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제3판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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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초판이 나오던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던 기사를 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20대에 감옥살이를 시작하여 40대가 되어 나온 저자의 삶이 어떤 사연인지 궁금했고 아마도 제목에서 사색이라는 단어에 끌려서 읽게 된 것 같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쓴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신영복 선생이라는 한 인간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고 어떤 부류의 사람이라도 어울리려고 하는 열린 마음, 부단히 학문에 정진하는 올곧은 지식인의 면모 등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세계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속박하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고 있으면서도 소중한 삶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다 볼 수 있었다.


 영인본엽서의 서문에서 20년의 옥고를 치르고 나타난 선생을 본 친구들은 그의 변함없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2020일을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족들의 끊임없는 헌신과 사랑도 물론이거니와 선생의 견고하고 담대한 정신력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27년 감옥살이를 하고도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를 떠올렸다. 어떤 것에든 감사하는 마음을 붙여서 견뎌냈다는. 모두 자신 앞에 던져진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면서 어떻게든 결국 살아남겠다는 초월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신영복의 엽서에서 뽑은 230장의 내용과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썼다는 사색노트가 추가된 이 증보판으로 20대와 30대 초반의 선생의 사색을 접하게 된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실린 모든 글은 연월일의 순서로 편집하였으며 1969년부터 1988년까지 20년 동안의 기록이 거의 망라된 것이다.

 

 

 ‘오늘은 다만,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지금 현재를 충실히 살라고 하는데 단지 내일을 기다리는 날이라니. 또 희망적이어야 할 내일은 어제의 내일일 뿐이다. 내일도 또 내일의 오늘일 뿐이라는 것이다. 갑작스런 상황에 처한 20대 청년의 고뇌가 이 그림에 너무도 절절하게 나타나 있다. 조금 서투른 듯 보이는 그림은 뒤로 갈수록 솜씨가 붙어 제법 감탄하게 하는 그림으로 나타나 미소 짓게 한다.(전에는 그림을 본 적이 없었는데 깨알처럼 빼곡히 쓴 단정한 글씨와 엽서의 그림을 보게 된 것도 내겐 큰 행운이다.) 마치 옥살이의 달인이라도 된 것처럼 삶에 달관한 듯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선생의 저력을 느낄수 있었다.

 

…… 수인의 군집 속에서 흙처럼 변함없는 인정(人情)를 만난다. 이러한 인정의 전답에 나는 나무를 키우고 싶다. 장교 동()에 수감되지 않고 훨씬 더 풍부한 사병들 속에 수감된 것이 다행이다. 더 많은 사람, 더 고된 생활은 마치 더 넓은 토지에 더 깊은 뿌리로 서 있는 나무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그 자리에 땅을 파고 묻혀 죽고 싶을 정도의 침통한 슬픔에 함몰되어 있더라도, 참으로 신비로운 것은 그처럼 침통한 슬픔이 지극히 사소한 기쁨에 의하여 위로된다는 사실이다. 큰 슬픔이 인내되고 극복되기 위해서 반드시 동일한 크기의 커다란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작은 기쁨이 이룩해내는 엄청난 역할이 놀랍다.’(P53,55) -니토(泥土) 위에 쓰는 글 -


 수감 직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었지만, 거칠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교도소에서 일반 사병과 함께 지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햇볕 좋은 자리를 선택할 수 없는 나무처럼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신에게 내려진 벌을 달게 받겠다는 굳은 다짐이 엿보인다. 참담한 슬픔도 아주 작은 기쁨으로 위로받는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알고 보면 우리는 작은 기쁨으로 힘을 얻어 삶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불모의 영토마다 자리 잡고 있는 과거라는 이름의 숲은 실상 한없이 목마른 것입니다. 그늘도, 샘물도, 기대앉을 따뜻한 바위도 없습니다. 머물 수 있는 곳이 못 됩니다. 나는 벽 앞에 정좌하여 동공을 나의 내부로 열기로 하였습니다. 내부란 과거와 미래의 중간입니다. 과거를 미화하기도 하고, 현재를 자위하기도 하고, 미래를 전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색이 머릿속의 관념으로서만 시종(始終)하는 것이고 보면, 앞뒤도 없고 선후도 없어 전체적으로는 공허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키우려 합니다. …… 

 이 나무는 과거에다 심은 나무이지만 미래를 향하여 뻗어가야 할 나무입니다. 더구나 나는 이 나무에 많은 약속을 해두고 있으며 그 약속을 지킬 열매를 키워야하기 때문에 당장은 마음 아프더라도 자위보다는 엄한 자기 성찰로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P67~68)- 고성 밑에서 띄우는 글 -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 등 갑작스런 상황에 처한 선생과 가족들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현실을 잊고 싶어 과거를 회상해 본다고 해도 나아질 건 없다. 오히려 더욱 큰 고통만 안겨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과감하게 이전의 나와 다른 나를 만나려고 한다. 자신의 내부에 한 그루 나무를 심고 그 나무와 수많은 대화를 하고 약속을 하며 실행하는 과정에서 숱한 세월을 견뎌낸 것이다.

