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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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보면 난 항상 일어나서 나가버릴지 아님 끝까지 봐야할지 고민한다. 영화가 재미없어서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그의 영화가 내가 마주하려 하지 않았던 현실의 고통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밀양>을 보기 전까지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의 삶을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무신경함. <오아시스>를 보기 전까지 장애인들에게도 욕구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 무지함까지도. 
 

<도가니>를 보면서 이창동감독의 영화들을 연상한 것도 그 때문이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보면(그것이 영화나 소설일지라도) 난 도피하고 싶어진다. 이건 거짓말일 거야. 현실이 아니야 하면서. 하지만 그 일들은 현실이다. 우리가 외면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우리 주위의 이야기이며 우리가 흘려보내려  해도 그 자리에서 ‘나 여기 있어요’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어쩜 이 이야기가 지금에야 나왔나 싶었다. 뉴스를 보다보면 한 달에 몇 번은 보게 되는 장애인 폭행사건들은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함을 알린다. 또 그에 대한 철저한 대책 없이 지지부진한 해결은 앞으로도 이 일들이 계속 될 것임을 암시한다. <도가니>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이게 어찌 요즘에만 있었으랴. 우리가 알려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회 기득권자가 약자를 짓밟고 유린한 일은 일상처럼 벌어진다. 사회가 그렇게 돌아간다. 그들은 마치 신처럼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들이 아니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 댄다. 지긋지긋한 무진의 안개들같이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 시스템이다.

‘자애학원’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두드린 사람은 기간제교사로 온 강인호였다. 하던 사업이 어려워져 작은 거 다섯 장을 주고 맞바꾼 기간제교사의 자리. 젊고 의욕에 차 무진에 내려왔던 강인호에게 보여준 ‘자애학원’ 의 자그마한 비리는 처음엔 작은 거 다섯 장이었다. 상호 묵인 아래 벌어진 그 자그마한 비리는 모욕적이었지만 괜찮았을 것이다. 정식 교사가 될 수 있다는데 투자에 가깝다는 게 강인호의 생각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애학원’의 아주 큰,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비리는 따로 있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중학생인 어린 아이들을 교장과 그의 쌍둥이 동생인 행정실장, 박보현 선생이 강간하고 폭행한 것이다. 기간제교사 자리는 강인호 가족의 희망이었다. 그는 처음에 귀를 막고 싶었을 것이다. 현실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나조차 그랬으니까. 과정이 세세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더 피하고 싶었다. 책을 읽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난 현실을 알아야 했다. 그들의 절규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너무 늦게 알아서, 그간 뉴스를 봐도 그대로 흘려보내어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다.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법정에서 부터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법정에서 이야기를 통해 기득권층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있고 어떻게 서로를 보호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사실 놀랍지도 않다. 확인을 더해 씁쓸했을 뿐. 판사, 경찰, 교회, 지역유지들까지 견고히 얽혀있는 관계들은 깨기 어려웠다.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그들의 부인과 침묵 안에서는 거짓이 되었다. 바위로 된 성벽을 약한 주먹으로 두드리면 주먹만 깨진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렇다고 포기해야 하는 걸까? 강인호는 이 책에서 사회적 정의와 가족의 행복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강인호의 선택과 서유진의 선택 둘 다 공감이 갔다. 그 둘은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 속에 진실이라는 보석을 찾은 그들은 모두 하나의 입장이다. 선택해야 할 미래가 달랐을 뿐이었다. 
 

