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왜곡된 과학 엿보기
톰 베델 지음, 박종일 옮김 / 인간사랑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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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 겨우 올라갈 만한 빙하 위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북극곰의 사진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 사진은 지구 온난화의 비극을 매우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외에도 빙하가 녹고 있어 북극곰이 익사하고 있다는 소식이나 서식지가 없어진 펭귄들이 멸종위기에 놓였다는 이야기도 같이 들려온다. 극지방에는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지만 언론에서 대표적으로 언급하는 동물들은 이 펭귄과 북극곰이다. 펭귄이나 북극곰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인데 그들의 사진을 싣는 것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을 알리기에 매우 효과적이다. (사나운 수컷 북극곰이 북극곰 새끼를 죽이는 사진이 어느 샌가 지구 온난화로 먹이가 없어 동족을 잡아먹는 사진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지만 요즈음 들어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지구 온난화라는 것이 그 원인이 된 화석연료가 쓰이지 않았던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온 현상이라는 설에도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긍정설과 부정설 중 무엇이 진실이며, 우리는 어떤 것을 믿어야 할까?

사실 이 주장들 중 어떤 것을 딱 집어 믿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 같은 일반사람들은 전문가가 아닐뿐더러 전문가들의 주장도 언론이라는 여과지에 걸러 나와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정치적으로 왜곡된 과학 엿보기>란 책이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에 반대편에 서있다. 지구 온난화, 핵, 방사능, DDT, 다이옥신 등 우리에게 유해하다고 알려진 것들과 황우석 박사 사태로 유명해진 줄기세포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상식들을 모두 뒤엎고 있다. 저자인 톰 베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과학적 상식들은 정치화 되어있다고 주장한다. 돈과 명성을 쫓는 과학자와 연구의 자금제공원인 정부와 기업들(무언가 목적이 있는)이 만났을 때 과학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도 설명한다.

몇 가지 살펴보자면, 우선 핵발전소를 들 수 있다. 핵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낸 것 중 가장 강력한 살상무기로 알려져 있다. 내가 핵에 대해 알게 된 건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고나서였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평화롭게 일상생활을 즐기던 사람들이 강력한 빛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져버리는 장면은 어린 나에게 핵의 위험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준 계기였다. 핵은 존재해서도, 만들어내서도 안 되는 살상무기라는 것이 지금까지 핵에 대해 변하지 않는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주장은 조금 달랐다. 핵은 단연코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핵이 위험물질로 분류된 데에는 영화와 언론의 힘이 가장 컸고 핵에 관한한 가장 유명한 사고인 체르노빌 핵반응로 폭발은 건물 내부에서만 사망자가 발생했을 뿐 외부에서의 사망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핵발전소가 1년 동안 배출하는 오염물질은 석탄발전소에 비하면 없거나 현저히 낮았다. 미 해군이 핵 동력을 계속 사용하면서 한 건의 사고도 일으키지 않고 사병들의 발병사례도 없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즉, 가장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에너지가 핵무기와 혼동되면서 가장 두려운 것으로 변모해버린 것이다.

다음으론 에이즈가 있다. 에이즈가 우리에게 알려진 지는 채 몇 십 년 되지 않았지만 체감으로는 암보다도 무서운 질병처럼 느껴진다. 둘 다 정복할 수 없는 질병임에도 말이다.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로 에이즈가 ‘전염’된다는 사실, 아프리카에 수 백 만 명의 에이즈 환자가 존재한다는 언론보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를 위해, 검사장비가 미미한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 환자를 구별해내기 위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었는데 그 기준엔 HIV에 관한 언급이 없다고 한다. 서구와는 다른 기준이 적용된 것이다. 기침, 설사, 발열, 체중감소 등 간단한 증세만으로 아프리카에서는 하룻밤 새에 수 백 만 명이 에이즈 환자로 구분되었다. 병원을 찾아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의 증세가 그러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정확하지도 않고 적용될 수도 없는 정의로 아프리카는 에이즈로 가득한 죽음의 나라로 묘사되었다. 서구 특유의 우위에 선 관점으로 아프리카의 ‘성관계’나 ‘미신’, ‘사회적 태도’ 등을 꾸짖는 칼럼도 등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추정한 만큼의 환자들도 사망자들도 없다는 사실이다. 대재앙을 겪고 있을 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아프리카의 인구수는 늘고 있다.          