 

저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결코 많은 책을 읽으며 하지 않습니다. 일체의 실천이 배제된 조건하에서는 책을 읽는 시간보다 차라리 책을 덮고 읽은 바를 되새기듯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지식을 넓히기보다 생각을 높이려 함은 사침(思沈)하여야 사무사(思無邪)할 수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P100)- 생각을 높이고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지만 밖에 나가서 실행할 수 없는 상황에 부딪힌다.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실을 다지고자 한다. 무작정 책을 읽으면서 권수를 채우려는 맹목적인 독서법을 지양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다.

 

봄철, 가을철은 징역 살기로도 좋은 계절입니다만 이곳에서는 봄 , 가을이 바깥보다 유난히 짧아서 춥다에서 바로 덥다, ‘덥다에서 바로 춥다로 직행해버립니다. 징역 속에는 춥다덥다의 두 계절만 존재합니다. 직절(直截)한 사고, OX식 문제처럼 모든 중간은 함몰하고 없습니다.’(P109)- 봄철에 뛰어든 겨울 -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났다. , 가을은 원래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하는데 징역 살기로도 좋다니. 힘든 현실에서 얼른 벗어나려고 안달하기보다는 상황을 인정하고 좀 더 의미있는 삶을 계획하고 자꾸만 침잠하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긍정의 마음이 이것을 견디게 했으리라. 더운 것과 추운 것으로 심플하게 바뀌는 것이 징역살이의 애환일까. 이것뿐이 아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버님, 어머님께

꽃과 나비는 부모가 돌보지 않아도 저렇게 아름답게 자라지 않느냐.”

어린 아들에게 이 말을 유언으로 남기고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의 자애로 담뿍 적신 저는, 꽃보다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P121)-꽃과 나비 -

 

늦은 5, 흠씬 비를 맞은 신록이 미리 여름의 웅장함을 선보이려는 듯, 방금도 키가 크는 것 같습니다.

기쁨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사람을 키운다는 쉬운 이치를 생활의 골목골목마다에서 확인하면서 여름 나무처럼 언제나 크는 사람을 배우려 합니다.’(P162)-슬픔도 사람을 키웁니다 -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님, 형수, 계수 등 온 가족들의 옥바라지를 받는 선생은 더욱 각오를 새롭게 다진다. 꽃과 나비보다 더 아름답게 살아가야 하리라고. 어디 선생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 오직 인간만이 과잉보호를 받으면서 점점 나약한 정신이 되는 건 아닌가 싶다. 기쁨이 아니라 슬픔도 한층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무엇이든 구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화단의 맨 앞줄에나 앉는 키 작고 별로 화려하지도 않은 꽃이지만, 열두 시의 나비 날개가 조용히 열려 수평이 되듯이, 팬지꽃이 그 작은 꽃봉지를 열어 벌써 여남은 개째의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한 줌도 채 못 되는 흙 속의 어디에 그처럼 빛나는 꽃의 양식이 들어 있는지…….

흙 한 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과연 한 송이라도 피울 수 있는지, 5월의 창가에서 나는 팬지꽃이 부끄럽습니다.‘(179)-한 송이 팬지꽃 -

 

좁은 거처에서도 예쁘게 꽃을 피우며 제 할 일을 해내는 한 떨기 꽃들과 풀들을 보면서도 부끄러워하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

 

어머님을 뵙고 난 어젯밤에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죽어서 망우리 어느 묘지에 묻혀 있다면, 10년 세월이 흐른 지금쯤에는 어머니의 아픈 마음도 빛이 바래고 모가 닳아서 지금처럼 수시로 마음 아프시지는 않고 긴 한숨 한번쯤으로 달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지 모를 일입니다만, 그러나 어제처럼 어머님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어머님께서 손수 만드신 점심을 먹는 모습을 보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추석에 마음 아프시고 겨울에는 추울까 여름에는 더울까 한밤중에 마음 아프시기는 하지만 역시 징역 속이지만 제가 살아있음이 어머님과 더불어 마음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나 하시는 말씀처럼 부디 오래 사셔서 여려 가지 일들의 끝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P189)-어머님 앞에서는 -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말 밖에는. 매인 몸의 아들을 끊임없이 걱정하는 어머니를 향한 애절한 사모곡이 들려오는 듯하다.

 

나한테 묻는다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불빛이라고 하겠습니다. 새까만 연탄구멍 저쪽의 아득한 곳에서부터 초롱초롱 눈을 뜨고 세차게 살아 오르는 주홍의 불빛은 가히 겨울의 꽃이고 심동(深冬)의 평화입니다.