지연과 학연이라는 오랜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있을까. 지금도 나라의 높은 자리에는 같은 학교 출신들이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다. 어쩔 수 없지, 내 일이 아니야 하며 무덤덤하게 넘기는 내가 싫다. 옳지 않다면 적어도 목소리라도 내야하는데 그저 내가 만들어낸 자그만 현실 속에 안주하려는 내가 싫다. 안개 속으로 처음 들어갈 때엔 옷이 젖는 걸 모른다. 오래 서 있다 보면 옷이 젖어 축축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젖어서 무거워진 옷을 짜내어 조금이라도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서 있다가 점점 무거워질 옷을 입고 안개 속에 파고들 것인가. 선택의 몫은 우리에게 주어졌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선택.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로 잠시 작가 공지영을 떠나 있었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고맙다. 그리고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고맙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그 끝나지 않는 소식들을 들으며 <도가니<를 떠올릴 테니까. 기득권에 밟혀 버린 작은 꽃들이 다시 피어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알게 되었을 테니까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기보다 세상이 나를 바꾸지 않게 하기 위해 더 이상 그 소식을 무덤덤하게 넘기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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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사무소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공보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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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명성은 익히 들어왔다. 코믹 S.F 장르의 개척자, 작가의 특이한 이력 등등. 그의 두 번째 이야기 <더크 젠틀리의 성스러운 탐정 사무소>는 전작만큼 긴 제목을 가졌고 뜻조차 범상치 않았다. 탐정 사무소면 탐정 사무소지 성스러운은 왜 들어갈까? 물론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알게 되었지만 이젠 제목보다 내용이 문제다. 이 쉴 새 없이 떠드는 책의 정체는 뭐란 말인가? 
 

책은 도입부가 힘들었다. 빛과 탑의 설명, 그리고 생소한 전자수도사라는 개념까지 집중하기에 좀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전자수도사라는 건 인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만들어진 장치였다. 세상이 믿으라는 것을 대신 믿어주고 인간의 번거로움을 줄여주기 위해 고안되었는데 너무나 모든 것을 열렬히 믿다보니 세상이 온통 분홍색이라고 믿고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책엔 사기꾼이라기엔 애매한 탐정 더크 젠틀리와 그의 친구 리처드, 리처드의 고용주이지만 전자수도사에게 살해당한 고든 (후에 유령으로 돌아다닌다),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누구도 딱히 기억해내지 못하는 리즈교수 등 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이리저리 부딪힌다. 소리가 난다면 분명 우당탕하고 큰 소리가 났을 것이다. 작가의 희한한 설정은 타임머신에서 더 큰 빛을 발하는데 이것이 여러 사건과 인물들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설정이다. 타임머신의 존재를 눈치 챈 더크 젠틀리는 정말 소질 있는 탐정일까? 아님 정말 초능력자? 
 

처음 적응하기 힘들었던 이야기는 중간을 넘어가자 이야기에 적응하면서 읽는 속도도 빨라졌다. 뭐랄까. 기분이 유쾌해졌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렇게 말 많은 소설이라니!! 대화가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렇게 느낀 건지도 모르겠다. 결국 한바탕 소동을 끝낸 후에 비로소 인류 구원이 이루어졌지만 (책 표지에 나와 있던 인류 구원의 말이 이렇게 연결 될 줄이야) 책을 덮은 후에도 여전히 소란스러운 등장인물들의 입담이 들리는 것 같았다. 작가는 상상력 뿐 아니라 재치 또한 출중한 듯하다.  
 

