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
알리 쇼 지음, 김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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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가 창조해 낸 섬 세인트 하우다는 여느 육지와는 다르다. 공기 중에 나는 냄새, 새들의 특이한 버릇, 거의 일정한 패턴의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어 내면서 내리는 눈, 알비노가 아닌데도 온 몸이 하얗게 변한 동물들. 또 고독하고 쓸쓸하다는 점에서. 이 섬은 한때 주민들이 고래잡이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간다. 떠나는 사람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 이 외로운 섬에 한 소녀가 들어온다. 유리로 변하는 몸을 가진 채.

<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는 표지가 참 아름다운 책이다. 첫 느낌이 그랬다. 청회색과 하얀색이 기묘하게 어울리는 그림이 책을 더 기대하게 했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 책은 내 예상과는 달랐지만 기대보다 더 재밌었다. 막연히 <눈의 여왕>같은 동화를 생각했던 것이다. 이 책은 어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다와 달리 책은 느리게 호흡하지만 활자들이 가슴에 스며들기엔 충분했다. 카스테라에 우유를 조금씩 부어 그 속을 채운 것 같은 느낌? 뭐라 잘 표현 할 말이 없지만 앞서 표현한 그런 촉촉함이 남았다. 아이다의 운명이 슬펐음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아이다는 아주 건강하고 밝은 소녀였다. 아이다는 세인트 하우다에 남자친구와 함께 오기로 약속했지만 급작스럽게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바람에 혼자 여행을 오게 되었는데 우연히 괴이한 사나이 헨리 푸와를 도와주게 된 인연으로 그 당시엔 믿지 않았던 이야기- 습지에 유리로 된 시체가 있다는 말-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의 다리 끝부분부터 유리로 변하기 시작하자 아이다는 헨리 푸와를 찾아 다시 세인트 하우다에 돌아오고 그 곳에서 카메라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은 남자 마이다스를 만나면서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둘은 결국 헨리 푸와의 집에 찾아가지만 그조차 방법을 알지 못하고 아이다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에 초조해진다.

책엔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다와 마이다스를 중심으로 주변인물 몇몇이 더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작가는 어떤 인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자세히 다룬다. 서로의 사정을 지나치게 잘 안다는 섬 주민들처럼 독자들에게도 그들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또 현실인 듯 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난 설정들 (유리로 변하는 몸, 나방날개가 달린 소, 눈에 띄는 건 모조리 하얗게 만들어버린다는 동물 등) 이 합쳐지면서 신비로운 느낌도 들었다. 

자유로웠던 바깥 세상에 있었지만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섬으로 들어온 아이다가 섬에서 평생 살면서 바깥을 꿈꾸지 않았던 마이다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과정이 좋았다. 복잡한 가정환경과 아버지의 자살은 마이다스의 삶에 깊은 얼룩을 남겼던 것이다. 소심하고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던 마이다스는 아이다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그토록 무서워했던 보트도 그녀 함께라면 견딜 수 있었다. 결국 마이다스는 섬에서 나오기로 결심하고 평생 입어본 적 없었던 새빨간 잠수복을 입는다. 고요한 심연에선 아이다를 만날 수 있을지, 헨리가 원하는 것이 그것인지 모호한 결말이었지만 그는 아이다에게 닿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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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위한 합격이야기
김선옥 지음 / 미디어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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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시험의 연속이라 했던가. 교과과정의 하나로서 의무적으로 정해진 시험도 물론 있지만 학교를 벗어나서도 시험을 봐야하는 경우가 많다. 각종 자격증 시험, 토익, 토플, 그 외에도 회사가 강요하는 시험까지. 시험은 자격의 유무를 판별할 뿐 아니라 부여된 과제 또는 넘어서야 하는 단계로 여겨진다. 어렵고 귀찮다고 해서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시험에서 얻는 결과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더 늘려주기도 하고 좀 더 나은 곳으로 나가기 위한, 보이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을 보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원래 학력은 무관했지만 연령 상한선까지 폐지되면서 응시하는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시험이라는 것이 뽑으려는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지원하는 사람은 늘어나니 문제다. 어떻게 하면 그 무시무시한 경쟁을 뚫고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지만 온전히 독학으로만 합격을 하기는 어렵다. 무엇을 먼저 시작하고 어떻게 공부해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때 정말 막막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럴 때에는 먼저 합격한 사람들의 합격수기를 보며 마음도 다잡고 공부의 노하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합격생이 괜히 합격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도 먼저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공부했을 것이고 그 끝에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터득해 합격했을 것이다. 그렇게 얻은 방법과 결과를 아직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알려준다니 이보다 더 고마울 수 있을까?