천 년도 더 묵은, 검은 침묵을 깨뜨리고 서슬 푸른 불꽃을 펄럭이며 뜨겁게 불타오르는 한겨울의 연탄불은, 추위에 곱은 손을 불러 모으고, 주전자의 물을 끓이고, 젖은 양말을 말리고……, 그리고 이따금 겨울 창문을 열게 합니다.’(P206)-불꽃 -

 

 ‘덥다춥다로 함축되는 교도소의 추위를 견디게 해주는 불꽃... 

아름다울 수밖에 없겠다. 모두를 따뜻한 난로 옆으로 불러 모을 것이며 지난 추억을 이야기하며 꽃을 피우겠지. 모진 세월의 징역살이를 어떻게 견뎌냈을까 생각해보면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도 참 컸겠다 싶다.

 

이기(利器)를 생산한다기보다 필요그 자체를 무한정 생산해내고 있는 현실을 살면서 오연(傲然)히 자기를 다스려 나가기도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은 그 속이 빔()으로써 쓰임이 되고 넉넉함은 빈 몸에 고이는 이치를 배워 스스로를 당당하게 간수하지 않는 한, 척박한 땅에서 키우는 모든 뜻이 껍데기만 남을 뿐임이 확실합니다.‘(P212)-나막신에 우산 한 자루 -

 

 문명의 이기로 물질이 넘치는 시대에 아무려면 보통의 인생살이를 하는 사람만큼 많이 가진 사람이 있을까. 징역살이에서도 방을 옮기면서 힘듦을 겪고 빈 그릇의 미학을 떠올린다. 어디서든 사람은 홀가분한 삶을 원하면서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그저께 밤중의 일이었습니다. 여태 없던 서늘한 바람기에 눈을 떴더니, 더위에 지친 동료를 위하여 방 가운데서 부채질하고 서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엄상(嚴霜은 정목(貞木)을 가려내고 설중(雪中)에 매화 있듯이 고난도 그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을 묻고 있는가 봅니다. 이러한 인정을 보지 못하고 지레 미움을 걱정함은 인간의 선성(善性)의 깊음에 대한 스스로의 단견(短見)외에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P219)-고난의 바닥에 한 톨 인정의 씨앗 -

 

 여름의 감옥살이의 고충을 말한 바가 있다. 그저 존재 자체로 증오하게 된다는 여름살이의 힘듦을 말이다. 동료들을 위해 부채질하는 선행을 목격하고 선생은 자신의 좁은 소견을 깨닫기도 한다. 고생을 해 본 사람이 같은 처지의 사람을 이해하는 아량도 있을 것이다. 어디가 되었든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

 

옛날에 수염이 길고 지혜 또한 깊은 어느 노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짙게 서린 무기(霧氣)를 보고 이곳에는 훗날 큰 절이 서리라는 예언을 남기고 표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예언이란 엇비슷이 적중하는 데에 묘()가 있는가 봅니다. 수천의 청의삭발승(靑衣削髮僧)(?)들이 고행 수도하는 교도소는 가히 큰 절이라 하겠습니다.

잠 에너지로 어제의 피곤을 가신 이곳의 우리들은 새벽의 청신한 공기를 양껏 들이마시며 기차처럼 어느새 지나가버릴 쾌청한 가을 날씨를 차마 아까워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P222)- 청의삭발승(靑衣削髮僧) -

 

 지난한 옥살이의 세월을 이렇게 이야기로 토해낼 수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앞에서 나는 가족들의 옥바라지 외에 선생의 강인한 정신력을 더 높이 생각했는데 리뷰를 위해 다시 보면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형수님, 계수님에게 이렇게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을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을 치유하는데 한 몫을 했을 터였다. 세상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다림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유머가 느껴져서 더욱 아련한 마음이 된다.

 

이번 이사 때 가장 두고 오기 아까웠던 것은 창문이었습니다. 부드러운 능선과 오뉴월 보리밭 언덕이 내다보이는 창은 우리들의 메마른 시선을 적셔주는 맑은 샘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창문보다는 역시 이 더 낫습니다. 창문이 고요한 관조의 세계라면 문은 힘찬 실천의 현장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그 앞에 조용히 서서 먼 곳에 착목(着目)하여 스스로의 생각을 여미는 창문이 귀중한 명상의 양지(陽地)’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것은 결연히 문을 열고 온몸이 나아가는 진보(進步) 그 자체와는 구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형수님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새해의 발전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P230)- 창문과 문 -

 

창문으로 토막 난 하늘을 보다가 문으로 걸어 나가서 본 하늘의 느낌은 어땠을까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은 실천의 현장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창문의 차이를 이렇게 멋지게 해석하는 선생이었구나!