이야기가 너무 빨리 끝난 감이 있었는데 후속편이 있단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개성 있고 나오는 내내 즐거웠기 때문에 다음 편 그대로 나와 줬으면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절대 소소한 일을 맡기고 싶지 않은데 대신 인류를 구원하는 탐정 더크 젠틀리. 다음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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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에 선 미국 - 이슬람의 도전과 사라지는 강대국들
마크 스타인 지음, 현승희 옮김 / 인간사랑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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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듣거나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한 번이라도 그날 일어났던 장면을 TV에서 본 사람이라면 그 날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그 날 일어났던 사건은 서구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이슬람이라는 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 주었다. 뒤이어 일어난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와 스페인 열차 폭탄 테러는 그 경각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쐐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위험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슬람 국가들이 소위 떠오르는 젊은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은 이미 고령화로 들어서 있고. <벼랑 위에 선 미국>의 작가 마크 스타인에 따르면 유럽 젊은이들의 많은 수치를 이슬람교도들이 차지하고 있고 그 비율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나라에 물들지 않고 이슬람 문화에 의해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뉴욕과 마드리드, 런던에서 일어난 일련의 테러 사건들은 우리에게 먼 나라 이야기라 느껴질지도 모른다. 또 바그다드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하루가 다르게 터지는 폭탄들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문화나 극우주의자,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며 젊은이들을 세뇌시켜 자살폭탄을 쓰도록 하는 무리 또한 존재한다. 미국도 유나바머(문명 혐오자. 78년부터 95년까지 모두 16회의, 주로 과학 기술자에게 우편테러 감행. 3명의 사망자를 냄)와 같은 테러범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작가는 왜 유독 이슬람 사회에 주목하고 있는가? 그들의 세력이 막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이 너무나 위협적이어서? 작가의 생각으로는 둘 다 맞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슬람교도들은 그들의 수를 착실히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세 건의 테러로 서구사회의 ‘외국인 혐오증’이나 ‘이슬람혐오증’이 늘어갔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커져가는 이슬람 사회를 막을 수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이민자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큰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2005년과 2007년에 일어난 이민자 가정 청소년들의 폭동사건이 그것이다. 또 ‘히잡’이나 ‘부르키니’같은 이슬람 고유의 문화를 프랑스로 동화시키는 데에도 프랑스 정부는 상당히 힘들어 하고 있다.

서구 사회가 이렇게까지 힘들어진 이유는 어디 있을까? 100 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두고 패권싸움을 하던 유럽의 모습은 이제 찾아 볼 수 없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이유는 유럽이 오랫동안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은 복지가 매우 발달한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적은 노동시간과 후한 실업수당, 긴 유급휴가, 국가 연금 등 국민들은 국가가 준 마약에 빠져 있다고도 한다. 이 안락한 생활 속에서 그들은 동면 상태에 빠져 자멸해 가고 있으며 국민들은 자립심을 잃고 만족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슬람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는 달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유럽을 비판한다.

또 다른 이유는 서구사회가 지금 고령화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1960~1970년대 만해도 그들은 인구과잉으로 인한 자원부족을 걱정했었다. 실제 나는 다른 책에서 어떤 작가가 인구과잉으로 자식을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세계 뉴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저 출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 그로 인해 젊은이들이 부담해야 하는 노인 부양금에 대해 말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에서 노동력을 수입한다든가 하는 대책을 얘기하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독일 여성 중 30%가 아이가 없고 가정 당 1.3 이하라는 ‘최저저’ 출산율로 미끄러진 후 회복하지 못한 유럽의 국가가 17개국에 달한다고 한다.

줄어만 가는 젊은 층의 인구와 늘어만 가는 노인층의 인구. 물론 해결책은 있다.  요즘 프랑스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네 명 중 한 명은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난다고 하고 다른 유럽의 나라에서도 이슬람교도들이 차지하는 젊은 층 비율은 높다고 한다. 이들은 법적으로 그 나라 국민이다. 세금을 낼 것이고 그 나라의 권리와 의무를 다 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슬람은 절대 그들이 사는 나라에 동화되지 않는다. 여자들은 히잡을 입고 남자들은 명예살인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작가도 이슬람교도들이 모두 다 급진주의자가 아닌 것을 인정하지만 테러리스트 중에 모하메드라는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또 위태위태한 동맹국들과(거의 이름뿐인) 적들 사이에 낀 미국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다. 그리고 미국을 싫어하면 안 된다고 애원조로 호소하기도 한다.( 나한테만 그렇게 느껴졌나? )