에이즈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에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아프리카에서의 에이즈 감염자와 사망자 숫자를 뻥튀기한 자들이 감추려한 사실이 무엇인지도 언론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망선고가 아닌 깨끗한 물과 위생체계의 개선일 테니 말이다.

그 외에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호메로스 현상이나 다윈의 진화론 뒤의 흥미로운 이야기들, 온난화의 하키스틱이론 등을 새로이 알게 되어 머리가 뿌듯이 차오르는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엔 과학을 다루는 책이라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문체에 섞여 나오는 재치까지 종종 등장해 과학 생각만 하면 골치가 아파오는 나도 책을 읽는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화씨 911>에서는 대중을 통제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공포심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음모론을 좋아하진 않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조작과 통제를 일삼는 무리들이 있다는 건 믿는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린다. 가장 효율적인 수단, 공포심을 통해서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알고 있던 사실과 책에서 말하는 사실 사이에서 혼란을 느꼈다. 그래서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눈이 내게 있길 진심으로 바랐다. 또 언론의 자극적인 제목만 보고 속 내용을 성급히 판단한 것에 대한 반성의 기회도 되었다. 하나의 주장만을 맹신한다면 자연스레 우리의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는데 아마 다른 독자들에게도 이 책이 다양한 관점에서 식견을 넓힐 수 있는 장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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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김흥숙 옮김 / 서해문집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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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엔 동네마다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주는 가게가 여럿 있었다. 지금이야 컴퓨터가 있으니 영화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신작비디오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수시로 비디오가게에 가서 확인하고 기다려야했다. 간발의 차이로 놓치기도 여러 번, 며칠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가게 주인과 친분을 쌓는 것은 필수였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빌려온 비디오테이프가 보는 도중 기계에 의해 씹힘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잘못하면 끊어질 수도 있어 자칫하면 비디오테이프 값을 물어줘야 할 상황까지 갈 때가 있었다. 잘 돌아가다가도 필름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정지해버리는 일이 그때 나에게는 참 무서운 일이었다. 그 날도 그랬다. 언니와 비디오를 감상하던 중 어김없이 필름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멈춰버렸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봐도 테이프는 반만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난감한 상황에서 언니가 드라이버를 들고 나타났다. 아예 기계를 뜯어내서 테이프를 꺼내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뜯어낸 기계는 참 신기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테이프가 어떻게 재생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지만 기계 뚜껑을 열어내자 신기한 세상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계 뚜껑을 열어둔 채 비디오를 재생하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반짝이는 은색 원형모양의 부속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기계에 대한 호기심은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그때 열어본 비디오 내부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다. 이 책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의 주인공 윌리엄 캄쾀바의 호기심도 처음엔 소형 라디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캄쾀바는 아프리카의 말라위라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 추수를 막 끝내고 몇 개월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만 그 시기가 끝나면 다음 추수 때까지 굶주림의 시간을 보내고 자연재해가 일어나서 농작물을 망치게 되면 굶어죽는 사람들이 생기는 나라, 하지만 대통령도 정치인들도 그런 상황을 신경 쓰지 않는 나라다. 캄쾀바는 열 세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형제 중 유일한 남자아이라 새벽에 나가 밭일도 돕고 학교도 다닌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중학교에 다니지 못하지만 그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도서관에서 <에너지 이용>이라는 책을 발견하면서 캄쾀바의 인생은 바뀌어버렸다. 