 

 

육순 노인에서 스물두어 살 젊은이에 이르는 스무남은 명의 식구(?)가 한 방에서 숨길 것도 내세울 것도 없이 바짝 몸 비비며 살아가는 징역살이는 사회 , 역사의식을 배우는 훌륭한 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도덕적 분식(粉飾)이나 의례적인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 벌거숭이의 이() , () , () , ()가 알 몸 그대로 표출됩니다. 알몸은 가장 정직한 모습이며, 정직한 모습은 공부하기에 가장 쉽습니다.’(P266)-감옥은 교실 -

 

 배우려는 자세만 있다면 어디서든 어떤 사람에게서든 배울 점 한 가지는 있을 것이다. 자신의 중심을 꽉 붙잡고 긴 세월 동안 사색을 멈추지 않은 선생의 깨어있던 정신에 마음이 아득해진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P298)-함께 맞는 비 -

 

 남에게 호의를 베풀면서도 언젠가 되받으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는지. 아니면 상대의 굴종을 담보로 훗날을 위한 흑심은 없었는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으로 공감과 연대가 확장되는 것이라는 말이 뜨끔한 일침을 준다. 누군가에게 내민 도움의 손길이 결국 자신을 위한 위선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현상은 그것이 개인이든 사건이든, 하나의 단절된 객체로 한정할 수 없으며, 그것에 선행하는 여러 가지의 계기에서부터 그것의 발전, 변용의 가능한 방향에 긍()하는 총합과정의 한 부분으로서 파악되어야 하리라 믿습니다.

더욱이 과거란 완성되고 끝마쳐진 어떤 불변의 것이 아니며, 반대로 역사인식은 언제나 현재의 갈등과 관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과거에 투영된 현재이며 그런 의미에서 계속 새롭게 씌어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어떠한 종류의 매스컴이나 미니컴이라도, 그것은 어떤 층을 대표하는 기관지인 법이며, 문제는 그것이 기관지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대표하는가에 있다는 그의 간결하고 적확(的確)한 사회인식이라든가, 어느 사회의 진상을 직시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 사회의 밑바닥 인생을 직접 방문하는 것이라는 소박한 민중의식은 뛰어난 것이 아닐 수 없다 하겠습니다.’(P301~302)- 과거에 투영된 현재 -

 

 선생은 징역살이 초기에 부친과의 편지에서 단지 염려스러운 아들보다는 하나의 독립된 사상과 개성을 가진 한 사람의 청년으로 이해되고 싶다는 심정을 토로한 바 있다. 단순히 옥에 있는 아들을 염려하는 편지보다는 대화의 편지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선생의 사물을 대하는 감성적인 부분 외에도 사회, 세상을 바라보고 사색한 그분의 생각이 많이 들어있다. 개인이나 사건 등은 단절된 객체가 아니므로 총합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개인은 사회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역사인식은 언제나 현재의 갈등과 관심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한 사회의 진상을 직시하기 위해서는 직접 방문하여 민중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색한 선생의 이 육성이 두루두루 읽혀져 좋은 사회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제가 정작 부러워하는 것은 객관적인 처지의 순역(順逆)이 아닙니다. 생사별리(生事別離) 등 갖가지 인간적 고초로 가득 찬 18년에 걸친 유형의 세월을 빛나는 창조의 공간으로 삼은 비약(飛躍)’이 부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비약은 그 어감에서 느껴지는 화려함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곱셈의 논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P318)-독다산(讀茶山) 유감(遺憾) -

 

 유형의 세월 동안 놀라운 업적을 이룬 정약용의 비약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신영복 선생도 옥중에서 많은 책을 읽고 출옥 후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다수의 저서를 남긴 것도 자신의 내면에 나무를 심고 키웠던 결과가 아니겠는가. ‘온몸으로 세상을 겪으면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에 흠모하기를 주저하지 않으니 진정한 지식인은 역시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도 다르다.

 

비단 갇혀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튼튼한 연대감이야말로 닫힌 공간을 열고, 저 푸른 하늘을 숨 쉬게 하며……, 그리하여 긴장과 갈등마저 넉넉히 포용하는 거대한 대륙에 발 딛게 하는 우람한 힘이라 믿고 있습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P347)- 닫힌 공간, 열린 정신 -

 