이슬람 문화에 대해 여러 관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작가가 자국인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초강국으로 자라난 미국이 그 힘을 가지고 세계 여러 곳을 기웃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평화와 자유를 사랑한다는 그들의 이념보다는 자신과 동맹국의 이득을 위한 이념을 실천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지금도 미국은 전쟁 중인 나라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이라크 전쟁도 진행 중이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도 남아 있다. 작가는 이슬람교도들이 미군의 심장부, 교육기관, 행정기관, 정치기관에 침투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유대인들도 그렇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떤가? 무슬림 전통에 따라 아버지가 무슬림이었던 오바마 대통령도 무슬림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설마 이슬람세력이 백악관에도 침투했다고 하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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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공주
카밀라 레크베리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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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다 못해 푸른 이미지. 한 여인의 표정 없는 얼굴과 책의 제목 <얼음공주>가 사뭇 잘 어울린다. 차세대 애거서 크리스티로 주목 받고 있으며 인구900만 명의 스웨덴에서 100만 부나 팔아 그 저력을 과시한 작가 카밀라 레크베리의 <얼음공주>가 우리나라에 출간되었다. 처음 책을 봤을 때 두께가 만만치 않아 읽는 데 오래 걸릴 거라 예상했지만 하루에 그냥 후딱 읽어버렸다. 그만큼 흡인력 강하고 내게는 올해 읽은 책 중에 순위를 윗돌만큼 괜찮은 소설이었다.  
 

스웨덴의 작고 아름다운 마을 피엘바카는 한때 어업이 마을 사람들의 주된 일이었지만 요즘에 들어서는 관광이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마을은 여름이면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치지만 겨울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그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겨울에는 다른 곳에서 살다가 여름에만 다시 돌아오기 때문에 피엘바카의 겨울은 더 춥고 조용하기만 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부모님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피엘바카로 온 작가 에리카는 25년 전 친구였던 알렉스가 욕실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선명한 푸른  빛의 입술, 기다란 금발, 얼음이 낀 차가운 욕실의 물. 한때 무척이나 친한 친구였지만 언제부턴가 소원해졌던 알렉스의 죽음은 그녀에게 큰 파문으로 다가온다. 아름다운 외모와 부유한 재산, 멋진 남편 등 에리카와 떨어져 있던 사이에 알렉스는 많은 것이 변해 있었지만 자살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듯 했다. 에리카는 알렉스의 부모의 부탁을 받아 알렉스에 관한 기사를 쓰기로 결심하지만 그 내면 속에선 이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자 하는 에리카의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알렉스가 자살이 아닌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경찰이 개입하고 에리카도 이 사건에 좀 더 깊숙이 접근하게 된다. 이 아름다운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은 누구일까?

그 뒤 에리카는 탐정 뺨치게 사건의 단서들을 모으고 알렉스의 내연남을 알아내기도 한다. 경찰도 같이 수사를 하고 있지만 어쩐지 에리카에게 뒤처지는 느낌이다. 그녀가 작가라 감이 좋았던 것일까? 그리고 마을의 알코올 중독자인 안데르스가 알렉스와 잘 아는 사이로 밝혀지면서 사건은 복잡하게 꼬여만 간다. 진범으로 지목된 안데르스는 그러나 목 매달아 죽은 채 발견 되는데. 발밑에 의자를 찾지 못한 경찰은 알렉스의 죽음과 안데르스의 죽음이 같은 범인에 의해 저질러  졌을 거라 믿고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사실 알렉스의 죽음과 범인을 찾기 위한 과정이 책의 주된 이야기지만 책은 에리카와 주변 인물들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꼭 주인공이 에리카라기보다는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을 소개하고 그의 삶을 설명해주는 형식이다. 또 이야기의 진행이 느리기 때문에 다소 지루했던 독자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런 자세한 설명과 긴 호흡이 하나로 합쳐지거나 사소하게 여겼던 일이 뒤에 다시 등장했을 때 전율이 느껴졌다. 방대한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내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라 카밀라 레크베리라는 이름이 내게 확실히 기억될 책이었다.

피엘바카는 정말 작은 마을이라 마을 사람 대부분이 서로를 알고 소문도 삽시간에 퍼진다. 이런 폐쇄된 마을에 25년 간 감춰진 비밀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쉬쉬하는 일들, 그 소문의 당사자들, 인간의 어두운 면모가 고스란히 등장하고, 추리소설이지만 사람의 심리를 주로 다루고 있어 흥미롭다. 또 책을 읽는 내내 묘사 된 마을의 차가운 날씨와 황량한 분위기는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 읽으면서 지금이 2009년 무더운 여름이지만 꼭 겨울인 것처럼 오슬오슬 소름이 돋았다.

