사선과가 그랬던 것처럼, 마취과에도 개업은 어려운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다면 종합병원에 취업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산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전신마취는 큰병원에서만 하는 건 아니다. 턱을 깎을 때처럼, 개업을 한 성형외과에서도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일이 늘 있는 것도 아니니, 의사를 고용해서 월급을 줄 여력은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경우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는 거다. 마취 몇시간 해주고 수십만원을 만진다면 짭짤하지 않는가? 개업을 하는 것처럼 초기 투자도 필요없고, 휴대폰만 있으면 된다니 얼마나 편한가. 요즘에는 그렇게 불확실하게 하는 것보다 오늘은 이병원, 내일은 저병원, 이런 식으로 스케줄을 잡아놓고 사는 의사도 많다. 그 정도면 개업보다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진짜로 개업을 하는 마취과 의사도 있다. 이름하여 ‘통증 클리닉’. 말기암 환자처럼 소생할 가망이 없는 환자를 마약 같은 것을 써가지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곳이다. 취지는 좋지만 이걸 해서 떼돈을 벌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는 걸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기상조가 아닌가 생각된다.


3. 의료계의 현황과 미래

요즘 경제가 어렵다보니 이런 말이 나돈다. “강남의 성형외과 절반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강남역 주변을 매일같이 배회해 보라. 월 1억을 번다는 ‘원진 성형외과’를 비롯해서 성형외과 간판은 늘 그대로 달려 있고, 새로 생기는 간판도 가끔 보인다.


게다가 병원이 망하는 건 회사가 망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회사는 망하면 빚더미에 오르지만, 병원이 문을 닫는 건 대개 이런 이유다. “이거 벌려면 내가 왜 개업을 했을까? 때려치워야지!” 다시 말해 봉직의가 받는 돈보다 크게 더벌지 못하는 걸 ‘망한다’고 하는 거다. 봉직의는 얼마나 벌까? 의사들 중 월수입을 공개하는 의사가 없으니 나도 말하지 않겠지만, 재벌2세로 행세하는 내 봉급은 전체 의사들 중 하위 30%에 속한다는 게 의사신문의 하나인 <청년의사>의 분석이다. 물론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개업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걸 빌미로 의사들이 다 어려운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것은 부당한 것 같다. 의사들은 “의사 좋은 시절도 다 갔다”라고 말하지만, 다른 직종에 비하면 의사는 아직도 좋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의대의 커트라인이 그렇게 높을 리가 없고, 의사들이 자기 자녀를 곧 죽어도 의사로 만들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내가 보기에 의료계의 문제는 지나친 양극화다. 들은 얘긴데, 모 피부과에서 서울대병원 피부과 4년차들에게 ‘월급을 천만원 줄테니 오라’고 했는데 한명도 안갔다고 한다. 천만원이 적어서 안갔는지, 아니면 다른 뜻이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류의 얘기들은 3D 업종에서 묵묵히 일하는 다른 의사들의 기를 죽인다. 휘플 수술이라고, 췌장암 같은 거에 걸리면 췌장 뿐 아니라 인근 장기들, 즉 담낭과 십이지장, 위 일부를 잘라내는 건데, 대여섯명이 몇시간 동안 달라붙어 해봤자 받는 돈이 고작 몇십만원에 불과하다. 성형외과에서 턱을 깎는 값인 천만원에는 물론이고 쌍거플 수술 비용보다도 적다. 가슴에 식염수를 넣는 게 500만원인데, 밤을 새가며 애를 받아봤자 몇십만원을 받는다면 너무하지 않는가? 그래서 다른 과를 전공한 사람들도 죄다 미용산업에 뛰어들고, 내과나 정신과, 가정의학과도 다이어트 쪽으로 나가고 있는거다.