 그렇다. 갇혀 있건 나와 있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다. 무관심은 인간의 정을 메마르게 하고 증오를 낳고 나아가서는 범죄를 부르기도 한다. 신영복 선생의 20대 후반부터의 인생 20년을 읽었다. , 이때 나는 몇 학년 이었지? 이때 나는 무얼 했더라? 기억을 떠올리며 읽어나갔다. 다 읽고 나서는 마음이 헛헛했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그분의 출옥을 보셨을까, 옥바라지에 20년을 보낸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등등. 그리고 선생도 세상에 안 계시다. 첫 책을 읽었을 때는 몰랐던 청구회모임 이야기도 알게 되었다. 어린이에게 다가가 대화를 할 줄 알았던 열린 마음의 선생의 순수한 마음을 다시금 엿볼 수 있었다. 출간된 지 오래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이 읽히고 있는 것은 한 사람의 아픔이자 우리 시대의 고뇌와 절절한 양심에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감옥이나 바깥세상이나 매 한가지가 아닐까. 어디서든 사람들과의 관계로 이루어져있지 않은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출구와 입구가 어디인지 모를 만큼 넓은 교도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 너무 심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자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철학자가 있는 걸 보면 무리도 아니지 싶다. 그렇기에 『감옥으부터의 사색』은 많은 것을 누리고 있음에도 진실로 소중한 것이 무언지 모르고 나태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정신을 번쩍 깨워준다. 어쩌지 못한 세월을 원망하기보다는 글을 쓰고 공부하며 본연의 삶을 살면서 귀한 저서들을 남겼으니 우리에겐 무척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선생의 다른 책들을 진작 만나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탓하면서 앞으로 그 헛헛한 마음을 달래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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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와 떠나는 미술관 여행
컬쳐앤아이리더스 기획팀 지음 / 컬쳐앤아이리더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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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폰스 무하의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작년엔가 여러 블로그에서 보게 되었고 도서관에서 책 탐방을 하다가 눈에 띄어 읽게 되었다. 표지부터 눈을 사로잡는 책이었다. 꽃 화관을 쓴 아름다운 여인. 무하의 그림의 공통점은 보통의 그림과 달리 화려하고 꽃을 빼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물결치는 듯한 긴 머리에서 역동적인 힘이 느껴졌고 정열적인 인생을 그림에 모두 쏟아 부었구나 싶었다.

 

 이 책은 지난 2013년 예술의 전당에서 열렸던 <알폰스 무하, 아르누보와 유토피아 >을 찾은 관람객들의 뜨거웠던 사랑에 힘입어 2016년 겨울에 새롭게 기획된 <알폰스 무하, 모던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을 기념하며 출판되었다고 한다. 아르누보를 표하는 체코의 국보급 화가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알폰스 무하의 일생과 예술사적 발자취를 살펴보는 책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성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기획했단다.

 

 ‘아르누보새로운 예술을 뜻하며 19세기 말 유럽에서 등장한 예술 사조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독일 출신의 딜러인 지그프리트 빙(Siegfried Bing 1838-1905)1895년 문을 연 파리의 화랑 메종 드 아르누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아르누보 양식은 1890년에서 1910년 사이에 성행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조금씩 다른 형태로 등장한다.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아르누보, 영국과 미국에서는 모던 스타일, 독일에서는 유겐트슈틸, 오스트리아에서는 제체시온, 이탈리아에서는 스틸레 리베르티로 각 나라의 문화와 특성에 따라 발전했다. 나무의 줄기, 꽃과 같은 자연의 소재를 모티브로 활용한 유연한 장식성이 특징이며, 회화는 물론 건축, 가구 디자인, 생활용품 등으로 확대되었다.

 

 기존의 예술을 거부한 세기말의 새로운 양식이던 아르누보를 독특하게 표현해낸 예술가들이 주목 받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예는 빅토르 오르타의 카셀저택, 엑토르 기마르의 파리 지하철 입구, 안토니오 가우디의 카사 바트로를 들 수 있다.

 

 알폰스 무하는 1860724일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던 슬라브 지역의 하나인 모라비아 남쪽의 작은 도시 이반치체에서 평범한 가정의 여섯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감각이 남달라서 그림을 잘 그렸고 노래도 잘 불러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모라비아의 브르노에 위치한 성 베드로 성당과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성당 건축과 회화, 조각, 장신구를 가까이 보고 자란 것이 무하에게 지속적인 예술적 영감이 되어 여러 작품에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하루의 시간: 깨어나는 아침, 낮의 밝음, 저녁 사색, 밤의 휴식. 1899. 채색 석판화.

하루의 시간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 참으로 탁월한 상상력의 대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꽃 장식과 긴 머리카락의 역동적인 표현은 여러 작품에도 나타나는 주된 특징이다.

 

연극 포스터들이다.

왼쪽부터 <카멜리아(동백꽃 부인)>, <로렌차초>, <햄릿>, <메데>, <라 토스카>

 포스터는 당대 연극계의 여왕으로 불리던 사라 베르나르는 르메르시에 인쇄소에 연극 <지스몽다>역을 위한 포스터를 주문했는데 모든 직원이 연말 휴가를 떠나 무하만 남아 있었는데

우연히 포스터 디자인을 맡게 된 무하의 손끝에서 모두의 탄성을 자아내는 결과물이 탄생한다.

1895년 새해 첫날 <지스몽다>가 엄청난 성공을 이루면서 사라 베르나르는 무하에게 6년간의 전속계약을 의뢰하였고 위의 연극 포스터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장식 패널: 사계- 봄, 여름, 가을, 겨울, 1896. 채색 석판화.

