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영화개봉 특별판)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사라져가는 너를 지켜줘
힘겨워지면 나를 기억해줘
간절히 원했어 잠시 멈춰서 
날 바라봐주기를

멈출 수 없어 나는 두려워 
가눌 수 없는 난 어떻게 해야해
날 바라봐줘 날 기억해줘 

  -디어클라우드, 'remember' 중-


 덕혜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버텼을까?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기에 오랜 세월을 침묵했을까? 스스로가 무너지지않게 노력했지만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았다. 결국 덕혜가 생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를 기억해"라는 외침 하나였을까?


 감정은 인간의 한계인 동시에 축복이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상처받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만 감정이 있기에 삶은 아름답다. 문학을 만드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이성만 남아 있는 세상은 너무 삭막하고 차가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감정 때문에 우리는 약해지지만 또 강해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수많은 감정 중 가장 탁월한 감정을 꼽으라면 나는 '공감'을 택할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말하면,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간단하지만 우리는 거의 그렇게 하지 못한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과 무지가 공감의 요소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기적으로 살기엔 인간은 너무 나약해서 이타심을 계속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을 기억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 바로 예술이다.

 

 이성적인 관점에서 『덕혜옹주』는 조선 마지막 황녀의 삶에 각색을 입힌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덕혜의 감정을 이해하는 순간 이 책은 역사를 뛰어넘어 현실로 넘어온다. 황녀로서의 기품을 지키기 위해 그녀가 겪었던 시련을 함께 느끼고, 강제로 결혼한 뒤 가족한테 버림받았을 때 느낄 여성으로서의 아픔을 이해하고, 모두에게 잊힌 마지막 황족의 절망에 공감하면 『덕혜옹주』는 메세지를 얻는다. 당신이 이 비극적인 삶을 산 여인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말이다.


 왜 작가는 덕혜의 이야기 외에도 그녀를 끝까지 보필하는 복순과 박무영, 기수의 이야기를 넣었을까? 단순히 이야기의 흥미를 높이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을까? 그렇지 않다. 덕혜를 비롯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조선인은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나?"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에 자조 어린 표정이 서렸다. 

 "그럴수록 뭔가를 해야지. 불가능하다고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으면 패배를 거듭할 뿐이야." (p.356)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도전하라. 이것이 덕혜가 침묵하며 감추었던 꿈이며, 삶 그 자체였다. 비록 정신병자로 몰리고 조국에게 버림받았지만 그녀는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직 꿈이 남아 있다. 부디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해달라고, 모든 것이 끝나고 절망으로 가득 찬 순간에도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라고 우리에게 전하는 것이다. 마침내 나와 그녀는 같은 마음을 품었다. 나는 그녀에게 공감했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을 나의 삶에 가져올 수 있는 힘, 이것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주신 큰 축복이다. 그러니 좋은 사람이 되어라.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갈지라도 기억되는 순간, 노력은 걷잡을 수 없는 기적이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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