의료수가는 분명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말을 하면 ‘가재는 게 편’이라고 비난하겠지만, 의료수가는 애당초 너무 낮게 책정되었다. 의사들이 비보험이 많은 쪽으로 몰리는 건 그런 결과고, 계속 이렇게 나간다면 일부에서 우려하는대로 3D 업종의 의사는 동남아에서 수입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람’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 일, 뇌수술과 심장수술이 중요하다면 그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돈을 벌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3D 업종 의사들이 우대받는 사회, 내가 바라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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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anda78 > 서양미술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선, 면, 색채, 빛, 구성 등 미술의 형식에 따라 감상하는 방법-양식사적방법

도1의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제작한 <최후의 만찬>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도2의 작품은 같은 주제를 그린 틴토레토의 작품입니다. 서로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1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1498년, 460×880cm
밀라노, 산타마리아 델라 그라찌아
 
 
도2 틴토레토 <최후의 만찬>
1592-94년, 캔버스에 유채, 363×568cm
베네치아, 산 조르지오 마죠레
 
 

레오나르도는 예수를 중앙에 놓고 12명의 제자를 식탁의 양쪽에 놓았으며, 마치 그들이 방의 한쪽에서 식사하고 있듯이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넓은 방의 양쪽 창문과 천장의 선들에 기하학적인 원근법을 사용하여 소실점이 주인공인 예수에게 모아지기 때문에 우리의 시선은 주인공에게 집중하게 됩니다. 반면에 틴토레토는 식탁을 대각선으로 놓았습니다. 주인공인 예수와 제자들보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이 더 크고 번잡스럽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시선은 예수를 찾게되어 있는데 이는 바로 예수의 두광에 강한 빛을 구사하였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는 화면 왼쪽에서 오는 은은한 광선을 적용하여서 모든 인물과 사물은 양감과 함께 중간 톤의 색채를 띄는데 반해, 틴토레토는 인물들의 뒤에 강한 등불을 놓아 인물들은 역광을 받아 어둡게 처리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과학적인 공간묘사와 안정된 구도, 사실적인 인물묘사를 끌어내었습니다. 이와 달리 틴토레토의 <최후의 만찬>은 역동적인 구도와 인물의 순간적인 묘사, 그리고 사건의 극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전자는 르네상스양식을 후자는 매너리즘양식을 대표합니다. 이렇게 그림이 지닌 형식을 기준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우리는 양식사적인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2)도상학적 방법

그럼 우리는 식탁에 여러 사람이 앉아있는 위의 그림을 보고 어떻게 <최후의 만찬>인 줄 알았을까요. 그것은 예수가 열 두 제자와 마지막 저녁을 하였다는 성경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천사가 한 여자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고 있는 장면이 있다면 그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아기를 가질 것이라고 예고하는 <수태고지>이야기입니다(도3).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고 있는 남자의 그림을 보고 부처님이라고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이렇게 특정한 이야기를 특정한 형태로 전하는 방법을 우리는 도상학적인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도상학적인 방법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게 하는 열쇠인 것입니다.

 

도3 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30년대 후반, 프레스코, 230×321cm
피렌체, 산 마르코 수도원
 
 
도4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년경,패널에 템페라, 172.5×278.5cm
피렌체, 우피치
 
 

여기 아름다운 여성이 누드인 채 조개 위에 서 있으면 여러분은 누구라고 하겠습니까(도4). <비너스의 탄생>이라고 하죠. 비너스는 美의 여신이고, 조개에서 태어났으니까요.

 

3)지식을 필요로하는 도상학적 방법

 

그러나 위와 같이 잘 알려진 도상도 있지만 많은 지식을 필요로 하는 도상들도 있습니다. 도5의 그림을 보십시오. 1784년 프랑스의 화가 다비드가 그린 그림입니다. 무장한 젊은이 셋이 중년의 남자에게 손을 뻗고, 중년의 남자는 그들에게 줄 칼을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그들의 가족인 듯한 여인들이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로마 건국 때 이야기로 로마와 오랫동안 숙적이었던 알바와의 싸움을 위해 출두하는 호라티우스형제들이 아버지에게 승리를 맹세하는 장면입니다. 호라티우스 형제들이 싸워야 할 적은 알바시의 퀴리아스 형제들이었는데 호라티우스형제의 누이 하나는 적의 형제들 중 한 명과 약혼한 사이였습니다. 누이들이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럼 프랑스의 18세기 말에 왜 로마의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18세기 말 프랑스사회가 요구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혁명 즈음 프랑스에서는 개인의 행복보다는 국가를 위한 애국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도상은 무엇을 그린 것인가라는 단순한 문제만이 아니라 왜 그것을 주제로 택하였는가를 해석하는 필요한 기본지식입니다.