이 책 <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위한 합격 이야기>는 7.9급 공무원 시험 합격생들의 합격 수기를 모아놓은 것이다. 공무원 시험 카페에서도 합격 수기는 심심치 않게 읽어볼 수 있지만 이 책은 공모전을 열어 당선작들만 모아놓은 것이다. 엄선된 글들만 뽑혔을 테니 믿음도 가고 책으로 엮어 놓아 그냥 소설책 읽듯 읽어보았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합격한 합격생들의 글을 읽어 볼 수 있었다. 또 자신만의 공부방법과 공부한 기간, 가장 중요한 면접까지 수록해 놓아 꼭 공무원 시험을 보는 준비생이 아니더라도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으면서 자극도 받으며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리라 생각되었다. 꼭 이대로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의 글을 보고 따라하다 보면 어느 샌가 자신만의 공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공부는 혼자 해야 하지만 나를 끌어 줄 길잡이는 필요하니까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합격생들이 합격하고 나서의 달라진 생활이라든가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현직의 장점과 단점을 함께 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합격한 사람들의 수기도 꽤 눈에 띄었는데 그 정도라면 현직 생활에 많이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직장생활을 낱낱이 말할 순 없겠지만 조금의 언질이라도 준다면 준비생들에게 좀 더 자극제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쉬운 시험은 없다. 또 시험이라는 것이 열심히 노력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의 운과 시험당일의 컨디션까지 많은 것이 그 날 시험의 당락을 좌우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수준까지 준비되어 있고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한다면 합격의 그날이 멀지 않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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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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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의 역사,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의 정신 이 두 가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로 알려져 있는 고조선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유구한 역사 속에서 고조선부터 시작되는 상고사[上古史]를 증명할 사료는 거의 없다. 단군이 나라를 세웠다는 이야기는 신화로 전해지고 고려 말 이암이 썼다는 <단군세기>는 가장 믿을 수 없는 책으로 낙인 찍혔다. 이렇게 남아있는 자료가 없으니 우리는 중국 사료들을 보며 우리나라의 역사를 끼워 맞출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고조선의 연구가 활발해진 시기는 고려 말 원(元)간섭기 무렵이었다. 몽고 간섭 하에 자주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로 이해할 수 있는데 그 시기가 13~14세기니 지금으로부터 700~800년 전이다. 고조선부터 세어보면 3천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나는데 그때까지 책을 집필할 만큼의 사료가 남아있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고려 말부터 불과 700~800년 떨어져 있는 지금은 왜 그 사료들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일까? 
 

내가 이런 의문을 담고 살아올 동안 작가 김진명도 오래전부터 한 의문에 사로잡혀 왔다고 말한다. 바로 대한민국(大韓民國)에서 한(韓)이라는 글자가 어디서 왔을까하는 의문이다. 고종 실록에는 대한제국 국호를 정할 때 삼한을 잇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 삼한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아무도 모를뿐더러 한반도 남부에만 국한되어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 삼한을 잇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작가가 책에서 주장하는 대로라면 고조선 이전에 한(韓)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며 그들이 우리의 조상들이라 한다. 또 위작논쟁으로 뜨거운 <단군세기>의 진실성을 증명할 수 있다고도 한다.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사학계를 뒤집어 놓을 일이다. 책 표지에 써있듯이 한마디로 말해 위험한 책이다. 
 