말라위는 전기를 생산하기 어려운 나라다. 말라위 인구의 겨우 2퍼센트만이 전기를 사용하지만 그마저도 비싸고 단전의 위험이 있어 부자라도 이용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해가지면 하던 일을 내려놔야 하고 저녁 일곱 시 밖에 안됐어도 잠자리에 들어야한다. 하지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전기가 있다면?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어른들도 밤까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전기가 생산된다면, 땔감을 하느라 나무가 베어져 매년 홍수의 위험이 있던 숲이 다시 나무로 채워질지도 모른다. 캄쾀바의 희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길이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 책 한권에 의지해야 했고 재료 살 돈이 없어 발품을 팔아 버려진 고물을 모아야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웃었다. 쓰레기장을 뒤지고 다니며 괴상한 것을 만드는 캄쾀바를 미친 사람 취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풍차를 만들어냈다. 주위 사람들의 시각도 바뀌고 마침내 캄쾀바의 집에도 불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중학교 중퇴 소년이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 자신이 참 창피하게 느껴졌다. 태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던 전기나 물, 음식들이 다른 나라에서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는 걸 잊고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또 한 소년이 기적을 만들어 주위를 조금씩 변화시키고 전 세계를 감동시킬 때 나는 나 자신이라도 바꾼 적이 있었을까하고 생각하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지금 캄쾀바는 다시 학교에 다니고 많은 나라들을 다니며 연설을 한다고 한다. 그가 해낸 일로 인해 가족들은 좀 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고 그동안 도움을 받았던 친구에게도 보답했다고도 한다. 환경에 관계없이 재능 있는 사람들은 어디나 존재한다. 그 재능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바꾸고 실행해 나간 캄쾀바가 대견하다. 또 왜? 라는 물음을 갖고 결과를 얻으려 노력할 때 답이라는 보상이 찾아온다는 걸 이 책을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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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사이코 - 상 밀리언셀러 클럽 15
브렛 이스턴 엘리스 지음, 이옥진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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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산산이 부서지는데
아무도 신경 쓰질 않네.  - 토킹 헤즈

책에 붙어 있는 빨간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딱지가 묘하게 거슬린다. 보통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 그런 것일까. 하지만 영화를 먼저 접했기에 납득한다. 나온 지 좀 됐지만 아직까지 충격적인 영상과 주제의식으로 날 혼란스럽게 만들고 주연배우 크리스천 베일을 내게 확실히 각인시킨 영화라고 기억하고 있다. (영화도 물론 미성년자 관람불가다.) 
 

이 책은 판금조치를 받았다가 재심의로 다시 독자들에게 찾아온 특이한 이력을 가진 책이다. 판금. 얼마나 정다운 단어인가. 2009년에 등장한 판금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어쨌거나 판금이 풀리고 <상>권만 읽었을 뿐이지만 확실히 영상으로 보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차이가 있다. 책이 더 많은 상상의 여지를 제공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영화로는 다 잡아낼 수 없었던 장황한 설명 때문이기도 하다. 이름조차 외울 수 없는 다양한 상품명과 주인공의 심리상태, 또 주인공이 서서히 변모해가는 과정이 좋았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 패트릭 베이트먼은 한마디로 잘나가는 남자다. 스물여섯의 젊은 나이지만 월 스트리트의 근사한 직장과 멋진 외모, 넓은 집을 소유하고 있고 돈도 많다. 하지만 속은 언제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으로 가득 차있다. 주위 인간관계를 봐서도 그렇다. 그들의 관계는 보통 친구라기엔 좀 다르다. 그들이 골몰하는 이야기는 항상 슈트를 멋지게 입는 방법이라든지 어떤 음식점이 좋다든지 어떤 휴가지가 좋다든지 하는 겉치레들뿐이다. 그들은 자기 이야기만 할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엔 귀 기울이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눌라 하면 음악이 꽝꽝 울리거나 해서 대화가 통하질 않는다. 혼자만의 섬에 있을 뿐 그들을 이어줄 다리는 없는 셈이다.

“거기다 더 많은 사람들을, 나는, 어, 그러니까...... 어쩌고 싶냐면, 음, 그런 것 같아, 그러니까 살해하고 싶거든”
나는 암스트롱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마지막 말을 강조한다.  p.286

하지만 암스트롱은 베이트먼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이 다녀온 멋진 휴가지에 대해 떠들어댄다.

