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기 문학A조 마지막 도서 <퀴르발남작의 성>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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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누군가 책장을 연다!”

  7편의 단편소설에 등장했던 모든 인물들이 총출동하는 마지막 이야기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는 위와 같은 대사로 끝을 맺습니다. 마지막에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저런 대사로 마무리를 짓다니 정말 재치 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한바탕 난장을 치른 후 또 준비를 하라는 듯한 저런 대사, 정말 고약한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7편의 단편소설을 읽었음에도 몇 십 편의 작품을 읽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솔직히 머리도 많이 아팠고요. 실제와 허구의 경계도 애매하고, 마치 소설 속 「괴물을 위한 변명」(메리 셰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재구성/재해석)의 등장인물인 괴물(프랑켄슈타인으로 잘 못 알려진)처럼 온갖 신체 조각들을 짜깁기한(합성) 듯한 산만했지만, 난잡함의 미학과 서사의 독특한 실험은 무척 돋보였던 작품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주류문학에서는 보디 힘든 이런 시도, 그럼에도 글들이 재미있다는 것, 한국문학에서는 무척 반갑고 고마운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표제작이자 등단작인 「퀴르발 남작의 성」(제7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수상)부터 범상치가 않습니다. 아이들을 먹는 뱀파이어의 변형인 퀴르발 남작에 대한 시대와 나라를 초월한 다양한 관련 인물들의 이야기를 모와서 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소문(이야기)에 대한 사실을 추적하는 작품입니다. 과연 믿을만한 이야기인가? 퀴르발 남작은 정말 식인을 하는가? 시대와 나라, 그리고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되어지는 퀴르발 남작. 뭔가를 독자들에게 설득하고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고 재해석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독자들이 상상하고 다시 추론할 수 있도록 어떤 여지를 줍니다. 진실이 진리가 되지는 않죠. 요즘 시대에는 인터넷에 떠도는 무수한 소문들이 그러한 예가 될 수 있겠네요. 너무나 빨리 단정 짓고, 그것이 마치 진리라도 되는 양 사람들은 비난을 하고 판단을 내리죠.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휘뚜루마뚜루 세계사 1」, 「괴물을 위한 변명」도 「퀴르발 남작의 성」과 내용만 다를 뿐 말하고자 하는 주제나 형식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휘뚜루마뚜루 세계사 1」은 제목 그대로 마녀에 대한 정형화된 생각을 제대로 고찰해 보는 이야기입니다. 마녀하면 보통은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고약한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죠. 왜? 왜 마녀는 대중들에게 이런 안 좋은 인식을 주게 되었을까요?(물론 요즘에는 미소녀 마녀도 등장하기는 하지만요) 사람들은 마녀를 본 것이 아니라 ‘마녀라는 환상’을 보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르죠. 인간의 광기는 언제든지 또 폭발할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정말 무섭습니다. 마녀사냥의 희생양은 바로 자기 자신이 될 수가 있다는 것. 바로 내일이라도 말이죠.

“만일 우리가 현실에 안주하여 인간들이 기형적으로 만들어낸 마녀 상에 맞춰 살아간다면, 그건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광기는 언제든지 또 폭발할 수 있다. 중세 말의 그때처럼 명분도 없는 전쟁이 빈발할 때, 원인 모를 질병과 자연재해가 덮칠 때, 사회가 불안하고 시기와 차별이 만연할 때, 그들은 또다시 희생양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쉬운 법. 제2의 마녀사냥이 시작된다면, 이번 사냥감은 그들이 길들여놓은 진짜 마녀, 바로 우리가 될 것이다.”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휘뚜루마뚜루 세계사 1」 p.194

  「괴물을 위한 변명」 이 작품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1818년에 발표된 메리 셰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내용을 분석하여 재구성/재해석한 작품입니다. 죽은 작가를 살려내어 인터뷰를 시작하고, 관련 영화들을 분석하기도 하며, 소설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박사의 가족인 동생을 불러내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창초하게 된 진짜 이유(는 아니겠지만)를 폭로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긴장감,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과연 나는 괴물을 제대로 보고 있었던 것일까?’처럼 스스로 알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심까지 작가가 재해석한 괴물의 이야기로 점점 빠져듭니다. ‘희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소리를 듣는 천명관의 서사와는 다른 방식에서(기존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재해석하는) ‘희대의 이야기꾼’이 아닐까 싶어요. 점점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그 외 셜록 홈즈 시리즈의 주인공인 셜록 홈즈가 그의 창조주인 코난 도일 경의 의문의 죽음을 밝히는 이야기인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자기에게 불리한 매듭은 과감하게 끊어 버리는 여자 차화연의 이야기 「그녀의 매듭」, 스스로 해리성 정체감 장애자(‘나’는 ‘톰’, ‘제리’, ‘강우빈’의 인격을 만들어 냅니다)가 되어 기러기 아빠로서의 외로움을 견디다가 엄청난 사건을 저지르게 되는 불우한 남자의 이야기 「그림자 박제」등 아주 이야기 자체로서 흥미진진한 작품들이 수두룩합니다. 정말 작가의 이런 재능(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능력. 재미뿐만 아니라 던져주는 메시지도 묵직합니다)은 부럽습니다. 괴물 같은 신인 작가의 등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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