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보면 난 항상 일어나서 나가버릴지 아님 끝까지 봐야할지 고민한다. 영화가 재미없어서는 결코 아니다. 그것은 그의 영화가 내가 마주하려 하지 않았던 현실의 고통들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밀양>을 보기 전까지 피해자의 남은 가족들의 삶을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무신경함. <오아시스>를 보기 전까지 장애인들에게도 욕구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못한 무지함까지도. 
 

<도가니>를 보면서 이창동감독의 영화들을 연상한 것도 그 때문이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를 접하고 있다 보면(그것이 영화나 소설일지라도) 난 도피하고 싶어진다. 이건 거짓말일 거야. 현실이 아니야 하면서. 하지만 그 일들은 현실이다. 우리가 외면하려 해도 할 수 없는 우리 주위의 이야기이며 우리가 흘려보내려  해도 그 자리에서 ‘나 여기 있어요’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어쩜 이 이야기가 지금에야 나왔나 싶었다. 뉴스를 보다보면 한 달에 몇 번은 보게 되는 장애인 폭행사건들은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함을 알린다. 또 그에 대한 철저한 대책 없이 지지부진한 해결은 앞으로도 이 일들이 계속 될 것임을 암시한다. <도가니>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이게 어찌 요즘에만 있었으랴. 우리가 알려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회 기득권자가 약자를 짓밟고 유린한 일은 일상처럼 벌어진다. 사회가 그렇게 돌아간다. 그들은 마치 신처럼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들이 아니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어 댄다. 지긋지긋한 무진의 안개들같이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 시스템이다.

‘자애학원’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두드린 사람은 기간제교사로 온 강인호였다. 하던 사업이 어려워져 작은 거 다섯 장을 주고 맞바꾼 기간제교사의 자리. 젊고 의욕에 차 무진에 내려왔던 강인호에게 보여준 ‘자애학원’ 의 자그마한 비리는 처음엔 작은 거 다섯 장이었다. 상호 묵인 아래 벌어진 그 자그마한 비리는 모욕적이었지만 괜찮았을 것이다. 정식 교사가 될 수 있다는데 투자에 가깝다는 게 강인호의 생각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애학원’의 아주 큰,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비리는 따로 있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 중학생인 어린 아이들을 교장과 그의 쌍둥이 동생인 행정실장, 박보현 선생이 강간하고 폭행한 것이다. 기간제교사 자리는 강인호 가족의 희망이었다. 그는 처음에 귀를 막고 싶었을 것이다. 현실이 아니라며 외면하고 싶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나조차 그랬으니까. 과정이 세세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더 피하고 싶었다. 책을 읽다가 덮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난 현실을 알아야 했다. 그들의 절규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너무 늦게 알아서, 그간 뉴스를 봐도 그대로 흘려보내어 미안하다고 말해야 했다.

책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법정에서 부터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법정에서 이야기를 통해 기득권층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 있고 어떻게 서로를 보호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사실 놀랍지도 않다. 확인을 더해 씁쓸했을 뿐. 판사, 경찰, 교회, 지역유지들까지 견고히 얽혀있는 관계들은 깨기 어려웠다. 아무리 진실을 외쳐도 그들의 부인과 침묵 안에서는 거짓이 되었다. 바위로 된 성벽을 약한 주먹으로 두드리면 주먹만 깨진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렇다고 포기해야 하는 걸까? 강인호는 이 책에서 사회적 정의와 가족의 행복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런지 강인호의 선택과 서유진의 선택 둘 다 공감이 갔다. 그 둘은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거짓 속에 진실이라는 보석을 찾은 그들은 모두 하나의 입장이다. 선택해야 할 미래가 달랐을 뿐이었다. 
 

지연과 학연이라는 오랜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있을까. 지금도 나라의 높은 자리에는 같은 학교 출신들이 수두룩하게 포진해 있다. 어쩔 수 없지, 내 일이 아니야 하며 무덤덤하게 넘기는 내가 싫다. 옳지 않다면 적어도 목소리라도 내야하는데 그저 내가 만들어낸 자그만 현실 속에 안주하려는 내가 싫다. 안개 속으로 처음 들어갈 때엔 옷이 젖는 걸 모른다. 오래 서 있다 보면 옷이 젖어 축축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젖어서 무거워진 옷을 짜내어 조금이라도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서 있다가 점점 무거워질 옷을 입고 안개 속에 파고들 것인가. 선택의 몫은 우리에게 주어졌다. 나는 대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선택.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이후로 잠시 작가 공지영을 떠나 있었다.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에게 고맙다. 그리고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고맙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테니까. 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그 끝나지 않는 소식들을 들으며 <도가니<를 떠올릴 테니까. 기득권에 밟혀 버린 작은 꽃들이 다시 피어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쳤는지 알게 되었을 테니까 그리하여 세상을 바꾸기보다 세상이 나를 바꾸지 않게 하기 위해 더 이상 그 소식을 무덤덤하게 넘기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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