중간 중간 나오는 작고 큰, 충격적인 반전들은 책을 도저히 내 손에서 떼어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스릴러는 아니지만 느리되 스릴러의 요소는 모두 갖춘 이 소설에 재미를 느끼고 싶은 독자는 얼음공주 알렉스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이 여정에 동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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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프문 베이 연쇄살인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 지음, 이영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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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의 그녀들이 돌아왔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한 명 바뀌었다. <쓰리 데이즈>에서 살해당한 검사 질 번하트 대신 변호사인 유키 카스텔라노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데 아직 큰 특징이 없어 이 책에서는 그녀만의 매력을 뿜어내지 못한 것 같다.

<우먼스 머더 클럽>의 네 번째 이야기 <해프문 베이 연쇄살인>은 말 그대로 해프문 베이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이야기지만 린지가 그 곳으로 가기까지의 또 하나의 사건과 교차진행 된다. 두 사건 모두 흥미로운 사건이라 앉은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어버렸다. 읽고 나서의 만족감은 <쓰리 데이즈>보다 더 컸다.

어느 날 새벽, 린지는 10대 소년 살인사건 현장에 들어서게 된다. 욕조에서 감전된 끔찍한 시체와 ‘아무도 신경 안 써’ 라고 남겨진 글씨는 벌써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사건이다. 현장 주변에서 검은색 메르세데스를 목격했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린지는 일이 모두 끝난 금요일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다 검은색 메르세데스가 나타났다는 재코비의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메르세데스를 멈추게 한 그들은 운전자를 보고 경악한다. 십대 초중반의 아이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심한 사이 아이들이 쏜 총에 맞은 린지와 재코비는 쓰러지고 결국 린지가 맞대응한 총에 여자아이는 죽고 남자아이는 평생 휠체어 신세가 된다. 그 사건으로 아이들의 부모가 린지를 고소하면서 린지는 법정까지 나가게 되는데. 잠시 지친 몸과 마음을 풀러 여동생의 집이 있는 해프문 베이에 간 린지는 그 곳에서 일어난 부부 연쇄살인 사건을 알게 된다. 그 사건이 10년 전에 자신이 맡았던 미해결 사건과 유사함을 알게 된 린지는 주저 없이 이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데

<해프문 베이 연쇄살인>은 린지가 주인공이다. 주로 린지의 동선을 따라가기 때문에 그녀의 친구들이 드물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워낙 흥미롭고 두 사건이 쉴 시간 없이 펼쳐지기 때문에 오히려 많은 등장인물이 나왔다면 흥미가 반감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위험한 일에 열정적으로 뛰어 들어 사건을 해결하는 린지의 모습에 큰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해프문 베이 연쇄살인>은 린지의 경찰 생활에 위기를 가져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부잣집 아이들의 장난과도 같은 살인 행위로 죽음의 위협도 당하고 설상가상으로 그 부모에게 고소를 당한 것은 린지가 경찰이기 때문이었다. 범인 검거 과정의 절차와 형식을 중요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그 중 하나라도 어긋난 것이 있다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보상비용, 자신의 경찰 생활 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사회의 지탄을 받을 수 있는 위기에서 린지는 변호사 유키 카스텔라노를 만나고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간다. 또 해프문 베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곳 경찰과 협력하고 불철주야 수사에 앞장선다.  

책을 읽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잘못된 것을 고쳐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가 직접 해결하기 보다는 경찰의 힘을 빌린다. 그것이 사회의 정해진 법칙이다. 하지만 경찰도 모르는 잘못된 일들은 어떨까. 사회의 평가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의 진정한 모습을 누구에게 호소한다 해도 믿어 줄 사람이 있을까? 또 그런 그들을 직접 처단 하는 범인들의 행위는 옳다 그르다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너무 어려운 문제이다.

책은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독자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한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다음 권 또한 기다리게 될 것이다.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와 아직 드러내지 못한 유키의 매력도 다음 권에서 꼭 드러나길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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