 

도5 다비드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1784년

캔버스에 유채, 330×425㎝, 파리, 루브르 박물관
 
 

그러나 위에 설명한 미술품을 보는 방법들은 어느 한가지가 우월한 것은 아닙니다. 양식적인 방법과 도상학적인 방법은 미술품을 감상하는데 언제나 필요한 기본적인 눈이며 지식입니다. 그리고 작품에 따라서 요구되는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작품들을 어떤 한 가지 절대적인 잣대만으로 잴 수는 없으며, 이 양식은 좋고 저 양식은 나쁘다고 평가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미술품을 보는 우리는 언제나 당시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미술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ㅣ 출처 소개...http://home.mokwon.ac.kr/%7Earthistory/index.html

이은기와 함께 멀티미디어로 보는 서양미술사

이은기

홍익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
이탈리아 피사대학 문학박사
서양미술사학회 회장역임
홍익대학교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고대,중세,르네상스미술 강의
現 목원대학교 미술대학 재직


저서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 시공사
e-mail: eunkielee@hotmail.com

 

김미정

연세대학교 불문과 졸업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수료

역서
<베네치아의 르네상스> 예경
<바로크와 로코코> 시공사
<에곤 실레> 시공사

e-mail: mee_jung@hanmail.net

 

서양미술사 강의 자료가 있길래 주욱 퍼 오려고 합니다. 관심있으신 분들 보시면 좋을 듯 해서요. 그런데 복사해서 붙였는데 그림이 뜨나요? 안 뜨면 다시 올릴테니, 알려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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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정신분열병에 대한 지식 - 가족을 위한 정보 -

정신질환에는 많은 종류들이 있는데 입원환자의 과반수는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 병의 특징은 젊어서 발병하여 만성적인 경과를 밟으면서 서서히 인격의 황폐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만일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사람구실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기침, 콧물, 두통 등의 증상이 생기는데 정신분열병에서도 마찬가지로 병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보통사람에서 잘 볼 수 없고 환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을 양성증상, 보통사람에서는 잘 볼 수 있는데 환자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것을 음성증상이라고 합니다.

양성증상에는 망상과 환청, 와해된 언어, 왜곡되고 기이한 행동이 있습니다. 망상이란 잘못된 믿음으로 근거 없는 사실을 혼자서는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망상의 내용에 따라 자신이 남들보다 대단한 존재라는 과대망상, 남들이 자신을 괴롭힌다는 피해망상 등이 있습니다. 환청이란 실제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환자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를 말하는 것으로 주로 사람의 말소리와 똑같이 들립니다. 환청이 심각한 점은 때때로 환자들이 환청에서 시키는 대로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입니다.

음성증상으로는 현저하게 빈약한 언어 또는 내용이 없는 언어, 감정표현 능력의 감소, 무기력감, 무표정, 의욕저하 등이 있고 환자가 아무 것도 하기 싫어하고 꼼짝도 안하려고 하고 잘 먹지도, 잘 씻지도 않는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필요한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보통 대부분의 정신분열병은 이런 음성증상으로부터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 가족들이 환자의 모습을 보고 병으로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환자가 망상이 생기고 환청이 생겨 엉뚱한 행동을 하거나 엉뚱한 말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환자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이 병의 원인은 잘 모릅니다. 다만 여러 가지 원인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병이 생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원인적 요인에는 유전적 소인,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증가, 대뇌기능의 이상 등 생물학적인 요인과 초기 가족 관계 등에 대한 발달적 및 심리학적 요인들이 있습니다.

환자가 스스로 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병식이 있다'고 말하는데, 정신분열병 환자들은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환자들처럼 스스로 병원에 찾아오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가족들에 의하여 반강제적으로 병원을 방문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입원치료가 필요할 때가 많은데 그 이유는 정확한 평가, 일관성 있는 약물치료, 환자의 자해 및 타인에 대한 난폭한 행동으로부터의 보호, 기본적인 생활 욕구에 대한 제공 때문입니다.