또 영화에서도 느꼈지만, 희한한 점은 그들이 서로에 대해 이름을 잘못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식당에서 마주친 베이트먼과 주위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대방의 이름을 헷갈려한다. 누구 아냐? 아니, 누구 같은데. 하는 식으로. 심지어 폴 오언은 베이트먼을 처음부터 마커스로 착각하고 베이트먼의 여자친구 에벌린을 마커스의 여자친구 세실리아로 착각한다. 이것도 앞서 말한 겉치레와 관계가 있는데 그들이 서로를 보는 방법은 어떤 옷을 걸쳤느냐, 어떤 신발을 신고 있느냐다. 베이트먼의 하루 일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베이트먼은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온갖 스킨제품을 몸에 발라대고 외출 시에 걸치는 값비싼 명품들을 고르고 멋진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헬스클럽을 다니는 등 빈 속의 공허함을 채우듯 겉모습을 요란하게 치장한다. 그들의 구별법은 간단하다. 오늘은 아르마니 제품의 모직으로 만든 슈트를 걸치고 셔츠는 휴고 보스, 존 라일이 디자인한 실크 넥타이에 구찌구두를 신었군. 하는 정도? 어찌나 많은 상품명이 나열되는지 어지러울 정도였다.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에 착각할 수도 있겠다. 그들이 애용하는 제품은 따지고 보면 가지 수가 몇 안 되니까 말이다. 다양성보다는 획일성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베이트먼은 멀쩡한 겉모습과는 달리 잔인하게 살인하고 작은 동물들의 고문을 즐긴다. 자신이 사이코라는 걸 잘 알고 있고 도움을 청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또 자신의 범행을 고백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을뿐더러 길거리에서 요란하게 살인해도 경찰에 절대 붙잡히지 않는다. 어재서인지 궁금한 독자들도 많을 것이다. 영화와 책의 결말이 같은지 아직 상권만 읽었기에 확인 할 수 없지만 영화의 결말도 참 마음에 들었었다. 몇 가지로 도달할 수 있는 결말을 안겨주었으니 말이다.

물질주의가 만연하고 레이거노믹스로 고도성장을 이룩했던 1980년대의 미국을 2000년대에 보는 것도 색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노숙자들에 대한 무분별한 적개심, 인종차별, 이유 없는 증오들이 아직 판치고 있는 세상이니 <아메리칸 사이코>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무서운 생각도 든다. 너무나 신랄하기에 더 생생히 다가오고 윤리의식과 물질주의의 균형이 어그러진 문명사회의 병폐를 꼬집은 소설. 이 끔찍한 지옥도를 견딜 수 있다면 한 번 읽는 것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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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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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망으로부터 벗어난, 너무나 어린 아이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어른들은 고민하게 된다. 이 아이들을 처벌할 것인가, 교화할 것인가. 처벌만 하기엔 아이들의 남은 삶이 어떻게 망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교화만 하기엔 범죄가 악질이라 언제 또 아이가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 이 두 가지 대안은 가해자의 것이다. 어디에도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가해자와 세상만의 타협이다. 가해자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법으로도 처벌할 수 없고 어쩌면 그들은 몇 년 만에 다시 세상에 돌아와 자연스레 사람들 속에 섞이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평생을 고통으로 보내든 말든 가해자가 반성을 했든 안했든, 가해자가 저지른 일들은 묻히고 잊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피해자라면 혹은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이 일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번에 읽은 책 <고백>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백>을 읽기로 결심한 건 인터넷 서점의 광고를 접하고 나서였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고백인가. 또 열세 살 살인자와 더 어린 희생자라는 문구도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읽게 된 <고백>의 표지는 강렬한 문구와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안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말하는 잔잔한 고백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첫 장의 성직자부터 내 상상은 무너져 내렸다. 아무런 배경이나 상황설명 없이, 피해자의 어머니인 교사 유코가 담담히 말하는 사건의 전모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이들이 맞는지 의심할 정도로. 또 일단 잡으면 한 번에 읽힐 정도로 몰입도도 강했다.  주말에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집어 들었던 책인데 의자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읽어 내려갈 정도였다.

중학교 교사인 모리구치 유코에게는 세상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딸이 있었다. 아버지 없이 단 둘만의 가족인 딸이라 더 애틋하고 각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딸이 자신이 일하는 학교 수영장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사고사로 처리되지만 유코는 알아냈다. 자신의 딸이 자기가 가르치는 반의 학생들에게 살해당했음을. 종업식 날, 유코는 학교를 떠날 결심을 하고 반 학생들에게 담담히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되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가해자를 묘사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중 최대의, 또 가해자가 받을 고통 중 가장 두려워 할 차가운 복수를 한다.

