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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
알리 쇼 지음, 김소연 옮김 / 살림 / 2009년 10월
평점 :
작가가 창조해 낸 섬 세인트 하우다는 여느 육지와는 다르다. 공기 중에 나는 냄새, 새들의 특이한 버릇, 거의 일정한 패턴의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어 내면서 내리는 눈, 알비노가 아닌데도 온 몸이 하얗게 변한 동물들. 또 고독하고 쓸쓸하다는 점에서. 이 섬은 한때 주민들이 고래잡이로 생계를 이어갔지만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간다. 떠나는 사람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은 없는 이 외로운 섬에 한 소녀가 들어온다. 유리로 변하는 몸을 가진 채.
<유리로 변해가는 슬픈 소녀 아이다>는 표지가 참 아름다운 책이다. 첫 느낌이 그랬다. 청회색과 하얀색이 기묘하게 어울리는 그림이 책을 더 기대하게 했다. 결론부터 말해서 이 책은 내 예상과는 달랐지만 기대보다 더 재밌었다. 막연히 <눈의 여왕>같은 동화를 생각했던 것이다. 이 책은 어느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아이다와 달리 책은 느리게 호흡하지만 활자들이 가슴에 스며들기엔 충분했다. 카스테라에 우유를 조금씩 부어 그 속을 채운 것 같은 느낌? 뭐라 잘 표현 할 말이 없지만 앞서 표현한 그런 촉촉함이 남았다. 아이다의 운명이 슬펐음에도 불구하고, 사랑 이야기였기 때문일까?
아이다는 아주 건강하고 밝은 소녀였다. 아이다는 세인트 하우다에 남자친구와 함께 오기로 약속했지만 급작스럽게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바람에 혼자 여행을 오게 되었는데 우연히 괴이한 사나이 헨리 푸와를 도와주게 된 인연으로 그 당시엔 믿지 않았던 이야기- 습지에 유리로 된 시체가 있다는 말-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점차 자신의 다리 끝부분부터 유리로 변하기 시작하자 아이다는 헨리 푸와를 찾아 다시 세인트 하우다에 돌아오고 그 곳에서 카메라가 세상의 전부인 것 같은 남자 마이다스를 만나면서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둘은 결국 헨리 푸와의 집에 찾아가지만 그조차 방법을 알지 못하고 아이다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에 초조해진다.
책엔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다와 마이다스를 중심으로 주변인물 몇몇이 더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작가는 어떤 인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그들의 삶을 하나하나 자세히 다룬다. 서로의 사정을 지나치게 잘 안다는 섬 주민들처럼 독자들에게도 그들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였는지도 모르겠다. 또 현실인 듯 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난 설정들 (유리로 변하는 몸, 나방날개가 달린 소, 눈에 띄는 건 모조리 하얗게 만들어버린다는 동물 등) 이 합쳐지면서 신비로운 느낌도 들었다.
자유로웠던 바깥 세상에 있었지만 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섬으로 들어온 아이다가 섬에서 평생 살면서 바깥을 꿈꾸지 않았던 마이다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과정이 좋았다. 복잡한 가정환경과 아버지의 자살은 마이다스의 삶에 깊은 얼룩을 남겼던 것이다. 소심하고 사람을 사랑하지 못했던 마이다스는 아이다를 통해 사랑을 느끼고 그토록 무서워했던 보트도 그녀 함께라면 견딜 수 있었다. 결국 마이다스는 섬에서 나오기로 결심하고 평생 입어본 적 없었던 새빨간 잠수복을 입는다. 고요한 심연에선 아이다를 만날 수 있을지, 헨리가 원하는 것이 그것인지 모호한 결말이었지만 그는 아이다에게 닿기 위해 계속 노력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