보통 신체질환에 걸린 경우는 입원하고 나서 병을 다 낫게 한 다음에 퇴원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맹장염일 경우 맹장수술을 하고나서 회복한 후 퇴원하면 그걸로 치료가 끝입니다. 더 이상 병원에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열병은 다릅니다. 어느 정도 좋아지면 퇴원하여 '외래통원치료'가 시작됩니다. 보통 보호자들이 '퇴원해도 외래치료가 계속 필요하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병의 뿌리를 뽑고 완전히 다 나을 때까지 절대로 퇴원시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경우도 가끔 봅니다.

다른 어떤 병보다 정신분열병의 치료에는 가족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병이 만성적인 경과를 밟게 마련이고, 격리차원의 장기입원이 아니라면 결국은 환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환자를 입원시키고 나면 자주 면회를 오고, 담당의사도 자주 만나서 정신분열병에 대하여 많이 알려고 노력을 하여야 하며, 그렇게 되면 결국 환자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가족치료라고 합니다.

환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약물치료입니다. 환자들이 먹는 약을 항 정신병 약물이라고 합니다. 항 정신병 약물에는 많은 종류가 있으며 이 중에서 각 환자에게 가장 잘 맞는 약을 골라서 쓰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양성증상이 특히 약물치료에 잘 듣는데, 최근에는 음성증상에도 잘 듣는다는 약들이 속속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모든 다른 약들과 마찬가지로 항 정신병 약물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눈이 올라가거나 목이 돌아가는 것, 발음이 불분명해지고 침이 흐르는 것, 한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안 초조해 지는 것, 입마름, 변비, 작은 글씨가 잘 안 보이는 것, 졸리움 등이 있습니다. 이런 부작용은 대부분이 해소되므로 크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흔히 '정신과 약이 독하다', '정신과 약을 먹으면 바보가 된다'는 등의 잘못된 믿음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약을 잘 먹으면서 치료가 잘되고 있던 환자가 주변에서 이런 말을 듣고 약을 끊어 재발하게 되는 경우를 볼 때가 있습니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밖의 치료로는 개인정신치료, 집단치료, 사회기술훈련을 포함하는 행동치료, 재활치료 등의 다양한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습니다.

정신분열병의 경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예후에 대한 것은, 일반적으로 1/3은 심하게 아픈 상태로 있고 1/3은 호전되나 아직도 아픈 상태로 있다는 것입니다. 병식이 있는 환자가 보호자의 꾸준한 관심 속에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받을 때 정신분열병의 재발가능성을 낮출 수 있고 병을 이기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정신분열병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점점 더 병이 나빠지는 상태로 방치되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정신분열병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면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입니다.

동수원병원 정신과장. 정신과 전문의 이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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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극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인들에게 전하고, 하나님을 향한 교인들의 마음과 기원을 하나님에게 중제"하기 때문에 두 편의 관중을 갖고 있다. 연극은 배우와 관중들이 이뤄나가는 예술이지만 예배극은 배우와 관중들로서만 이루어질 수 없고 하나님의 임재(臨在)해야만 공연될 수 있다. 때문에 예배극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관중들만 의식하고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신(神)까지도 의식하고 연기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연극 무대구분에 의한 행동선(行動線)은 여기에 적합하지 않다.

하르트만의 예배극 <예언자와 목수>를 보면 연기자들이 신과 인간을 동시에 관중으로 생각하고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단과 설교대는 교회력에 의해 꾸며진다. 제단에 촛불이 켜지고 오르간 전주곡이 끝나면 요나를 제외한 모든 배우들이 교회당 뒤에서 교인석 사이를 통과하여 제단 앞에 선다. 그들은 제단을 향하여 절을 한다. 그리고 제단 위로 올라가고 선원들은 십자가와 같은 마스트를 들고 있다.- Olov Hatman