여기까지가 제 1 장인 성직자의 내용이라면 제 2장부터 제 6장까지는 그 후일담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후일담이 또 단순하지가 않았다. 가해자 소년들부터 가해자 소년의 어머니들, 그리고 같은 반 학생들의 이야기가 이어나가면서 점점  더 경악할 일들이 등장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가의 능력이 놀라웠다.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해 이 책이 데뷔작이라 하는데 일본 독자들이 열광한 것도 이해가 갔다. 복선을 깔고 채워나가는 방식과 흔치 않은 이야기구조가 이 작가가 진정 신인인가 의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 전혀 예상치 못한 끝에 반전이라니.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소년법의 개정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나 큰 화두거리다. 세상이 변하고 인터넷 같은 매체의 발달로 아이들은 어른에 가까워지는데 법은 옛날 그 시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유코의 방식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가해자의 인권만 존중되고 피해자는 조용히 있으라는 법의 방식과 대처가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하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릿하게 아픈데 실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들을 뽑아내 가해자들에 대해 떠드는 언론이나 그 기사를 보고 범행방식의 잔혹함, 가해자들의 개인사만을 문제 삼았던 내 자신이나 피해자들을 사건 뒤편에 내몬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백>은 이렇게 내게 많은 생각거리들을 안겨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것을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최고의 문제작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고백>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계속 기억에 남을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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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가붕가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붕가붕가레코드 지음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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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가붕가 레코드라는,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는 이 수상한 이름의 회사를 알게 된 건 역시 ‘장기하와 얼굴들’ 덕택이었다. 2008년, 여느 때와 같이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에 발견한 동영상엔 댓글이 가히 폭발적으로 달려있었다. 무심한 얼굴로 노래 부르는 보컬과 독특한 노랫가락, 무표정한 얼굴의 백댄서까지. 노래 가사도 곱씹을수록 재미있었다. 알고 보니 장기하는 장교주라는 별칭으로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지만 처음 본 나로서는 신선하고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장기하와 얼굴들’은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다. 또 수공업으로 이루어진다는 음반을 만장이나 팔았다는 신화도 남겼고 높은 학벌도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2009년에 발매된 정규 음반도 구입해 보고 ‘브로콜리 너마저’나 ‘치즈스테레오’ 등 붕가붕가 레코드와 관련 있는 밴드들의 음악도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 알 수 있는 건 그 뿐이었다. 어떤 마음으로 음악을 하는지,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할 것인지 인디의 한계는 그것이다. 팔리지 않는 음악이란 인식이 강해서인지 몰라도 그들이 언제 음악을 그만두고 생계에 뛰어들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읽은 <붕가붕가 레코드의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은 그런 내 궁금증을 많이 해소해준 책이다. 그리고 붕가붕가 레코드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친절한 설명도 곁들여 주었다. 그것도 매우 유쾌한 어조로 말이다.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무조건 낫다”

맞는 말이다. 용기가 없어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뿐이지. 이것도 변명인지 모르겠다. 이 말은 붕가붕가 레코드의 신조다. 그리고 그 회사를 지탱해 온 힘이기도 하다. 관악구 외진 곳(하지만 최고의 학벌인)에서 시작된 붕가붕가 중창단에서부터 아는 사람끼리 알음알음 차린 붕가붕가 레코드까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정이 없었다면 그들의 많은 음악들이 묻혔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렇게 책을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나 해봤을까? 그들은 망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작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 하는 것이 안하는 것보다 낫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관객이 모이지 않아도, 수공업으로 만든 음반이 잘 팔리지 않아도 상관 않고 공연을 하고 음악을 만든다.

장기하와 얼굴들’ 이 성공하자 붕가붕가 레코드는 그제야 회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한 번에 CD 일곱 장을 복사할 수 있는 기계를 들여놓고 일주일에 천장씩 CD를 만들어내고, 부가가치세라는 걸 내보고 또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 중엔 엄청난 성공 뒤에 찾아온 업자들도 있었다. 음악보다는 돈이 되는 건수를 찾아오는 사람들. 하지만 붕가붕가 레코드와 장기하는 안다. 그들이 언제라도 떠날 수 있음을 또 ‘장기하와 얼굴들’이 어느 정도 운에 의해 떴음을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나아갈 것이다. 고난이 닥치면 언제라도 그랬듯이 그때 가서 생각하면 그만이라고 말하면서. 책을 읽고 나니 어느새 붕가붕가 레코드의 직원들이 친숙한 이름이 되어 있었다.   

십여 년 전엔 나도 Nirvana의 음악에 심취해 있던 학생이었다. 기타를 배우기도 했지만 꿈은 꿈으로 남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숨겨놓았던 열정이 다시 불붙는 게 느껴진다. 또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과감히 올인 하는 것에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물론 힘든 일도 있겠지만 하루하루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을까? 마음에 여유가 없다보니 적당히, 별일 없이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또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어쩐지 응원하고 싶은 그들의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에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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