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법망으로부터 벗어난, 너무나 어린 아이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어른들은 고민하게 된다. 이 아이들을 처벌할 것인가, 교화할 것인가. 처벌만 하기엔 아이들의 남은 삶이 어떻게 망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교화만 하기엔 범죄가 악질이라 언제 또 아이가 범죄를 저지를지 모른다. 이 두 가지 대안은 가해자의 것이다. 어디에도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들의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피해자들의 아픔과 상처에 관계없이 이루어지는 가해자와 세상만의 타협이다. 가해자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법으로도 처벌할 수 없고 어쩌면 그들은 몇 년 만에 다시 세상에 돌아와 자연스레 사람들 속에 섞이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피해자가 평생을 고통으로 보내든 말든 가해자가 반성을 했든 안했든, 가해자가 저지른 일들은 묻히고 잊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피해자라면 혹은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이 일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번에 읽은 책 <고백>은 그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백>을 읽기로 결심한 건 인터넷 서점의 광고를 접하고 나서였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얼마나 충격적인 고백인가. 또 열세 살 살인자와 더 어린 희생자라는 문구도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읽게 된 <고백>의 표지는 강렬한 문구와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안심했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피해자 가족의 아픔을 말하는 잔잔한 고백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하지만 첫 장의 성직자부터 내 상상은 무너져 내렸다. 아무런 배경이나 상황설명 없이, 피해자의 어머니인 교사 유코가 담담히 말하는 사건의 전모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이들이 맞는지 의심할 정도로. 또 일단 잡으면 한 번에 읽힐 정도로 몰입도도 강했다.  주말에 가볍게 읽을 생각으로 집어 들었던 책인데 의자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읽어 내려갈 정도였다.

중학교 교사인 모리구치 유코에게는 세상에 그 무엇보다 소중한 딸이 있었다. 아버지 없이 단 둘만의 가족인 딸이라 더 애틋하고 각별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딸이 자신이 일하는 학교 수영장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사고사로 처리되지만 유코는 알아냈다. 자신의 딸이 자기가 가르치는 반의 학생들에게 살해당했음을. 종업식 날, 유코는 학교를 떠날 결심을 하고 반 학생들에게 담담히 이 사건의 전모를 밝힌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으되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가해자를 묘사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 중 최대의, 또 가해자가 받을 고통 중 가장 두려워 할 차가운 복수를 한다.

여기까지가 제 1 장인 성직자의 내용이라면 제 2장부터 제 6장까지는 그 후일담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 후일담이 또 단순하지가 않았다. 가해자 소년들부터 가해자 소년의 어머니들, 그리고 같은 반 학생들의 이야기가 이어나가면서 점점  더 경악할 일들이 등장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작가의 능력이 놀라웠다. 뒤늦게 글쓰기를 시작해 이 책이 데뷔작이라 하는데 일본 독자들이 열광한 것도 이해가 갔다. 복선을 깔고 채워나가는 방식과 흔치 않은 이야기구조가 이 작가가 진정 신인인가 의심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또 전혀 예상치 못한 끝에 반전이라니.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소년법의 개정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에서나 큰 화두거리다. 세상이 변하고 인터넷 같은 매체의 발달로 아이들은 어른에 가까워지는데 법은 옛날 그 시절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유코의 방식이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가해자의 인권만 존중되고 피해자는 조용히 있으라는 법의 방식과 대처가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피해자의 가족이라면? 하고 생각만 해도 마음이 저릿하게 아픈데 실제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자극적인 제목과 내용들을 뽑아내 가해자들에 대해 떠드는 언론이나 그 기사를 보고 범행방식의 잔혹함, 가해자들의 개인사만을 문제 삼았던 내 자신이나 피해자들을 사건 뒤편에 내몬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고백>은 이렇게 내게 많은 생각거리들을 안겨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나와 같은 것을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최고의 문제작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고백>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계속 기억에 남을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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