재단을 향하여 절을 하고 시작한다고, 무대지시문에서 밝힌 것은, 하르트만은 예배극이 신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관중이 지켜보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진행되어야 것을 증명하고 있다. 전통적인 서구 근대극에서 등을 보일 수도 있다. 제단이나 설교대는 관중들 앞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연기자들이 이 제단을 향하여 말해야 할 때는 교인들 쪽으로 등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40일 동안 심판이 오리라고 외쳤다. 그러나 니느웨에 심판이 오지 않았다. 그때 요나는 "어부가 바구니에 고기를 집어넣듯, 당신은 나를 구렁텅이에 넣었소. 그리고 죽음 속에서 나를 건져내어 모래 사장에 상륙시켰고 그래, 나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심판의 날을 예언하였소. 이젠 이런 기도밖에 남지 않았소. 나를 와서 데려가시오. 사람들이 와서 내 얼굴에 침을 뱉을 거요. 그렇다면 그것은 나에게 뱉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 침 뱉은 거나 마찬가지지 않아요?(니느웨 사람들 제단 위로 올라온다.) 빨리요, 주님. 그들이 오고 있어요.(요나, 관중들에게 돌아선다.) 당신 지팡이와 돌멩이가 이디 있어? 나를 죽여, 그리고 나를 비웃어 줘."(인용구)라고 말한다.

요나는 신을 상대로 말을 할 때는 제단을 햗ㅇ하여 대사를 한다. 하르트만은 "기독교의 모든 교파의 예배의식을 한 가지로 통일시킬 수가 없고, 또 같은 교파 내에서도 나라의 풍습과 지역의 성격에 따라 저마다 예배 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배극도 한 가지  형태로 획일화시킬 수는 없지만 신을 관중으로 극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꼭 전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예배극은 각 교파와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발전시킬 수 있지만 그 다양한 형식 속에서 그것이 연극인 동시에 예배라고 하는 가장 숭고한 매체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준비되어야 하고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의식 속에서 새로워지려고 노력해야 된다.

일반 극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출 수법이나 연기력을 참고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그대로 예배극에 적용한다면 그것은 예배극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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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가장 통상적인 의미에서 한 집단·국가·문화가 다른 집단·국가·문화를 지배하는 것을 이르는 말.
본문

사전적인 의미는 한 나라의 연맹제국에 대한 지배권, 맹주권, 패권()을 말한다. 오늘날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한 집단·국가·문화가 다른 집단·국가·문화를 지배하는 것을 가리킨다.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특히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의 활동과 관련하여 이 용어는 정치적 지배라는 함의()를 지니게 되었다.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한편으로는 국가기구나 정치사회가 그들의 법률적 제도, 군대, 경찰, 감옥 등을 통하여 다양한 사회계층을 어떻게 지배하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를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지배집단이 현상황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가기구들을 강제적으로 사용하는 방식과 함께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현상황에 대한 다양한 시회계층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어떻게 창출해내는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대부분의 이론가와 비평가들은 헤게모니라는 말을 무심코 또는 정확한 의미 규명 없이 혼란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적·포스트구조주의적 비평에서 볼 때 이 용어는 상당히 복합적이고 전문화된 의미를 지닌다. 헤게모니의 이론적 개념이 정립된 것은 이탈리아공산당의 창설자인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작업을 통해서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결정론적 해석과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의 관념철학에 반대하여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의 통일을 주장하면서 헤게모니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안토니오 그람시는 《옥중수고 Prison Notebooks》에서 계급간의 관계, 특히 부르주아계급이 노동자계급에게 행사하는 통제의 의미로서 헤게모니를 설명하였다. 그가 말하는 헤게모니는 한 계급이 단지 힘의 위력으로써만이 아니라 제도, 사회관계, 관념의 조직망 속에 동의를 이끌어냄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하면 성공적인 헤게모니는 지배계급의 이해()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종속집단인 피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이것을 자연스러운 것, 또는 상식적이며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헤게모니의 기초는 단지 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의 문화생활 속에 존재하는 통합적 관계망이라고 생각하였다.

한편, 그는 대항의 관점에서도 헤게모니를 명료하게 정의하였다. 노동자 계급이 부르주아 헤게모니를 타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헤게모니를 형성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 새로운 헤게모니는 기존의 부르주아 헤게모니보다 더 거대한 동의 기반을 가질 것이며, 더 많은 집단의 기대와 이해에 부응할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발달한 민주사회에서 사회혁명이 일어나는 조건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성(헤게모니)의 논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새로운 헤게모니, 즉 프롤레타리아적 헤게모니는 오직 지배적인 헤게모니와의 대립관계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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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7-24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게모니에 대해서 너무 상식적 수준으로 밖에 모르는 것 같아, 찾아 봤는데 머리만 더 아파올 것 같아 여기까지만 알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