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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위에 선 미국 - 이슬람의 도전과 사라지는 강대국들
마크 스타인 지음, 현승희 옮김 / 인간사랑 / 2009년 7월
평점 :
2001년 9월 11일을 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듣거나 보지 못한 사람은 모를 수도 있겠지만 한 번이라도 그날 일어났던 장면을 TV에서 본 사람이라면 그 날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그 날 일어났던 사건은 서구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이슬람이라는 문화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 주었다. 뒤이어 일어난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와 스페인 열차 폭탄 테러는 그 경각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쐐기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위험을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슬람 국가들이 소위 떠오르는 젊은 국가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은 이미 고령화로 들어서 있고. <벼랑 위에 선 미국>의 작가 마크 스타인에 따르면 유럽 젊은이들의 많은 수치를 이슬람교도들이 차지하고 있고 그 비율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나라에 물들지 않고 이슬람 문화에 의해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그들을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뉴욕과 마드리드, 런던에서 일어난 일련의 테러 사건들은 우리에게 먼 나라 이야기라 느껴질지도 모른다. 또 바그다드나 아프가니스탄에서 하루가 다르게 터지는 폭탄들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문화나 극우주의자,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며 젊은이들을 세뇌시켜 자살폭탄을 쓰도록 하는 무리 또한 존재한다. 미국도 유나바머(문명 혐오자. 78년부터 95년까지 모두 16회의, 주로 과학 기술자에게 우편테러 감행. 3명의 사망자를 냄)와 같은 테러범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작가는 왜 유독 이슬람 사회에 주목하고 있는가? 그들의 세력이 막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상이 너무나 위협적이어서? 작가의 생각으로는 둘 다 맞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슬람교도들은 그들의 수를 착실히 늘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세 건의 테러로 서구사회의 ‘외국인 혐오증’이나 ‘이슬람혐오증’이 늘어갔지만 그들의 힘으로는 커져가는 이슬람 사회를 막을 수가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이민자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큰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2005년과 2007년에 일어난 이민자 가정 청소년들의 폭동사건이 그것이다. 또 ‘히잡’이나 ‘부르키니’같은 이슬람 고유의 문화를 프랑스로 동화시키는 데에도 프랑스 정부는 상당히 힘들어 하고 있다.
서구 사회가 이렇게까지 힘들어진 이유는 어디 있을까? 100 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두고 패권싸움을 하던 유럽의 모습은 이제 찾아 볼 수 없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그 이유는 유럽이 오랫동안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은 복지가 매우 발달한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다. 적은 노동시간과 후한 실업수당, 긴 유급휴가, 국가 연금 등 국민들은 국가가 준 마약에 빠져 있다고도 한다. 이 안락한 생활 속에서 그들은 동면 상태에 빠져 자멸해 가고 있으며 국민들은 자립심을 잃고 만족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슬람에 의한 테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과는 달리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 유럽을 비판한다.
또 다른 이유는 서구사회가 지금 고령화의 늪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1960~1970년대 만해도 그들은 인구과잉으로 인한 자원부족을 걱정했었다. 실제 나는 다른 책에서 어떤 작가가 인구과잉으로 자식을 낳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세계 뉴스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저 출산에 대해 말하고 있다. 또 그로 인해 젊은이들이 부담해야 하는 노인 부양금에 대해 말하고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에서 노동력을 수입한다든가 하는 대책을 얘기하기도 한다. 통계에 따르면 독일 여성 중 30%가 아이가 없고 가정 당 1.3 이하라는 ‘최저저’ 출산율로 미끄러진 후 회복하지 못한 유럽의 국가가 17개국에 달한다고 한다.
줄어만 가는 젊은 층의 인구와 늘어만 가는 노인층의 인구. 물론 해결책은 있다. 요즘 프랑스에서 태어나는 신생아 네 명 중 한 명은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난다고 하고 다른 유럽의 나라에서도 이슬람교도들이 차지하는 젊은 층 비율은 높다고 한다. 이들은 법적으로 그 나라 국민이다. 세금을 낼 것이고 그 나라의 권리와 의무를 다 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한다. 이슬람은 절대 그들이 사는 나라에 동화되지 않는다. 여자들은 히잡을 입고 남자들은 명예살인을 하기도 한다. 물론 작가도 이슬람교도들이 모두 다 급진주의자가 아닌 것을 인정하지만 테러리스트 중에 모하메드라는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또 위태위태한 동맹국들과(거의 이름뿐인) 적들 사이에 낀 미국이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여러 페이지에 걸쳐 설명한다. 그리고 미국을 싫어하면 안 된다고 애원조로 호소하기도 한다.( 나한테만 그렇게 느껴졌나? )
이슬람 문화에 대해 여러 관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 작가가 자국인 미국을 위협하는 세력들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초강국으로 자라난 미국이 그 힘을 가지고 세계 여러 곳을 기웃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도 평화와 자유를 사랑한다는 그들의 이념보다는 자신과 동맹국의 이득을 위한 이념을 실천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지금도 미국은 전쟁 중인 나라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이라크 전쟁도 진행 중이며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문제도 남아 있다. 작가는 이슬람교도들이 미군의 심장부, 교육기관, 행정기관, 정치기관에 침투해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유대인들도 그렇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떤가? 무슬림 전통에 따라 아버지가 무슬림이었던 오바마 대통령도 무슬림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설마 이슬람세력이 백악관에도 침투했다고 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