 텍스트 없이 순수한 예술적 감상과 벽장식을 위해 제작되었다. 무하는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통해서 삶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대량생산으로 대중들과 가까워지고자 노력했다. 특히 무하의 작품은 일반 대중이 대상이어서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예술이었다고 한다.

 

백일몽. 1897. 채색 석판화.

 

"예술가의 임무는 대중이 아름다움과 조화를 사랑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각종 포장 디자인.

무하의 예술적 영감은 대중 문화 속에 파고 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문화 행사, 각종 서비스뿐만 아니라 소비 물품인 향수와 담배 종이, 맥주, 샴페인 초콜릿, 비스킷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

 

 

무하가 디자인한 스테인드 글라스.

 체코의 프라하성 안에 위치한 성 비투스 대성당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신 고딕 건축물이자

무하가 디자인한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 원작을 살펴볼 수 있는 건물로 유명하단다.

습작의 과정을 보여주는 그림도 싣고 있어서 실제 모습의 그림과 비교하면서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밖에도 무대 디자인과 의상 디자인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뉴욕의 독일극장에서 작업하던 중에 의뢰받은 셰익스피어 연극의 의상 디자인을 위한 연필과 수채화 스케치들을 볼 수 있어서 반가웠다. 이는 무하가 빈과 파리에서의 경험으로 무대 의상 디자인에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슬라브서사시 20편 대작의 일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면서 무하의 조국은 1918년 10월 28일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새로 건국된 조국의 발전을 위해 도움을 주고자 했던 무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우표와 지폐를 디자인해 달라는 제안을 수락한다. 또 국가의 휘장이나 경찰의 단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의 상징물이 무하의 손길을 거쳐 나온다.

 

 그리고 1912년에 시작되어 25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 슬라브서사시는 무하가 그리던 꿈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으며 1928년 체코슬로바키아 독립 10주년을 기념으로 <슬라브서사시> 전시가 열렸고 그후 작품들은 프라하 시에 공식적으로 기증되었다.

 

 독립을 이룬 지 20년도 지나지 않은 1938년 뮌헨협정이 체결되면서 독일 나치의 통제를 받게 된다. 게슈타포가 첫 번째로 체포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무하였고 심문 후 집으로 돌아왔지만 열정적인 예술혼으로 살았던 무하는  1939년 여름 79세의 나이로 영원히 잠든다.

 

 아르누보의 별은 그렇게 졌지만 무하 재단에 의해 1998년 체코 프라하에 설립된 무하 미술관은 세계 유일의 박물관으로 무하 생애 전반에 걸친 수많은 작품이 전시 및 보존되고 있단다.

한 해 1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무하 미술관은 체코공화국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미술관 중 하나이고 체코를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 하는 프라의 명소가 되었다.

 

무하 미술관 내부.

미술에 조금씩 다가가는 중이다.

예전 같으면 도서관에 가더라도 미술쪽은 들여다 본 적이 없는데 요즘 신기하게도 자주 기웃거리고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하듯이 누가 아는가. 미술이 나에게 어떤 영감을 줄 지.

체코의 프라하는 내가 좋아하는 유럽 작가 프란츠 카프카와도 밀접한 도시인데 언제 갈 수 있을까. 언젠가는 갈 수 있겠지. 그때는 무하 미술관에도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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くじけないで (單行本)
柴田 トヨ / 飛鳥新社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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圖書館の神樣 (ちくま文庫 せ 11-1) (文庫)
瀨尾まいこ / 筑摩書房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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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주인공은 키요다. 키요의 엄마가 8년이나 기르던 잡종견 이름이었다. 키요가 태어나기 3일 전에 도로에서 차에 치었는데 사력을 다해 달려와 주인 집 현관 앞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다. 엄마는 키요라는 이름을 자신의 아이에게 붙여주었다. 21세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라며 불평을 하고 있지만 3대째 승계 받은 유서 있는 이름이라고 은근 자부한다.



