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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컨드핸드 타임 -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최후 ㅣ 러시아 현대문학 시리즈 1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김하은 옮김 / 이야기가있는집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 다큐와 문학을 접목한 그녀의 작품 세계는 '목소리 소설(Novels of Voices)' 그녀만의 장르가 되었고, "영혼의 감정의 역사를 담은 산문"이라는 평가받았다" < 2015년 12월 독서신문 < 책과 삶 > 조성일 기자>
책을 받아들고서 읽어내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차라리 이 모든게 픽션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번씩 거듭하며 힘겹게 읽어냈다. 증언,증언, 그리고 증언들. 1917년 소비에트 정권을 시작으로 사회주의혁명이 만들어낸 '사회주의적'인간들은 정권의 붕괴와 함께 거대한 광기를 드러냈다. 인간이라 표현할 수 없는 발작과도 같은 변화 속에서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 이 책은 저널리스트인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가 소련이 붕괴되고 20년 후 '붉은 인간'이라 명명된 '포스트 소비에트의 시대' 와 '페레스트로이카(1985년 4월에 선언된 소련의 사회주의 개혁의 이데올로기)시대를 거치며 살아간 사람들의 목소리를 청취하여 담았다.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했을때 그녀의 독특한 이름, 아직까지 잘 외워지지 않는 그녀의 생소한 이름을 읊조리며 언젠가 한번쯤 읽어보리라 생각을 했는데 주변에서 우려섞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을꺼라고. 그런 우려속에서 읽기 시작했던 책은 정말로 쉽지 않았다. 이 감정들. 이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 저는 무신론자예요. 하지만 신에게 묻고 싶은 건 많아요. 전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요. "수용소는 견뎌낼 수 있단다. 하지만 사람들을 견뎌내는건 쉽지 않아. 난 말이다. '네가 먼저 뒈져라, 난 내일 따라가마,' 이 말을 수용소에서 처음 들은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인 카르푸샤에게서 처음 들었단다."(p93)
" 그게 우리에요! 우리네 인생이요!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에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아우수비츠의 희생자와 망나니들이 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똑같은 경리부에서 월급을 받는 거예요. 전쟁 후 똑같은 훈장을 받고요. 그리고 지금도 똑같은 연금을 수령하면서요.'(p384)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가혹행위를 자행했던 부분들도 마음아팠지만, 가장 가슴아프고 가장 슬펐던 이야기는 바로 내 이웃이었던 사람들이 광기로 얼룩져버린 마음을 들여다보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광기의 시간이 끝나자 일상으로 돌아와 웃으며 희생자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이 소름끼치도록 마음이 아팠다.
어찌보면 가해자들 역시 시대의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모두다 부를 꿈꾸며 더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인간의 본성에 충실할 뿐이라고. 하지만 모두가 공평하게 누릴꺼라던 포스트 소비에이트 시대도, 모두가 풍족하게 누릴꺼라던 페레스트로이카 시대도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모두에게 공평하고 모두가 누릴 수 있는 부라는 열매는 세상 어디에도 없으며 모두다 희생자라는 올가미가 드리워졌을 뿐이다. 세컨드 핸드타임( 중고품의 시대)이 도래했다. 피로 물들던 사회주의가 끝나고 탄탄한 민주주의 기반으로 세워진 자본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공평하지 못하고 자유롭지 못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 바퀴를 돌아 투명한 피로 물드는 시간을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마침 이 책을 읽게 되어서일까. 은근 걱정스런 부분들이 보인다. 우리는 어떤 광기에 휩쓸려 살아가고 있는지. 누가 이 시대가 떠미는 가해자가 되고, 또 누군가는 이유없는 희생양으로 내몰려 아픔을 당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건 어떤 경우에도 놓치지 않을 이성과, 미세한 바람에도 느낄 수 있는 감성을 간직하는 일일 것이다. 이성과 감성에 둘러싸인 공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무한히 감사하게 되는, 현재의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음에 고마움을 느끼게되는 졸렬한 내 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지만, 시대는 변화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그 변화가 어떤 바람을 불러 일으킬지 예상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역할. 소 시민으로써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1000여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기까지 20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싸워야했고, 인터뷰를 하며 무수히 흘렸을 눈물과 공포와 분노들을 절제해가며 이 책을 완성한 그녀의 노고에 감정이 벅차오른다.
" 내가 대답했다. 전 믿어요. 전 당신과 같은 나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예요. 전 믿어요!(그리고 우리 둘은 함께 울었다.) (p443)
( 저자가 마르가리타라는 아르메니아 난민을 인터뷰한 후 증거가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냐는 물음에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가 대답한 말이다. 인터뷰하는 시간 동안 스베틀라나 알렉시에비치는 그 시대 속에서 살았던 셈이다. 그러니 이 책은 그녀의 삶의 일부인지도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