이야기는 한 여자교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과학 분야에서 일하고 있던 김미진 교수는 사서삼경에 목을 매고 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된다. 그 모습에 타살 의혹을 가진 목 반장은 이 사건을 조사하기로 마음먹는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무렵 목 반장은 김미진 교수의 영안실에서 한 사내를 만난다. 바로 김미진 교수의 친구인 이정서이다. ETER에서 일하고 있는 이 명석한 사내에게 목 반장은 사건의 의심 가는 점을 토로하고 정서도 자체적으로 조사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정서는 그 과정에서 또 다른 친구인 한은원이 김미진과 함께 연구를 한 사실을 알아내게 된다. 하지만 중국에서 일본으로 떠났다는 은원의 소식은 끊기고 은원이 아직 중국에 있다는 확신을 한 정서는 중국으로 가 은원의 행적을 따라가게 되는데. 
 

책은 한 여교수의 죽음과 의문점,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한 여로, 그리고 역사적 사실들을 적절히 혼합하여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실제로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어 손에서 중간에 떼어놓기란 어려웠다. 그만큼 흥미로웠고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나도 정서와 한 마음이 되어 실마리를 찾아 헤맸다. 또 궁금하기도 했다. 대체 한(韓)이 가진 의미는 무엇이며 작가가 늘어놓은 퍼즐은 어떻게 맞춰질까 하고.

사료가 충분히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세월의 흐름과 몇 차례의 전란 혹은 누군가의 악의적 조작 등 몇 가지에 있을 것이다. 드문드문 남은 기록으로는 역사를 추측하거나 유력한 설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작가의 주장을 온전히 믿기에는 무리가 있다. 작가가 인용한 오성취루와 남해조수퇴삼척에 관한 박창범 교수의 실험은 몇몇 사람들에게 비판 받고 있고 책에서 왕부가 썼다고 나온 <지명원류고>, <씨성본결>과 <유한집>은 존재하지 않는 책이다. 또 아직 고조선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도읍지가 어디였는지에 대한 검증이 확실히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조선 이전에 한(韓)이라는 나라가 존재했다는 것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엄격한 기준과 논리, 확실한 증거자료로 역사를 되살려내야 하는 사학계와는 달리 작가의 주장은 자유롭다. 그 공간에서 작가는 자신이 주장한 바를 서술하고 나름의 증거자료를 제시했다. 섣불리 작가의 생각에 동조할 순 없었지만 책을 읽고 난 뒤 작가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오랫동안 김진명 작가의 책을 봐왔지만 작가의 책엔 딱 한국사람, 한국의 것이 깃들어 있다. 작가는 우리가 관심을 끊어버린 것들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도록 독촉한다. 이렇게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가가 몇이나 될까. 아무리 세계화니 미래엔 나라의 경계가 희미해질거니 해도 우리 후손들이 지켜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을 쟁점화해서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니 고맙고 작가 홀로 전장에 내보낸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한 마음이다.     
 