 키요는 알레르기가 있었고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소학교 저학년 때부터 배구를 하게 되었는데 금세 사로잡힐 만큼 좋아하게 된다. 3이 되었을 때 현 대회에 참가하여 이웃 고교와 겨루게 된다. 단순히 시합 연습 경기였고 큰 차이로 이기고 있었는데 감독이 야마모토를 투입시키고 나서 실수를 연발하다가 자기네 팀보다 약한 팀에게 지고 만다. 이때 팀의 주장이었던 키요는 반성회에서 야마모토에게 무슨 말을 했고 야마모토는 울었다. 하지만 평소 늘 있는 일이어서 키요는 신경 쓰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서 임시 조회가 열리고 교장은 야마모토가 자기 집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말을 전한다. 키요는 그와 별로 친하지 않아서 슬픔도 괴로움도 별로 느끼지 못하고 그런 일로 죽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다지 감성적인 성격이 보이지 않았고 배구를 함께 하던 동료가 죽었는데도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해서 남자인 줄 알았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도 몇 번 헷갈렸는데 결국 여자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나중에 누나라고 부르는 남동생 타쿠미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키요의 마음과 달리 주변의 시선을 그리 곱지 않았다. 야마모토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분위기가 되어간다. 부활동도 그만두고 체육대학에 진학하려 했던 생각을 접고 조그만 지방대학에 진학하면서 집을 떠나게 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의 강사가 되었는데 문예부를 담당하게 되었다. 2학년 생 가키우치 군 단 한명이 있는 문예부다. 오랫동안 배구를 해왔던 키요는 가만히 앉아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는 가키우치가 답답해 보인다. 운동은 안 하는지 묻기도 하고 자신도 문예부를 맡은 것이 좀이 쑤시고 지루하기만 하다. 아사미라는 친구는 과자를 만드는 교실의 강사인데 키요가 거기에 다닐 때 알게 되어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알고보니 아사미는 이름으로 보아 여자인 줄 알았는데 남자였다. 그것도 아내가 있는. 그러니 동생 타쿠미의 말대로 불륜 상대인 거다. 유일하게 키요의 집에 놀러오는 사람은 타쿠미와 아사미 뿐이다.



 그 사이 키요는 여름방학에 교사채용 시험에 합격한다. 수업이 끝나고 가끔 어울리던 저녁 자리에서 체육 강사 마츠이로부터 가키우치 군이 중학교 때 축구 선수였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가키우치의 팀원 하나가 연습 도중 쓰러져 6개월 이상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일이 있어서 가키우치도 축구를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원래 병이 있었던 거라서 가키우치의 잘못은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축구를 하겠다고 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아깝다는 말을 한다. 이에 키요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다.



 놀러온 타쿠미와 함께 마을 바닷가에 갔다가 지역 스포츠 모임에 농구 연습을 하러 간다는 가키우치 군을 만난다. 그를 따라 구경 갔다가 활기차게 움직이며 공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난 가키우치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사미의 아내 유코가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듣고 키요는 우울해진다. 굳이 왜 그런 얘기를 하나 싶다. 하지만 사실을 감춘다면 그것 때문에 키요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 난감하다고 한다. 처음엔 강사와 수강생으로서 우정 비슷한 감정을 나눈 것 같은데 연인 비슷한 관계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스스로 당당하다고 할 수 없으니 그런 신변의 변화에 놀라는 건 당연해 보인다.



 어느 날 가키우치는 질문해도 되느냐고 키요에게 묻는다. 문학 이외의 것이라면 괜찮다고 하니까 문학에 관한 질문이라고 한다. 문학에 문외한인 문예부 담당 고문이라니. 잘 몰라도 자신의 견해를 말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을 좋아한다고 가키우치는 덧붙인다.



 『さぶ라는 작품에 나오는 사부와 에이지에 대한 긍금증을 물어본 것이었다. 그날 밤, 키요는 몇 년 만에 그 책을 읽었고 두꺼운 책임에도 이제까지 읽었던 어떤 책보다 간단히 읽기를 마친다. 울기도 하고 그 감동을 어디에 얘기할 곳이 없어서 무심코 가키우치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12시 한 밤중이었다. 이제 문학을 향한 마음이 열리는 걸까 궁금해진다.



 야마모토가 죽은지도 어느 새 5년이 다 되었다. 집에 있을 때는 주마다 찾아갔고 집을 떠나와서는 한 달에 한 번은 찾아갔다. 다녀간 흔적이 오래된 야마모토의 묘소에 타쿠미와 함께 가서 먼지를 닦고 정리하며 참배하는 모습이 나온다. 운동을 함께 했던 동료가 죽었고 아무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고는 해도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묘소를 다니는 동안에 좀 잘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며 후회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



 나쓰메 소세키의마음을 수업 교재로 하려 했는데 너무 길고 지루하다는 말들이 나오자, 가키우치군은 명작이라면서 반론을 펴지만 고민 끝에 몽십야를 추천하게 된다. 아름다운 여인이 죽었는데, 죽기 전에 백년 후에 반드시 만나러 올 테니까 기다려 달라고 한다. 남자는 그 말을 믿고 계속 기다린다. 배신당한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계속 기다린다. 그러자, 발밑에서 백합꽃이 피어난 것을 보고 여자가 약속을 지키러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무서우니까 조심하라는 조언도 있었는데 키요는 그것을 밤에 읽다가 너무 무섭고 어디 말할 데가 없어서 무심코 아사미에게 전화를 한다. 한밤중에 전화를 받은 아사미는 곤란 한데라는 별 감정이 들어있지 않은 건조한 말투를 반복할 뿐이다. 그 말을 듣고 아사미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왜 그렇게 아사미에게 의지를 했는지 모르겠다.