결국 한(韓)의 의미는 무엇일지 확실한 것은 없다. 작가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고 그저 삼한을 뜻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우리가 그 시간을 되찾기 위해선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끝에 반만년의 찬란한 기록들이 세월의 더께를 벗고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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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
타니 아키라, 신한균 지음 / 아우라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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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시골에 가면 흙 속에 묻혀있는 깨진 자기 그릇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언제부터 묻혀있었는지 유래도 알 수 없는 그릇들이었지만 난 그 파편들을 모아 나뭇잎이나 나무열매를 올려놓고 소꿉놀이를 하곤 했었다. 보물찾기를 하듯 흙을 파고 파편들을 맞추고 운이 좋으면 움푹하게 파인 아랫부분을 구할 수도 있었다. 그릇들을 집에 가져가면 안되냐는 제안은 엄마에게 당연히 거절당했지만 그 그릇들과 함께 했던 기억은 내게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릇은 우리 생활에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예로부터 내려온 속담이나 관용어에서도 그릇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흔하고 일상화되었기 때문일까? 우리나라의 그릇은 소위 ‘막사발’이라 하여 품질이 낮고 막 쓴다는 뜻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일본은 달랐다. 우리나라의 ‘막사발’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도다완’으로 불리며 명품 대접을 받고 국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기까지 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은 사발을 직접 생산하고 연구하여 그 명맥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관심이 끊기다시피 한 전통사발이 재조명 된 것은 최근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불린다. 도자기 광(狂)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켰던 이 전쟁에서 우리나라의 수 만 명에 이르는 도공들이 포로로 일본에 잡혀갔기 때문이다. 그 도예기술이 일본의 새로운 산업의 토대로 자리 잡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렇게 되기까지 꼭 우리나라 도공들의 기술만이 있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막사발’ 이라 불리며 냉대 받던 사발들을 그들은 정성껏 가꾸고 보존하며 함께 살아온 것이다. 또 그 기술들을 자신들의 식으로 바꾸고 발전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임진왜란 이후 도자기 산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고려시기부터 내려온 기술들이 끊겼고 간단하며 간편한 자기들이 주를 이뤘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기분 나쁘고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전에 없는 대규모의 문화약탈로 도예기술 뿐 아니라 많은 문화재들을 빼앗겼으니 그들이 박물관에 모셔놓은 고려청자들과 문화재를 보면서 어떻게 울분을 참을 수 있을까? 그 도예기술로 만들어 낸 도자기들을 유럽으로 수출하여 부국의 기틀을 다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니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일이다. (물론 기술을 천시했던 조선의 문제도 있겠지만 난 주는 거 없이 빼앗아 가기만 한 옆 나라가 참 싫다.)     

이 책 <사발, 자신을 비워 세상을 담는다>는 한일 양국의 전통사발 전문가들이 만나 공동집필한 최초의 도자기 관련 서적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나라 저자인 신한균씨의 이름이 들어가 반가웠다. 우리나라 전통사발의 선구자인 고(故) 신정희 옹의 장남이고 사기장으로 일하고 계셔서 그런지 전문적인 시각과 지식으로 많은 가르침을 받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부터 신한균씨가 낸 <신의 그릇>이라는 책을 관심도서에 넣어놓고 한참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전문가들의 책이라 사발들의 사진과 함께 유래와 사발 모양, 그림의 의미까지 다양한 지식을 섭렵할 수 있어 좋았다. 또 사발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두 관점을 교차하는 식으로 설명해 놓아 균형 있는 시각을 갖춘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예전부터 우리나라가 주변 나라들에 비해 차(茶)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것은 수질이 좋아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 때부터 차를 마셨고 고려 시대는 차의 국가라 할 정도로 차(茶)문화가 넓게 퍼져있었다는 것은 몰랐다. -책은 이렇듯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려 주는데 유용한 도구이다.- 또 더 나아가 전통사발의 현재와 미래까지 생각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건 우리들의 관심이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 흙과 환경도 물론 전통사발을 되살리는데 중요한 조건이지만 그것을 이어나가려는 의지와 일반 사람들의 사발에 대한 의식 바꾸기, 그리고 사발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만 된다면 전통사발을 되살리는 것 뿐 아니라 보태어 더 발전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신한균씨는 일본식 단어인 이도다완을 한국식 단어인 황도사발로 바꾸어 쓰자고 권고한다. 이미 널리 퍼진 단어라 일시에 고쳐지긴 어렵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의식하고 고쳐 쓰도록 노력한다면 황도사발이란 단어가 정착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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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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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스릴러 소설에 잠시 손을 떼었다. 여름이 지났다는 이유는 아니지만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단편집을 읽거나 에세이를 많이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혹은 연어가 고향을 찾아오듯 내 손은 어느새 스릴러 소설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처음 책에 빠지게 된 계기가 어렸을 때 읽은 아르센 뤼팽 시리즈였으니 말 다했다.) 그렇게 해서 내 손이 집어 든 책은 이시모치 아사미의 신작 <달의 문>이다. 올해 들어 그의 세 번째 책이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와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를 읽고서 왜 이 작가가 2009년에야 우리나라에 소개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탄탄한 줄거리와 흡인력 있는 전개가 일품인 작가다. 전작들이 독특한 소재와 끊임없는 궁금증으로 날 즐겁게 했으니 이번 책에 거는 기대 또한 컸다. 
 