 한편 학교에서는 문예부 존속 여부를 놓고 회의가 열린다. 부원이 한 명 밖에 없는데다 가키우치가 틀어박혀 있는 것도 아깝고 심심풀이로 시간을 허비하는 게 아니냐며 동조하는 눈치다. 어떻게든 키요는 문예부를 남아있게 하려고 애쓰는데 정작 가키우치는 태연하다. 자신은 문예부 밖에서도 언제든 문학을 하고 있다면서. 키요는 가키우치에게 문예부도 다른 부처럼 연습도 하고 다른 학교와 대회라도 열자고 부산을 떨지만 그런 거 귀찮으니 그만 두자고 한다.



 가키우치는 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도서실의 책을 정리하고 싶었다면서 정리를 하자고 한다. 일본 십진분류법은 지금 고교생의 니즈에 맞지 않다며 교과별로 학생들이 찾기 쉽도록 해야 한다면서 10일간 진행된다. 다시 태어난 도서실을 보고 학생, 교사 모두 놀라고 좋아하지만 결국 문예부는 폐강이 되기에 이른다.



 졸업생이 된 가키우치는 졸업식 날 주장 발표가 있었다. 진심으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은 도서실로 오라고 말한다. 문학이라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자기는 1년간 열중하게 되었다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문학에 대한 말을 생각할 때 너무 행복했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심취되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젤란이나 라이트 형제가 세계를 향해 꿈꾼 것처럼 자신은 책 속에서 꿈을 꾸었다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가키우치는 뿌듯한 마음이 된다. 이 장면 너무 멋졌다. 그렇게 정들었던 키요와 가키우치는 1년의 문예부 활동을 끝으로 이별하게 된다.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도서관의 카미사마는 아마도 가키우치였을까. 제멋대로 된 도서관의 책들을 정리하자는 제안을 해서 완벽하게 찾아오고 싶어하는 도서관으로 만들고 떠난다.



 한편 키요도 다른 공업고교로 전근하게 되면서 편지 세통을 받는다. 아사미, 가키우치, 죽은 야마모토의 어머니로부터. 이 편지 중 키요의 마음을 가장 홀가분하게 해 준 것은 야마모토의 어머니에게 받은 편지였다. 야마모토의 묘소에 한 달에 한번 갈 필요 없고 시간이 된다면 1년에 한번으로 충분하다고. 남동생 타쿠미와 키요는 바닷가 아름다운 석양을 바라보며 저것은 카미사마가 만든 작품이라며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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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리커버) 버지니아 울프 리커버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 민음사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너무도 유명해서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기만의 방이라는 단어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왠지 마음을 술렁거리게 하지 않는가.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당시에도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선 더욱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어울리다 보면 자신과 오롯이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42월에 처음 읽고 두 번째로 작년 8월에 읽었는데 리뷰는 이제야 남긴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이야기 한 꼭지의 주제를 쓰기 위해 이번에는 책을 구매해서 읽게 되었다. 알라딘 서점 단독 리커버판이다. 울프의 작품 대부분이 의식 흐름 기법으로 쓰여 처음엔 어렵게 읽었다. 다른 건 별로 생각나지 않고 연 500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만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이 에세이는 192810월 케임브리지 대학교 안에 있는 여자대학인 거턴과 뉴넘 학생들의 요청을 받고 행해진 강연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로부터 오 년 후 1932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가장 권위 있는 클라크(Clark) 강연 요청을 거절했으면서도 여자대학의 강연 요청을 수락한 것은 여성의 권리를 향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주된 내용은 브론테 자매, 제인 오스틴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작가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품을 써야 했던 안타까움이나 셰익스피어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누이가 있었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까 상상하는 설정으로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기도 한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울프가 제기한 남녀평등 문제는 오늘날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다시 읽으면서 처음에 놓쳤던 울프의 메시지를 발견하고 그 깊은 뜻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래서 좋은 책은 여러 번 읽을 필요가 있다는 말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 마음속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나는 남성의 동료라든가 남성과 대등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고귀한 감정을 찾을 수 없고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세상에 영향을 끼치려는 생각도 없습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평범하게 중얼거릴 뿐입니다.’(P144~145)

 

 

 결국, 울프가 여성들을 향해 말하고 싶은 메시지, 글쓰기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거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서 나를 돌아보고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살아오면서 알게 모르게 받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기도 하고 점점 당당한 자신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울프의 이 말에 깊이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연 500파운드의 수입은 지금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4천만 원이라고 한다. 보통의 개인에게 있어 적지 않은 금액이다. 사실 울프가 살아가던 당시와 비교하면 우리의 물리적 환경은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편리해졌다. 자기만의 공간을 정하여 책을 읽고 글을 쓰면 어떨까. 소박한 공간이지만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면서 이전보다 더욱 충만한 시간이 되었다. 500파운드의 수입은 없더라도 편안하고 아늑한 나만의 글쓰기 공간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지 않을까. ‘자기만의 방’, 가만히 되뇌어보아도 기분 좋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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