비행기 납치와 밀실살인 두 가지가 한 번에 일어나다.

처음 비행기 납치가 소재란 것 알았을 때 오, 전작보다 스케일이 커졌는데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달의 문>은 작가의 초기작 중 하나다. 데뷔를 2002년에 하고 이 책이 2003년에 나왔으니 벌써 6년 전 작품이다. 그 새 날고 긴다는 스릴러 책들이 많이 나왔다지만 전혀 촌스럽다거나 흔한 이야기가 아닌, 시간의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책이었다. 

책은 달빛 아래에서 시작한다. 사토미와 마카베, 가키자키는 각각 연령도 다르고 살아온 내력도 다르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도와주는 캠프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들이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단 한가지의 이유는 그들이 ‘스승님’이라 부르는 캠프의 주최자 이시미네 다카시를 위해서이다. 각자의 마음의 상처를 스승님의 도움으로 이겨 낸 세 사람은 순수한 이유로 스승님을 따르는 어디까지나 착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스승님이 유괴혐의로 경찰에 구속되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세 사람은 스승님을 경찰서로부터 빼오기 위한 범행을 계획하게 되는데 바로 비행기 납치이다. 짧은 시간 내에 가장 파급효과가 큰 범행이기 때문이다. 각각 한명씩 아이들을 인질로 확보해 비행기를 장악한 세 사람은 오늘 밤 10시 30분까지 스승님을 공항으로 데려오라고 요구한다. 모든 것이 세 사람의 생각대로 흘러가던 시간, 비행기 내 화장실에서 인질 중 한명의 엄마가 시체로 발견된다. 완벽한 밀실에서 발견 된 시체로 세 사람은 당황하고 비행기 밖 수사본부에서도 세 사람의 납치범답지 않은 요구로 당황하게 되는데.

이야기는 현실적인 비행기 납치범의 범행수법과 판타지적 요소인 달과 스승님의 존재를 알맞게 버무려간다. 그리고 탈출을 고려하지 않는 세 사람의 범행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또 완벽한 밀실에서 발견 된 시체도 있다. 애초에 스승님을 구하려 살인까지 불사하겠다는 결심을 한 세 사람이 정작 시체가 나오자 우왕좌왕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래서 더 궁금했던 것 같다. 이들을 이렇게나 혼란스럽게 한 범인은 누구이며 어떤 방법으로 밀실살인을 저질렀는지를.     책은 느릿느릿 전개되다가 후반부에 들어서 펼쳐 놓은 모든 일들을 폭풍처럼 해결해 나간다. 힌트를 꽤 많이 줘 결말이 의외로 싱겁다 할 수도 있지만 반전의 요소는 만족스러웠다. 또 달을 이용한 판타지적 이미지가 책의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서인지 신비로운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책 속의 인물들의 성격은 각자 잘 드러나 있지만 그 중 눈에 띄는 인물은 승객으로 있다가 얼떨결에 탐정역할을 하게 된 ‘자마미’군이 아닐까 싶다. 이름도 나오지 않은 채 끝까지 고생하지만 자마미군의 냉철한 판단력과 통찰력은 그를 평범한 회사원으로 단정 짓기에 무리였을 정도다. 매력적인 인물이지만 연작시리즈가 아닌 관계로 다시 만나기 힘들 듯 한데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의 탐정인 유카와 대결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나름의 상상도 해보았다.

독특한 소재와 탄탄한 줄거리로 폐쇄된 공간이라는, 어찌 보면 지루하게 진행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잘 이끌어간 소설인 <달의 문>. 브리콜라주의 명사라는 작가의 수식어로도 알 수 있듯이 일본의 유명한 스릴러 소설들과 어깨를 나란히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휘영청 뜬 달이 보고 싶다. 책을 읽은 오늘 밤 뜬 달은 뭔가 달라 보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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